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44화 (744/956)

시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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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느낀 호라엘이 물었다.

“혹시···그런 마법은 안 되시는 건가요?”

“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던 호라엘이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전 루치드가 여러 가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봤던 탓에 그런 ‘이동’ 마법도 사용하실 수 있는 줄 알았거든요. 제가 착각했던 거네요.”

단유는 입을 닫은 채 볼을 긁적였다. 예전에 그런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설명할 필요까진 느끼지 못했고, 설명한다 한들 왜 그 마법을 지금은 쓰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불필요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 마법을 쓰실 수 있게 되는 거겠네요.”

“네?”

단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니, 호라엘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루치드에 대한 예언이었네요!”

무슨 선물이라도 건넨 것 마냥, 해맑게 웃는 호라엘이었다.

****

시간이 꽤 흐르고 난 뒤, 단유가 집에서 나오니 옆 사람과 잡담하며 시간을 때우던 테로스가 금방 달려왔다.

“끝났는가?”

“일단은요.”

“일단?”

그때 따라 나오던 호라엘이 등 뒤에서 단유를 불렀다.

“저기요?”

단유와 테로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호라엘이 두 손을 뒤로 두르며 물었다.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어차피 식사 때잖아요?”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관에 가서 먹을게요.”

“그러실래요? 어쩔 수 없죠, 뭐. 다음에 또 오세요.”

호라엘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테로스가 태연히 자리를 뜨는 단유를 쫓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건가? 혹시 자네에게 예언을 해 주었는가?”

“네.”

“정말인가? 놀랍군.”

“뭐가요?”

예언자란 이가 예언을 하는 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일까? 그러나 테로스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호라엘은 예언을 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이전에도 언급했었지만, 호라엘은 인근에서도 유명한 예언자이지만, 저 멀리 제국에서도 그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거물이다. 그런 그녀가 최근 몇년간 예언을 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길 정도의 문제였다.

혹자는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예언을 해왔던 그녀였기에 이제 그 능력이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짐작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그녀 주위의 수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녀가 불편을 느끼고 있어 그 불안감이 그녀의 미래시(示)를 막는 거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다른 경우의 수를 추측해보는 이들도 없진 않았는데, 어쨌든 이런 가정들로 인해 그녀 주위를 맴돌던 이들이 많이 떠나가게 되었다. 예언자로서의 능력이 다한 그녀를 따를 이유가 없다며 떠나기도 했고, 그녀를 보필할 수행자들 몇몇만 남기자는 주장에 서로 싸우다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평소처럼 호숫가 주변 산책을 떠났다가 몇 년만에 미래를 보게 되었다.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그녀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미래에 벌어질 무언가를 봤다는 것만큼은 확인이 되었다.

몇 년 만에 미래를 본 것이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대단히 중대한 비밀이 담긴 미래를 본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녀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그녀가 본 것들을 말하지 않았다. 이를 알기에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떠났던 이들이 소문을 듣고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그 소문의 예언이 바로 자네에 대한 것이었다니.”

단유는 물이 고인 자리를 피해 걷다가 대꾸했다.

“그게 저에 대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죠.”

“응?”

“예전부터 많은 예언을 했었고, 많은 미래를 봤었다면서요?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면 자신이 봤던 미래에 대해 털어놓지 않았고. 그럼 저에 대한 것도 이번에 본 것이 아니라 예전에 봤던 것일 수도 있죠.”

“어, 그렇게도 되나?”

테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단유가 되물었다.

“하나 여쭐게요.”

“말해보게.”

“왜 사람들이 그녀를 따르는 거죠? 그녀가 예언자라서? 아무에게나 예언을 해 주는 게 아니고, 미래를 보더라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입을 열지 않는다면서, 무작정 그녀를 따르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말이지.”

테로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붉혔다. 단유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호라엘은 그녀가 본 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아. 그건 그 사람의 운명에 관련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항상 어떤 인물의 운명과 관련된 것만 보는 것은 아니야. 때로는 그저 먼 미래의 어느 순간을 보기도 하지. 그리고 그때 보았던 것을 넌지시 알려주곤 했어.”

“넌지시?”

테로스가 그녀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은 그가 수도에 위치한 한 귀족가의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였다.

빈곤으로 고생하던 가족들에게 기대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던 어린 테로스는 가출을 감행, 무작정 수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이 좋게도 귀족가의 집사 눈에 띄어 심부름꾼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별로 꺼릴 게 없다고 여기던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당한 숱한 모욕과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져도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고민은 더욱 깊어졌지만 해결할 방법은 알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어느 날 주인이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바로 피스토피 성의 예언자를 데려오라는 명령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피스토피로 내려왔던 테로스는 그녀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결국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거친 싸움이 벌어졌고 몇몇에게 중대한 상처를 입히고 자신 또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이게 그 상처지.”

소매를 걷어 팔꿈치 위쪽의 흉터를 보여주는 테로스였다.

“뼈가 부러졌었지. 지금은 다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쪽 팔은 잘 접히질 않아. 뭐, 그래도 원망은 안 해. 그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운명의 길을 찾게 되었으니.”

테로스는 자신보다 어린 호라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녀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팔을 슥슥 문지르며 과거를 회상하던 테로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피스토피에서 내 운명을 찾게 된다고 하더라고.”

“운명이요?”

