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48화 (748/956)

시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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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가득 메우던 그 검은 연기가 이내 마스토의 주위를 메웠다. 아이들을 희롱하던 이단심문관들이 변화를 눈치채고 돌아보았으나,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야!”

“라틈! 어디 있어?”

“쿠거! 샨토!”

서로를 찾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지만 주위를 메운 검은 연기는 방향감각마저 상실케 할 정도였다. 기도문을 읊어도 연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무기를 꺼내 들어도 적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를 상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

그때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음을 떠올린 이들은 얼른 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미스티오에서 준비해 준 그것은 마법을 무위로 돌리게 만드는, 소위 신의 뜻이 이어진 주문서였다.

종이 한쪽 끝을 물고, 한 손으로 북 찢어버리니 거짓말처럼 눈 앞을 가리던 어둠이 걷혀나갔다. 그리고.

―슈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인지할 때, 이미 그의 마지막 숨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있었다. 붉은 피가 공중에 뿌려지고 찢어낸 주문서를 손에 움켜진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고, 늦지 않게 주문서를 찢어냈으나,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빼들었던 마스토의 손짓에 네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동료들을 내 손으로 베었고, 동료들이 바닥에 쓰러진 후에야 이성을 되찾았소.”

실력의 우위를 가를 수 없는 처지였지만, 어둠이 눈을 가린 찰나의 틈이 마스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동료들은 차갑게 식어가고 마스토는 살아남아 숨을 헐떡였다. 팔이 분질러진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던지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아이의 앞에서 여동생들은, 헐벗겨진 자신들의 몸은 돌볼 생각도 않고, 오빠들을 등 뒤에 두고 벌벌 떨며 마스토와 쓰러진 이단심문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다 끝내 내뱉어지지 못하고 삼켜졌다. 마스토는 그들을 일별하고 몸을 돌렸다.

“한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게 되었소. 호숫가에서 잠시 목이나 축인 뒤 떠나려 했었는데 거기서 호라엘을 만났지.”

어린 호라엘은 마스토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좋은 이웃이 될 거라면서.

“아저씨의 미래를 봤던 거군요.”

“그녀는 날 자기 집으로 초대했고, 난 이상하게도 그걸 거절하지 못했소. 그리고 그 초대 이후, 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소.”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그녀는 곧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이 곁에 남았다.

긴 이야기를 털어놓은 마스토는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 신의 사제이자 이단심문관이었던 내가 마법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누구나···라.”

“그래서 제게 그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마법사가 된 이단심문관의 과거 이야기는 흥미롭긴 했지만, 딱히 호기심을 가질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앞서 그가 말하길, 호라엘이 단유를 그에게 보낸 이유가 과거를 털어버리라는 의미의 배려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기에 단유는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서 단유는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단유의 직설적인 물음에 마스토가 답하려던 그때,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닫혀 있던 문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마스토의 아들, 타리슬이 돌아왔다.

“술, 가져왔어요.”

소년의 품에 꽉 찰 정도의 항아리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을 바라보는 마스토의 눈빛은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저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정적이 감도는 실내의 두 사람을 살피는 타리슬을 보니, 그의 아버지가 어떤 과거를 지내왔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잔 가져올게요.”

마스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유를 쳐다봤다.

“술, 마실 수 있소?”

“즐기진 않습니다.”

“받아만 주면 되오.”

잠시 후,

―쪼르르

항아리에서 흘러나온 술이 잔을 채웠다.

“도와주어 고맙소.”

그리고는 조용히 잔을 들어 들이키는 마스토. 단유도 그를 따라 잔을 들어 마셨다. 독하고 쓴 술이었다.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은 마스토는 엄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이후로 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소.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 만약 책임질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지도 못했을 것이나, 아들이 있어,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그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으니, 난 이를 악물고 버텼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타리슬은 엄숙하기만 한 분위기 탓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자리만 지킬 따름이었다. 사실 들키지 않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다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자신을 거론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로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인 마스토는 의미가 명확치 않은 대명사와 주어가 빠진 문장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또한 난 두려웠소. 그 또한 내가 통제하기 힘든 정도의 힘이기에, 제어력을 잃는 순간 내가 내가 아니게 될까 두려웠소. 그래서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싶었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매일 악몽을 꾸고, 매일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왔소.”

잠드는 게 쉽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있는 게 힘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몸을 혹사케 하는 일을 하면 잠시나마 과거를 잊을 수 있었다.

“아버지···.”

타리슬은,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털어놓는 고통에 대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타리슬을 바라보며 마스토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과 짐을 아들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소. 그래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싶었고. 아마 그런 고민을 호라엘이 알고 이야기해준 것이 아닐까 싶소.”

“제가 해드릴 건 없어 보이는데요.”

“거래를 청하오.”

마스토는 다시 한번 술잔을 채우고 비운 뒤, 아들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단유를 바라보았다.

