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47화 (747/956)

시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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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떨군 마스토의 늙은 주먹이 무릎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을···아는가?”

“들어본 적은 있어요.”

“마법사라고 하니, 역시 들어본 적은 있겠지.”

음울한 마스토의 목소리가 바닥에 눌어붙을 듯이 새어 나왔다.

“많은 마법사들이 이단 심문관의 손에 죽어갔었지.”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

이단심문관. 교국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잔혹하기로 소문난 이들이었다. 교인, 비교인을 가리지 않고 이단으로 지목할 수 있으며, 이단으로 지목한 이를 특별한 절차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다.

요컨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이들, 이라고 할 수 있다.

교리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기사들 못지않게 월등한 검술을 익힌 전투원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지니고 있기에 대내외적으로 그들에 대한 악명도도 높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유명해지게 된 배경은 단연코 마법사들과의 전투였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마법사들은 일반인들이 범접하지 못할 막강한 무력을 보유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여느 기사들도 마법사들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고 보던 그때, 이단심문관들은 그들과 맞섰다. 그리고 사람들의 우려를 비웃듯 이단심문관들은 그들보다 더 무서운 마법사들을 ‘학살’했다.

어느 때부턴가, 마법사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이단심문관들은 지탄의 대상이 된 마법사들을 인류의 공존과 안정을 위해 없애야 할 대상으로서, 악마와 손잡은 이들, 즉 ‘이단’으로 지목했다.

“전쟁, 아니 사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싸움들이 벌어지기 전, 마법사들의 횡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 전해지오.”

마스토가 바라보는 방향에 단유가 앉아 있지만, 그의 눈은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마법사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힘을 지니게 된 몇몇이 그 힘을 남용함으로서 피해자를 만든 것이지. 비단 마법사뿐이겠소? 분에 넘치는 권력을 지닌 이들도 그 힘에 취하는 법이니.”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독재자, 귀족, 고위 관료와 같은 위정자부터 권력자들의 권세를 빌려 쓰는 이들이나 뒷골목 깡패들에 이르기까지, 따지자면 주위에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게 그런 이들이다.

“아무튼, 특정 시기부터 마법사들은 ‘마인’으로서 불리게 되고 교국은 그들을 ‘이단’으로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들로 지목하게 되었소. 그리고 모두가 아는 이단심문관과 마법사들 사이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사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소. 마법사들의 전횡이 먼저였는지, 교국의 압박이 먼저였는지.”

무슨 상관이냐 물을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법사와 교국 간에 벌어졌던 그 싸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교국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싸운 것이라 할 수 있고, 교국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믿음의 신성성을 전 대륙에 걸쳐 확보하려는, 요컨대 일종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받는 이단심문관이라 할지라도 마법사들을 잡거나 죽이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놀랍게도 이단심문관들은 마법사들에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단심문관들을 돕는 세력이 있었소. 교국 내부에서는 그들을 형제단이라 불렀고, 외부에서는 그들을 비밀조직―미스티오(Mystior)라고 불렀지. 그들은 마법에 피해를 받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소.”

“알고 있습니다.”

단유의 대꾸에 마스토는 마른 세수를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 전쟁은 교국 주변을 벗어나 전 대륙에 걸쳐 벌어졌소. 마법사가 있다고 제보가 들어오면 이단심문관과 형제단은 지체 없이 출동하여 마법사들을 잡아들였고.···아니 사실 대부분은 만난 자리에서 곧장 처형했으니 잡아들인 이는 많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소. 죽인 마법사는 사지를 자르고 목을 베어 내걸었소. 그들을 조각내어 들짐승의 먹이로 주기도 하고, 광장에 던져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단자의 말로를 각인시키기 위한 선전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오.”

