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99화 (699/956)

견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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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동안 마법사란 이들이 얼마나 많은 패악을 저질렀기에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인가 궁금해지네요.”

“그들의 패악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사람이 제각각이듯, 마법사들도 다 다르지 않을까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힘을 가진 이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비슷한 길을 걷지 않던가? 마법사란 이들 역시 그렇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 그리고 누구도 그들을 제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즐기거나 이용했다.”

“마법사들도 그렇다는 건가요?”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단 한 번도 너 외에 다른 마법사는 보지 못한 모양이군?”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기준으로 모든 마법사를 평가한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은거죠. 특히나 그런 선입견에 의해 제가 평가를 받는다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드니까요.”

“아직 어려서인가? 하지만 난 확신하네. 설령 지금의 자네가 마법사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부정한다 해도 언젠가는 자네 역시 그 길을 걸을 거란 걸 말일세.”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여기서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시간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것을. 시간이 흐른 뒤, 자네의 위선도 그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단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훼손하지 않은 몇몇 기둥과, 그리고 천장에까지 새겨져 있는 글자와 문양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것들은 무엇인가요?”

“마게이아의 진언이다.”

노인은 순순히 질문에 답했다. 단유는 다시 노인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푸들거리던 얼굴이 침착해져 있었다. 표정만 보면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게이아는 무엇인가요?”

노인은 눈을 감았다. 수염에 덮인 두꺼운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단유는 채근하지 않고 노인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노인은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마게이아는 모순을 명정(明正)하는 일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노인이 눈을 떴다. 그 순간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는 듯 보였다.

“너희 마법사들의 위선과 모순을 밝혀내는 것이지.”

길지 않은 대화에서 몇몇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마법사를 묘사하고 있었다.

위선, 모순, 거짓.

그렇지만 단유는 그게 왜 마법사를 서술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법사는 그 세 가지를 모두 배제해야만 가능한 존재들 아닌가.

“자네는 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가? 왜 세상은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황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람은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부는가?”

충동적으로 대답할 뻔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 세상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언제 끝이 나는가?”

“자네가 알고 있는 세상과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같은가, 다른가?”

“왜 사람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왜 두 눈을 가지고 두 귀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철학자? 구도자? 저 노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 하지만 너희는 마치 너희만 그런 생각을 하고, 너희만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만하며 거만한 이들. 그리고 뭇사람들을 경시하지. 마치 자기들이 다른 모든 이들의 위에 올라 있다는 듯이 오만했던 마법사들.”

거기까지만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한국에서도 그런 이들은 더러 보았으니까.

“하지만 너희가 아는 그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자네는 확신하겠지. 자신이 알게 된 것,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이며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이가 있으니, 바로 마게이아네.”

그 순간, 단유는 흐릿한 기억의 단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묘한 기시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래전, 한 지방을 공포에 떨게 했던 무자비한 마법사가 있었다. 그는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고 사람들을 죽였다. 귀족에서 평민까지 가리지 않고, 이유 없이 죽였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죽였고, 또 죽였다. 그러나 그를 막을 방법이 없어 어떤 나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저 눈에 띄지 않으려 집 안에만 틀어박혀야 했다. 하지만 무자비한 그 마법사는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집을 나섰다.”

너무 길게 이야기를 끈 탓에 노인은 잔기침을 했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재앙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가 쓰는 마법은 재앙이었지. 그가 손을 떨치면 수십 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그런 마법사가 어느 날 죽었다.”

노인은 팔걸이 위에 있던 손을 들어 옆으로 뻗었다. 오른쪽에 놓여 있던 협탁 위에 작은 접시를 집어 들었는데,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접시였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용케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고, 그의 증언으로 마법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다.”

접시를 천천히 쓰다듬는 노인의 행동을 단유는 제지하지 않았다. 허벅지에 올려두고 마치 반려견의 등을 쓸 듯이 쓰다듬는 그 행위가 자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가?”

“그게 마게이아의 진언이란 말인가요?”

노인은 잔기침 속에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는 단 몇 마디 말에 죽었다고 한다.”

몇 마디 말?

“상대는 또 다른 마법사. 그는 몇 마디 말로 마법의 모순을 파헤치고 그가 아는 진실의 허위를 밝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허위가 진실로 드러나는 순간, 잔인한 마법사의 마법은 영원히 사라졌다.”

단유는 속으로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 사실이 전해지며 알게 된 것은, 이제까지 진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이들이라고 자평하던 마법사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몇몇 사람들은 마법사들의 마법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그 기제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제를 알게 되었다 해도 뭇 사람들은 마법사들을 막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짓을 파훼할 정도의 지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았다. 진리를 탐구하며 지식을 갈구하는 이는 오직 마법사뿐이 아니었으니.”

노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단유는 대충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것은, 그렇다면 이 글자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게이아는 그들의 거짓을 파훼할 수 있다는 진실을, 숨겨진 진리를 찾으러 온 세상을 헤맸고 마침내 그는 참된 진리의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지.”

허벅지에 올려진 접시를 눈높이로 들어 올린 노인의 모습은 마치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처럼 보였다.

