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40화 (740/956)

귀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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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위대한 예언자인가 하면 말이야.”

남이 모르는 사실을 자신이 잘 안다는 게 기뻤던지 아니면 뭔가를 뽐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했던지, 혹은 단 한 잔의 맥주로 충분히 취기가 오른 탓인지 모르겠지만, 테로스는 피스토피의 예언자라는 이와 관련된 일화들을 풀어놓으며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단유에게 주입하려 애썼다.

“설마 공국과 교국 사이에 난 전쟁을 모르지는 않겠지? 결국 교국이 전쟁에서 이기고 공국을 점령했어. 피스토피의 예언자는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이것을 예언했었고 그 결과까지도 예언했단 말이지. 그럼 의심 많은 사람은 이렇게 묻지. 전쟁이 있기 전부터 공국이 흔들린 증거들이 있지 않느냐? 공국 정계 내에서 벌어진 분란이나 몇 년에 걸쳐 발생했던 몬스터들의 준동이 국력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음을 안다면, 그리고 교국이 이전부터 선전전을 벌이며 호시탐탐 공국의 땅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예언 따위는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고. 그런데 그런 정도였다면 굳이 피스토피의 예언자를 많은 사람들이 숭앙하겠어? 사실 이 전쟁을 예언한 것은 무려 30년 전이었다는 거지. 30년 전에 이미 공국이 전화에 휩싸일 것이라는 걸 예언했고, 대공이 수도를 비우고 도망가는 것까지 정확하게 맞췄다는 거야. 놀랍지 않아?”

너무 시큼했다면 먹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소스가 감자와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다. 여관 주인의 음식 솜씨가 괜찮았다.

“또 하나는 북쪽의 제국에 엄청난 한파가 찾아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걸 예언했는데, 이게 또 정확히 맞은 거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가항력으로 죽어 나갈 게 보이니 이를 안타까워 한 예언자는 친히 편지를 써서 제국에 보냈지만, 제국은 이를 무시했고, 그해 겨울 몰아친 한파로 제국의 동북쪽 마을 네다섯 군데가 모두 유령마을이 되었다는 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지.”

이 정도 음식이라면 여관 주인 남편의 불친절함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싶었고, 인근에서 꽤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큼직한 사건들에 대한 예언도 있지만, 그 외에도 예언자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예언을 하셨지. 그리고 그 예언들은 지금까지 모두 적중했다네. 덕분에 이런 외진 곳의 이름이 대륙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다네. 그런데 들어본 적 없는가?”

“네.”

“···뭐, 사실 그럴 수도 있지 싶네. 예전에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이 무의미하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셨거든. 어중이떠중이가 다 찾아와서 예언자님의 말씀을 부탁하느라 꽤 시달리시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소문이 너무 퍼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지. 그래서 최근에는 아는 사람들만 겨우 찾아와 미래에 대한 한 말씀을 여쭙고 돌아간다네.”

식사를 마친 단유는 허리춤에서 헝겊 조각을 꺼내 입을 닦았다.

“귀족 흉내를 내는군.”

“깔끔한 걸 좋아해서요.”

“역시 재밌는 구석이 있는 친구로군.”

테로스는 입가의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무튼 말이지, 그래서 이곳 피스토피에 오는 이들 중 대부분이 그 예언자를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예언자께서 그리 한가하신 분도 아니고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대부분은 그냥 얌전히 기다리다 적당히 포기하고 돌아가지만, 일부는 괜히 고집부리면서 시간만 축내다 괜히 분란만 일으키더란 말이지.”

“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물론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은 경비병들이 알아서 제재를 가하지만, 그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다 보니 경비대가 애꿎은 예언자님에게 눈총을 보내더란 말이지. 예언자님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데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면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돌려보낸다든지 말이야.”

“제가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보였나요?”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네. 예언자와 한동네에 산다고 모두가 예언자가 되지는 않으니까.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야.”

단유는 그릇을 옆으로 밀고 여관 주인을 불렀다. 졸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눈을 비비며 나타난 남편에게 단유는 물 한잔을 부탁했다. 남편은 테로스를 힐긋 본 뒤, 카운터 뒤에 있던 컵을 하나 집어 단유에게 주었다.

“저기.”

식당 한구석에 커다란 통이 있다 싶었는데, 그 통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여니 물이 담겨 있었다. 마음대로 퍼 마시란 이야기리라. 이런 점에서 에강위에 있을 때와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단유는 물을 한 잔 마신 뒤, 컵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테이블을 떠나려는데 테로스가 뒤에서 불렀다.

