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14화 (714/956)

환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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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네.”

담담한 단유의 대답에 울스프는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에토신스의 수도, 에강위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때문에 물 공급을 받는 것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건너편 산 중턱에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공급받고 있긴 하지만, 수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기도 했고 가끔 가뭄이 계속되면 저수지의 바닥이 보일 정도가 되어서 물을 공급받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허용 가능한 수준의 불편이라고 해도, 진짜 문제는 물의 공급 방식에 있었다. 저수지에서 수로를 통해 내려온 물을 받는 곳은 왕궁 바로 옆에 붙은 소형 저수지였는데, 병사들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질 오염과 같은 면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신 일반 평민들은 마을 우물 대신 이 저수지로 와서 물을 받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불편한 점이 없잖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저수지에 물이 부족할 때는 왕궁에서 자체적으로 공급을 중단한다는 점이었다. 물 공급의 우선 순위는 어디까지나 왕궁이 먼저였고, 평민들에게 공급되는 건 언제나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단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두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그건 공급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양에 관한 문제 아닌가요? 그리고 그건 제가 만들었던 수도 공급 방식이 필요한 게 아니고요. 그리고 만약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애초에 그걸 고치려는 시도가 없었나요?”

단유의 생각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그저 왕이 백성들을 위해 공급량을 늘리도록, 그리고 가뭄 때도 공급량을 줄일 지언정 물을 받아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을 차단하지 않으면 그만인 문제였다.

“그게 곤란한 지점이지. 사실, 방금 이야기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물 공급 방식의 문제일세. 왕궁에서는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곳은 왕이 우선인 곳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직접 왕에게 가서 청원해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요?”

“그건 어려운 문제일세.”

“왜요?”

울스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울스프에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부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는 이가 비단 울스프 뿐만이 아니겠지만, 누구도 왕에게 가서 ‘이것이 문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면 함께 동조해서 힘을 실어줄 순 있겠지만, 먼저 나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비겁한 행동이에요.”

울스프가 얼굴을 찡그리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건가요?”

“괜한 이야기를 꺼냈군. ···어쨌든 왕께서는 왕궁에 그런 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하셨네.”

“물어보라고만 하셨나요?”

그럴 리가. 울스프가 뒷말을 잇지 않아도 단유는 알 수 있었다.

“그럼 선생님께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바라는 건 당연히 이 수도 전체에, 아니 이 나라 전체에 그런 시설을 설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혜택을 볼 수 있는 일인데 그걸 마다할 수 있겠는가?”

“왕의 명령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왕의 명령이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집 안에 화덕을 설치하는데 왕의 명령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화덕과는 다른 이야깁니다.”

단유는 간단하게 수도 공급 원리를 밝혔다. 물을 끌어내는 펌프와 펌프를 통해 끌어 올려진 물을 수도꼭지와 같은 도구로 통제하는 방식은 원리상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였으니까.

“땅을 파야 하고, 에강위에 들어오는 수로의 축소형이라 할 수도관이 바닥에 모두 설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사용한 물을 배출할 수 있는 하수로도 설치되는 게 좋겠죠.”

단유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울스프의 얼굴은 이해하기 힘들게 변해갔다.

처음엔 ‘마법’을 이용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왔었는데, 그게 사실은 마법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기술’에 의한 편의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놀랐고, 그 놀라운 지식, 정보를 개발해낸 단유의 뛰어남에 놀랐다. 반면, 그 놀라운 시설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준비가 생각 외로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에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구만.”

차라리 마법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저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가?”

“네. 혹은 물을 끌어올 수원이 필요한데 여기는 그 수원지가 거기밖에 없으니까요.”

“하아.”

뭔가 기대를 품으며 단유에게 왔던 울스프는 머리를 감싼 채로 몸을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유가 입을 떼었다.

“이왕에 이렇게 나섰으니, 직접 요청을 해 보시죠?”

“내가?”

“왕에게 신뢰를 받는 학자시니, 그 정도를 청원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게다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도 아니고 백성들을 위한 청원인데 무엇인 문제인가요?”

“문제는 그 물이 폐하의 것이니 그런 거 아닌가?”

“어떻게 물이 한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까.”

“폐하는 개인이 아니네.”

예전에 사령관과 대화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었다. 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 왕이라는 그 사고방식은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며, 오랜 세월에 걸쳐 학문을 연구한 학자라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

단유의 대답을 전한 뒤, 왕궁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그들을 놀라게 했던 일들이 결국 마법이 아니란 이야기였지만, 그렇기에 더 놀라운 일이었고 그 놀라움을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단유가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더라도 그 기술만 배우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점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크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왕도 그 사실에 가벼운 흥분을 느꼈고 그래서 왕궁에 즉시 수도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수도 내에서 쇠를 두드리던 이들이 모여 단유의 설명을 듣고 단유의 감수 아래 수도관과 펌프, 그리고 수도꼭지를 만들어냈다. 조악하나마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만들어진 후, 궁전에 설치가 되었다.

바로 각 방마다 설치한 것은 아니고, 궁전 내 정원에 시범적으로 설치가 되었다. 바닥을 파서 수도관을 매립하고 작은 수도꼭지 하나를 바깥으로 돌출되게 만들었다.