“응.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쪽으로 별로 생각이 없던 터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그냥 나랑 같이 가자고 졸랐지. 가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사실 평소 같으면, 그러니까 그 당시의 나는 꽤 난봉꾼이었으니까 그녀에게 협박을 해서라도 데려가고 싶었지. 하지만 그때 난 팔이 부러졌고, 호라엘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곧장 다른 놈들에게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몰매를 맞을 처지였거든. 말을 곱게 해야만 했어. 그런데 호라엘이 웃으며 말했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테로스가 의탁했던 그 귀족가는 그가 피스토피에 온 사이 멸문당했단다. 그게 무슨 벼락 맞을 소린가 물었는데, 며칠 후 정말로 귀족가가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당시 수도 내 정계에서 파벌 간의 싸움이 있었고, 그 귀족가는 상당히 수세에 처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귀족가는 피스토피의 예언자를 원했던 것이지만, 상황은 불과 며칠 만에 악화, 반대파의 손을 들어준 왕의 지시로 멸문이 확정되었다고, 테로스는 씁쓸한 미소로 과거의 일을 털어놓았다.

“갈 곳이 없어졌지만, 호라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한동안 산책을 갈 때 그녀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호의를 베풀어줬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그녀가 나보다 어리다는 생각을 못 했어. 그녀는 생각이 깊거든. 그럴 수밖에.”

테로스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과 바람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눈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의 생각이 깊어지는 건, 그 사람이 똑똑해서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풍부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사색 때문이라고 보네. 그리고 그녀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거야. 나도 돌이켜보면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그녀에 비하면 비교적 평이했다고 보네. 그녀는, 비록 피스토피에서 멀리 벗어난 적은 없어도, 그녀의 눈은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그녀가 보는 것은 먼 미래의 것.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도, 혹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감춰졌던 일들도 그녀는 볼 수 있었으니, 그녀의 속과 머리가 깊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이 나에게 깨우침을 주었고.”

“그래서, 운명을 찾는 구도자라 소개하신 건가요?”

“그런 셈이야. 말했잖나? 구도자가 뭐 별거냐고. 실제로 그녀의 집 주위에 있던 이들 중에는 나보다 더 오래 떠돌며 도를 찾던 이도 있었네. 하지만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와의 짧은 대화에서 그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경험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테로스는 피식 웃으며 단유를 돌아보았다.

“자네는 그 수많은 구도자들이 짧게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귀한 사람과 말을 나눈 것이네. 어디가서 자랑해도 될 일이라고.”

농담조로 말을 건네며 단유의 어깨를 툭툭 치는 테로스였다. 그리고 그사이 두 사람은 여관 앞에 도착하였다.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여관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그가 급하게 단유를 불러 세웠다.

“이봐.”

“네?”

“근데 혹시, 자네 뭘 들은 건지 귀띔이라도 해줄 수 없나?”

“테로스, 당신에게는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닐 거예요.”

“뭐 딱히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동해서 말이야. 대충이라도 알려주기 어려운 내용인가?”

단유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됐네. 내가 괜한 걸 물었군.”

단유는 고개를 다시 꾸벅 숙인 뒤 돌아서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테로스는 다시 머리를 벅벅 긁다가 혀를 차며 돌아섰다.

****

다음날에도 단유는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나섰다. 어제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돌아다니다 멀리서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전날 새벽에도 보았던 그 부자였다.

아버지의 경계서린 눈빛에도 아들은 한 번 봤던 얼굴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루치드!”

“타리슬.”

“기억하시네요?”

두 사람의 인사를 길게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아버지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끼어들었다.

“그만 가보시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타리슬이 눈꼬리를 내리며 단유에게 말했다.

“이만 가보세요. 저희 아버지가 불편하신가 봐요.”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멀어져가는 두 부자와 덜그덕거리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단유는 몸을 돌리려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수레에, 정확히는 수레 바퀴에 시선을 두었다.

호숫가에서 물을 길어 커다란 항아리를 모두 채운 두 사람은 다시 밀고 당기며 수레를 끌었다. 해자 위의 다리를 건너, 하품을 하는 경비병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왔을 때, 수레 아래에서 우지끈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레가 기울어졌다.

어어, 하며 소리를 내지를 틈도 없이 항아리가 옆으로 기우뚱거리다가 결국 수레 바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수 조각으로 깨어진 항아리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러나 타리슬은 깨져버린 항아리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버지! 괜찮아요?”

신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금방 땀범벅이 되었다. 수레가 기울어질 때 이를 억지로 막으려다가 그만 허리를 다치고 만 것이다. 바닥에 엎어진 채로 억지로 일어서보려 하지만 조금만 힘을 줘도 허리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져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부축하려 해도 아버지는 그저 고개만 흔들며 건들지 말라고만 할 뿐이니, 타리슬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울 뿐이었다.

“그럼 저기 가서 경비병들 좀 불러올게요.”

“관둬라, 윽. ···그들이 우릴 돕기나 하겠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나을 거다.”

짧은 말을 하는 것도 힘들어 몇 번을 끊어 말하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 아버지가 자력으로 일어섰다.

“괜찮아요?”

“괜찮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고집을 부렸다.

“항아리 하나는 깨졌지만, 다른 하나는 남았으니···우선 이걸 돌리고 한 번 더 물을 길어와야겠다.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구나.”

“그냥 아버지는 쉬세요. 저 혼자 할게요.”

“너 혼자는 무리다.”

“제가 도울게요.”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바로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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