“내 아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 주시겠소?”

“아버지!”

타리슬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미안하다. 하지만 타리슬. 난 너에게 내 슬픔과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 전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아요!”

“아들아. 아버지는 쫓기는 몸이다.”

“누가 아버지를 쫓는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교국의 사람이다.”

단 한번도 교국에 대해, 교리에 대해 말한 적 없던 아버지였기에 타리슬은 아버지의 고백이 놀라웠다.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난 교국에 죄를 지었다. 다행히 그 시기 즈음에 교국은 공국과 전쟁을 벌였고, 난 혼란의 틈을 이용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전쟁을 마친 교국은 곧 주변으로 사람을 보내어 날 찾을 것이다.”

“전쟁을 벌였을 때라면,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일이잖아요? 왜 아버지를 찾는단 말이에요?”

마스토는 단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도와주시겠소?”

“불가합니다.”

단유의 단호한 대답에 마스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유는 그런 마스토의 반응에 상관없이 거절의 이유를 담담히 밝혔다.

“타리슬에게 정말 슬픈 일은 아버지의 죄가 대물림되는 상황이 아니라, 아버지가 곁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바로 지금의 상황일 것입니다.”

그건 직접 경험으로 느낀 바였다. 부모의 부재가 불러오는 외로움과 슬픔은 극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로 아들을 사랑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하시죠. 그게 진짜 아들을 위하는 길일 겁니다.”

“난 아무런 힘이 없소. 아니, 힘을 쓸 수 없소. 비록 동료들에게···는 그리 했지만, 교국을 상대로는 그럴 수 없소. 그리고 당시에 난 맹세했소. 두 번 다시는 힘을 쓰지 않겠노라고.”

“아니요. 전 아저씨를 돕지 않을 겁니다. 아저씨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아저씨보다 타리슬이 더 딱합니다. 아저씨는 그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두려워만 할 뿐이고, 그것을 이유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핑계를 대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얼마 전 이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부자 관계에 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진심을 모른 채로 수십 년을 오해하고 살아온 아들에 관한 이야기.

“과연 아저씨가 아들을 떠난다고 해서, 아들이 진정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당장 타리슬을 보세요.”

부자가 눈을 맞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가 새벽에 보아 온 타리슬은, 비록 힘에 부쳐 힘들어하긴 해도 불행하다거나 싫어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습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아버지와 함께하기에 행복할 뿐인, 평범한 아이입니다. 평범한 아이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아버지가 제일 필요한 법이죠.”

단유는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거래는 받지 않겠습니다. 비록 이 글자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아드님을 인질 삼아 알아내고 싶은 정도는 아닙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단유는 이후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잠시만!”

단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스토가 보였다.

“그저 책임지기 싫어 도망가는 것이 아니네. 정말로 지금이 위기이기 때문이네. 교국은 분명히 사람을 보내 날 찾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물론이고 타리슬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네. 나라고 아들을 버리고 싶겠는가? 하지만 아들을 데리고 평생을 도망만 다니며 살 순 없는 법이지 않은가?”

단유는 마스토의 진심을 읽었다. 그러나 그의 진심에도 단유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가 아저씨를 돕지 않겠다는 이유 중 하나는 말씀드렸듯 타리슬에겐 아버지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라면, 제겐 아저씨가 충분히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있음에도 일부러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에요. 무슨 방법이냐고요? 비록 아저씨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분명 유용하면서도 강한 힘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힘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마스토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가보겠습니다.”

“잠시만.”

다시 단유를 불러 세운 마스토는 단유를 앞에 앉힌 뒤 홀로 침실에 들어갔다. 몇 분 후, 그가 다시 단유 앞에 섰을 때, 그의 손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것이네.”

“뭔가요?”

“교국이 나를 찾는 이유. 그리고···자네 역시 찾는 것.”

단유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마스토를 향해 천천히, 또박또박 대꾸했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가져가 주시오. 부디, 내 과거와 업보가 담긴 이것을.”

본래 교국 밖으로 나가는 이단심문관들 중 일행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이가 지녀야 할 물건이었다. 비록 마스토는 그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사달이 벌어졌을 당시 그는 죽어버린 지휘자의 품에서 이것을 빼돌렸다. 욕심을 낸 것이 아니라, 이것이 교국 외부의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보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자는 신께서 직접 남기신 것이라고 했고, 혹자는 신의 뜻을 인세(人世)에 전달하기 위해 고안해낸 문자라고도 했소.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것은 교국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될 중요한 비밀 중 하나요. 그렇기에 교국 내 수뇌부는, 나를 찾으려 할 것이 분명하단 이야기였소. 또,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대로, ‘비밀’을 회수하는 동시에,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할 테고. 보통 이런 경우 교국은 언제나 잔인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 날 두렵게 만들었소.”

“그걸 왜 제게 주시는 거죠?”

“···내가 잘못할 뻔했던 상황을 막아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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