효과는 확실했다. 두려움 때문이든, 교국이 내세운 명분의 정당성 때문이든, 전 대륙은 교국의 방침에 동의했고, 동조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그 전쟁은 내 대에 이르러 한풀 꺾이게 되었소.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오. 일방적인 사냥이고 학살이었으니, 세상에 드러났던 마법사들은 목숨을 잃었고, 드러나지 않은 마법사들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숨거나 정체를 감추려 애썼다오. 물론 그런 이들도 이단심문관은 끝까지 쫓아 척살하려 했지. 교국의 처사는 잔인했지만, 누구도 교국의 일에 반대하지 않았소. 그리고 더 이상 마법사를 찾기가 쉽지 않아질 때쯤, 나의 이단심문관 활동이 시작되었소.”

견습사제였던 마스토는 그가 지녔던 천부적인 힘과 독실한 신앙심이 인정되어 이단심문관으로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교국이 가르쳐준 대로, 마법사들은 인류의 적이며 재앙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그리고 그의 신을 위해, 마스토는 죽음을 불사하고 제 한 몸 바치겠노라 제단 앞에서 선서했다.

그가 교국을 벗어나 ‘사냥’을 하기 시작할 즈음은 이미 대륙에 마법사가 몇 남지 않았을 때였다. 교국은 마법사의 씨를 조금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단심문관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보냈고, 마스토는 새벽마다 교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는 기도를 올렸다.

“난 신념을 가지고 있었네.”

자신이 앞으로 행할 행동이 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불순한 마인들로 인해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마스토는 교국을 나간 뒤에 알게 되었다.

“이단심문관 역시 마인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큰 힘을 지니되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이단심문관 역시 같은 꼴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이단심문관은 홀로 다니지 않았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자신들과 미스티오에게 약하다 해도, 그들의 마법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단심문관 한 명을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만을 고려한다 해도 적지 않으니 혹여 희생이라도 생기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교국은 제도적으로 이단심문관이 심판활동을 하기 위해 교국 밖으로 나갈 시에는 심문관을 넷에서 다섯 정도로 구성하여 내보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마인을 사냥하는 일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단심문관’이기에 마법사 외에도 이단으로 여길 만한 이들을 찾아 ‘회개’를 시켜야 했다.

“신을 모욕하고 사특한 종교를 전파하려는 자를 찾아 징치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었다오.”

마녀를 찾아 불태우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이를 찾아 목을 베었다. 간혹 이단심문관의 활동을 방해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당연히 즉결처형이었다.

또, 따로 본국에서 내려오는 지령에 따라 미션을 수행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교국과 거래하는 상단의 상단주가 교국 밖에서 이단과 거래한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그들을 조사하여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줘야 했소. 우리는 상단주의 목을 베어 그 피로 상단 본관을 정화시키고, 상단에 속한 이들을 교국으로 보내 노예로 삼았다오. 상단에 속한 재산은 몰수하여 신전에 바쳤지.”

사실상 이단심문관이 지난 자리에는 피로 물든 땅과 잿더미만 남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신념과 신앙이란 이름으로 바라보자면 거리낄 게 없었다. 허나 거기가 끝은 아니었다.

“내 동료였던 이는 어린 여인의 머릿속에 깃든 악마를 내쫓고 어둠에 물들었던 몸을 정화시키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었다오. 그가 신은 장화는 적들의 피가 아닌 처녀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지만, 나를 포함한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소. 몇 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주머니가 비기는커녕 점점 더 무거워져 새로 주머니를 만들어야 할 정도였던 이도 있었고.”

깊은 회한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번은 어느 나라의 왕궁을 찾아갔소. 이단을 수색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서 며칠 동안 그 나라에서 지낼 것이라는 걸 해당국의 왕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지. 그런데 왕이 따로 우리를 불러 이야기했소. 자기 신하들 중에 이단이 있는 것 같다고. 그가 어떤 이단의 행위를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소.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은 왕이 건넨 두둑한 주머니와 함께 사라졌고, 우리는 왕이 지목한 귀족의 집을 찾아가 어린 아이부터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이들까지 몰살시켰소.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 것이었소. 하지만 거기에 대해 딱히 속았다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오. 왕이 얼마나 신실한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의 충분한 금액이 들어간 주머니는 우리가 머뭇거릴 틈도 주지 않았소.”

