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39화 (739/956)

귀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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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들어서자 공기가 바뀐 기분이 들었다. 사실 기분만이 아니라 코로 맡아지는 냄새가 확 변했다. 도시 정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다보니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정체 불명의 오물들을 보게 되고, 보는 것 이상의 악취가 후각을 자극한다. 이 세계에 온 지도 꽤 되었기에 이쯤이면 적응이 되겠다 싶어도 눈을 피하게 만드는 비쥬얼과 코를 훔치게 만드는 악취는 그리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피스토피의 성내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이전에 맡았던 악취와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줄곧 맡던 냄새도 섞이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냄새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우선 천천히 하도록 하고 우선은 잠시 머물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뒤 성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단유는 다시 성문으로 돌아가서 물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리 넓지 않은 곳이니 약간의 발품을 팔다 보면 금방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비되지 않은 거리는 곳곳에 움푹 파인 곳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곳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통행하기에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수레나 마차가 지나다닐 때는 아무래도 곤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긴 했다. 다행히 단유가 타고 있던 말은 그런 곳을 잘 피해 다녔다.

주위의 집들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전에 거쳐왔던 성들의 가옥들이 나무 뿐 아니라 석재나 기타 재료들을 섞어 만들었던 것에 비하면 꽤 낙후된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허술하게 지어진 집은 아닌 듯, 겉보기엔 꽤 튼튼하게 지어진 집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 그 집들을 구경하던 찰나에 한 여인이 문을 열고 나오다 단유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얼굴과 대면하자마자 경계심을 돋우는 눈빛이었기에 단유는 멀찍이서 목소리만 높여 질문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근처에 묵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잔머리가 흘러내려 얼굴 앞을 가리고 있던 여인은 눈을 껌뻑거리며 단유를 보다 한 손을 들어 방향을 지시했다. 그녀의 손등은 때가 낀 것 마냥 얼룩덜룩했다.

“조금만 가면 있어요.”

얼마나 가면 되는지 물어도 불쾌해 할 것 같아 단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자신의 뒤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뒤통수가 간질거렸지만 단유는 이를 무시하고 말을 몰았다.

가다 보니 삐뚤삐뚤 바닥에 꽂아 엉성하게 엮은 울타리를 두른 집이 보였다. 집 안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 단유는 말의 고삐를 죄며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 울타리 근처에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단유를 우연히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떼지 않고 단유를 살피기 시작했다.

경계하는 시선이긴 해도 적대하는 눈빛은 아닌지라 단유는 그에게 다가가 근처에 묵을 만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오.”

사내가 엄지 손가락으로 울타리 안을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다.

울타리 안에는 작은 정원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좁은 마당이 있고 늙고 비틀린 나무 하나가 심어져 있었다. 나무 근처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머리가 빠진 것처럼 맨땅을 드러낸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마당 너머에 이층 짜리 넓은 건물이 있었는데 마침 말에서 내린 단유가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봤는지 문을 열고 나오는 이가 있었다.

“무슨 일이오?”

“혹시 여기에서 숙박을 할 수 있나요?”

“당연히 할 수 있소.”

단유가 입구를 돌아보니, 사내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원래 간판이 있었는데, 며칠 전에 부서졌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다들 여기가 여관인 줄 안다오.”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여기 마굿간도 있나요?”

사내는 이 역시 별 거 아니라는 듯 턱으로 건물 옆을 가리켰다.

“저기 들리지 않으시오?”

들리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보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여태껏 만난 이들 중 가장 불친절한 여관 주인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이나 묵을 예정이오?”

“대중없이 머물다 갈 생각인데 괜찮나요?”

“집사람이 좋아라 하겠지 뭐. 아무튼 그 주시오. 안에 들어가면 아내가 있을 것이오.”

사내가 내민 손에 말의 고삐를 쥐어준 뒤, 사내가 말을 끌고 가는 걸 확인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입구 앞 카운터에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단유를 반겼다.

