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73화 (673/956)

습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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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복면인들의 말에 당황했던 단유는 자신의 마법이 구현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해체’ 마법이 무사히 구현되었고, 단유는 마법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 안심했다. 그러나 처음 바람의 칼날을 날렸을 때,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러나 그 생각을 길게 이어가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이 작은 방에서 농성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니, 우선은 일행들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생각해 볼 문제다.

그리고 그런 단유의 위기의식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줄 이들이 등장했다.

지붕 끝에서 몸을 던져 단유가 있던 방으로 뛰어들어온 복면인은 등장과 함께 손을 내저어 단검을 날렸다.

“헛!”

사울른은 급히 숨을 들이키며 몸을 던져 에밀리아의 앞을 막는 동시에 팔을 휘둘러 단검을 쳐냈다. 팔목에 차고 있던 가죽보호대가 제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단유에게도 다른 칼이 날아들었는데, 단유는 역시 이번에도 마법을 사용했다.

날아들던 칼은, 비록 고순도는 아니지만 나름 장인의 노력이 깃든 잘 제련된 강철 단검이었는데, 날카롭게 벼려져 칼날의 예리함이 무시무시했지만 단유에겐 그저 수많은 미립자들이 조합되어 형을 가진 물질이었고, 단유는 그 물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결합까지 해체시켰다. 분자 단위, 원자 단위로 쪼개지고, 페르미온, 쿼크와 같은 미립자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분해된 미립자들은 원래의 결합과 다른 방식으로 주변의 미립자들과 조합되기 시작했다. 일부는 결합력을 잃고 질량은 가지되 주변의 것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물질이 되어 흩어졌으며, 일부는 강력한 조합의 법칙에 따라 결합하며 주위의 것과 연쇄적인 상호작용으로 에너지를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은 인간이 인식하기 어려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칼을 날렸던 복면인은 단유의 미간에 꽂히며 절명케 하리라 믿었던 찰나의 순간, 눈앞에서 터진 폭발에 비명을 내질렀지만, 폭발의 과정에서 터져나온 폭음에 그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폭음과 동시에 주변으로 발산된 빛과 충격파가 좁은 방을 뒤흔들었고, 사울른은 순발력 있게 에밀리아를 품으로 감싸며 폭발에 견뎠다. 그리고 폭음이 가신 자리에 두 눈을 감싼 채로 신음을 흘리는 복면인과 예상 외로 컸던 폭발에 미간을 찌푸린 단유가 서 있었다. 사울른은 흔들림이 잦아지는 틈에 뒤를 돌아보고는 곧바로 뛰어가 복면인의 머리를 발로 차서 정신을 잃게 하였다. 그리고 단유를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단유는 고개를 돌려 사울른을 바라보았다.

“네.”

“더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에밀리아는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아마도 녹스 성의 북문을 터뜨렸을 때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유는 사울른에게 에밀리아를 부축해주길 부탁하며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단유의 방을 습격했던 침입자들과 새로 올라온 이들까지 해서 5명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

올펜은 조금 전의 폭발음이 마법인지 폭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가 살폈던 기록에는 폭탄을 재현한 마법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선량한 시민들을 학살했던 미친 마법사들도 고작(?)해야 불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 마법(Vfγsi)’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마법사인가?”

단유는 흉흉한 기세를 떨치는, 그러나 쉽게 손을 쓰지 않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비켜주세요. 더 이상 손을 쓰고 싶지 않아요.”

“방금, 그것도 마법인가?”

“대답해드리면 비켜주실 건가요?”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비록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조직의 일면을 엿본 그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는 일이다. 굳이 그런 사유가 아니더라도, 마법사는 살려 보낼 수 없었다.

올펜은 손을 등 뒤로 돌려 신호를 보냈다. 동료들이 주저하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더니 이내 1층으로 내려갔다.

“대답해주겠는가?”

“마법입니다.”

올펜의 눈에 살짝 당혹감이 서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표정을 고친 후, 뒤로 물러섰다.

“당신인가요?”

그때 단유가 올펜을 향해 물었고, 올펜은 걸음을 멈췄다.

“무슨 말이지?”

“당신이 게리에게 처음 제안했던 그 사람인가 하는 말입니다.”

“···게리가 거기까지 말을 했던가?”

“아니요. 그냥 당신 눈을 보니 게리가 이야기했던 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서요.”

“눈?”

“눈웃음을 잘 짓는 얼굴인데, 실제로 눈동자를 보면 섬뜩했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보니 당신의 눈에 살기가 잔뜩 서려 있거든요.”

올펜은 그저 눈만 드러나도록 되어 있는 복면이 제대로 씌워져 있는지 손으로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흠흠, 좋아요. 마법사님? 어디 한번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길을 말입니다.”

올펜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살짝 굽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단유를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진한 눈웃음을 지으며.

“루치드, 여기는 공간이 좁다 보니 루치드를 상대하기 여의치 않다고 생각해서 물러난 걸 거예요. 아마 여관 밖에서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도 알아요.”

그때 바깥에서 작은 소란스러움이 들렸다. 사울른은 얼른 열린 방으로 들어가 창으로 바깥을 확인했다.

“이런!”

****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 가운데 들린 폭음은 주변 사람들의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옷을 대충 걸치고 문을 연 이들은 여관 주위에 선 검은 암행복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 무슨 일입니까?”

