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43화 (743/956)

귀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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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으로 물으시는 거죠?”

“음, 제가 봐왔던 당신은,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보는 것 말고요, 무슨 말인지 알죠?”

“계속 말씀해 보세요.”

“아무튼 제가 봤던 당신은 이제껏 주변에서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심지어는 제가 봤던 그 어떤 마법사도 당신 같진 않았거든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봤던 어떤 마법사는 모래폭풍이 부는 외딴 지역에서 사는데 부서지지 않는 모래성을 짓고 살더군요. 또 어떤 마법사는 손짓 한 번에 호수를 가르기도 했어요. 어떤 이는 마른 하늘에 번개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땅에 심은 씨앗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게도 했지요. 해가 짱짱한 곳에 비를 부르기도 하고, 무거운 물건을 자유자재로 들어 올리는 이도 있었어요.”

“신기하네요.”

“그러니까, 당신이 할 말은 아니죠. 그 어떤 마법사들도 루치드처럼 여러 가지 마법을 쓰는 경우를 전 보지 못했거든요.”

“제가 여러 가지 마법을 쓰는 걸 보았다는 말이군요.”

“네. 이를테면···손을 이렇게 하니까 바람이 불고.”

호라엘이 손바닥을 홱홱 뒤집으며 시늉을 하더니 단유를 빤히 바라보았다.

“맞나요?”

“그렇네요.”

“대답만 말고 한 번 시범 좀 보여주시지 그래요.”

“제가 왜요?”

“음, 좀 덥지 않아요? 문을 열었는데도 별로 시원하지가 않네?”

단유는 호라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시니까 민망하네요.”

분명 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수줍음 많은 동네 처녀, 라고 생각했었는데 잘 못 생각했던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법인가.

단유는 찻잔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바람을 일으켰다. 약한 바람이 그녀의 가는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고 지나갔다.

“와,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요?”

“이야기하시던 것부터 계속 말씀해보세요.”

그녀는 단유가 성문을 부술 때 사용했던 마법과 사울른을 처음 만났을 때, 달려오는 군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사용했던 마법, 그리고 흑의인들을 상대하러 갈 때 사용했던 빛의 마법까지 읊어댔다.

“이렇게 다양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처음 봤거든요.”

“다양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떻게요?”

결국은 모두 하나의 큰 뿌리에서 파생된 마법에 불과하다. 단유가 사용하는 마법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바람 마법이란 것은 실상 공기의 움직임, 힘의 이동, 에너지의 운동에 관한 역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 에너지의 진체, 근원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여 구사하게 된 마법이 해체 마법과, 이를 응용한 빛의 마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최근 깨닫게 된 물을 소환하는 마법 역시 에너지와 미립자에 관한 깨달음의 연장선에 있는 마법이었다.

“그거예요.”

“뭐가요?”

“당신이 다른 마법사, 아니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유.”

“···모르겠는데요.”

“당신이 가진 그 지식은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거죠?”

단유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당신의 마법을 견식 하는 것만으로도 놀랍긴 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이게 사실 당신을 불렀던 진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신이 만든 그 지하도시요! 그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 거죠?”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어요. 떠나기도 무섭고요. 하지만 당신이 만든 그 지하도시를 본 뒤에는 정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시면 되죠.”

“어딘 줄 알고요.”

“어딘지 모르시나요?”

“그것까진 알 수 없죠. 제가 본 건, 그저 하늘보다 더 밝은 천장 아래 견고하게 지어진 마을 뿐이었는 걸요.”

그녀가 자신이 봤던 지하도시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을 때, 단유는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아니 긴장이 풀렸다기보다는 조금 실망했다고나 할까? 기대, 라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혹시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녀가 봤던 단유의 모습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던 모양이다.

단유는 그녀의 감상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찻잔을 비웠다.

“···거기다 이렇게 맞나요? 이렇게만 하면 물이 저절로 쏟아지더라고요? 맞죠?”

“네.”

“정말 그때는 제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걸 직접 만져보지 못한다는 게,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게.”