“어이, 그냥 가려고? 조금 더 이야기 좀 하지 그래?”

일방적으로 한쪽이 말하고 한쪽이 듣는 형식이었지만.

“피곤하네요.”

“그래? 그럼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아,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뭔가?”

확실히 술에 취한 게 분명했다.

****

다음 날 동이 틀 때, 단유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방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계속 ‘미스터리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는데, 평소 노숙할 때보다 편한 잠자리 탓인지 얼마 자지 않았는데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1층에 내려오니 아직 사람들이 깨지 않았는지 썰렁한 실내였다. 에강위에서는 밤 동안 떨어진 온도 때문에 꽤 쌀쌀했는데, 이곳은 한여름이 다 지났음에도 별로 춥지가 않아 망토를 걸칠 필요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음에도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오니 이슬을 머금은 상쾌한 새벽 공기가 단유를 맞이했다. 호흡을 가볍게 들이쉬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일어났네요?”

부스스한 머리로 머리를 정리하며 카운터 뒷방에서 나온 여관 주인에게 단유가 고개를 숙였다. 혹시 자기 때문에 깬 거냐고 물으니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난다고 대답하는 주인이었다.

“남편은 해가 머리 위에 있어야 깰 테지만 말이죠.”

단유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아침은요?”

“전에 돌아올게요.”

“그러든지. 그런데 너무 늦으면 없을 수도 있어요.”

좀먹은 것마냥 듬성듬성 풀이 난 자리를 피해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밖으로 나가던 단유는 옅은 안개가 낀 텅 빈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와 나무 판자로 된 바닥을 밟으며 나는 소음 등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한 둘 잠에서 깨어난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였다.

일부러 환경 미화를 위해 심어 놨을 리가 없는 나무들이 드문드문 심어진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대충 성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성의 중심에 성주가 사는 대 저택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듯하게 낸 길은 아니어서 이리 저리 따라가다 보면 이 골목이 저 골목 같은, 그런 복잡한 거미줄 형태의 거리였다.

그나마 상점들이 밀집된 거리는 길이 넓은 편이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상점을 열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오히려 새벽에 돌아다니는 낯선 얼굴이 더 주목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유는 대충 훑어보는 정도로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뒤 지나갔다.

크고 작은 가옥들을 지나니 빈 공터가 나왔다. 평평하게 정리된 바닥과 깊숙이 박혀 있는 네모난 돌들을 보니 원래 집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사정이 있어 철거한 것처럼 보였다.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놀기에 딱 좋은 정도의 놀이터가 되지 싶었다.

공터를 지나 또 다양한 규모의 집들이 빼곡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한 중년 사내가 커다란 수레를 끌고 있었고, 수레의 뒤를 단유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 아이가 밀고 있는 중이었다. 갈색의 짧은 머리를 한 중년 사내가 단유를 슥 쳐다보더니 별 흥미를 갖지 못했는지 금방 시선을 돌렸다. 뒤에서 수레를 밀던 젊은 아이는 중년 사내와 많이 닮았는데 아마도 가족이 아닐까 싶었다.

덜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레가 기울어졌다.

“이런, 또 빠졌네.”

움푹 파여 있던 땅에 수레바퀴가 빠졌던 모양이었다.

“밀게요.”

“셋 하면 밀어라.”

카운트를 하고 금방 수레바퀴를 빼내는 모습이 꽤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수레에 실린 커다란 통도 그리 무겁지 않았던 모양이고.

수레를 끌던 이들이 단유를 향해 다가왔다. 단유는 길을 막지 않으려 두 걸음 정도 물러섰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다시 단유를 훔쳐보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

입 주위로 지저분하리만치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는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일상의 피곤함을 가득 담은 눈이었다. 새벽 버스에서 덜 마른 머리로 올라타 매지 않은 넥타이를 주머니에 욱여넣으며 빈자리를 찾는 중년의 그것과 비슷했다.

수레를 뒤에서 미는 아이와도 눈을 마주했는데, 아이의 눈에도 경계심 대신 익숙한 피곤함이 깃들여 있었다.

단유를 지나쳐 가는 그들을 바라보다, 단유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왜 계속 따라오는 거지?”

아이의 중얼거림에 앞에서 끌던 사내가 대답했다.

“신경쓰지 말거라.”

예전부터 이 성에 떠돌이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었고 그중에는 꽤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들도 있었다. 별 거 아닌 일로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하는 녀석도 있었고, 서로 가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털어먹겠다고 접근하는 이도 있었다.

