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11화 (711/956)

에토신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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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마법사셨다고요?”

“그래.”

“직접 보셨습니까?”

“지금까지 뭘 들었나? 난 아버지가 오블라텐을 반죽하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니까.”

“그럼 어떻게 아버지가 마법사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이것 때문이지.”

탁자 위 양피지를 툭툭 두드려 보이는 울스프. 단유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손가락을 펼치고 양피지 가운데를 덮어버렸다. 단유가 다시 시선을 들어 올리고 물었다.

“뭐가 적혀 있는 건가요?”

“이건 아버지의 회고록 같은 거였어. 아버지가 과거의 일들을 포함해서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적은 것이지.”

단유는 울스프가 말한 것 중 특정 단어들을 조합해 하나의 추리를 완성시켰다.

“혹시 아버지께서 병을 앓고 있으셨던 건가요?”

“···그렇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네.”

치매를 앓는 마법사라.

“그럼 거기에 본인을 마법사라고 지칭하신 겁니까?”

울스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혹시 아버지께서 자신을 마법사라고 착각하고 쓰셨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울스프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단유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그리고 손에 가려져 있던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포르마(forma)를 잃었다(?χασα αυτ? τη φ?ρμα).”

단유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 것을 확인한 뒤, 그는 뒷문장을 계속 이어 읽었다.

“‘그리고 라티오(Ratio)의 빛을 볼 수 없었다.”

앞의 문장도 단순하게, 이곳의 언어로 치환해서 해석하면 그저 어떤 방법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지만, ‘라티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까지 붙는다면 결코 평범하게 해석될 수 없는 말이었다.

“처음엔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 나를 가르쳐 준 학자도 거기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었고. 하지만 다양한 사료들과 자료를 검토한 끝에 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지. 덕분에 마법사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아는 학자가 될 수 있었고.”

단유는 그 글귀들을 치매와 연관시켜 해석하니 대충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마법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 본인의 의지이지만, 의지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마법으로 구현하려는 대상의 본질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본질로서 구성되는 세계의 존재를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치매로 인해 ‘포르마’에 대한 기억과 의미를 잃어버렸고, ‘라티오’로 불리는 ‘세계’의 본질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빛을 볼 수 없었다’는 표현은 믿음을 잃었다는 뜻과 동일하게 쓰였을 것이라 추측되니,

“아버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마법사였던 건가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오락가락했던 모양이야. 기록의 뒤를 보면 가끔 기억이 돌아오면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하니까.”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군요. 치매였지만, 아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 부분은 참 말하기 껄끄러운 점이 있지만, 고백하자면 나도 그 사람이 나의 친아버지인지는 확신하지 못하네. 다만 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난 그분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그는 나를 아들이라고 불렀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지.”

“그렇다면 최음제를 탄 오블라텐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여기 적혀 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일이야. 아버지는, 자신의 마법을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한 모양이야. 마법을 되찾기 위함이며 동시에 망각의 병을 극복하려 한 것이지. 처음에는 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반복했던 모양인데, 결국 다 실패했고, 그 실패의 경험마저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야. 그래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것을 복기하며 새로운 시도를 반복했고. 그러다 아버지는 마법사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눈을 돌렸어.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였던 사람은 없다는 게 아버지의 가설이었고, 그 가설에 따르면 어느 순간 마법사는 마법사만의 진리를 깨달으며 마법사가 된다는 것이었지. 그렇다면 마법사는 어떻게 그 진리를 깨닫는가? 이 질문에 대해 아버지는 반대로 질문을 던졌지. 왜 평범한 사람은 마법사가 되지 못하는가? 아버지는 그 답을 찾으면 자신의 마법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리고 그 실험을 시작하셨지. 그 실험의 일환이 최음제였던 것이고.”

그저 과거의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마법사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단유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어릴 때는 평범한, 그저 나무껍질이나 뜯고 다녔던 아이였다. ‘물의 마법사’ 핀체노를 만나 우연히 마법을 알게 되고 동시에 라티오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마법사가 될 수 있었는가?’

동시에 그런 생각도 했었다. 과연 지구에는 그런 마법사가 없을까? 평범한 자신도 마법사가 될 수 있었으니, 수십 억의 사람들이 사는 지구에, 과거까지 되짚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살았던 그곳에 마법사가 없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울스프의 아버지는 ‘치매’라는 병을 앓는 상황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래서요? 답을 찾았나요?”

하지만 울스프는 대답 대신 양피지를 다시 돌돌 말기 시작했다. 단유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침묵이 감도는 실내. 울스프는 다시 조심스럽게 실을 말아 양피지를 봉인하고 책장의 제일 아래에 넣어두었다.

“만약 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공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런가? 잘 됐군.”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루치드라고 했나? 자네는 이곳에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

“···처음에는 그저 마법사에 대한 약간의 힌트 정도만 들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많이 바뀌었네요.”