“그래서, 호아엘이 원하는 게 뭔가요? 여기 이 집에도 그걸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달란 이야긴가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감흥을 잊지 못해 신난 여자아이처럼 쉴 새 없이 떠들던 호라엘의 입이 굳게 닫혔다. 단유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더니 고개를 기울여 단유 너머로 열려있는 밖을 응시했다.

“저기 저 마당에 핀 꽃들 예쁘지 않나요?”

“네. 잘 가꾸신 것 같더군요.”

이미 이 집에 들어올 때 봤던 터라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단유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시선은 이제 바닥을 보이는 찻잔에 둔 채로. 차를 우리며 남은 찌꺼기가 잡티처럼 누런 찻잔에 붙어 있었다.

“사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저기 있는 분들 중 솜씨 좋은 분들이 꾸며 주신 거죠. 저 꽃들 뿐만이 아니에요. 보시기에도 낡아 보이는 이 집은 가끔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거세게 몰아치면 지붕이 날아가거나 물이 새서 저도 모르게 썩어가는 곳들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것도 저분들이 찾아서 고쳐줬어요. 저분들이 없었다면 전 아무것도 못했을 거에요. 고마운 분들이죠?”

“그렇군요.”

“그렇다고 제가 마냥 저분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아니에요.”

갑자기 목소리의 톤이 떨어졌다. 단유가 시선을 들어 올리니, 턱을 괸 채로 밖을 응시하는 호라엘의 표정이 언뜻 쓸쓸해 보였다. 기분이 금방금방 변하는 것을 보면···.

“제가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나 봐요. 먹을 것 줄 테니까 징징대지 말라는 것처럼.”

단유는 속으로 생각했던 게 들키기라도 했나 움찔했지만, 이내 그것이 좀 전에 자신이 무심코 말했던 말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과했다.

“그렇게 들으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그런 의도로 말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분들에게 뭘 해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어요. 단 한 번도. 다만 저분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음을 탓한다면 저도 할 말은 없겠네요. 그래도, 절대 무작정 기대고 사는 철없는 아이는 아니랍니다.”

“네. 다시 한번 경솔한 발언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말끝을 늘리는 호라엘. 단유는 그녀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이번엔 루치드한테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뭐를요? 수도 시설 말인가요?”

“아니요. 저를 그곳에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글쎄요, 그건···.”

“곤란한가요?”

“아무래도 제가 지금 가려는 곳은 그곳에서 정반대인지라. 위치를 모른다 하셨으니 말씀드리자면, 그곳은 공국의 동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근처입니다. 거기 마을 이름이···.”

단유가 지명과 위치를 상세히 설명하려 할 때, 호라엘이 끼어들었다.

“상관없지 않나요?”

“···예?”

이번엔 단유가 조금 불쾌해지려 했다. 단유의 사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한 호라엘의 말투에 단유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좀 전과 정반대의 상황이라 이번에는 그녀의 사과를 들어야겠다, 고 생각하려는 찰나.

“루치드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네?”

“어? 아닌가?”

단유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니 오히려 호라엘이 당황했다. 둘 다 입을 벌린 채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려니 다른 의미에서 어색한 공기가 집 안을 메웠다. 문도 창도 다 열어 놨는데 어색함은 빠져나갈 생각을 않는다.

****

“뭐지? 왜 저렇게 오래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정원 근처에서 서성이던 한 사내의 말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내가 집 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뭐 별 문제는 없어 보이는구만. 할 일 없으면 이거나 도와.”

그는 자신이 심었던 꽃 주위로 자라나는 잡초를 손으로 뜯어내며 대답했다.

“나 참. 정성일세, 그려.”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지. 덕분에 깨닫는 것도 많으니.”

“그게 뭔데?”

“어디 남이 어렵게 얻은 도를 강탈하려 하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궁금해 그러네.”

“자네가 보기에 이 꽃이 어떤가?”

“어떻긴? 어제도 오늘도 늘 보던 건데. 솔직히 내 감성에는 별 느낌이 와 닿지 않네. 그래도 호라엘이 좋아하니 그냥 두고 보는 거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꽃을 가꿀 시간에 좀 더 실용적인 것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

“쯧쯧, 자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게 계속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석(朝夕)으로 달라지네.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달라. 어제와 다르고 오늘과 달라. 가만히 지켜보면 끊임없이 달라지는 게 보인단 말이야.”

