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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717화 (717/956)

환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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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스프와 타구르는 약간의 두려움을 안은 채로 도서관에 있는 단유를 찾아갔다.

“갑자기 날씨에 대한 자료들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물음에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일단은 호기심이라고 해두죠?”

“정확하게 말해주게.”

단유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무엇이 두려우신 겁니까?”

울스프와 타구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타구르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머쓱한 얼굴로 단유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부 학자들이 자네의 연구에 어떤 가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네.”

“가정이요?”

“이를테면 에강위에서 날씨로 인한 재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징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날씨에 관한 자료와 문헌들을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 전에 자네가 먼저 대답해주면 안 되겠는가?”

단유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정말로 어떤 징후라도 발견한 것인가?”

“글쎄요. 그것에 대해서도 섣불리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들로 보건대, 에강위에서는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재해가 있었던 적은 없더군요.”

“그렇지.”

오랜 시간 날씨에 대해 연구를 해 왔던 타구르였기에 단유의 말이 사실이라고 동의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 백년간 잠잠하던 산이 어느 순간 화산이 되어 붉은 용암을 흘러내릴 때도 있을 거고요, 수십 년간 평온했던 땅이 흔들리며 갈라지는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마른 하늘에 진짜 번개가 내리치는 일이 벌어질 때도 있고,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폭우가 내려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아닙니다.”

“그 말엔 나도 동의하네. 실제로 에토신스 북쪽, 대산맥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 하루 아침에 산사태로 사라진 기록이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산사태라는 것은 산의 지반이 모종의 이유로 약해져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만큼 앞서 이야기했던 예시들보다는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죠.”

“산의 지반이 약해진다고? 거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겠나?”

“이보게, 타구르. 자네 호기심은 차후에 천천히 풀도록 하게나.”

“아, 그렇지. 그래, 그럼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어쨌든, 그럼 에강위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아니죠, 에강위에도 그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 않나요? 더구나 평소에도 다른 지방에 비해 습도가 높은 이 도시에···.”

단유가 말을 줄이자, 타구르가 재촉했다.

“왜 말을 하다 마는가? 끝까지 해보게. 습도가 어쨌다고?”

“아닙니다. 그건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니.”

“확실하지 않더라도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이면 무슨 근거가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인가?”

단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앞에 선 두 사람의 초조한 표정을 살폈다.

“확신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니겠지. 아니니까, 지금 이리 자료들을 찾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이해하네. 그래서 무슨 일이 걱정되는 것인가?”

“이곳의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죠. 아주 오래된 도시의 이야기입니다. 그 도시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 진보적인 기술 문명과 지식 문명을 보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에강위처럼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죠.”

“그런 곳이 있었나?”

타구르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울스프를 바라보았지만, 울스프 역시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곳과 유사한 점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화전(火田)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번성시킨 도시 국가였죠. 물론 에토신스는 그보다 넓은 국토를 지니고 있으니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간략히 말해서 그 도시 국가는 꽤 번성했습니다. 오랜 시간 말이죠.”

“그런데 왜 우린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 자네가 그리 말할 정도로 융성했다면 말이네.”

“어느 날, 그 도시 국가는 ‘갑자기’란 표현이 어울리게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왜?”

“이유는 사실 분명치 않아요. 그들의 멸망에 대해 기록한 자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하긴 있었다면 당연히 우리 도서관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랬다면 내가 모를 리 없겠지.”

“하지만 그 도시 국가의 흔적에서 발견한 자료들을 토대로 몇 가지를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는, 가설이지만, 그 도시 국가에 몇 천 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뭄?”

“훌륭한 문화와 문명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부족해선 안 될 것입니다. 물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그 도시 국가가 있던 곳은 강수량과 일조량이 풍부하던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뭄은 그들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모아놓은 물이 없었던가?”

“그들은 지금과 비교해도 절대 손색이 없을 훌륭한 담수 저장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가뭄은 그들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죠.”

“가뭄 때문에 모두 죽었단 말인가?”

“아니요. 그렇지는 않죠. 차분하게 생각하시면 나올 답이겠지만, 만약 에강위에 가뭄이 온다고 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을까요? 간단하게는 그냥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물이 있는 곳으로?”

“아, 그렇지.”

단유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비웃지 않았다. 대신 더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가뭄이 그 문명의 쇠퇴와 멸망이 가속되도록 채찍질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왜 그렇지?”

