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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676화 (676/956)

습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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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으로는 아쉽지 않을까, 같은 곳을 한번 더 강하게 쳤더니 상대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그의 멱살을 놓고 돌아보니 둘러싸고 있던 5명은 잠시 얼이 나간 사람마냥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고, 멀리서 지켜보던 울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이런 체술은 본 적이 없었다. 달아날 곳을 모두 막은 상황, 오직 칼에 꿰어 난자당한 고깃덩이가 될 뿐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의 마법사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모든 공격을 무위로 만들고 한 명을 때려 눕히기까지 했다.

그 상황도 상황이지만 단유의 몸놀림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수십 년을 연마한 사람처럼, 아니 방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미리 알고 수백, 수천 번 연습한 사람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움직임이었다. 뒤에서 어떤 공격이 올지도 미리 다 알고 있던 것처럼 칼을 내던져 막고, 양옆에서 이어지는 공격마저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칼을 휘둘러 막아내는 모습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단유가 움직인 뒤에야 동시에 이뤄진 공격임에도 약간의 시간차가 존재했었고, 그 틈이 구명의 기회가 되었음은 머리로 알 수 있었지만 과연 누가 저와 같은 상황에서 그 틈을 발견하고 저리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까?

“마법사···맞아?”

그런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단유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틈을 발견했다. 필살의 공격들을 모두 무위로 돌린 후, 아주 잠시지만 모두가 어떤 이유에선지 경직된 틈이 보였다. 곧 정신을 차리고 후속 공격을 이어나가기는 하겠지만, 그 전 잠시 단유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틈이 ‘보였’다.

그래서 단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내의 멱살을 놓자마자 몸을 아래로 숙이며 틀었고, 한 손이 땅을 훑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거머쥐고 달리고 있었다.

쓰러진 적의 너머로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바라보는 울펜에게로.

울펜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단유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때도 제 정신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잡으려 했던 상대가 사실 마법사가 아니라 차라리 수십 년간 체술에만 전념했던 무술가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걸 보면서도 당황과 혼란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그 빈틈이 단유에겐 기회였다.

순식간에 울펜 앞에 다다른 단유는 칼을 휘둘렀다. 울펜도 자기에게 향하는 칼을 무시할 정도로 정신이 빠져 있던 건 아니었기에, 간단한 스웨이 동작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오랜 훈련을 거친 만큼 동물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반사 동작이 이어졌다.

어느새 손에 들린 곡도로 정확히 단유의 가슴을 찔러들어갔는데, 마치 단유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칼을 휘둘러 그의 공격을 튕겨내고 뻗어오는 다리를 무릎으로 막아낸 뒤, 연이은 동작으로 자세가 잠시 무너진 울펜에게로 손을 뻗었다.

어, 하고 놀라기도 전에 마치 자신이 단유에게 건네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들고 있던 동판이 단유의 손에 넘어갔다.

깨닫는 동시에 튕겨졌던 칼을 마구 휘둘러 보았지만, 어느새 단유는 울펜의 공격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몸을 굴려 바닥을 두어 번 구른 뒤 벌떡 일어난 단유는 빼앗은 동판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알 수 없는 문자와 문양이 빽빽이 채워진 동판은 들고 있는 자체로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다.

단유는 달려오는 습격자들을 흘깃 쳐다본 후, 동판을 바닥에 묻혀있는 바위 위에 내리꽂았다.

“안 돼!”

울펜의 외침이 허망하게 쨍그랑, 마치 유리같이 여러 조각으로 깨지는 동판이었다.

그 틈에 한 습격자가 팔을 등 뒤까지 돌렸다가 힘차게 내돌리며 칼을 휘둘렀다. 단유는 바닥으로 푹 꺼지듯이 몸을 숙이고는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상대의 허벅지를 양팔로 감싼 뒤 밀어붙이자, 상대가 저항할 수 태클에 밀려 바닥에 엎어졌다.

등에 와닿는 강력한 충격에 쿨럭대는 습격자의 위로 단유가 자세를 잡고 주먹을 내리꽂았다. 턱을 부술 듯이 내리꽂은 파운딩에 상대의 눈이 반쯤 풀렸고, 거기서 단유는 다시 몸을 굴려 다른 이의 공격을 피해냈다. 옆으로 한 바퀴 구른 뒤, 두 번째 공격을 이으려 칼을 치켜드는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번쩍.

갑자기 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빛이 번쩍이고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여관 주변이 아니라 마을의 가장 끝에 잠든 이라도 깰 정도다.

폭음에 섞인 비명이 귀를 울렸지만, 적들은 갑작스럽게 터진 빛의 폭탄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또 한번 빛이 터졌지만, 이미 눈을 감은 상황이라 그것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또 다른 비명이 이어지는 것을 들으며 이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후퇴?’

눈을 억지로 떠봐도 보이는 건 하얗게 명멸된 시야가 전부라 도망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폭음과 비명이 이어졌다. 이번엔 멀리서 들리는 폭음이었다.

****

당하기만 하던 단유가 갑자기 분전하던 그때, 사울른과 맞붙던 두 복면인 중 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워낙 여유로운 싸움이라 한눈을 팔아도 될 정도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단유가 5명에게 둘러싸이고도 놀라운 체술로 공격을 피해내면서 자신들의 동료 한 명을 바닥에 눕히는 것을 본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료의 낌새에 다른 한 명도 잠시 눈을 팔았다. 하지만 사울른은 그들이 여유를 부릴 상대가 아니었다. 비록 온몸에 검흔이 잔뜩 남아 그가 선 자리에 피웅덩이라 부를 만큼 많은 피가 흐르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

가물거리는 눈이었지만 분명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챈 사울른은 몸을 사선으로 숙이며 마주하던 상대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이변을 느낀 상대가 시선을 옮겼을 때 사울른은 역수로 든 단검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찍은 뒤 그어올리고 있었다. 깊지 않았지만 통증은 확실하게 전달했다.

