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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681화 (681/956)

개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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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슬그머니 창을 넘어 얼굴 위에 드리울 때 에밀리아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난 그녀는 아래로 쪼르르 내려갔다.

“벌써 일어났구만?”

여관 주방에서 반죽을 치대고 있던 피비가 헝클어진 머리로 배시시 웃는 에밀리아를 보며 인사했다.

“피비 아주머니. 잘 주무셨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잠을 깊이 못 자네.”

피비의 푸념에 입을 가리고 웃는 것으로 대신한 에밀리아는 얼른 씻고 오겠다며 돌아섰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그녀가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소매를 걷었다.

그러는 사이 몇몇 아주머니들이 푸짐한 미소를 지으며, 혹은 다소 피곤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어, 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저 첫날에만 지각한 거예요. 그 뒤로는 계속 일찍 나왔는데···.”

“그냥 하는 말이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들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에밀리아의 팡팡 두드리는 아주머니 덕분에 에밀리아는 뒷덜미를 붙들고 있던 잠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주머니들끼리도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곧 작업에 들어갔다. 한두 마디씩 늘어나던 대화는 곧 수다로 이어지면서 주방은 시끌벅적해졌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고 작업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어이, 저기 오네.”

“왜 이렇게 늦었어?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검은 흙과 모래를 뒤집어쓰다시피 한 남자들이 들고 있던 삽을 바닥에 내리꽂고 멀리서 다가오는 아주머니들을 가리키며 반갑게 소리쳤다.

빵과 수프가 전부였지만, 허기진 사람들에겐 그것도 고마울 뿐이다. 게다가 밤을 새며 일한 이들에겐 퇴근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에밀리아도 양손으로 바구니를 받쳐 들고 나타났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사람들이 작업 중이던 구멍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나타난 단유를 발견했다.

“루치드.”

치마의 한쪽을 걷어쥐고 종종걸음으로 달려 단유 앞에 선 에밀리아는 숨을 고르며 그를 불렀다.

“왔어요?”

“네. 안 피곤해요?”

“괜찮아요.”

“여기.”

단유는 에밀리아가 건네는 바구니를 받아들며 감사를 표했다.

“아, 고마워요. 에밀리아도 아침 안 먹었죠? 같이 먹어요.”

“전 괜찮아요. 나중에 마을에 가서 먹으면 돼요. 얼마 안 되니까 루치드가 다 먹어요.”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먹을 수 있어요.”

단유는 볼을 긁적이다 힘없이 웃으며 바구니에 담긴 빵을 하나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조금 식긴 했지만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빵은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꼬리를 씰룩이던 에밀리아는 표정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리다 마침 시선이 닿는 곳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저기, 어느 정도 됐어요?”

“대충 90%, 아니, 그러니까 ···거의 다 됐어요.”

처음 구상한 대로 공간은 확보했다. 폭발의 제어가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진행하느라 시간은 걸렸지만, 그래도 마을 내 남성들의 도움이 있어서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하 공동의 외벽들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를 설치하고 내부를 보강하는 작업만이 남았다.

“들어가 봐도 돼요?”

“지금은 좀 그렇고, 며칠 뒤에 모두를 초대할 생각이에요.”

아직 내부는 횃불로 밝히고 있는 실정인데, 곧 단유가 미리 공언했던 방법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 지하 공동에서 살더라도 불편이 없을 것이다.

“이거 먹고 다시 들어갈 거예요?”

“아뇨, 오늘은 저도 이것만 먹고 여관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틀을 밤새웠더니 좀 피곤하네요.”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요?”

“그래요. 같이 가요.”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하는 에밀리아의 밝은 모습을 보니 단유도 기분이 좋았다.

“피비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 봄이 되면 여기 언덕에 꽃이 엄청 많이 핀데요.”

“그래요?”

“네! 그래서 되게 예쁘다고요. 아주머니 젊었을 적에 이 언덕에서 프로포즈도 여러 번 받았었대요.”

“여러 번?”

“네! 왜요?”

“···아니에요.”

단유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빵을 우물거리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 돌아보았더니, 에밀리아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리아.”

“네?”

“숙제는 했어요?”

“네!”

뭔가 할 말이 있나보다 했더니, 그걸 원했던 모양이다. 단단히 준비한 모양인데, 그 모습만 봐도 단유는 어쩐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유 나름대로 이름 붙이길, ‘지하도시 건축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루치드, 저도 돕고 싶어요.”

에밀리아는 단유나 사울른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 반해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여관에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미안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단유는 나름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안전한 여관에서 쉴 수 있게 한 것이었는데, 누구도 그녀에게 무언가를 시키지 않으니 무료함과는 다른, 불안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만한 일거리가 없었다. 비록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는 있으나, 여관은 자신들의 것도 아니고 여관의 창고에 쌓여있던 식자재 역시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그나마 피비와 바이언, 그리고 그들을 동정하는 몇몇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중이어서 여관에 있던 것에는 손도 대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피비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농담도 나누는 모양이지만, 그때는 아직 낯도 설고 정신적인 충격도 가시지 않은 때라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미리 알았다면 모를까, 단유도 나름 바쁘게 일을 추진 중이어서 에밀리아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그래서 에밀리아가 느끼는 불안감을 제때 캐치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단유는 에밀리아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있었던 일이었다. 이곳의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담당하는 가사와 남편의 업무를 분담하는 정도의 단순 노동이라면 에밀리아가 굳이 공부를 배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유는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에밀리아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 그녀가 제대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그리고, 단유의 기준에서, 그것은 수학적 추론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단유는 지난번 내준 숙제를 잘 풀어낸 에밀리아를 칭찬한 후, 다음 과제를 주었다.