거기까지 이야기를 털어놓은 마스토는 두꺼운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짓눌린 부위가 하얗게 변하도록 억세게 누르던 손을 떼었을 때, 그의 눈자위는 붉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물기 서린 목소리로 토해냈다.

“그날 밤, 동료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주머니에 든 돈을 나누었소.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금화 몇 닢을 잊을 수 없소. 이제껏 보았던 것은 내 동료의 일이었으나, 이제는 나의 일이 되었소. 나는 내 손바닥 위에 들린 금화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오.”

그가 내려다보는, 이제는 주름만 가득할 뿐인 두 손바닥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 신념과 명예와 사명감을, 그 금화에 팔았다오.”

그렇다고 갑자기 마스토의 일상이 변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퇴마라는 이름으로 처녀를 희롱하는 동료를 막지 못했고,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이단 심판’을 거론하며 손을 쓰는 동료를 바라만 봐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스토의 신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난 이단이 되었소.”

더 이상의 신의 뜻을 묻지 않게 된 이단심문관. 더는 신념을 지킬 수 없게 된 이단심문관. 그의 손에 금화가 들렸던 순간부터 그는 신의 뜻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되었고, 동료를 막을 수 없었고, 그럴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너무 늦었던 것이지.”

그렇다고 그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없었던 마스토는 수동적으로 그들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변화가 생긴 것은 사소한 계기로부터였다.

여느 때와 같이 마법사를 찾는다는 명목 아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줄 이들을 찾아 어느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한동안 주머니를 채우지 못해 마음이 다급했던 것인지, 아니면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지 못해 갈증을 느꼈던 것인지 분명하진 않아.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 내 동료들은 분명 시비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소. 그리고 우리 앞에 작은 여자 아이들이 눈에 띈 것은 불행이었어.”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여자 아이들이었지만, 동료들의 눈엔 달리 보였던 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인사도 올리지 않는 그녀들을 윽박질렀고, 겁먹은 여자 아이들은 도망을 갔다. 이단심문관 앞에서 도망을 가는 것은 분명 찔리는 게 있기 때문이라는 괴이한 논리를 내세우며 아이들을 붙잡는 욕망 덩어리들의 뒷모습이 마스토의 눈에 들어왔다.

내적갈등을 겪으며 입술을 깨물 때, 그녀들의 오빠로 보이는 이들이 달려와 길을 막았다. 햇빛에 그을려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 아이들의 앙상한 팔목을 분지르며 웃는 이단심문관들을 보는 순간 마스토는 무언가 속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은 것 같았다.

“어설펐던 내 신념과 신앙이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지.”

엘리트로 교육받으며, 독실한 신앙과 교리로 무장했던 마스토. 절대 흔들릴 리가 없다고 여겼던 그의 사상은 끝내 버티지 못했고 부서져버렸다. 부서지고 갈라지며 생겨난 그 틈으로 마스토는 새로운 무언가가 짓쳐 들어옴을 느꼈다.

그것은 생소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형태의 의지였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자 했던 것. 막연하게나마 바르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의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눈으로 보이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깨어진 틈을 메우며 자라났다. 메말라 갈라진 땅 위로 쏟아부은 물이 사이를 메우는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앙과 교리가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라 여겼건만, 그것은 더럽고 추악한 것을 가리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신앙과 교리에 의심을 품을 망정, 그의 정의는 버릴 수 없었다. 왜 사제가 되었던가. 왜 이단심문관이 되었던가. 왜 마법사들을 죽이려 했던가? 모두 신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신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신앙이 아니라, 사람이었네.”

그래서 마스토는 빛을 버렸다. 그리고 빛을 버리는 순간, 속에서 타오르던 의지는 어둠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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