“몇 분이오?”

반기는 인사가 그리 반갑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단유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혼자예요.”

“며칠 묵으려 하슈?”

“딱히 정하진 않았는데, 상관없나요?”

“돈 많은 여행객은 환영이오.”

비록 남편은 비쩍 마르고 아내는 뚱뚱했지만, 그래도 부부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짐이랄 것도 없는, 배낭과 망토 하나를 방에 두고 내려오니 식사를 준비해주겠다고 여주인이 말했다. 역시 이곳도 다른 곳들처럼 식당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 점은 다행이라 여겼다. 식당칸으로 넘어가니 단유 말고도 선객이 몇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입구에서 보았던 사내 였고, 그 사내와 말 상대를 하고 있는 이는 아까 봤던 사람이 아니라 여주인의 남편이었다. 남편도 주인이라면 주인인데, 겉으로 봐선 그냥 이곳에 놀러 온 사람처럼 단유를 봐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나누고 있어 잘 들리지는 않을뿐더러 호기심도 별로 생기지 않아 단유는 그냥 창가의 빈 자리에 앉아서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어느덧 붉은 노을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여관의 입구엔 남 주인이 켜놨을지도 모를 램프 하나가 걸려 있었다.

“보시오.”

누군가 단유에게 말을 걸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그 사내였다. 남 주인은 어느새 식당칸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은 이쪽을 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 보이는데, 여기 처음 온 것이오?”

말을 걸고 싶지도 않고 불필요한 시비가 걸릴까 우려해서 일부러 창밖을 보고 있었던 터라 단유는 그와의 대화가 달갑지는 않았다. 내자불선(來者不善)이란 말도 있으니. 그렇다고 티를 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여겨 단유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

“어쩌다 이곳까지 왔소?”

“어쩌다 보니요.”

“보통 그 나이면 아내를 들여서 가정을 꾸미고 있을 나인데, 생긴 것도 그리 나쁜 편도 아니고···.”

갑작스런 품평회에 단유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침묵을 지켰다.

“고향이 어디오?”

“그게 중요한 겁니까?”

“사람 참. 그냥 물어보는 거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네요.”

“떠돌이요?”

“···그 전에 본인부터 소개하시는 건 어떨까요? 자신을 먼저 소개하고 묻는 게 순서인 거 같은데.”

“젊은 사람 성격이 되게 팍팍하네.”

단유의 딱딱한 반응에도 사내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유들유들거리는 태도로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며 싱글거렸다. 하지만 진심으로 웃는 거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억울하면 자네도 물어보라고.”

“······.”

“이것 참.”

사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감하다는 시늉을 한 뒤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그럼 내 소개부터 하지. 난 테스로. 구도자지.”

단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표현하기도 뭣하지만, 마침 그때 주인 남편이 식사를 가지고 왔기에 당황스러운 얼굴로 사내, 테스로와 마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역시나 불친절한 주인 남편은 식탁 위에 접시를 던지듯 거칠게 내려놓았다.

“술은 필요 없으시우?”

“괜찮습니다.”

“어린애군.”

면전에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정도인데, 그래도 장사가 망하진 않나 보다.

“난 한 잔 주시오.”

테스로가 끼어들어 말을 건네니 주인 남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긴 하겠는데, 주정은 부리지 말라고.”

“내가 언제 주정을 부렸다 그러지?”

“여기 있는 이들은 다 자네 주정을 한 번씩은 봤을걸.”

목청을 높여 묻는 남편의 말에 식당 칸에 있던 사람들이 테스로를 보며 피식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제스처로 남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스로는 손을 내저으며 빨리 가져오기나 하라고 이른 뒤, 단유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한 번씩 조금 지나치게 마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술이 센 편이네. 그러니 자네 앞에서 주정 부릴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네.”

“이미 충분히 마신 건 아니고요?”

“목구멍을 살짝 적실 정도? 그 정도는 충분하지 않지. 그래도 자네에게 사달라고 하진 않을 테니 염려 말게.”