“이게?”

“그래. 덕분에 난 인생을 배우네.”

“인생이랄 거까지 있나?”

“한 생명의 일생을 관찰하는 것은 무척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이꽃은 그 시간을 단축 시켜주지. 꽃이 피고 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짧다고 해서 그 일생을 폄하할 순 없네. 예를 들어 인간이 여러 고난과 시련을 거치며 살아가는 것처럼, 이 작은 꽃 역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마 입이 없어 말을 못한다 뿐이지, 만약 이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하루 종일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며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야.”

“고통스럽다고?”

“이곳은 이 꽃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일걸?”

헛꿈이나 꾸는 여자애들처럼 알록달록한 꽃말이나 늘어놓으며 감성적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더니, 고통 섞인 비명을 하루 종일 내질러야 할 정도의 지옥에서 자라나는 꽃이란다. 사내는 눈을 끔뻑거리다 그 이유를 물었다.

“약한 바람에도 꽃대가 휠 정도로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이는가? 만약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나무가 여럿 있었다면 이렇게 휘청이지 않았을 것이야. 혹은 비슷한 꽃들이 수북이 자란 꽃밭이었다면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티겠지. 하지만 관상용으로 심은―물론 내가 심었지만―이 꽃은 옆에서 자신을 지탱해줄 이웃도, 비바람을 막아줄 나무도 없네. 그리고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에 땅이 흔들려 뿌리가 성하지도 않지. 깊이 심지 않은 내 탓도 있겠지만.”

사내는 또 다른 잡초를 하나 뜯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이렇게 원치 않은 잡초들이 자라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좁은 땅덩어리에 겨우 뿌리 내려, 고작 자기 하나 건사할 정도인데, 그마저도 잡초들이 엉겨 붙어 먹을 것을 뺏으니 이 얼마나 귀찮고 화가 나는 일일까? 가만히 쉬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지나가던 이들이 시시때때로 붙어서는 멀쩡한 꽃잎을 뜯는다거나 꺾으려 드니, 이곳이야말로 이 꽃에겐 지옥이나 다름 없지 않겠는가?”

“거 참.”

궤변이란 건 알겠는데, 딱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사내는 뒷짐을 지며 시선을 거뒀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지.”

앉아서 꽃을 돌보던 사내의 한 마디에 다시 돌아보자 사내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꽃이 마치 호라엘처럼 느껴져.”

노란색과 흰색이 섞인 조그만 꽃과 호라엘을 번갈아 보던 사내는 혀를 차며, 주저앉았다.

“이거 뽑으면 되나?”

사내 둘이 붙어 앉아 꽃 주위의 잡초들을 뜯기 시작했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단유가 입을 열어 어색함을 깨뜨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래요?”

“그게, 제가 본 루치드는···.”

호라엘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뭔가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선 말씀드리자면, 전 보통 꿈을 꾸는 것처럼 어떤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 현장에 가서 보는 것처럼 느끼거든요. 아까 말했던, 루치드가 성문을 부셨을 때도 전 직접 그 자리에 가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봐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필 수도 있고, 루치드의 뒤를 따라 걸으며 보기도 하고. 다만 보기만 할 뿐 만지거나 할 순 없죠.”

“네, 그건 이해했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이건 얼마 전에 본 건데, 루치드가 어느 산마루에 서 있는 모습을 봤어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아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죠. 그래서 전 천천히 다가가서 루치드가 뭘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죠. 바라보니 숲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그 숲 사이로 넓은 강이 지나고 있더라고요. 경치가 참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루치드가 사라지는 거예요.”

“사라져요?”

“처음에는 여기서 뛰어내린 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저 역시 강제로 이동 당했어요. 이걸 ‘이동’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제가 정신을 차리니, 바로 옆에 당신이 있었고, 당신은 아까 보았던 그 강의 옆에서 물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더군요.”

단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호라엘의 설명이 마치 과거 자신이 구사했던 ‘순간 이동’ 마법처럼 들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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