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20화 (720/956)

마법사가 되는 방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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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려드릴까요?”

그게 뭐 대수냐는 듯한 단유의 반응이 반갑기보다는 이상하게 여겨졌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일부러 올렸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어갔다.

왕의 빛나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단유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단유였다.

잠시 후, 왕이 입을 열었다.

“알려준다면 고맙지. 하지만 자네는 걱정이 되지 않는가?”

“걱정이요? 제가 걱정할 이유가 있나요?”

“내가 마법사가 되면 자네의 힘이 통하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은가?”

“힘이요? 무슨 힘이요?”

뭔가 미묘하게 엇갈린 문답이 오고 간다고 여겨졌는지 왕은 다시 미간을 좁히고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마치 내가 마법사가 되더라도 자네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 같군.”

“물론이죠.”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누구와 맞붙더라도 지지 않겠다는?”

“뭔가 오해를 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제가 왜 맞붙어야 하죠?”

“뭐?”

“혹시 폐하께서는 만약 마법사가 되신다면 그 마법으로 절 해칠 마음이 있으신가요?”

“······.”

“혹시 폐하께서는 마법이라는 능력으로 힘을 투사하고, 그 힘을 과시하고 싶으신 겁니까?”

“······.”

“그만하라!”

대답은 왕의 뒤에 선 철갑병에게서 나왔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발을 내딛으며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듯 허리에 매달린 칼 손잡이로 손을 가져다 대는 모습이 단순한 위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유는 태연히 그를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왕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저리 말할 정도라면, 단순한 경비병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단유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단유가 계속 왕을 바라보니, 왕이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계속···말해 보게.”

단유는 가볍게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마법사의 마법은 흉기가 아닙니다. 흉기를 대신해서도 아니고요. 그저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서 이용될 수 있을지언정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목적으로 힘을 사용하겠다면, 애초에 마법사가 되지 못할 겁니다.”

“조금 오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럴 의도가 없었네. 물론 내가 자네에게 물어본 저의는 내 편견 때문일 수 있겠지만, 그 힘으로 누군가를 억압할 용의는 전혀 없네. 하지만 그래도 자네의 설명을 듣자니 묻지 않을 수 없군. 과거의 마법사들 중에는 분명 그 힘으로 사람들을 해친 이들이 있었네. 그럼 그들은 어찌 그럴 수 있었는가? 자네 말처럼 누군가를 해칠 목적으로 힘을 사용하면 마법사가 되지 못한다면서?”

“제가 그들의 행적을 세세히 쫓지 않아서 확답은 할 수 없습니다만, 추정컨대 그들 역시 누군가를 해칠 마음으로 마법사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마법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마법사로서 마법을 익힌 후에는 악의적인 마음으로 마법을 활용하는 게 가능했을 겁니다.”

“그게 뭐가 다른가? 내 귀엔 똑같은 것처럼 들리는데?”

“다릅니다. 예를 들면···.”

단유는 잠시 말을 멈췄다. 왕이 단유의 시선의 끝을 쫓아 갈 때 다시 말이 이어졌다.

“폐하께서는 물의 맛을 느끼십니까?”

“물의 맛?”

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평소 마시는 물의 맛이 어떻다고 평가하실 수 있으십니까?”

“글쎄···. 그런 질문은 처음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군.”

왕은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물의 맛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물에도 맛이 있는가? 잘 모르겠군. 굳이 말한다면 그냥 물맛 아닌가?”

“특별한 감상을 내세울 것도 없는 정도, 라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네.”

“아마 뒤에 계신 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단유를 노려보던 철갑병이 콧김을 강하게 내뿜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죠. 혹시 물의 맛을 아십니까?”

“······.”

“대답해보게.”

왕의 채근에 철갑병이 입을 열었다.

“나 역시 폐하와 똑같다.”

물의 맛이 거기서 거기지, 특별히 말할 게 뭐 있냐는 태도였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죠. 혹시 평소에도 계속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다니십니까?”

“그렇다.”

“잘 때도?”

“···그렇지 않다.”

“혹시 따로 개인 수련이나 훈련 같은 것도 하십니까?”

“당연하다! 폐하의 최측근에서 안전하게 보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하니까.”

거의 폐하의 곁에 붙어 수행하지만,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그때도 가만히 쉬는 것보다 개인 수련에 힘을 쏟는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더 강하게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하여 왕국 내의 누구도 감히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그런 노력이 철갑병의 자존심이며 자부심이다.

그런 기운이 목소리에 듬뿍 묻어났다. 마치 곁에 있는 왕에게 자신이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뽐내는 듯이.

“혹시 훈련이 끝난 후 물을 마시나요?”

당연했다. 땀을 뻘뻘 흘린 뒤, 물을 마시지 않으면 탈진으로 쓰러질 테니까.

“그때 마신 물의 맛은 어떻던가요?”

그렇게 묻는 순간, 철갑병은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어떤 의도로 묻는지 모르나 분명 전과 다른 대답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니까. 그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고, 설령 그렇더라도 마법사가 원하는 대답을 순순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채근하자 철갑병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게 끝인가요?”

“···세상에서 이보다 맛있는 물은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맛이 다르죠?”

“···그렇다.”

단유는 다시 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폐하께서는 저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는 한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비유하면 그냥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 놓인 물을 떠 마시는 겁니다. 컵을 이용해서 마실 수도 있고,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실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물을 마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 물의 맛을 느낀 사람은 마법사가 되는 것이고, 물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마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

“앞서 말씀드렸지만, 마법사는 순수해야 합니다. 만약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 마법사가 될 수 없습니다. 마법사의 마음과 정신이 순수해야만 라티오에 다가갈 수 있거든요.”

“라티오?”

