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가 되는 방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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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궁 내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울스프는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기도 이럴진대 처음 입궁한 단유는 어떨까 싶어 눈치를 살피니, 그저 태연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도 그가 어지간한 일에는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니 그의 심장이 자신과 다른 것이 아닐까 궁금해질 지경이다.
침음을 삼키며 마침내 도달한 곳에서 방패까지 세워 든 완전 무장한 경비병이 두 사람을 세웠다. 그리고 잠시 몸 수색에 들어갔는데, 단유는 전혀 불평 없이 두 팔을 들어 보였다.
‘마법사에게 무슨 무기가 필요하겠냐고.’
울스프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수색이 끝나길 기다렸고, 수색이 끝나자 두 사람은 내실 안으로 입장이 허락되었다.
크고 두꺼운 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서니, 이제껏 별 감흥이 없던 단유도 내부에 펼쳐진 모습에 희미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유하자면, 여지껏 무채색의 오래된 고전 영화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최신의 컬러 영화와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붉은 주단이 깔린 실내, 깊이가 느껴지는 고급진 파란색으로 도색된 벽들, 그리고 그 벽에 걸린 초상화들. 한 점의 오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하늘하늘거리는 새하얀 커튼과, 황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색을 뽐내는 무기들이 장식된 무기장은 어디에 쓰는 무기인지 모르더라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실내 장식들에 눈이 뺏긴 사이에 한 사람이 실내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울스프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 후 마주 인사했다.
“늦진 않았는가?”
“네. 폐하께선 잠시 업무를 보시느라 늦으실 듯 하니 저기 앉아서 기다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단유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깨끗한 복식을 하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시종장 텔 쿠치오라고 합니다.”
“루치드라고 합니다.”
“익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폐하께서는 조금 늦으실 듯 합니다. 혹시 기다리시는 데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대접하라 명하셨으니,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면 되죠?”
“네, ···혹시 마실 것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물이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개인적인 감사를 전해야겠습니다.”
단유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쿠치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님께서 고안하신 그 수도관이라는 것 덕분에 얼마나 편리한 지 모릅니다. 저 뿐만 아니라 궁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마법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
단유가 울스프를 힐끗 바라보았고, 울스프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별거 아닙니다. 본래 편의를 위해 발명된 것이었으니,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군요.”
“역시 마법사님은 대단하십니다. 만약 다른 평범한 이였다면 그리 쉽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기까지가 시종장이 단유와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분이었던지, 그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고 대신 입구 근처의 벽에 조용히 서서 대기했다.
“방이 참 화려하네요.”
라고 묻는 단유의 질문에
“폐하께서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사용하는 방이라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정도에 그쳤다.
왕의 초상화라 짐작되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감탄할 정도의 그림도 아니니 단유는 곧 방 안을 구경하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 왕궁을 자주 들락날락거렸던 울스프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접받는 일이 없었던데다, 솔직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단유와 왕의 대화를 앞두고 있었기에 긴장이 돼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정적이 감도는 실내에서 할 일도 없이 멍하니 앉아 언제 올지 모를 왕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내키지도 않는 사색을 즐기고 싶진 않아, 단유는 창가 너머로 관심을 보였다.
단유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가장 먼저 시종장이 반응했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아뇨. 저기 좀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죠?”
“물론입니다. 대신 창을 열진 마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가로 다가갔다. 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이던 커튼을 가볍게 손으로 훑으니 그 매끈한 감촉에 슬며시 감탄하게 만들었다. 바깥에서 늘상 보던 사람들의 복식과 생활 양식을 토대로 생각했던 것 이상의 기술력도 가지고 있음이리라. 다만 그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고위 특권층에 한한다는 게 문제겠지만.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밖을 내려다보니 넓은 궁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사실 넓다고는 했지만, 고등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단유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합하면 그보다 넓을지는 몰라도 우선 보이는 건 그 정도 넓이의 정원과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비공식적인 만남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역시나 궁의 안팎을 주시하며 엄중한 경계 태세에 임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니 괜히 헛웃음이 나올 것도 같았다.
저런 경계심이야말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과 권력욕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바깥에서 철컹거리는 무거운 걸음 소리들이 들려왔고, 뒤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돌아보니 단유보다 훨씬 장대한 덩치를 가진 철갑 병사들과 그 사이에서 왜소하지 않은 하얀 머리의 사내가 열린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 만져본 커튼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급스럽고 화려한 색색깔의 복장을 갖춘, 갈색 눈동자에 하얀 머리를 가진 중년 사내는 고집스럽게 다문 입매무새를 매만지며 안을 둘러보다 창가에 선 단유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실내에서 기다리고 있던 울스프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그에게 경의를 보냈다.
“폐하.”
시종장은 그저 고개를 내리고 시선을 들어 올리지 않는 수준으로 왕을 대했고, 왕의 옆에 선 철갑 병사들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왕의 시선을 따라 단유를 ‘노려’보았다.
울스프는 고개를 살짝 틀어 단유를 본 뒤, 입모양으로 단유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재촉했다.
단유는 그것을 무시하고 왕에게 다가갔다. 왕 역시 단유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두 사람이 가깝게 마주섰을 때, 철갑병이 단유의 접근을 차단했다. 단유도 더 가까이 올 생각은 없었기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루치드라고 해요.”