복면인들은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오니 겁에 질린 사람이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앞에 선 복면인은 마치 인사를 건네듯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올리며 손에 들린 칼로 그의 목을 찔러넣었다. 아무런 반항도 못한 주민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며 목을 부여 잡고 쓰러지는 가운데, 곳곳에서 그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복면인들의 일부가 집행을 하는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여관을 둘러싼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곧 울펜이 내려와 상황을 확인하더니 가까이에 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불을 내서 벌레들이 알아서 기어 나오도록 하지.”

두 사람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흩어졌다. 불씨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마게이아(Mageia)를 가져오도록.”

다른 지시를 받은 이가 몸을 돌려 어둠 속을 내달렸다.

****

“루치드!”

단유도 사울른의 곁으로 가서 바깥을 확인했다. 저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악당들인 걸까? 도대체 저기서 쓰러지는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피를 흘리는 것인가. 그저 단유네가 이 마을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니다. 단유의 행보와 이 마을 주민들의 운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마치 가축들을 도살하는 것마냥 행동하는 저 복면인들의 잘못이다.

“제가 먼저 갈게요.”

“차라리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루치드는 에밀리아를 지켜야 하잖아요.”

“사울른에게 부탁할게요.”

단호한 단유의 음성에 사울른은 더 말을 잇지 못했고, 단유는 곧 돌아서서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에밀리아가 슬픈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에밀리아. 조심해요.”

“루치드.”

“그리고···미안해요.”

“루치드가 왜요?”

“저번에 했던 약속, 그런 끔찍한 모습들은 다시 안 보게 해주겠다는 약속, 못 지킬지도 모르겠어요.”

“루치드···.”

“사울른이 잘 지켜 주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요.”

그렇게 말한 뒤, 사울른에게 눈짓을 한 단유는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1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왔다.

“루치드! 불입니다!”

단유는 사울른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1층 현관 부근에 불을 지르고 있던 복면인들은 단유와 시선이 마주치며 흠칫거렸다. 단유는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고, 그들이 들고 있던 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의 옷이 날선 칼에 베인 것처럼 갈라져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안심하지 않고 얼른 뒤로 물러났다. 애초에 목적이 마법사를 나오게 하는 것이었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마법사와 대결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단유는 회오리를 만들어 불길을 거뒀다. 불을 감으며 휘도는 바람을 바깥으로 날려 보내니 부서진 나무판자들과 작은 돌멩이들이 함께 휘말려 바깥의 복면인들을 위협했다.

1층 카운터 부근에서 차갑게 식은 여관 주인을 일별한 단유는 더욱 얼굴을 굳히고 여관을 나섰다. 반원을 그리며 자신을 포위하는 복면인들을 둘러보는데, 가운데 섰던 남자가 복면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울펜은 예의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마법사님. 울펜 디테커라고 합니다.”

단유는 그를 노려보다가 그의 등 뒤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거죠?”

“그야 보면 안 되는 걸 보았으니까요.”

“그럴 거면 다들 복면을 벗던지요. 어차피 얼굴을 가렸으니 저들은 당신들을 알지 못하잖아요.”

울펜은 손에 든 복면을 흔들며 웃었다.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 저희의 행사를 봤다는 게 중요한 거죠.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실까?”

단유는 잠깐의 침묵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마법사를 많이 상대해 본 모양이네요.”

“음, 자랑은 아니지만 적잖게 만나봤죠.”

“당신들은 교국의 사람들인가요?”

“교국에 사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닙니다만 교국의 일을 돕긴 했었죠.”

“마법사들을 죽이는 일, 말인가요?”

“그렇죠.”

히죽 미소를 짓는 울펜의 뒤로 복면인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울펜에게 뭔갈 건넸고, 울펜은 들고 있던 복면을 품에 집어 넣고 그 물건을 받았다.

“이제 서로 할 일을 해 볼까요? 저희는 준비가 끝났거든요. 열심히 노력하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아냥거리듯 진한 미소를 짓던 울펜이 건네받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판이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시나요?”

단유는 굳은 얼굴로 그 동판을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동판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단유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 그건 단유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실 많은 마법사들이 마게이아(Mageia)를 본 적이 없다고 하죠. 그럴 수밖에요. 이걸 두 번 볼 일은 없었거든요. 이걸 본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명을 달리 했으니까.”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마친 울펜이 바닥에 마게이아를 내려놓았다. 단유는 그것이 저들이 마법사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무기임을 깨달았고, 그 역할도 짐작할 수 있었다.

“······.”

역시였다. 회오리를 만드는 마법을 사용했는데,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확인해보셨나요?”

울펜이 단유를 놀리듯 묻더니, 팔짱을 꼈다.

“그동안 마법사들이 사람들에게 저지른 수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몬스터 같은 존재였죠. 그래도 몬스터라면 군을 동원해서라도 잡을 수 있었지만, 마법사들이란 존재는 군대로도 어쩌지 못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사회의 질서를 유린하며, 신성한 자연의 법칙을 훼손하는 존재였습니다.”

팔짱을 풀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울펜을 단유는 묵묵히 지켜봤다.

“그러나 그냥 당하란 법은 없었던지 마침내 인간에게도 그 재앙을 물리칠 방법이 생겼습니다. 바로 ‘마게이아’죠. 법칙과 순리를 어기는, 바로 당신들 같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위대한 선물입니다.”

단유와 마주 선 울펜은 얇은 입술 꼬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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