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22화 (722/956)

마법사가 되는 방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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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별고 없었소?”

“폐하의 치세 아래 에토신스는 언제나 평화로울 따름입니다.”

“그렇군.”

오랜만에 옥좌에 앉은 오다 아르칸 왕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오늘 특별히 다룰 문제가 있는가?”

그러자 머리가 벗겨진 신하가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으며 나섰다.

“특별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저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지난 번에 폐하께서 윤허하신 도서관 이전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도서관을 옮기는 일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학자들을 중히 여기시고 그들이 쌓은 학문이 나라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근간인 도서관을 온전하게 하도록 지시하신 일은 저희 신하들을 탄복케 할 뿐입니다. 허나 문제는 그 뒤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왕은 미간을 좁히며 대머리 신하의 검버섯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인지 빨리 고하게. 혹시 몰래 도서관 이전 비용을 빼돌릴 계획이라도 세웠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감히 나라의 돈을 유용하려 마음먹었다면 이렇게 이야기만 나눌 것이 아니라 당장 성벽 밖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목을 잘라 꽂았어야 할 것입니다. 허나 지금 나오고 있는 이야기는 실체도 분명치 않고 사실 확인도 덜 된 이야기인지라 폐하께 그대로 고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어쨌든 심히 중대한 문제라는 것 아닌가? 이야기해보게.”

“실은···에강위의 저수(貯水)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뭐라?”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던 이들은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놀란 얼굴로 대머리 신하를 바라보며 재촉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저수지에 문제가 생기다니?”

“도서관과 저수지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대머리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이 알아낸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냈다. 단유가 아침에 저수지엘 갔었다는 이야기, 그 후 울스프와 타구르에게 했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진 내용이 도서관 이전이라는 내용.

“폐하께는 그저 도서관에 보관된 책들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강위에 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마법사가 이야기했고, 학자들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폐하께는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감히 그들이 폐하를 농락했다는 것이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아직 확신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없이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니, 부디 폐하께서는 그들을 불러 그 진실을 명백히 밝히도록 하셔야 옳다 생각합니다.”

대머리 신하의 이야기가 끝나자 대전 안이 시끄러워졌다. 특히 이 일의 발단이 마법사라는 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다고 여긴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왕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왕은 그들의 의문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이미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들은 바가 있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미처 듣지 못했고, 그게 그리 큰일이겠냐는 생각에 가볍게 넘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단유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 상황에서, 그가 진실을 감추는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심증이 있기에 지금 신하들이 제기한 문제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판단했다.

왕은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어디까지 가야 할지를 가늠했다. 단순히 학자들만 소환하여야 할지, 아니면 정식으로 마법사를 소환시켜 그를 이 대전에 무릎 꿇게 해야 할지.

지난번 마주했을 때, 그가 얌전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얌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우선 만리와 그 외 학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

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

단유와의 대담 이후 생각이 많아진 울스프는 역시 이번에도 다른 학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와 나눴던 대화의 일부를 전하며 그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건 내가 연구하던 주제와 비슷하군.”

한 학자가 자신이 연구하던 내용을 이야기했다.

“두 형제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가지고 다투었네.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돌아가셨고, 두 형제는 그 유산을 공정하게 나누기를 희망했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형제는 유산을 두고 싸웠고 서로의 계산법이 공정하다며 싸우기만 하다 결국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네. 이 일을 보고 내가 생각한 건, 과연 그 공정함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공정하다 하지만, 제 삼자의 기준에서 보면 그 두 사람 다 자신의 욕심을 은연중에 비추는 것이라 여겨졌단 말이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이를 깔끔하게 정리할 기준이 필요한 거지.”

“그렇네. 그래서 우리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난 오랫동안 법에 대해 연구를 했지. 언제 어느 때에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여기는 게, 가끔은 나도 모르게 내 위주로 편의적인 기준을 세우더란 말이지. 어떤 법의 경우에는 내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잇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어. 하물며 ‘선’과 ‘악’이라는 가치를 두고 이를 공정하게 나눌 기준을 세우라고 하면, 결국 자신이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누가 자신을 ‘악’이라고 칭하고 싶겠는가? 그러니 자기에게 유리한 기준으로 ‘선’의 기준을 세우고 평가를 내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마법사이네.”

“마법사라고 인간이 아닌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 그가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지, 그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로군. 하지만 상대가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겠지만, 루치드는 그렇게 보기 힘들지 않은가? 이제껏 그와 나눈 대화들을 돌이켜봐도 그가 얼마나 생각이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건 우리 중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그가 던진 그 명제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네.”

“나도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던진 질문 그 이상의 것까지도 고려해보자는 거지.”

비록 그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 이상의 지식까지 가졌다지만, 그래도 그가 살아온 시간의 배는 넘게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존심은 그 이상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 말에 일부 동의했다.