“으윽!”

갈비뼈에까지 상처를 낸 뒤 빼낸 단검은 다시 그의 겨드랑이 사이를 찔러 들었고, 그의 목 뒤를 찌른 뒤, 다시 앞의 심장 부근으로 찔러 들어갔다. 눈을 부릅뜬 상대가 사울른의 공격을 막으러 그의 손목을 붙들려 했으나 수차례 가슴을 찍어내리는 그의 단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동료가 그를 구하러 사울른에게 칼을 내지를 때 번쩍이는 빛과 폭음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울른이 눈을 감싸며 주춤거릴 때가 기회였지만, 상대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공격을 멈추었고, 그래서 사울른은 치명적일 수 있었던 상황을 피했다.

빛이 터질 때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눈이 멀지 않았던 복면인은 자신의 동료들을 돕기 위해 단유에게 달려가야 할지, 아니면 사울른을 마저 처리해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눈을 감싼 채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사울른을 보고 우선 그를 먼저 처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뒤에서 이어지는 폭음에도 칼을 내지르는 그의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칼을 기점으로 빛이 터졌고 동시에 폭음과 함께 열기가 솟구치며 그는 붙잡고 있던 칼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끄아악!”

전혀 대비가 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충격은 더 컸다. 손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지만, 그보다 눈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가해진 터라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폭음과 비명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

연이어 이어지던 폭발음이 멈추자 주변은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고,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를 단유가 느릿한 걸음으로 지나 여관으로 걸어갔다.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사울른 앞에 선 단유가 입을 열었다.

“사울른?”

“···루치드?”

“괜찮아요? 사울른?”

사울른은 저도 모르게 젖은 눈을 들어 단유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겁니까?”

단유는 뒤를 흘깃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요.”

“···다행이네요.”

단유는 어두운 여관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밀리아?”

단유의 부름에 사울른도 잊고 있었다는 듯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관 안에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단유가 다시 한번 불렀다.

“에밀리아?”

그러자 안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한참 후 에밀리아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퉁퉁 붓고 머리는 산발이 된 에밀리아가 단유를 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단유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에밀리아. 끝났어요.”

에밀리아는 통곡을 하듯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유의 옷깃을 부여잡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단유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그녀를 위로했다.

사울른은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쳐낸 뒤, 다시 맑아진 눈동자를 주위를 훑었다.

어느새 거리에는 작은 횃불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곳곳에서 비명과 함께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태 살아남은 이들이 참상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단유가 끝이 났다고 했지만, 사울른은 자기 손으로 뒤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을 일으키려 하니, 끔찍하다 싶을 정도의 통증이 온몸에 흘렀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꾹 참아내며 끝내 자리에 선 사울른은 주변을 훑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단검을 찾아 집었다.

자신이 죽인 복면인 옆에 손목이 완전히 날아간 복면인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다리를 끌며 그에게 다가간 사울른은 천천히 몸을 숙였다.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시 몸을 숙이는 자세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단검을 들어 그의 가슴에 겨눴다. 그리고 천천히 단검을 찍어눌렀다. 단검의 날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잡이를 비틀어 힘겹게 칼을 뽑아낸 뒤, 다시 바닥에 누워 뒹구는 다른 복면인들을 찾아가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단유는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울펜에게 향할 때는 말했다.

“그 사람한테는 물어볼 게 있어요.”

사울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복면인에게로 향했다.

한참동안 단유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던 에밀리아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지만, 단유는 걱정하지 않았다. 에밀리아가 단지 기력이 다해 잠이 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양팔에 들어 올리니 허벅지와 어깨, 팔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깐 정말 처절하게 싸웠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며 그녀를 여관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을린 현관을 지날 때, 검게 탄 입구가 부서져 내리긴 했지만 여관이 무너져 내릴 정도는 아니라는 게 ‘보였’다.

2층의 계단 옆 방에 그녀를 눕힌 후, 다시 다리를 끌며 내려오니 사울른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여관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정신을 잃은 울펜이 손발이 묶인 채로 엎드려 있었다.

단유는 빛의 구슬을 만들어 띄었다. 그러자 사울른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온몸이 피로 물든 것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에도 깊이 베인 상처가 보였다.

“괜찮아요?”

사울른이 고개를 들어 단유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신의 몰골도 그렇지만, 단유도 다르지 않았다. 피와 흙이 뒤범벅인 된 채로 엉망진창이 된 단유를 보니 딱히 자신에게 안부를 물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았으면 괜찮은 겁니다.”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횃불을 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질린 얼굴들 중에는 저녁 때 술집에서 언뜻 본 얼굴도 있었다. 어쩌면 술집에서 언뜻 본 이들 중에는 영원히 술집을 가지 못하게 된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참상이 비록 단유의 탓은 아니지만, 단유는 딱히 그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일단 쉬어야겠죠?”

“여기서요?”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사울른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미안한 얼굴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가 움직이죠? 솔직히 지금은 도저히 움직이기가 쉽지 않네요.”

단유는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빛의 구슬을 사라지게 하였다. 그런 기현상을 멀리서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은 어둠에 묻힌 그들에게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단유와 사울른은 조금 더 오래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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