타구르는 습관적으로 되물었지만, 뒤에서 듣고 있던 울스프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응? 자네는 알아냈는가?”

타구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던 울스프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떼어내듯 물었다.

“자, 자네. 혹시···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가?”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울스프는 소름이 돋았다. 뒤에서 그저 듣고만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했었다. 단유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품은 뒤로, 그가 다른 학자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멀찍이서라도 붙어 그가 이상한 소리라도 하는 건 아닌지, 그런 우려를 속으로 삭혀야 했었다.

그리고 타구르를 따라온 지금, 처음엔 단유가 발견한 징후가 뭘까에 대해 추리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점차 지난 시간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이 겹쳐지며 몇 가지 키워드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도시국가, 고지대, 가뭄에 관한 이야기는 며칠 전 대화를 나눴던 저수지, 수도관 사업, 물의 부식과 황금이란 키워드와 맞물렸고, 그 순간 번뜩이듯 지나가는 하나의 키워드가 울스프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권위.’

종국에 권위로 이어지며 몇 가지 상상력과 맞물려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단유는 울스프의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답을 재촉하는 타구르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가뭄이 있기 전, 그 도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물은 그 어떤 재화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어느 날 그 물이 가뭄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물을 찾아 떠나면 되는 일이죠. 하지만 국가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진 않잖아요?”

“그렇지.”

“물은 곧 권력이었습니다. 물을 통제하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었고, 그 물을 통제함으로서 백성들을 통제했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사라졌다면? 바로 권력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사라진 국가, 어떻습니까?”

울스프는 단유가 의도적으로 특정 단어를 누락시킨 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타구르 역시 특정 단어가 빠진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그 특정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 추상적인 단어지만 국가의 권력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은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물이 사라지게 된다면? 단순히 물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그제야 타구르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서, 설마···그런 가뭄이 에강위에 온다는 것인가?”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타구르가 다시 외치듯 물었다.

“확신하지 못하다고 해도, 가능성이 있으니 꺼낸 말이 아닌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절대란 것은 없으니까요.”

타구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잠시 굳어 있다가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허겁지겁 도서관 밖으로 내달렸다. 연구실에 가면 자신이 따로 기록하고 모은 자료들이 있다. 그 자료들 속에서 혹시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게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귀신과 마주친 사람마냥 하얗게 질려 나가는 타구르를 뒤로하고 울스프는 가만히 단유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단유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울스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도시국가라는 것,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실일 것이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말씀드렸지만, 아직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면, 만일 정말로 여기에 가뭄이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선생님도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혼란이겠죠.”

혼란. 그보다 적확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곳의 혼란은 제가 말했던 그곳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입니다. 물은 일종의 공공재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물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곳은 없습니다. 물론 환경이 다르니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 제한을 걸어 관리하는 곳은 드물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죠. 굳이 이런 큰 도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작은 마을에서 우물 하나를 특정인이 독점하고 통제한다면 가뭄이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문제가 터질 것입니다. 그건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니까요.”

“허나 이곳은 다르네. 자네도 말했듯이 이곳은 환경이 다르니까. 물을 함부로 쓰게 되면 가뭄이 없더라도 금방 저수지가 마르고 말걸세. 통제는 필수야.”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왕은 그런 제한에 맞춰 물을 아껴 쓰십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문제인 것입니다. 말씀 드렸죠? 왕의 권위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만약 지금의 왕이 자신의 권위를 착각하고 물을 통제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날 그 물이 사라졌을 때, 왕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저수지의 맨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왕의 머리 위로 모래와 자갈을 부을 것이고요.”

“루치드!”

“비유입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환상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에 울스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말은 삼가게!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야.”

“주의할게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울스프는 타구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네?”

“그러니까, 그 가뭄이란 것이 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네. 자네는 모르는 것이 없으니, 그 방법도 알지 않는가?”

“···가뭄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하지만 가뭄이 오지 않을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은 알죠.”

“그게 그거 아닌가?”

“가능성을 높이더라도 가뭄이 오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확률의 문제니까요.”

울스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혼자 여기서 끙끙 앓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도서관을 나가려다 뒤로 돌아서니 단유가 다시 보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게 보였다.

“이보게.”

단유가 고개를 들었다.

“자네, 오늘 이야기, 다른 곳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네.”

그 이야기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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