“꽤 지난한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건 단순히 지식을 넘는, 우리의 이성과 지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문제가 될 수 있네. 그리고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하고.”

“그럼. 그래야 이 나라를 대표하는 학자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토론은 그리 여유롭게 이어질 수 없었다.

“선생님.”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찾아와 왕궁의 소환을 전했다. 아직 영문을 모르는 학자들은, 부랴부랴 자리를 정리하고 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 단유는 태연히 도서관에서 낡은 문서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날씨에 관련된 자료만 찾는구나 했지만,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까지 꺼내 읽는 모습을 보며 도서관 관리업무를 맡고 있던 포아테지는 의아하게 여겼다. 사실 학자들간에 이루어지는 심도 깊은 이야기에 끼어들기에는 자신의 지위와 학식이 그에 따르지 못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돌아가는 사정에 완전히 까막눈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려 연구실까지 배정받은 ‘마법사’에게 함부로 질문을 던질 순 없어 그저 의문을 품은 채로 그의 곁을 겉돌며 도서관을 정리하는 시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바닥을 끄는 소리와 함께 입구에 인기척이 나자 포아테지는 들고 있던 책을 집어넣고 입구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인기척을 낸 당사자를 확인 후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오, 그래. 별일 없는가?”

“네, 선생님.”

단유는 낯선 목소리에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유난히 긴 수염을 기른, 단정히 머리를 빗어넘겼지만 길게 자란 머리가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인 노인이 힘겨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서관 내에 켜진 램프의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가득해 보였는데, 그 모습에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음, 처음보는 얼굴이로군?”

노인의 질문에 포아테지가 끼어들었다.

“얼마 전부터 ‘리민’에 연구실 하나를 배정받은 선생님이십니다.”

“아,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군. 자네, 마법사라고 하던가?”

“네,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보는군.”

“많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먼저 찾아뵈어야 예의인데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일부러 손님을 받지 않은 탓인걸. 몸이 불편하니 외부인과 마주하는 게 힘들어서 그랬던 거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이가 찾아 왔는데 먼저 초대하지 못했으니 말이야.”

“애슬리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 내 사실 자네가 마법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꽤 자존심이 강한 이일 거라 생각했네만, 이리 노인네를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애슬리는 도서관 책임 수석 학자이며 동시에 에강위에 있는 학자들 중 가장 노령인 학자였다. 매우 지혜롭다고 알려진 애슬리는 젊었을 적, 전대 왕의 모사(謀士)로서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서 주로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마침 단유가 에강위에 도착할 때 즈음 병이 깊어져 외부인과의 접촉을 끊고 병마와 싸우느라 단유를 볼 수 없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조금씩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무리는 했네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이리 서 있는 건 조금 무리인 듯 싶네.”

포아테지가 얼른 의자를 가져와 애슬리에게 가져다주고, 그를 부축해 자리에 앉게 도왔다. 앉는 것만으로 힘들었던지 크게 숨을 몰아쉬던 애슬리는 끔뻑거리는 눈으로 단유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몇몇 이들에게 전해 듣긴 했네만, 자네가 이 도서관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면서?”

“네.”

“나도 그 문제로 많이 고심하고는 있었는데 잘 된 일이야. 사실 여기 있는 것들이 모두 내가 모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어느새 이것들이 다 내 살이고 피처럼 느껴졌거든. 이것들이 아프니까 나도 아픈 것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자네가 이것들이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군. 내 생각만 하다가 그 말 한마디도 직접 못 전하고 죽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신의 도움으로 이렇게 자넬 직접 만나 전하게 되었네. 다시 한번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네.”

“선생님께 그런 인사를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이 책과 자료들이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선생님께서 그동안 잘 관리하셨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게 왜 자네가 인사할 일인가?”

“이 책들, 이건 단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 지식들이 활용되어 이 사회를 풍부하게 만들 보석 같은 지혜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곳에 모인 이 많은 책과 종이들은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이들의 보물이며 유산입니다. 그것을 온전하게 보관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은 굉장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업적을 평생에 걸쳐 해내신 선생님은 저 뿐만 아닌 누구에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애슬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터진 웃음을 갈무리하는 와중에 기침을 할 정도였다. 곁에 선 포아테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와 물었지만, 애슬리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미소를 담은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자네는 확실히 남들과 다른 것 같으이. 내 누구에게도 그런 식의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자네에게 그런 인사를 받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 하네.”

애슬리는 무릎을 툭툭 두드리며 즐거움을 표시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앞에 쌓인 수많은 책들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구만. 기특한 젊은이, 요즘 자네가 연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유는 앞에 놓인 책들을 슬쩍 훑은 뒤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딱히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물의 철학’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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