괜히 아는 척하는 것보단 그냥 무관심하게 대하는 게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었다.

두 사람은 곧 성문에 도착했다. 밤을 샜던 경비병들이 피곤하다는 얼굴로 하품을 하다가 두 사람을 발견하곤 손짓을 했다.

“수고하시오.”

두 사람은 경비병을 지나 성벽을 따라 가다 마침내 호숫가에 도착했다. 수레를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리던 이들은 작은 물동이로 물을 퍼다 수레에 올려진 커다란 나무통을 채웠다. 물통이 워낙 커서 물동이로 몇 번을 퍼담아야 다 채울 수 있을지 모를 정도였지만, 두 사람은 익숙한 동작으로 물을 뜨고 붓는 동작을 반복했다.

작업이 끝날 무렵, 호숫가 주변을 채우던 안개도 거의 옅어지고 동쪽 평야 끝에 걸려 있던 태양도 완전히 하늘에 떠올랐다. 두 사람은 호수로 올 때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성내로 돌아갔다.

중년 사내는 물론이고, 그의 아들까지 모두 체력이 떨어진 탓에 거친 호흡만을 내뱉을 뿐 달리 대화는 없었다. 크게 숨을 뱉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이들이 경비병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올 때였다.

덜컹거리며 다시 바퀴가 빠졌다.

“어이쿠.”

사내는 손을 주무르며 빠진 바퀴를 살폈다. 다행히 바퀴 축대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뒤에 선 아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는 빠지는 자리가 아니었는데.”

“며칠 전, 비가 왔을 때 땅이 파였나 보지.”

사내는 손목을 돌린 뒤 다시 수레 앞에 섰다.

“셋을 세고 밀거라.”

물이 가득 찬 물통이 담긴 탓에 수레를 밀고 당기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들이 이를 악물고 힘을 다해 밀자 수레가 움찔했다. 이럴 때는 몇 번 밀기를 반복하며 바퀴가 움직이게 한 뒤에 한 번에 밀어야 바퀴가 힘을 받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였다.

“도와드릴까요?”

우연히(?) 지나가던 낯선 사내, 단유가 다가와 수레를 보며 물었다. 불필요한 친절을 사양해야겠지만, 덩치가 워낙 좋아 보이는 단유였고, 딱히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들 옆에 서서 한 번 미는 시늉을 했더니 바퀴가 좀 전보다 더 크게 움직였다.

“하나, 둘, 셋!”

“이 동네는 처음이에요?”

아들의 말에 수레를 따라가며 힘을 보태던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왜 왔어요? 어···.”

“루치드.”

“아, 루치드. 루치드도 혹시 구도자 같은 건가요?”

앞에서 수레를 당기던 사내는 아들과 단유의 대화를 막지 않고 묵묵히 수레를 끌 뿐이었다.

“구도자는 아니고··· 그냥 방랑객이라고 해두죠.”

“아, 방랑객! 그런데 아까는 뭐하고 계셨던 거죠?”

“아까? 아까는 그냥 일찍 일어난 김에 돌아다녀 봤어요. 이곳은 어떤 동네인지, 길은 어떻게 되어 있고, 이곳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그런 게 궁금하기도 하고, 또 운동 삼아···.”

“운동이요? 혹시 훈련 같은 건가요? 기사 훈련 중이라거나 뭐 그런?”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건강 관리 차원에서 운동 중이란 표현이 이곳에서는 꽤나 이상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단유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대신 화제를 돌려 물었다.

“그런데···.”

“아, 제 이름은 타리슬이요.”

“타리슬···. 이 물은 어디로 가져가는 거예요. 한 가족이 쓰기엔 너무 많지 싶은데.”

“아, 이건 파는 거예요.”

“팔아?”

“물을 많이 쓰는 곳에다 가져다주고 돈을 받는 거죠.”

배달업이란 말이었다. 이어진 타리슬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성주와 그 주위에 사는 ‘높으신 분’들에게 물을 ‘배달’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 물을 배달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번다고 했다.

“여관에도?”

“네. 원래는 갈 필요가 없었는데, 거기 남편이란 사람이 게을러져서요. 하는 수없이 저희한테 물을 사다 쓰게 된 거죠.”

남편이란 사람을 떠올리니 과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궁금해지는 건, 바로 ‘게을러졌다’라는 표현이었다. 그 말은 곧 예전엔 게으르지 않았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어느 날 사람이 게을러졌다는 것인데, 어제 하루 본 것 뿐이었지만 딱히 부인이 남편의 태도를 문제 삼아 싸우거나 불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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