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23화 (723/956)

마법사가 되는 방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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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나마 미소를 띄고 있던 애슬리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겠나?”

“너무 거창하게 말씀드린 것 같네요. 사실 ‘철학’이라고 이름 붙일 것까진 없는데 말이죠. 음···그냥 물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싶어서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런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어요. 사실 이곳은 보통 습도도 저 아래 지역보다 높은 편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이곳 사람들이 물을 굉장히 아껴 쓴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여관에서도, 식당에서도, 그리고 바깥의 길에서도.”

여관에 처음 도착해서 씻으려고 했을 때, 여관 주인이 작은 물동이에 물을 담아 가져다 주었다. 그때는 그러려나 했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따로 물을 주문하지 않으면 물을 주지 않았고, 물도 가격을 매겨 판매하고 있었다. 울스프를 처음 만나 그를 따라 갈 때, 그가 마른 침을 거리에 뱉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골목을 따라 늘어선 집의 벽에 그런 침 자국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저수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저수지에서 물을 떠다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비가 내리면 집 안에 보관된 물동이들을 모두 모아 밖에 내놓고 비를 받는다지요?”

처음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도, 벽 한구석에 놓여 있던 물동이를 보며 청소를 위해 마련된 것인가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왕에게 기거할 집을 하사받은 뒤, 방마다 물이 차지 않은 물동이가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었다. 엘라바인에게 그 목적을 듣고서야 알게 된 물동이의 정체였다.

“저수지를 직접 방문해봤습니다. 꽤 넓고 깊은 저수지, 라고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에강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넉넉하게 사용할 만큼의 물이 될까 의문이 들더군요.”

“확실히 그렇지.”

애슬리는 깊은 주름을 새긴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래서 우선 이곳에서 날씨를 확인해 봤습니다. 확실히 이곳은 습도에 비해 비가 자주 내리진 않더군요. 물론 다른 지역과 비교를 해봐야 정확하겠지만, 자주 오지도 않을뿐더러 오더라도 그 양이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오는 비도 이곳 자체의 토양 탓인지 물이 고이는 일은 드물구요. 그래서 일반적인 농사도 힘든 것이겠지요.”

“꽤나 꼼꼼히 살폈구만 그래.”

“칭찬 감사합니다. 어쨌든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과거의 기록까지 샅샅이 살폈습니다. 어쨌든 제가 우려하는 바는 과연 이런 현상이 지속 되었을 때, 이곳에 사는 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거든요.”

“행복이라고? 왜 그런 우려를 하게 되었는가?”

“실례가 안 된다면 되돌려 여쭤도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행복하신지?”

“그건 너무 주관적인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묻는다면 행복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는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평생에 두 번은 듣지 못할 찬사와 인사를 자네에게 받았으니 말이야.”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스럽네요.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사실 이 도시에서 물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단유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서도 이런 동전이 물건을 거래하는 도구로서, 그리고 독립적인 재화로서 기능하지만, 물 역시 이 돈에 못지않게 중요한 재화로써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과연 그런 점이 있네.”

단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동전 위를 톡톡 두드렸다.

“하나의 권력이 특정 재화를 독점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재화를 권력을 유지하고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권력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들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제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었거든요.”

애슬리는 침음을 흘리며 단유의 말을 곰곰이 씹다가 물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는 가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 생기네. 만약 이 곳이 그리 불편한 곳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일세. 만약 수도를 정하기 전이었다면 그런 문제가 중대하게 작용했을 테지만, 이미 수 대에 걸쳐 이곳에 터전을 내린 사람들이 있네. 그리고 선대 폐하께서도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곳을 고르셨겠나?”

단유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이 살기에 불편한 곳인데 그런 곳을 수도로 지정하여 오랜 세월을 살았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곁에서 대화를 듣던 포아테지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단유는 잠시 애슬리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저는···.”

****

왕의 명령으로 소환된 학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대전에 섰다. 주위에 선 신하들과 그 뒤에서―기분 탓이겠지만―흉흉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는 근위병들 때문에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울스프가 대표로 왕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으나, 왕은 묵묵부답.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고 대신 옆에 시립하고 있던 신하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최근에 그 마법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말해 보게.”

“···그리 물으면 너무 막연하니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가로(Garo) 경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평소에 그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오. 워낙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니 하나를 특정해서 말하기 어렵소. 아니면 그와 나눴던 모든 이야기를 여기서 풀어내길 원하는 것이오?”

울스프가 되물으니, 또 다른 신하가 한 발 나서며 물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강위의 하나뿐인 저수지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울스프는 힘써 태연함을 가장하려 애썼으나, 그의 뒤에 선 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모두가 쉽게 입을 열지 않지만, 에강위에서 물이란 것은 함부로 꺼낼 주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위대한 왕권에 반발하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수선함에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스프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수지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나눈 이야기 중 하나는 에강위에 치명적인 가뭄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가정에 대한 것이었고, 그런 가뭄이 찾아오면 저수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상황을 염려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것입니다.”

