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13화 (713/956)

환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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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 기억을 애써 누르며 신중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그렇게 표현하면 너무 추상적이어서 정확하게 답변드리기가 어렵네요.”

단유의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얼굴을 한 울스프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여기에 나온 ‘환희’라는 단어가 모호한 면은 있어. 게다가 난 마법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하지만 마법사인 자네는 이게 무엇인지 알지 않겠나? 아니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유추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을 가리고 있지만, 울스프는 단유가 연구에 좀 더 협조적이길 바라며, 마치 알면서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거 아냐,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환희’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확실히 마법을 처음 구현해 냈을 때는 기뻤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걸 말씀드려야겠군요. 마법은 라티오의 세계를 현 세계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티오는 여기에 적힌 것처럼, ‘본질의 세계’, 모든 존재의 원형(原型)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현상들은 모두 그 원형의 복사품인 셈이죠. 복사품이란 다시 말하면 또 다른 복사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 책상을 본떠 또 다른 책상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말이죠.”

이미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글자가 아닌 마법사의 직접적인 설명을 듣는 것이니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울스프였다.

“그래서 마법사는 라티오의 세계, 원형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원형을 ‘본다’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실상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때문에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라티오의 빛을 볼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제 식대로 이해하자면, ‘라티오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원형을 감지할 수 없었다’고 해석됩니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네만, 마법사마다 라티오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인가?”

“글쎄요. 제가 다른 마법사들과 깊이 교류를 해 본적이 없어서. 하지만 처음 절 가르쳐 준 마법사를 떠올려보면···.”

호기심을 드러내며 단유를 빤히 바라보는 울스프의 모습 뒤로 핀체노가 넓은 바위에 앉아 어린 자신을 바라보며 설명을 하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제는 선명하지 않은 기억. 그 흐릿함 속에서도 핀체노의 가르침만큼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라티오에 존재하는 원형을 ‘빌려 온다’고 표현했죠.”

“빌린다?”

울스프가 다급히 양피지를 꺼내 단유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네. ‘빌린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원형’을 정확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빌릴 대상의 본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빌린다는 행위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자네는 다르다?”

“처음엔 저도 그와 비슷하게 라티오를 인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죠.”

“어떻게 다른가?”

“그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단유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저 하늘을 보세요.”

울스프가 고개를 돌렸다. 맑고 파란 하늘, 그리고 조각 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하늘 너머에 뭐가 있을까요?”

“저 하늘 너머?”

울스프는 단유의 질문에 곤란함을 느끼는 듯 미간에 골을 새겼다.

“설마···저기에 라티오라고 부르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니요. 그냥 묻는 거예요. 저기에 뭐가 있을까?”

울스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겨우 입을 열었다.

“옛부터 의견이 분분했던 문제였지. 과연 저 하늘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어떤 이는 사람이 죽어 가는 곳이 저 하늘 너머에 있는 세상이라고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끝없이 하늘이 펼쳐져 있다고도 했지. 어떤 사람은 신이 거주하는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하지만 내 생각엔 하늘은 그저 하늘일 뿐이네.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학자의 본분이라 하겠지만, 근거도 없이 막연한 의심만 앞세우는 건 오히려 학자로서 지양해야 할 자세이지.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하늘 너머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증거나 합리적인 추론이 있어야만 가능한 질문일세.”

엉뚱한 대답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름 오랜 세월 학자로서 연구에 인생을 바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철학적인 대답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봐야···.’

이게 이 시대, 이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자네의 대답은 뭔가?”

“절 가르쳤던 마법사라면 저 하늘 너머의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는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반면에 저는 저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를 머리로 이해합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다른 무엇이 있다는 증거와 합리적 추론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전 그 증거를 눈으로 보고, 합리적인 추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추론에 따라 그 너머의 세계를 읽어냅니다. 가장 이성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단유의 대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된 울스프를 뒤로하고 단유는 저 하늘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이곳은 지구와 다른 세상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보던 하늘과 비슷한, 아니 똑같은 하늘이다. 빛의 산란으로 인해 파장이 짧은 파란색으로 물든 하늘, 낮은 기압 하에서 단열팽창 작용으로 인해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만들어낸 구름이 눈에 담긴다.

“라티오에 대한 인식도 그런 식으로 달라요. 어떤 이는 특별한 직감에 의해 그 세계를 인식하고 감지하지만, 저는 그 세계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확신하고, 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려내는(피구라) 것이죠.”

“···더 쉽게 설명은 안 되겠는가?”

단유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지금은 그렇게 밖에는 설명을 할 수가 없네요.”

“그럼 다른 질문이네만, 혹시 자네는 저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단유는 노학자의 호기심을 마주하며 싱긋 웃었다.

“네.”

울스프가 침을 꿀꺽 삼켰다.

****

그날 이후, 단유에게 따로 연구실이 배정되었다. 사실 울스프는 그 연구실 배정에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그것은 자신의 말실수로 벌어진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단유에게 들은 어마어마한 ‘진실’에 ‘감동’ 하기까지 한 울스프는 그 진실을 그저 자신의 입술 속에 가두고 있을 인내심이 없었다. 연구소―편의상 연구소, 라고 부르지만 이곳 학자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곳을 ‘페네프(Panep)’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학자들이 왕의 뜻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만난 옆 방의 다른 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자신이 알게 된 엄청난 진실을 은근히 드러냈다. 자신이 이만한 진실을 알아냈다는 자부심을 보이려는 의도였지만, 그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진실은 파괴적이었다. 그리고 금방 연구소 내의 모든 학자들이 그 진실의 진체를 알고자 단유에게 찾아왔다.