왕은 단유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엄하다!”
철갑병이 단유의 가슴을 힘껏 밀었다. 단유는 저항하지 않고 두 세걸음 뒤로 밀렸다. 그 모습에 철갑병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넘어지라고 밀었던 것인데 넘어지긴 커녕, 겨우 두 세걸음 뒤로 물러설 뿐인 단유의 모습 때문이었다.
단유는 가슴께를 툭툭 털어낸 뒤, 다시 왕을 바라보았다.
“에토신스의 왕이십니까?”
“이런!”
다시 철갑병이 화를 내려는 찰나, 왕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내가 에토신스의 왕, 오칸 아르다일세.”
그리고 왕이 손을 내밀었다. 단유는 미소를 지으며 왕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잠시 후, 상석에 왕이 앉고 단유와 울스프가 티 테이블 건너편에 자리했다. 때맞춰 시녀들이 들어와 티 테이블 위에 김이 오르는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갔다.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단유를 보던 왕의 첫 마디는 울스프를 향했다.
“만리, 차 맛이 어떤가?”
“좋습니다, 폐하.”
“그동안 자네와 이렇게 차 한잔하며 여유롭게 담소를 즐기고 싶었는데, 공무가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웃으며 울스프의 대답을 넘긴 에토신스의 왕, 오칸이 단유에게 시선을 옮겼다.
“루치드, 자네는 어떤가?”
“좋네요.”
“마음에 드는가?”
“저녁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마신다면 심신이 편안해질 듯 하네요.”
“그런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아, 텔.”
“네, 폐하.”
“나중에 이들이 출궁할 때 줄 수 있도록 준비 좀 해주게. 넉넉하게.”
“알겠습니다.”
왕은 여유가 느껴지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리고 자네가 만든 그 수도라는 거, 정말 좋더군.”
“이미 저 분께 감사 인사를 받았습니다. 편리해서 좋았다고.”
“그런가? 잘했네.”
이때, 단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오늘은 어쩐 일로 절 부르신 겁니까?”
순간 내실 안을 흐르던 부드럽던 공기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울스프는 그렇게 느꼈다. 콱 숨이 막히는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자네는 평범하지 않군. 역시 마법사라 그런걸까?”
왕이 말을 트자, 울스프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왕이 앞에 있는 자리에서 체통없이 숨을 헐떡일 수 없어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고 뱉는데 집중하느라 단유의 다음 말에 대비하지 못했다.
“마법사라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저 제가 평범하지 않은 탓이겠죠.”
“스스로도 인정하는가? 하긴 내 앞에서 손을 내민 이는 말도 트지 못한 어린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를 제외하곤 없었으니까.”
“그건 그저 인사였을 뿐입니다. 비록 지금은 여기 머물며 폐하께서 베푼 덕을 받고 있지만, 전 에토신스의 백성이 아니니까요.”
“타국의 신하들도 내 앞에 서면 존경을 보인다네.”
“죄송하게도 제가 그런 격식은 배운 적이 없어서요. 하지만 절대 무례하게 행동하려 했던 것은 아니니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불편할 정도는 아니네. 그리고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들도 있으니 그 정도는 내가 참아야지.”
이미 이쯤에서 울스프는 과도한 긴장으로 머리에 피가 쏠려 현기증이 날 것 같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위해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용건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울스프였다. 슬쩍 눈을 들어 올리니 왕의 옆에 선 철갑병은 자신보다 더한 충격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났다.
“저런, 어디 속이 안 좋은가?”
“아, 아닙니···. 읍!”
“텔.”
결국 울스프는 시종장의 손에 이끌려 내실을 나갔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차라리 안 보고 안 듣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우리라.
그렇게 나가고 조금 한산해진 실내에, 여전히 철갑병의 차가운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단유를 바라보며 왕이 대답했다.
“듣기로 자네는 학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한다지?”
“지식의 교류는 더 큰 지식을 낳는 법이니까요.”
“그런가? 하긴 나도 어릴 때는 만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컸었지. 그들은 정말 대단한 학자들이라고 생각하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서 말이야.”
“어떤 것이죠?”
“학자들이 모두 자네의 광활한 지식에 놀란다고 하더군. 저기 저 수도관 같은 것도 그렇지만, 한평생 학문만을 연구한 학자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워서 말이야. 그 지식이란 것, 그것도 마법사이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특별히 따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자세히 설명드리기 어렵네요. 하지만 마법사라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니에요.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지식이죠.”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는가?”
“사람이 지식을 얻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책에서 얻을 수도 있고, 혹은 좋은 선생님의 밑에서 얻을 수 있죠. 또 때로는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 얻을 수도 있고, 사색의 끝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죠.”
“그런가? 그런데 그렇게 얻은 지식을 남들에게 함부로 전달해도 상관이 없는가?”
“함부로, 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요?”
“이를테면, 자네는 만리와 마법사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들었네.”
“네.”
“그리고 만리에게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고 들었네. 맞는가?”
“그렇습니다.”
“만리에게 물었더니 더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했네. 그것은 자네의 지식이고 자네의 지식을 타인에게 함부로 건넸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별로 그런 문제는 없는데요.”
“그럼 나에게도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가?”
“마법사가 되는 방법이요?”
“그래.”
왕이 눈을 빛내며 단유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