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21화 (721/956)

마법사가 되는 방법(3)

-------------- 721/952 --------------

굳어버린 울스프를 보며 단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마세요. 그런 일은 벌어지기 힘들 테니.”

“···정말인가?”

“네.”

한숨을 내쉬던 울스프는 긴 소매자락을 들어 볼 옆에 흐르는 땀을 꾹꾹 눌러 닦아냈다.

“아무튼 말이죠, 설령 왕이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듣는다고 해도 정말 왕이 될 가능성은 없어요.”

“···폐하가 악하기 때문인가?”

“아뇨. 폐하가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때문이죠.”

“순수하지 못하다?”

“음, 이렇게 말하면 혼동이 올 수 있겠는데, 사실 악한 사람이라도 마법사가 될 수는 있어요.”

“악한 사람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순수하게 악한 사람도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무슨 말인가?”

“이건 ‘악’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말인데요, 울스프. 과연 악이란 무엇일까요?”

가볍지 않은 질문이라 울스프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며, 양심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악’도 구분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대로도 생각해보세요. 과연 선이란 무엇일까. 선도 순수한 선과 순수하지 않은 선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겠나?”

“사실 순수하지 않은 선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죠. 예를 들어보죠. 어떤 가게 앞에서 비루한 차림새의 거지가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악취가 심하게 나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수십 걸음 전부터 발길을 돌릴 지경입니다. 그런 중에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지 않으니 가게 주인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을 마음 먹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단유가 울스프를 빤히 바라보자, 울스프는 헛기침을 한 뒤 다음 이야기를 물었고, 단유는 되물었다.

“선생님께서 대답해보세요. 만약 선한 가게 주인이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선한 가게 주인이라면? 그에게 부탁하지 않았을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만약 그가 주인의 말을 듣고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그곳이 다른 가게 앞이라면 그 가게 주인에게 피해를 전가한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주인이 그에게 한 부탁은 선한 행동일까요, 아닐까요?”

“이런···.”

“좀 더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그냥 부탁을 하는 것보다 거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부탁을 하는 건 어떨까요? 이를테면 돈을 주는 거죠. 이 돈을 줄 테니 가게 앞에서 구걸하는 건 피해달라고 말이죠. 이건 선한 행동일까요?”

때려서 내쫓는 것도 아니고, 험한 말과 욕설로 그를 모욕하여 내쫓는 것이 아니니 분명 선한 행동으로 보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냥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선하다는 기준이 이리도 복잡한 것인가?’

울스프는 단순하지 않은 사유(思惟)를 요구하는 단유의 이야기가 가슴에 쿡쿡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구했던 자신의 모든 업적들이 이 단순한 명제 해석보다 못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지는 단유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울스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그것 역시 선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네만, 그 권유의 결과로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 또한 선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행동, 혹은 언행의 성향을 판별할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단 생각이 드는군. 요컨대 행위의 당사자가 그 행위를 하는 순간만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 행위의 결과까지 포함해서 판별해야 하는 것인지를 두고 말이지.”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행위의 주체인 가게 주인에 대해 고려를 해야 합니다. 가게 주인의 적선이라는 행위는 일견 선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만, 만약 가게 주인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과연 그 행위는 선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울스프는 턱에 손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악한 마음으로 선한 행동을 벌일 수도 있을까?

“이런 건 어떨까요? 가게 주인은 그 거지를 가게 앞에서 내쫓고 싶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를 때리거나 해서 내쫓으면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흉을 보거나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두렵습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전을 쥐어 주고 거지를 내쫓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위선이군.”

“그렇죠. 그게 위선인거죠. 그렇다면 위선은 선일까요, 아닐까요.”

“위선은 선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 행위 자체는 분명 선이네. 하지만 그 의도가 선하지 않으니 선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고···. 이거 참. 지금껏 내가 무엇을 보고 살았던지.”

“선생님의 업적과 식견을 폄하할 의도는 없어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평생을 두고 고민해도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부분이 있죠.”

“···좋아, 어쨌든 자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알겠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폐하가 위선자란 뜻인가?”

“마법사가 되기 위한 방법을 말씀드렸었죠? 마법사는 가장 순수해야 한다고요. 인간의 기준에서는 다양한 기준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도, 라티오의 세계에서는 그런 행위도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단정됩니다.”

“그게 무엇인가?”

“선은 말 그대로 선입니다. 인간의 기준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심도 없이 상대를 동정하여 도움을 주는 행위는 선입니다.”

“요지는 사심도 없이, 라는 부분이겠군.”