손잡이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오니 왕을 비롯한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놀랍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왕은 고개를 돌려 신하들의 뒤편에 시립하고 있는 울스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대단한 발명품이다. 이걸 내 침실에도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이지?”

“가능은 합니다만, 그가 이르길 이 수도관은 관리가 중요하다 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 수도관의 재질이 문제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래되면 이곳에 녹이 쓸게 되는데, 그게 물에 섞이게 되면 음용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녹이라면 기름을 바르면 되지 않는가?”

문의 경첩(hinge)이 오래되면 그곳에 기름을 발라 사용하는 것을 떠올린 왕의 질문에 울스프가 대답했다.

“그 기름도 물과 섞여 나오게 되니 문제이거니와, 일부만 부식되는 것이 아닌 전체 면이 부식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되면 수도관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기도 하고, 외부의 물질이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올 수도 있으니 오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실망한 모습으로 물줄기를 바라보던 왕이 되물었다.

“그럼 이건 결국 일회성인가?”

다시 울스프가 대답했다.

“교체를 하면 된다고 합니다.”

“교체?”

“네. 주기적으로 갈아주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오! 그런가? 그런데 자주 해줘야 하는가?”

“그건 평소 관리하기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울스프는 그 정도로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왕은 그 정도까지 물었지만, 울스프는 그 이상의 질문을 단유에게 던졌다. ‘부식’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냐고. 단유는 철의 재질 상 그것은 어렵고, 대신 부식을 늦추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울스프의 지식으로는 감히 따라가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단유의 설명이 끝났을 때, 울스프는 ‘방법이 있지만 실현시키기엔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다른 방법도 있어요. 간단한 방법.”

“간단한 방법?”

단유는 들고 있던 수도관 샘플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었다.

“이걸 다른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면 돼요.”

“···부식이 되지 않는 금속이 있다는 것인가?”

“있죠.”

“그렇다면 진작에 그걸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

단유는 팔뚝 길이의 원통 수도관을 다시 내려놓고, 그 옆에 금화를 내려놓았다. 얼마 전 왕실로부터 선물 받은 금화였다.

“이거요.”

“금화?”

“금은 부식되지 않아요.”

울스프는 단유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단유가 눈으로 하는 말이 들리는 듯 했다.

“어때요? 이것도 왕에게 말씀해 보시겠어요?”

****

단유와 시간을 보내며, 울스프는 단유가 단순히 마법사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그와 함께하는 동안 그가 마법을 남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의 힘을 과시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나마 몇 번의 마법 시연도 울스프의 부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울스프는 단유가 대단히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서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단유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위험했다. 그것은 에토신스, 아니 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가치관이었다. 이 세계 전체의 질서는,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오롯이 왕을 중심으로, 왕의 보살핌에 따라 헌신적인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는 것, 그 속에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울스프가 생각하는 세계의 질서였다.

그러나 단유는 그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이 땅은 이 세계의 중심이 아닙니다.”

소위 ‘지동설’이라는 걸 들었을 때도 충격이 컸지만, 단유가 왕을 ‘별거 아닌 존재’ 쯤으로 여긴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비교할 수 없었다.

“제가 왕을 암살할까 봐 초대를 하지 않는다고요?”

수도관 설치 때도 초청받지 못한 단유에게 섭섭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별 생각이 없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이는 단유였고, 그 모습에 어쩐지 그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그 반응을 보고 싶었던 울스프가 궁 내에서 단유가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단유는 피식 웃었다.

“제가 왕을 암살할 이유라도 있나요?”

‘왕’이라고 평대해서 부르는 것이 조금 거슬릴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마법사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단지 ‘마법사’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 어려웠다.

“왕도 똑같은 사람인걸요.”

“같은 사람이라도 폐하는 다른 사람과 다르네. 왕의 권위는···.”

“왕의 권위란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죠.”

‘권위’가 사람이 만들어낸 것, 이라는 단유의 설명은 ‘지동설’ 이상의 충격이었다.

“자네는 교황파인가?”

“교황? 교국의 왕 말인가요? 그도 똑같죠. 그냥 사람이에요.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교황이라는 권위 자체는 그들의 신도가 만들어낸 것이죠.”

“왕권은 신성한 것이네.”

“만약 전쟁이 벌어지고 왕이 죽으면요? 왕권도 죽음 앞에서는 별거 없어요. 왕이라고 죽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왕권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백성이, 온 나라가 힘을 다해 싸우는 것 아닌가?”

“온 백성이, 온 나라가 싸운다는 행위도 그것이 온전히 자발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왕권을 지키는 것은 사람입니다. 바꿔 말하면 백성이 없는 왕권은 왕권이 아닌 것입니다.”

단지 순서를 바꿔 말했을 뿐인데 역천(逆天)의 의미를 띄게 되니 울스프는 얼이 빠진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게 된다.

“왕권은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주는 것이죠. 그러니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지 않으면 왕권이 설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성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보살피는 게 아니라,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만하게!”

누가 들은 건 아닌지 두려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울스프는, 그런 위험한 발언을 스스럼없이 꺼내고도 담담하기만 한 단유가 진정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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