“뭐, 가뭄?”

몇몇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울스프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누가 저수지에 몰래 독을 푼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나을 대답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가뭄이라니!”

몇몇이 허탈한 마음에 웃음을 터뜨렸고, 몇몇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루치드 역시 그것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 알아봐야겠다면 지금 도서관에서 옛 자료들을 살피는 중인 것입니다.”

왕이 팔걸이를 톡톡 두드려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러자 좌중이 입을 다물고 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하지 않다?”

“네.”

“그런데 그는 자료를 찾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그···그쪽 분야는 저희 전문 분야가 아닌지라···.”

“전문 분야가 아니라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폐하. 유케 타구르 경이 그쪽 전문 분야라서 그와 함께 조사를 하는 중입니다. 허나 아직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폐하께 알릴 정도는 되지 않다고 생각해서 고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섣불리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 그것은 곧 공식적인 발언이 되어 민심을 불안하게 만들 요소가 된다. 그러니 학자들은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발언을 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

“오히려 이런 곳이기에 이곳을 거점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이해하기 힘들군.”

“결과론적인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이곳은 오랜 세월 수도로서의 기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 이유를 거슬러 살펴보면, 적들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은 위치라는 점, 그리고 대륙 곳곳에서 난립하는 몬스터들의 피해가 이곳은 적다는 점이 아마 수도로서의 이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건 앞에서 언급한 것들과 별개의 문제 아닌가?”

“연관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지배란 기본적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차지한다?”

“네. 일정 영역을 자신의 공간으로 확보하고 그 공간에 대해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지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사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들이 부가되면 완벽에 가깝게 통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점을 노려 이곳을 수도로 정한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하는 거죠.”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겠네. 그럼 선대 왕이 물이라는 부족한 자원을 통제하여 백성들을 통치하였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왜 그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 살겠나? 나 역시 결과론적인 해석이네만, 여기에 사는 수 많은 사람들, 수 대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 점이 저로서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짐작하시지 않습니까? 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력하니까요. 홀로 농사를 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가족을 건사하기도 힘듭니다. 무리를 지어 살더라도 더 큰 무리, 더 강한 무리를 만나면 약탈을 당할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천재지변을 만나면 아예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몬스터라도 만나게 되면 속절없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니 더 큰 집단, 더 강한 집단에 속하기를 희망하고, 그 집단 속에서 안정을 취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수도는 왕이 사는 곳, 어디보다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외부의 습격에 강한 방어력을 드러냅니다. 그 점은 강한 유인력을 발휘하죠.”

길게 이어진 단유의 이야기였지만, 포아테지는 한순간도 흘려들을 수 없다는 듯 집중력을 발휘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평생에 걸쳐, 물론 다른 학자들처럼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심도 깊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어린―딱히 나이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외모만 보면 아직 수염도 안 자랐기에 자신보다 어리다고 생각되는―사람이 저리 깊은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게 부럽고 조금 자괴감도 느껴졌다.

한편, 애슬리는 단유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나이까지 살다 보니 딱히 정치라든가, 주변의 일에 관심이 적어졌다. 그래도 무관심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단유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혼란스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반성? 그런 면도 없진 않지만, 자신이 평생에 걸쳐 공부하고 연구했던, 그래서 조금 전 단유에게 감사의 인사를 듣기까지 했던 자신의 업적이 한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애슬리는 허탈감에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면···.”

애슬리는 무릎을 짚던 손을 뗐는데, 옷에 땀자국이 흥건하게 묻어난 것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단유를 바라보니, 그 젊은 속에 담긴 총명함이 순간 부러웠다.

“그렇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유인으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군.”

“단지 불편함이라고 표현하기엔 물이란 것을 그리 가볍게 여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의 의도와 다르게 낯선 곳에 떨어져 눈을 뜬 적이 있습니다. 표현하긴 어렵지만, 그곳은 매우 낯설 뿐만 아니라, 매우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건물들, 처음 맡아본 냄새와 처음 듣는 소리들. 그 모든 것이 생소했던 그때, 전 매우 심한 갈증을 느꼈었습니다. 목이 콱 막히며 어떤 소리도 내기 힘들었더랬죠. 그때 누군가가 제게 물을 줬습니다. 그 물을 마신 순간, 타오르던 갈증이 해소되던 그 순간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만 같았죠.”

단유가 눈을 떴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애슬리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난 마법사는 물의 마법사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건넨 물을 마신 후 마법이란 세계에 발을 들였죠. 물은 제 개인에겐 그런 감상입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시작. 그러나 그런 개인적 감상을 떠나 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의 6할은 물입니다. 이 물이 부족하면 각종 이상 증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심각해지면 사망에 이르게 되죠. 수분 부족으로 인해 신장의 문제와 혈압 저하, 사고력 저하라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심각할 경우 성장 발달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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