“그런가?”

공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울스프가 흘리는 웃음소리에 반응하여 춤을 췄다.

“저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계셨던 거죠?”

“얼마 되지 않았네.”

****

사령관은 단유의 방문 이후, 또 다른 서신을 작성했다. 그것은 그의 나라, 에토신스로 보내는 서신이었고 왕에게 직접 전달되었다.

“마법사가 온다는군.”

왕은 신하들을 불러 사령관의 서신을 회람케 하였다.

“위험합니다.”

“오래전 마인 소탕 작전이 펼쳐졌던 이유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럼 위험한 인물을 수도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법사의 방문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도 있었다.

“이 서신에 따르면, 그 자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함부로 힘을 쓰는 자는 아니라고 합니다. 사령관과 대화를 통해 협상을 하기도 했다니, 어쩌면 사령관의 말처럼 그자를 포섭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이 통하는 마법사라는 것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왕이 그의 최측근에게 물었다.

“비록 사령관이 폐하의 지시 없이 멋대로 협상을 벌여 폐하의 재산을 흥정한 것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 덕에 많은 병사들을 살려 전쟁을 수월하게 진행했으니 그의 기지에 대해서는 감히 칭찬합니다. 또한 마법사에 대해서는, 사실 저나 여기 있는 모두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마법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밖에요. 그러니 이번 일은 마법사를 잘 아는 이에게 물어 참고하시는 게 어떠실런지요?”

“마법사를 잘 아는 이가 있는가?”

“학자 중 울스프란 이가 마법사에 대해 잘 안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들라 하라.”

울스프는 왕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이 서신에 적힌 것만으로는 판단하기가 이르다고 여겨집니다. 마법사라 해도 결국 사람. 사람이 모두 천차만별이듯, 그 마법사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으면 그가 어떤 인물일지 알 수 없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먼저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그 후에 말씀드리면 아니되겠습니까?”

왕의 허락이 떨어졌다.

****

“그렇군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네와 있어 보니 어쩐지 자네는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미끼였습니까?”

“미끼라고 말하니, 나의 지난 불우했던 성장기가 형편없는 것처럼 들리는군. 하지만 솔직히 미끼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네. 그렇게 들렸다면 그게 맞는 거니. 그렇지만 저것은 내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네. 단순히 아버지의 기록이라서, 내가 글로 옮겨 쓴 첫 번째 자료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란 뜻이야.”

울스프는 더벅머리가 가지고 온 맨드라미 차를 조금씩 마시며 말을 이었다.

“많은 마법사들에 대한 자료를 읽음에도 여전히 난 저 글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네.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진짜 마법사를 통해 듣는 것보단 못하지 않겠는가? 학자로서의 호기심인 거지.”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잔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마치 그의 턱에 난 하얀 수염이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연기 사이로 비치는 작고 주름진 눈에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가? 자네도 호기심이 생겼다니, 이것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지 않겠나?”

단유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입을 다물고 늙은 학자의 거꾸로 자라는 수염을 바라보다가 화제를 돌려 물었다.

“아까 말입니다. 도서관에서. 화가 나셨던 거 아닌가요?”

“화? 화가 나긴 했었지만 자네에게 화를 냈던 건 아니네. 포아테지 그 녀석에게 화를 냈던 거지. 외부인인 자네는 이해를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거든. 특히 도서관엔 신경을 써야 하는 장서들이 무척 많단 말이야. 그리고 오래된 문서들은 쉽게 망가질 수도 있고. 때문에 허가되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지. 그녀석에게 도서관 관리를 맡겼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몰라. 하지만 녀석은 그 중요성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 모양이야.”

“그건 제가 그 분을 돕겠다고 나선 탓도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야. 이전에도 비슷한 경우로 몇 번 혼을 낸 적이 있었거든. 자료의 소중함을 모르는 그런 녀석이 어찌 학자가 될까.”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대는 입김에 거꾸로 자라나는 수염이 흔들렸다.

“오히려 자네가 학자로서는 더 잘 어울려 보이네. 침착하고 이성적이고 인내심이 강하니 말이야.”

****

단유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주인이 무뚝뚝한 얼굴로 물었다.

“식사 하시겠소?”

단유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여관에 붙은 식당칸에 들어가 창가에 붙은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았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으니 문득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울스프가 말했던 그 냄새가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턱을 괴고 있을 때 여관 주인이 먹을 것이 담긴 접시를 두 손에 들고 나타났다.

형편없지 않은 솜씨로 깎아 낸 목제 스푼으로 먼저 나온 수프를 떠먹은 단유는 학자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일부터는 새로운 여관을 찾든, 아니면 울스프에게 물어 적당히 끼니를 때울만한 식당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이곳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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