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80화 (680/956)

개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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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단유는 그와의 대화에서 알아낸 몇 가지 사실들을 이야기해주었고, 사울른은 단유의 추리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긴 시간을 들여 심문했던 자신이 헛짓거리를 한 것인가, 의문을 드러내는 사울른에게 단유는 그의 노고를 칭찬하며 알아낸 사실을 토대로 준비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준비요?”

단유는 조금 전 마을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해주며, 오전과 달라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확실히 그놈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복수라는 핑계로 쉽게 살육을 저지를 녀석들이지요.”

“네. 제 생각도 그래요. 그리고 나가서 살펴보니 이 마을도 살기에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쟁만 아니었다면 정말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마을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닙니다만, 루치드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음, 만약 제가 은퇴를 한다면 이런 마을에서 여생을 지내도 좋을 것 같더군요. 하지만···역시 전쟁이란 게 가장 큰 문제죠.”

“네. 그래서 말인데요.”

단유의 이야기에 사울른이 눈을 홉뜨더니 급기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 가능하겠습니까?”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네요.”

“만약 그게 된다면, 아마도 그 음침한 놈들은 물론이고 전쟁까지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제 시간에 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겠지요.”

“사람도 많이 필요할 듯 합니다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마법을 잘 이용하면 인력 부족에 관해서는 상당 부분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마법사님!”

사울른이 탁자를 탁 두드리며 감탄을 표했다.

****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마을을 완전히 덮을 무렵, 단유는 여관을 떠나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점 주인부터 시작해서 주점 안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날선 시선이 한 번에 꽂히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술은 힘들 것 같은데?”

주인이 단유의 가슴에 매어진 붕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술 대신 마실 게 있나요?”

“물이라도 줄까?”

“감사합니다.”

주점에서 술 말고 뭐가 있겠냐는 말이었는데, 단유가 넙죽 말을 받으니 주인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가장 안쪽에서 그를 기다리는 테이블로 발길을 돌렸다.

바이언이 팔짱을 낀 채로 단유를 보다 물었다.

“저녁은 먹었나?”

“돌아가서 먹어도 돼요.”

“어이, 여기 먹을 것도 좀 달라고.”

“술이나 시키고 말해.”

“맥주는 기본 아니었나?”

얼마 후, 주인이 터덜터덜 걸어와 테이블 위에 케그 하나를 통째로 올려두고는 돌아섰다.

“마실텐가?”

“괜찮습니다.”

“하긴···.”

바이언은 케그에 잔을 통째로 넣어 한 잔 가득 채워 든 뒤, 한입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거친 사내마냥 긴 트림을 뱉은 후에야 바이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이제 이야기 좀 해보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 바이언은 입가에 남은 술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자네가 말한, ‘마을 사람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란 게 뭐지?”

단유는 주위를 간단히 훑은 뒤 대답했다.

“이야기에 앞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새벽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사랑하던 이들을 잃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안타깝게 여겨 치료를 도와주시고, 식사를 대접해 줄 뿐 아니라 머물 곳까지 허락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흠흠.”

마지막 감사의 인사는 단유가 비록 그들 모두에게 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제로 그 인사를 받을 사람은 몇 되지 않는 사실에 대부분은 헛기침으로 머쓱함을 가렸다.

“그 일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리고 슬픈 일을 당한 분들에 대한 위로의 뜻으로 제가 해드릴 게 없을까, 오전 내내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낸 게 아까 여관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래, 그건 알겠고. 그래서 그게 어떤 방법인 거지?”

단유는 잠시 말을 고른 후, 신중하게 답했다.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설마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는 말인가?”

사람들의 얼굴에 실망과 배신감이 번질 때,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 이 곳에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단유는 사울른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단유의 이야기를 듣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놀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단유가 말을 마쳤을 때, 바이언은 심각한 눈빛으로 단유를 보며 물었다.

“그럴싸한 이야기지만, 그게 가능한가? 마치 애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생각 아닌가?”

“아이들의 동화는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뭐냐, 아, 그래. 마법사. 자네가 ‘기적을 부르는’ 마법사란 이야기는 들었네만, 그런 것도 마법으로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정말 기적이 따로 없겠군. 아니 기적이 아니라 전설이 되는 것인가?”

“뭐라고 부르시든 상관은 없지만, 만약 완성이 된다면 그건 저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의 도움도 필요하단 이야긴가?”

“도움이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살 곳이니까요.”

“아, 그런 뜻인가.”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미심쩍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듣기엔 좋지만 그래도 그게 가능한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제가 조만간 설계도를 만들어서 보여드릴게요.”

“설계도?”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기술자들도 많이 필요한 일이 될 겁니다.”

그리고 또한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괜한 말로 그들의 불안감을 자극시키고 싶지 않았다.

****

여관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에 누웠더니 에밀리아가 수줍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식사 하셨어요?”

“아, 대충 먹었어요.”

안주로 적당히 배를 채우긴 했다.

“아, 그래요.”

단유는 에밀리아가 등 뒤로 숨긴 팔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더 먹어도 될 거 같아요.”

“아니에요, 억지로 그러지 않으셔도···.”

“아뇨, 주세요. 지금은 많이 먹고 체력을 보충할 때니까.”

“아.”

에밀리아는 주저하다가 등 뒤에 숨겼던 작은 바구니를 꺼내 내밀었다. 덮고 있던 하얀 천을 벗기니 식기는 했지만 먹음직해 보이는 통밀빵이 담겨있었다.

“잘 먹을게요.”

“루치드.”

“네.”

“너무···무리하지 말아요.”

“무리 안 해요.”

“루치드가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거 보기 좋아요. 하지만 그래도 전 루치드가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유는 에밀리아를 보다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에밀리아도 이만 들어가서 쉬어요.”