단유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라티오’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라티오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사물과 물질을 넘어 모든 현상들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원본이란 다른 무엇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과도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라티오의 세계를 마법사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바로 순수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죠.”

“알겠네. 그럼 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자네의 설명을 듣는다면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

“폐하께서는 순수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가?”

“폐하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순수함과 거리가 멀거든요.”

“네 이놈!”

철갑병이 다시 바닥을 구르며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지만, 단유는 아무렇지 않게 왕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저에게 저리 말하시는 분에게 다시 한번 여쭈면 아마 제가 말한 의미를 아실 겁니다.”

“더 이상 삿된 질문으로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려 하지 마라!”

“브링(Steinbrink), 나도 궁금하니 한 번 이 자의 질문에 답해보게.”

“폐하!”

단유는 빙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아까 말씀하시길 잠시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 수련에 전력을 쏟는다고 하셨죠? 혹시 그 수련을 할 때, 그러니까 칼을 휘두르거나 뭐 그런 훈련을 하실 때요. 혹시 다른 생각을 하시면서 칼을 휘두르시나요? 예를 들면,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내일은 무엇을 입을까 같은 거요.”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로지?”

“···칼을 휘두르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 칼에만 집중한다.”

단유는 손가락을 들어 철갑병을 가리키며 왕을 바라보았다.

“저게 순수한 겁니다.”

왕은 대충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단유의 말을 받았다.

“그런 의미라면, 이해했다. 그리고 만약 저 정도의 집중력과 오롯이 마법만을 생각해야 하는 거라면, 나 역시 각오하겠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그건 폐하의 마음에 달린 일이니, 제가 뭐라고 할 수 없죠. 그러니 처음에 말씀드렸죠? 가르쳐 드린다고요.”

“좋다, 그럼 알려달라.”

****

울스프가 초조한 마음으로 내실 안을 빙빙 돌았다. 잠시도 쉬는 일 없이 계속 방안을 빙빙 돌고만 있으니 바라보던 시종장이 눈썹을 긁으며 어쩔 줄 몰라하다 결국 그에게 잠시 앉아서 안정을 취할 것을 권유했다.

“너무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설마하니 폐하께서 그를 해치기나 하겠습니까?”

“누굴? 루치드를? 아니. 그런 걸 걱정하는 건 아니네.”

“그럼 무엇이 걱정입니까?”

“자네는 몰라서 그러네. 그가 얼마나 위험한지.”

“위···험하다고요?”

시종장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자, 울스프가 아차 하는 심정으로 말을 바꿨다.

“아니, 내 말은 그가 무슨 마법으로 폐하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소리가 아니네.”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게···아니네.”

울스프는 깊이 한숨을 쉬고는 왕과 단유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내실 쪽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시종장에게로 고개를 들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들어갈 수 없겠나?”

“안 됩니다. 폐하께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처음부터 나랑 함께 부른 게 아니었나? 자네가 한 번 가서 보고 들여넣어 주게.”

“그럴 수 없다는 걸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보는 사람도 괜히 초조해지니 그러지 마시고 저기 앉아서 쉬십시오. 아까 보니 안색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좋을 리가 있는가.”

힘없는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멎었다. 그리고 울스프는 다시 방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울스프의 고개가 홱 돌아가고, 시종장이 차분히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나타난 이는 단유였다.

울스프가 놀란 눈으로 한 걸음에 달려와 단유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은가?”

“누구요?”

울스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야기는 잘 끝났는가?”

“네.”

단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시종장은 단유를 데리고 온 시종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뒤, 단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궁 밖까지 나가시는 길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궁 밖, 황궁대로로 나온 뒤에야 울스프는 가슴을 크게 펴며 숨을 몰아 내쉬었다.

“후아, 내 생애 이렇게 힘든 시간은 또 없을 것이야.”

단유를 힐끗 바라보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네.”

단유는 그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가? 혹시 그, 위험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겠지?”

“글쎄요. 위험하다고 느낄만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네요. 오히려 폐하께서 원하시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나왔죠.”

“원하시는? 무엇을 원하시던가?”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여쭤 보시더군요.”

울스프의 얼굴이 또 한 번 하얗게 질렸다.

****

거리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울스프는 단유를 데리고 연구실로 빠르게 돌아왔다. 개인 연구실로 돌아와 문을 닫아 걸고, 단유를 앉힌 뒤, 몰아치듯 질문을 던져댔다.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왕이 어째서 마법사가 되길 원하시냐,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정말 알려드렸느냐.

“알려 드렸어요.”

“어쩌려고!”

“어쩌다뇨?”

“만약 폐하께서 정말 마법사가 되면 자네는 위험하지 않은가?”

“폐하께서도 그리 물으시던데, 왜 제가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마법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핀체노가 자신에게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의미를.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핀체노는 아무런 제약도 걸지 않았고, 어떤 경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알려준 것도 아니었으며, 시간 때우기로 단유를 붙잡고 마법을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제가 선생님께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린 것도 마찬가지에요. 마법사란 특별한 힘을 사용하지만, 특별한 존재는 아니랍니다.”

“특별하지 않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울스프에게 단유가 웃으며 말했다.

“네. 마법사는 그저 순수한 마음을 진리를 쫓는 사람이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악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을 악으로 치부하고 몰아가는 사회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런 마법사를 평범하게 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런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핀체노는 그런 악에 물들어가는 자신을 보다못해 스스로 세상과 등지는 것을 선택했다. 제윅 역시도 그의 시작은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방어로서 마법을 깨우쳤고, 이후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단유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악한 일을 행하고 다녔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그의 순수함은 오염되었다. 결국 단유의 몇 마디 말에 진리는 길을 잃고 라티오의 세계는 그의 접근을 불허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마법사가 될 수 있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단유의 질문에 울스프는 팔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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