“선이 그렇다면, 악이라는 것도 순수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악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기준이 아닌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악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죠.”

“말해 보게.”

“아마도 가장 순수한 악이라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기적인 게 악이라고?”

“그 역시 순수한 선의 반대를 가정하면 상정할 수 있는 부분이죠. 아까의 예시를 대입해보겠습니다. 만약 가게 주인이 악인이라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를 때리거나 혹은 모욕을 줘서 거지를 내쫓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행위는 타인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행위이니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가게에 손님이 오지 못하니, 그를 내쫓음으로서 손님들을 다시 불러모으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위입니다. 딱히 그 거지라는 한 인격체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그와 악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러니 가게 주인의 행위를 욕할지언정 그의 행위를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죠.”

울스프는 단유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순수한 악이라면 그런 의도 없이 그저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요. 순수한 악이라면 아마 그 거지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겁니다.”

“응? 그건 또 왜 그런가?”

“그런 때리거나 혹은 내쫓는 행위가 불필요하게 느껴지니까요. 딱히 그가 자신을 괴롭힌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가게의 운영을 방해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화가 날 텐데?”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가게 운영이라든가 하는 건 그의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오로지 어떤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설명하려니 조금 어렵네요. 하지만 그렇다고밖에는 설명드릴 길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순수한 악이란 그저 신화에 과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런 악을 지닌 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이런 이들을 만날 수도 있죠.”

“가까운 곳?”

“바로 아이들이죠.”

아직 문화나 관습, 시스템과 인간 관계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기에 역설적으로 순수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이 표출되는 방식을 관찰하면 때로는 선하지만 때로는 ‘악’이라고 여길만한 행동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악이 되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학습, 그가 노출된 주변 환경과 세계로부터 얻는 정보들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은 배척하고 선은 존경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잖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과 악의 중간을 걷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말이네.”

울스프는 턱에 괴고 있던 손을 떼며 물었다.

“인간은 본래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그건 누구도 쉽게 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제 기준에서 선과 악이란 본래 하나였으니까요. 말씀드렸잖아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음.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할 뿐입니다. 물론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유는 잠시 울스프가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었다. 그리고 긴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했다.

“그런 이유로, 에토신스의 왕께서는 마법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순수할 수 없는 분이니까요.”

긴 대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오다 아르칸은 내실에 틀어박혀 사색에 잠겼다. 본래 사색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단유가 남기고 간 지식을 되새기며 마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규칙적으로 공무를 보기 위해 대전에 나가야 하건만, 그마저도 뒤로 미루며 마법사가 되기 위한, 라티오를 깨닫기 위한 노력에 전념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진척은 없었고 아르칸은 조바심만 내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스트레스만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그 녀석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지.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는 날 경계한 것이야. 하지만 왕 앞에서 말할 수 없다고 하기 힘드니, 거짓을 말한 것이야.’

왕은 내실을 나갔다. 밖에서 대기하던 철갑병 브링이 팔을 들어올리며 예를 표시했다.

“대전으로 가자.”

“네.”

왕의 한 걸음 뒤에서 철커덩거리며 걷기 시작한 브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왕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자네는 그 마법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무엇을 물어보시는 것인지?”

“그자가 내 앞에서 했던 말들, 어떻게 들었는가 하는 말일세.”

단유가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말하기 전까지 왕의 곁에서 그가 하는 말을 함께 들었던 유일한 사람이 브링이었다. 물론 단유가 마법사가 되는 방법, 포르마와 아나그노리시 등을 이야기할 때는 방 밖으로 쫓겨났었기에 듣지 못했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내게 진실을 말한 것처럼 보이던가?”

“···제가 알기로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왕은 아차, 하는 심경으로 걸음을 멈추고 브링을 돌아보았다. 브링은 자신이 잘못 말했나 싶어 긴장한 채로 우뚝 서서 기다렸다.

“그렇지.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지.”

“······.”

“그럼 그는 어떻게 나를 속였을까?”

왕은 여전히 그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마치 다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분명 그건 의심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 나를 속일 수 있을까?”

왕의 질문에 브링의 등이 금방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맹렬히 머리를 굴리던 브링이 겨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던 왕은 최측근이 입을 떼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중요한 내용을 말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말하지 않았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았지만, 상대방을 속일 수도 있는 방법이라니 혹시 그렇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흥미롭다는 눈으로 브링을 쳐다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린 왕은 다시 대전을 향해 걸음을 뗐다.

브링은 왕의 그 미소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의 뒤를 가만히 따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