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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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저것도 마법입니까?”
지하 공동 전체를 밝힐 정도의 환한 빛이 높은 천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경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이죠.”
“과학이요?”
처음 지하도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단유가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이 바로 지하도시를 밝힐 불빛이었다. 사람이 두더지도 아닌데, 빛도 없는 곳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방법을 고민할 때, 거의 반사적으로 생각난 것은 바로 ‘적정기술’이었다. 기술적 진보가 지구의 반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 무난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려 하니 저절로 ‘적정기술’이란 단어가 생각났고, ‘적정기술’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곧이어 케냐에서 ‘페트병 전구’를 사용해 실내를 밝혔던 사례를 떠올렸다.
외부의 빛이 표백제가 포함된 페트병 내의 물을 투과하면 산란작용으로 인해 빛이 증폭되어 실내를 밝히는 원리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단유는 천장에 탄소 수정체를 만들어 두고 외부의 특정 지점에서 모인 빛을(集光) 수정체 내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 위상차를 이용한 회절로 목적한 위치에 빛이 전달되도록 한 뒤, 최종적으로 지하 공동 천장에 붙은 수정체에서 빛이 산란 되어 뿌려지게끔 한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단유가 고안한 방법은 ‘적정기술’이 될 수 없었다. 적정기술이라 하면 현지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하고, 사람들이 손쉽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하는데, 천장에 박아놓은 수 많은 수정체들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외부의 빛을 내부로 전달하는 과정에 이용된 빛의 집광(集光)과 분광(分光)의 기술은 사람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때 이용한 수정체도 단유가 여러 차례 실험하여 만들어낸 마법 결정체이기에 자연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즉 대체물이 없는 상황이다.
단유는 그 점을 마을 사람들에게 주지시켰다.
“저기에 설치된 것은 쉽게 깨지진 않겠지만, 만약 부서지면 대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저것을 부수려 하는 행위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나 정도 부서진다고 해도 천장에 박혀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정체가 제 역할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LED 전등에서 발광 다이오드 하나가 꺼지는 정도랄까?
“세상에. 그럼 밤에는요?”
“저건 스스로 빛을 내는 게 아닙니다. 바깥의 빛으로 받아서 내보내는 겁니다. 바깥이 어두워지면 저기에서도 빛이 나오질 않게 되는 거죠.”
단유의 실험을 곁에서 지켜본 몇몇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밤에는 횃불 없이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신기함을 감출 수 없다.
“별이잖아요, 저건.”
한 사람의 감탄에 단유는 식상한 로맨스 대사가 떠올랐다. ‘하늘의 별을 따다 너에게 줄게’ 같은 유치한 말을 실현해 보이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기에서 저 수정체를 때어내는 순간, 빛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직 보완할 부분은 많지만, 저 정도라면 낮에 여기서 생활하는 것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궁극적으로는 저기만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 내에서 저 정도의 조도(照度)를 구현하는 게 목표지만, 그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네?”
“아···그러니까 집 안에서도 저렇게 밝은 빛을 내리쬘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란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난색을 보였다.
“집 안에서 저러면 눈이 너무 부셔서 어떻게 산대요?”
“잠도 못 잘 건데?”
“집 안에서 램프를 쓰시잖아요? 그런 램프 없이도 밝을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불을 껐다가 켰다가 할 수 있게도 해야 하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만약 형광등을 구현해 낸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단유가 처음 저쪽 세계로 넘어갔을 때, 경찰서에서 봤었던 형광등의 밝기에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가능할 거예요. 아무튼 위는 그렇고요. 문제는 물인데.”
단유는 아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넓은 지하 공동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 아래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어요. 대신 예전처럼 우물 형태로 하는 게 아니라 각 집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게하는 것이지만.”
“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그것도 아까 말씀하셨던···과학이란 겁니까?”
“네.”
“정말 마법이란 것은 대단한 것이었군요.”
“여러분도 배우면 할 수 있습니다.”
“배워요? 저희도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겁니까?”
“과학은 마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백날 이야기해봐야 직접 보고, 배우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다.
아무튼 오늘 마을 사람들을 초빙한 것은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 더 안심하고 이 작업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확실히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만약 그곳이 완성된다면, 더 이상 외부의 불안 요소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과 그 외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 때문에 마을을 떠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만약 더 일찍 마을 건축이 완성된다면 더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마을 내의 소수 사람들, 특정하자면 바이언의 선동에 설득당해 여관으로 찾아갔던 사람들 중 일부만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단유의 역할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의 손이 모인다면 더 빨리 일이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사울른의 정찰 업무를 도울 사람도 많아질 테니, 그쪽을 봐주고 있는 사람들의 부담도 많이 줄 것이다. 이를 예상한 사울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며 단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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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완전히 가기 전에 끝냈으면 좋겠지만, 들어보니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잠시 소강상태였던 전장에도 긴장이 찾아올 것이고, 더불어 국경 근처, 아니 공국 전체가 어수선해질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작업이 끝나도록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마을 사람들의 지원,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마법사의 도움 덕에 ‘지하 도시 건축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되어갔다.