“그게 뭔가요?”

“최초의 진언이다.”

오래된 접시 속에는 다른 곳에서 본 것과 비슷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아나요?”

“아직. 오직 마게이아만이 이 글에 담긴 진리를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게이아는 후세를 이해 이 진언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렸고, 그 덕분에 우리는 악을 처단할 수 있었지.”

마법사가 이제는 악으로 정의되었다. 그건 그러려니 했지만, 단유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당신들이 진언이라 말하는 것이 진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마게이아가 증명했다. 그리고 마게이아는 이 진리로 당시 세상을 어지럽히던 수 명의 마인들을 무릎 꿇렸다.”

단유는 뭔가 먹먹한 기분이 들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겠죠?”

“눈치가 없는 건 아니군.”

노인은 웃음을 흘렸다.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 그리고 여유였다.

노인은 접시를 붙잡은 채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너무 비대한 몸이라 일어서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일어선 노인이 접시를 돌려 단유를 향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진언에는 모든 거짓과 모순을 명정하는 힘이 담겨 있다. 이 순간, 네가 가진 모든 힘은 명백히 사라졌으리라.”

선언하듯 외치는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깃들어 있었다.

낡은 접시를 단유를 향하게 들고 노려보는 노인과, 그를 태연히 바라보는 단유의 구도가 정적 속에 잠시 이어졌다. 단유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다 주변을 살핀 뒤, 다시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요?”

“이제 너는 더 이상 마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무슨 코미디 같은 상황일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노인은 진심인 것 같았다.

단유는 터벅터벅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며 물러서 보지만 금방 뒤에 놓인 의자에 부딪혀 멈추고 만다.

“다가오지 마라.”

단유는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접시를 집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노인이 뺏기지 않으려 접시를 당겨보지만 단유의 손아귀에 잡힌 접시는 이미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접시를 들여다보며 단유는 피식 웃었다.

“도대체 뭔가 했네.”

노인의 장황한 설명과 이전에 경험했던―마법보다 더 마법 같던 기물의 힘들을 떠올리며 단유는 살짝 두려움을 갖기도 했었다. 하지만 만약 마법을 잃더라도, 노인이 말한 것처럼, 진짜 진리를 알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단유가 이곳에서 가장 처음 겪었던 일, 그의 가족과 그의 이웃들을 잃었던 일은 마법 이상의 무언가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지구와 이곳을 강제로 옮겨 다니게 되었던 것 역시 마법 이상의 것으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 이상의 그 무엇, 노인이 말한 것처럼 그게 어떤 진리의 한 조각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면 마법을 잃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기에 노인을 막지 않았다.

그의 의도대로 최초의 진언이라는 것이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긍정적인 의미로서, 단유가 탐구할 만한 대상이 될 터였고 실패하면 여전히 단유는 마법사로서 자신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기에 단유로서는 어느 쪽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언 후, 시야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명백히 드러난 사물과 그 사물의 진체의 일부분―보는 법을 깨달았지만 사물의 진체(眞體)를 모두 볼 수 있는 건 아니다―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유는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보이세요?”

머리 위에 만들어두었던 빛의 구슬은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입을 반쯤 열고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껏 왜 당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이없는 순간이지만, 단유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노인의 이야기 속에 정답이 있었다.

‘도대체 그때의 일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노인이 이야기한 사례는 분명 단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일이었다. 그의 이름도 여전히 기억하는 단유였다.

“그 마법사, 진실을 간파당하고 마법을 잃었다는 마법사의 이름은 제윅.”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을 보며 어쩐지 단유는 즐거워졌다. 지금까지와 180도 달라진 상황. 이제껏 단유를 가르치려 들었던 노인이었지만, 이제는 단유가 선생님처럼 노인에게 사실을 알려줄 차례였다.

“그는 북쪽 지방에서 온 바람의 마법사였죠. 그는 평생을 바람과 함께 지내며 바람의 속성을 깨달은 마법사였어요. 아까 바람이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부는가, 라고 물었던가요? 제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궁금해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골몰했죠. 그리고 마침내 바람의 마법사가 되었고.”

“그걸 어찌···, 설마! 그 마인의 후계인가!”

“그렇지는 않아요. ···조금 영향은 있네요. 저도 그 덕분에 바람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노인이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의 말도 맞아요. 그의 마법은, 진실에 다가가지 않은 채로 형성된 불완전한 마법이었어요. 그리고 그 거짓이 밝혀지는 순간 진실은 마법사의 힘을 잃게 만들었죠.”

단 몇 마디 말이었지만, 진실의 힘은 그의 입을 다물게 했고, 그의 힘을 상실케 했었다.

“그리고 이 접시에 적힌 글,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하셨죠?”

단유가 접시를 가볍게 흔들며 묻자 더욱 심하게 요동치는 노인의 눈동자였다.

“설, 설마···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글자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문양. 이렇게 보니 알 수 있네요.”

“그게 뭔가?”

이런 상황에서 호기심이 치미는지 되묻는 노인의 말에 단유는 싱긋 웃었다.

“방정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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