단유는 앞서 울스프에게 했던 것과 같이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기초적인 ‘우주론’을 펼쳐냈다. 특히 밤하늘에 보이는 별이 사실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별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이가 무려 마법사이고보니 함부로 거짓이라 손가락질할 수도 없었다. 신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마법사라는 지위가 가지는 특이한 권위에 맞서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증거가 있는가?”

“지금은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런가?”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모인 사람들 뒤편에서 시선을 피하는 울스프를 바라본 뒤 대답했다.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 별은 이곳에서 수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고, 그것을 관측하기 위해서는···실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이 집약되어야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대신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저기 떠 있는 태양입니다.”

마치 미어캣처럼 모두가 똑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려 단유를 바라보았다.

“설명이 필요하네.”

결국 학자들이 모여 단유에게 특별히 연구실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것은 단유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처럼 울스프와 함께 연구실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단유가 단독으로 쓰는 연구실이 있다면 아무래도 편하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단유에게 연구실이 생겼다. 대신 다른 학자들처럼 연구실에서 연구를 보조해주는 학생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학자들은 자신의 학생들이 돌아가며 단유의 연구실을 청소해주거나 필요한 업무를 봐주기로 결정했다. 다행인건 단유의 연구실에는 그저 넓은 책상과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의자 정도가 전부였기에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실 단유는 이 결정이 반가웠다. 울스프의 연구를 도우며 자신이 궁금해하는 과거의 마법, 그리고 마법사들의 자취를 쫓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벽에 가지런히 정리된 의자들과 책상, 그리고 다른 벽에 설치된 휑한 책장이 전부였지만, 단유는 집을 얻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 창가에 서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면, 울스프의 연구실과 달리 바로 앞에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가 있어 꽤 분위기가 좋았다.

“오셨습니까?”

뒤에서 들린 소리에 돌아보니 더벅머리 청년이 공손한 태도로 단유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울스프의 연구실에 배속된 학생으로 몇 번 인사를 했던 인물이었다. 단유도 돌아서서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한테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뇨.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다른 선생님들께 미안해지니까요.”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냥 루치드라고 부르세요.”

“그럴 순 없습니다. 엄연히 연구실을 배정받으신 분이신데.”

“그래도 선생님이란 호칭은 과분하네요.”

“그럼···.”

고민하던 더벅머리 학생, 티코에게 단유가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선생님, 그러니까 만리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아, 벌써 나오셨나요?”

“네.”

“알겠습니다. 곧 갈게요.”

“네. 그리고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곧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티코는 다시 꾸벅 인사를 한 뒤 연구실의 문을 닫고 나갔다.

시간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생에 불과한 단유였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니. 아무리 이곳에서 쓰이는 호칭이라고 해도 듣기 편한 호칭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왔는가?”

단유가 등장하니, 울스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단유를 반겼다.

“우선 여기 앉게.”

울스프가 가리킨 의자에 앉자, 그는 지체없이 용건을 말했다.

“자네가 그, 지하 도시라는 걸 만들었다면서?”

단유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울스프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일은 무슨. 그런 건 없네. 다만···얼마 전에 왕궁으로 서신이 한 장 왔는데 거기에 적힌 내용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고 하더군.”

“소란이요?”

****

“이게 사실인가?”

“사령관이 직접 확인하고 보낸 서신이니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허 참.”

사령관은 여태 지하 도시에 한 번도 방문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단유 때문에, 그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들리지 않은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 단유의 방문 당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부분에 대해 조율을 마쳤다. 아무래도 단유가 처음 말한 것처럼 완전 자치까지는 허용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 다만 이제는 에토신스에 복속된 곳이니 그곳에도 왕의 대리인인 자신이 직접 가서 어떤 곳인지 확인을 해야 하고, 동시에 에토신스의 법에 따르도록 주민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통제는 그곳에서 뽑은 이에 의해 될 터이니, 따로 누군가를 파견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곳에서 뽑아?”

단유는 간단하게 그곳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가서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령관은 지하 도시로 향했다. 군대와 함께 갔으니 작은 소란이 일긴 했지만, 단유가 미리 언질한 바가 있어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령관도 차마 이곳에서는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없었기에 평화적인 방문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 덕에 사령관과 그 휘하의 병사들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딱 그만큼의 감상이었지만, 그 정도로 그들은 평생에 해보지 못할 놀라움을 다 겪었다. 열기가 올라오는 바닥과 우물이 필요 없는 수도꼭지는 말할 것도 없고, 천장에서 뿜어져 내려오는 빛의 세례는 신성하다 여겨질 정도.

그런 감상이 담긴 기록이 종이에 적혀 보고가 되었으니, 당연 왕궁에선 그 진위 여부에 대해 소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를 직접 불러 물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는 생각에 마법사를 대신하여 학자들을 불렀고, 학자들은 서신에 적힌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하여 울스프가 직접 단유에게 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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