그리하여 겨울이 가고 언덕에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할 무렵, 도시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 준공 속도면 뉴스에서 부실 공사 운운하며 시리즈 보도물을 낼 만한 상황인데.’
단유 본인도 이렇게까지나 빨리 완성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석재나 목재를 반듯하게 자르는 데도 마법을 사용했고, 튼튼한 구조물이 되도록 몇 날 몇일을 밤새워 고민했더니, 그 결과 몇 십년을 살아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집들이 완성되었다.
이 집의 특색이라면, 역시 단유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온돌 방식의 주택구조였다.
예전처럼 언덕을 타고 넘어온 차가운 바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져서 난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미 과거에 한 번 시공해 본 적이 있었고, 그때도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었던 기억이 있는지라 단유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모든 집을 온돌 난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연기는 안 차나요?”
에밀리아의 물음에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장의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가 환기 구멍인데, 어지간해서는 모두 저기로 빠져나갈 겁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해요. 집에서 그냥 물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아마 세상에서 여기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일 거예요.”
“그렇진 않아요. 조금 더 살다 보면 여기에도 문제가 많이 있을 거예요. 이를테면 습기라든가 혹은···.”
혹은 불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라든가. 환기 구멍을 많이 만들어놓긴 했지만, 지하 공동의 특성상 공기 환기의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차피 이 마을은 임시예요. 만약 전쟁이 모두 끝나고 외부의 위험요소가 사라진다면 다시 원래의 마을로 돌아가야죠.”
임시치고는 너무 많은 공을 들인 게 아닌가 싶겠지만, 단유에겐 그 정도의 수고를 할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 같으면 여기서 평생 살고 싶을 것 같은데요.”
“에밀리아도 여기서 살고 싶어요?”
“음, 가능하다면요. 집은 항상 따뜻하고, 언제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고, 이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잖아요. 아, 루치드. 혹시 여기서도 꽃을 기를 수 있나요?”
“안 될 건 없죠. 잘 자랄 지는 모르겠지만.”
“왜요?”
단유는 생각을 정리한 뒤에 설명했다.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에너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빛이란 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주 세밀하게 알려주기엔 아직 배움이 짧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대충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에밀리아에겐 신세계였다.
“자외선은 식물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죠. 그래서 햇빛이 강한 여름철에는 식물들이 황백화 현상, 그러니까 잎이 노랗게 변하며 마르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보면 파장이 짧은 자외선은 수정체에 흡수가 되는 탓에 이곳에는 자외선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니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일반화할 수 없는 건, 식물마다 특색이 있고, 특정 조건이 맞춰지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는 식물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야외에서 잘 자라는 식물과 실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있다는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바다.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기에는 부담이 없는 편이지만, 식물의 생장에 도움이 될 만큼의 채광이 되는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죠.”
“너무 어려워요.”
“그럴 거예요. 사실은 저도 잘 모르니까요. 어떤 사람은 평생을 이것만 연구하고 살기도 하거든요.”
“평생을요? 왜요?”
“···글쎄요. 아마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마 꽃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분인가 봐요.”
“그럴지도 모르죠.”
에밀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그거 할 수 있나요?”
“어떤 거요?”
“연구라는 거요. 저도 꽃을 좋아하니까요.”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럼 방금 루치드가 가르쳐 준 것들도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조금 자신이 없어요.”
“굳이 제가 말한 것들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요. 연구라는 건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연구니까요. 에밀리아가 자기만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만의 것이요?”
어딘지 모르게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버린 에밀리아를 보며, 단유는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에밀리아의 저런 변화가 단유가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미래이기도 했으니까.
단유는 고개를 돌려 가지런히 지어진 집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흡족해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사울른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루치드, 큰일 났습니다.”
사울른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그들이 온 건가요?”
“아니요. 그들은 아닙니다. 에토신스, 에토신스가 군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단유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결국 겨울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싶더니, 결국 공국을 침략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겨울이 지나면서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군대가 아니라 피난민들이었다. 가장 먼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전장 근처 마을의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 움직였고, 그러다 보니 일부는 단유네가 이동했던 루트와 비슷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 때문에 사울른을 비롯한 정찰 업무를 맡은 이들의 긴장감도 올라간 상황이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막아서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피난민들이 분지에 있는 마을을 지나가다 들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재도구는 물론, 집 안의 모든 것이 싹 사라져 아예 유령마을처럼 텅 비어버린 마을을 보며 피난민들은 더욱 두려운 마음을 가졌고, 그들의 초조한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정찰대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피난민들이 향하던 방향과 반대인 쪽, 그러니까 공국 내부로 향하는 일련의 피난민들을 관측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그냥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울른이 나섰다.
“그들 말로는 국경 수비대는 갑작스러운 침입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번에 모두 밀려버리고 말았고, 에토신스는 그대로 죽 남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에토신스와의 국경선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걸어서 5일이 걸리는 곳이다. 그들이 공국 내로 목적지를 잡고 움직이면 거의 90% 이상 이 곳을 지나칠 확률이 있다.
“첫 시험이네요.”
그들과 싸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부디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가 주길 빌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과연 이 마을은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