테스로는 헛기침을 짧게 하며 주위를 살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이제 내 소개를 했으니 자네 차례네.”

“왜 목소리를 낮추시는 거죠?”

“그야, 자네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길 원할 것 같아서 말이야. 어느 지방의 누구인지 쉽게 밝히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떳떳하지 못한 과거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 뭐, 얼굴은 순진해 보이지만 혹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중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반반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어느 마을의 젊은 여자들을 모두 임신시키고는 그게 발각되어서 도망 중이거나. 뭐 난 상관없네. 사실 자네 나이 정도 되면 야들야들한 처녀의 속살이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날 나이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도망 중이긴 한가 보네?”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뭔가? 말해보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는 테스로를 무시하고 단유는 포크로 접시 위에 놓인 구운 감자 조각 한 덩이를 찔렀다.

“거 되게 비밀이 많은 젊은이로군.”

이쯤이면 포기하고 어물쩍 떠나도 될 텐데, 테스로는 무슨 오기라도 부리는지 떠날 생각은 않고 단유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무시하면 떠날까 싶었지만 주인이 맥주가 담긴 나무 잔을 들고 와 내려놓고 가니 그는 단유의 얼굴을 안주 삼아 술을 홀짝일 뿐이었다.

단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계속 먹지 그러나.”

“테로스라고 했나요?”

“머리가 좋구만 그래.”

“방금 본인이 소개한 거잖아요?”

“난 밤새 같이 한 여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뺨을 맞은 적도 있다고.”

“···아무튼 전 당신과 할 이야기가 없어요.”

“왜?”

“당신에 대한 어떤 호기심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사람은 본래 이 사람 저 사람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사람과 사귀는 걸 두려워하다간 나중에 아무도 자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거야. 죽을 때 외로운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고.”

“첫째, 전 사람과 사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둘째, 설령 그렇다 한들 그걸 지금 이 시간에 당신과 대화를 함으로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셋째, 전 지금 이 시간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오호, 말도 잘 하는 젊은이로군.”

얼굴을 붉히긴 커녕 이런 대화도 즐겁다는 듯 받아들이는 테로스의 가벼운 어투에 단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테로스는 술을 또 한 모금 마신 뒤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이제 어느 정도 입이 풀린 것 같으니 말해 보게.”

“뭘 말입니까?”

단유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이름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지 않나? 이름도 알려지면 안 되는 그런 것인가?”

“···루치드요.”

“오호, 좋은 이름인걸? 자네와 잘 어울리네.”

감자가 완전히 식기 전에 먹고 싶은 마음에 단유는 조금 더 서둘러 식사를 이어나갔다.

“이름도 말했으니 대충 소개는 됐다 치고, 그래, 여기 온 이유는 무엇인가?”

단유는 고개를 숙이고 시큼한 맛이 나는 소스에 감자를 찍어 먹으며 대답했다.

“그냥 돌아다니다 보니 오게 되었어요.”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었다는 것인가?”

“네.”

“그런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왔다는 말인가?”

“네.”

“여기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단유가 고개를 들었다. 호기심만 가득한 줄 알았던 테로스의 눈동자에 의구심도 한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사는데요?”

“누가 사냐고? 하하하.”

웃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기울이는 테로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단유는 곧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곧 테로스의 목소리가 단유의 머리 위로 들려왔다.

“여기가 피스토피라는 건 아는가?”

“네. 들었어요.”

“피스토피라는 이름을 듣고도 모른다고?”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가요?”

잠시 테로스의 말이 끊어졌지만, 단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자와 소스를 모두 먹어 치웠다.

“피스토피의 예언자도 모르는가?”

‘예언자?’

다시 고개를 들었더니, 테로스가 단유의 속내를 살피고 싶었는지 동공이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정말 몰랐던 모양이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대륙 제일의 예언자로 알려진 사람을?”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떠는 테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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