“120개의 운반물을 네 사람이 옮겨야 합니다. 목적지까지는 이틀이 걸리죠.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너무 지쳐서 반나절을 쉬어야 하고요. 그렇다면 과연 이 일이 모두 끝나는 건 처음 시작한 날로부터 얼마나 지난 다음일까요?”

에밀리아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남은 빵 중 하나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더니 무의식적으로 입에 가져가는 에밀리아였다.

처음엔 수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그러듯 ‘하나 더하기 하나, 셋 빼기 둘’과 같은 단순 계산 문제를 주었다. 처음엔 조금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단유의 설명을 들으며 금방 이해하기 시작하더니 꽤나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학습에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난이도를 올려도 에밀리아가 잘 따라오기 시작하자, 가르치는 단유도 조금 흥이 났다.

의외로 수학적 재능이 있었을지도 몰라,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기초적인 단계였으니까.

한편, 그 시간 사울른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와 있었다. 목적은 정찰 및 수색이었다. 필요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군대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하게 된 사울른. 그렇지만 그게 싫진 않았다. 차라리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편했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수고로 마을 사람들과 단유가 안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사울른, 이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함께 정찰 활동에 나선 사내의 말에 사울른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죠. 여기도 별 이상은 없네요.”

사울른 외에는 정찰에 능숙한 사람이 없지만, 사울른 혼자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자원한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함께 움직였다. 단순히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울른의 노하우를 배워 그들 스스로가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이른바 자경단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노하우라 해서 딱히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사울른이 정찰을 도맡을 순 없는 일이니까.

정찰 범위가 꽤 넓기도 하고, 인력의 부족도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사울른은 그것을 덫으로 해결했다. 살상력을 떨어지지만 누군가가 해당 방향으로 접근 시 반드시 덫을 건드리도록, 그래서 접근을 미리 알아챌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정찰을 맡은 이들이 매일 덫을 확인하며 불청객의 침입을 주의하도록 했다.

숲에 설치된 덫을 확인 후, 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사울른은 돌아가던 중에 단유가 작업 중이던 곳을 지나갔는데 마침 집으로 향하던 단유와 만날 수 있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수고는요. 저보다 루치드가 더 고생이죠.”

“괜찮아요. 일도 순조롭고 마을 아저씨들이 많이 도와주시니까.”

“그러고보면 루치드는 정말 군인에 버금갈 정도로 체력이 좋군요. 어지간한 군인보다 좋다고 해야 할까나?”

“그렇지 않아요.”

“근데 에밀리아는···숙제 중인가 보네요?”

그녀는 옆에 사울른이 다가왔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리며 답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네. 제가 새로 문제를 줬거든요.”

“어젯밤에 들었던 그 문제를 벌써 풀었단 말입니까?”

“그렇더라고요.”

“와, 저는 같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던데. 에밀리아는 그쪽으로 소질이 있는 겁니까?”

“숫자를 다루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재능이 없진 않네요.”

“음, 저도 한 번 배워볼까요?”

“해보실래요?”

“음···생각해보니 지금은 별로 여유가 없네요.”

단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사울른을 도울 마음이 있으니까요.”

“루치드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라고 하시면 살짝 겁이 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사울른은 똑똑하니까 아마 금방 배우실걸요?”

“칭창은 감사하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전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잔머리가 남들보다 조금 더 발전했을 뿐이죠.”

“잔머리가 아니라 임기응변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재능이죠.”

“···감사합니다.”

대충 대화를 갈무리한 단유는 바닥에 내려뒀던 바구니를 들고 에밀리아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계산에 빠져 있던 에밀리아가 정신차리고 돌아보더니 사울른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집, 아니 여관으로 돌아갔다.

****

며칠 후, 작업을 진행하던 언덕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입구에서 들어가진 않고 밖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잠시 후 단유가 공동에서 나와 사람들 앞에 섰다.

“일단 입구에는 횃불이 있습니다만, 더 안쪽으로는 횃불이 없습니다. 하지만 횃불을 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아직 내부 보강이 끝나지 않았으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들 주의하시면서 들어오세요.”

단유를 선두로 해서 사람들이 동굴 입구로 들어섰다. 바깥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미세하게 아래로 향했는데 그 길이는 꽤 긴 편이었다. 통로에는 단유가 말한 것처럼, 일정 간격으로 횃불이 꽂혀 있어 그리 어둡진 않았다. 그러나 통로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횃불이 없어 주위가 꽤 어두웠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지하에서는 보기 힘든 빛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함께 일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마을에서 대기하며 지냈던 사람들이 가졌던 의심과 의문, 기대가 함께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통로를 지나 지하 공동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똑같은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고개는 들었지만 눈은 뜰 수 없었다.

“세상에···.”

한 사람의 중얼거림은 여러 사람의 입에서 반복되었고,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양인가?”

천장을 가득 메운 것은 빛,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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