“···네.”

그리고 한참 뒤, 침대에 드러누운 단유는 길게 숨을 뽑아내며 하루를 정리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그랬는지 낮에는 그리 아픈 줄 몰랐는데, 밤이 되니 괜히 다친 상처 부위가 욱신거렸다. 생각해보니 이거 그냥 웃고 넘길 상처는 아니었다. 그들이 적을 위해서 평소 칼날 관리를 잘했을 턱도 없고, 위생 개념이 철저한 이들도 아닐 테니, 칼에 찔리고 베인 상처 부위가 곪는 것은 물론이고 파상풍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낮에 거리를 걷다 광발성 쇼크가 와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할까?

‘마을이 아니라, 내가 문제구나.’

씁쓸함을 입꼬리에 담은 단유는 하루를 꼬박 새었음에도 좀 더 긴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

“마을을 새로 짓는다고?”

“그게 가능해?”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그 마법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고. 솔직히 우리가 뭘 알겠나? 그런데 상대는 마법사잖아?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아, 하긴. 지난번에 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불을 만들어내더라?”

“그거 불 아니고 빛이란다.”

“그게 그거 아냐?”

“아니라고 하더라.”

“뭐가 다른데?”

“몰라. 아니라니까 아니구나 하는 거지.”

“근데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집을 하나 새로 짓는 것도 여러 사람이 여러 날에 걸쳐서 작업해야 하는데, 마을을 새로 짓는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상상이나 돼? 그 사이에 공국이나 교국의 군사들이 처들어오면 그땐 어쩌려고?”

“군사들이 문제야? 당장에 지난번 놈들이 갑자기 저 문을 열고 들이닥칠까 두려운 마당에?”

“그 놈들한테는 마법사가 지켜준대잖아?”

“이 사람아, 그 마법사가 지난 번에 그 놈들이랑 싸워서 초죽음이 됐었지 않은가? 만약에 지난 번보다 더 많은 놈들이 처들어오면 그땐 어쩌려고? 막말로 그 마법사도 죽긴 싫을 건데 혹시 도망이라도 가면? 그땐 우리가 그놈들 칼받이를 해줘야 하는 거야.”

“어쩔 도리 없어. 일단은 그냥 믿는 수밖에.”

“뭘 믿고?”

“이봐. 어차피 지금 여기 남은 사람들은 이 마을 떠날 기회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이야. 만약 떠날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라도 떠났어야지. 지금 당장 어디로 간단 말인가? 어차피 마을에 남아야 하고, 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 마법사의 말대로 따르는 게 좋지 않겠나?”

“······.”

“그런데 말이야, 그 마을이라는 거 정확히 어디에 짓는다는 거지?”

“들어놓고 왜 딴소리야?”

“솔직히 내 귀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여기에 짓는다는군.”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내린 사내가 입을 뻐끔거리다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지막 술을 목에 털어 넣은 바이언이 중얼거렸다.

“지하 마을이라.”

****

단유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사울른과 함께 마을 밖 언덕으로 향했다.

“여기서 시작할 겁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마을이 들어설 자리고, 혹시 모르니 좀 넉넉하게 짓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단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갔다.

“그리고 입구는 저기에.”

“왜 저길?”

“저기가 언덕과 언덕 사이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강과의 접근성도 나쁘지 않죠.”

“물을 저기서 길어야 하는 건가?”

“아뇨. 직접 봐야 확실하겠지만, 아마 지하수가 있을 거예요. 그 지하수를 끌어다 쓰면 굳이 물을 길러 가지 않아도 될 거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게 잘 적용된다면 아마 지금보다 편리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하라면 너무 어둡지 않을까? 계속 불을 때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큰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그 불을 끌 충분한 물이 될까?”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사실 그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있어요.”

당장 보여 줄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건 어렵지만, 단유는 나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마치 사업 설명회에 나선 건설 회사 대표가 된 기분이었다.

부디 이 사업 설명회(?)가 사기가 되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그의 요구에 부응하여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아 단유는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

대략의 계획을 짜고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설계도면을 그리는 데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설계도면을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 이를테면 손재주가 남다른 몇몇 기술자들과 집을 몇 채씩 지어봤다는 전문가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했다. 그들을 대표로 삼아 필요한 자재나 단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마을의 구조, 배치 등을 의논했다.

그런 작업이 대충 마무리 될 쯤, 단유는 사울른, 바이언과 함께 마을 바깥으로 나왔다.

“바이언, 그리고 사울른. 이제 귀를 막아요.”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솜뭉치를 귀에 틀어막고, 등을 돌렸다.

“시작할게요.”

그리고 단유는 스스로도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이윽고 미리 지정한 곳을 상대로 마법을 사용했다. 곧 폭음이 터지고 마법을 시전한 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온몸을 뒤흔들던 진동이 멈추고 바이언이 조심스럽게 돌아보더니, 조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동굴 같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이게 마법사!’

마법사의 힘을 제대로 느낀 순간, 지난번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던지, 그리고 하마터면 그날 생을 마감할뻔 했었음을 깨달았다. 등줄기로 흐르는 땀방울에 금방 셔츠가 젖을 것 같았다.

단유는 뚫린 구멍 안을 살피며 보다가 턱을 짚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이게 조절이 안 되다 보니,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는 않네요.”

“어렵습니까?”

사울른의 물음에 단유는 턱을 긁으며 말했다.

“어렵다기보단 귀찮은 일이죠. 대충 구멍을 낸 뒤에는 수작업으로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단유의 시선이 바이언에게 가자, 바이언이 이내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일단은 대충 다듬어 보고요.”

단유는 바람 마법으로 입구 주위의 분진을 날려버린 뒤,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굴삭기라도 된 것 마냥, 뚫고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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