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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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른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낸 복면인은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가 다리로 바닥을 쓸 듯 휘돌려 쳤다. 사울른은 반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공격을 피한 후, 들고 있던 단검을 직선으로 찔렀다. 다시 검끼리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고, 이번에는 체술이 동반된 공방이 이어졌다. 다리와 다리, 팔과 팔이 얽히며 서로의 빈틈을 노리는데, 누구도 쉽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사울른은 기습한 당사자의 무시무시한 무력에 놀라며 진땀을 흘렸고, 복면인은 의외의 기술로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사울른에게 놀라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듣기로는 그저 탈영병이라고만 했는데, 자신의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낼 줄은 몰랐다. 가볍게 제압하고 동료를 지원하러 갈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초조하기로는 사울른도 그 못지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용케도 방어를 해내고 있다지만, 이렇게 막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사울른은 이를 악물었다.
‘더 빨리!’
좀 더 빨리 몸을 놀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팔을 내지르고, 다리를 휘둘러야 한다. 상대의 공격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조금 더 빨리 읽어내고 선수를 잡아야 한다.
그런 발악이 통한 걸까? 점점 사울른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만큼 복면인의 가려진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비록 최고는 아니더라도 이런 일반인(?)을 상대로 이렇게 헤맨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복면인은 조금 욕심을 부렸다.
앞발로 사울른을 밀어낸 후, 밀려난 그를 향해 마치 쥐새끼를 낚아채기 위해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날아올랐다. 무릎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플라잉 니킥이 사울른에게 작렬하려는 순간, 사울른은 다급히 몸을 틀어 타격점을 피했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가슴이 밀쳐지며 벽에 강하게 틀어박힌 사울른을 향해 복면인이 들고 있던 칼을 내리찍었고, 사울른은 어깨에 틀어박히는 칼의 통증을 무시한 채 상대의 허리를 붙잡고 밀어붙였다.
“으아악!”
반대편 벽에 상대를 밀어붙인 사울른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역수로 쥐고는 상대의 허벅지, 옆구리, 겨드랑이를 빠르게 찍어 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숙여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어깨로 상대를 다시 한 번 밀친 다음, 반 바퀴 돌면서 상대의 옆을 잡고는 다시 칼을 그어 올렸다. 상대가 신음을 흘리며 물러나려는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 들러붙어 단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이렇게 공격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사울른은 숨도 쉬지 않고 칼을 휘둘러 상대의 몸에 도흔을 남겼다.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상대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느려졌을 때, 상대의 팔을 붙잡아 비틀어 아래로 끌어내리고 그의 목에 단검을 찔러넣고서야 사울른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유롭게 숨을 돌릴 틈은 없었다. 사울른은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밝은 빛이 복도를 채우는 바람에 사울른은 다음 행동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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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일행 때문에 조금 마음이 다급해졌을 때, 상대들도 섣불리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비록 마법사를 찾고는 있었지만, 막상 마법사를 상대하게 되니 쉽게 나서기가 어려웠다. 단유와 복면인 일행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자니 옆방에서 들리는 쿵쾅거리는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마당이니 옆 방에 지원하러 나가기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괜찮아. 마법은 통하지 않아.”
한 복면인이 일행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꺼낸 말에 단유는 내심 크게 놀랐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게 가능한가 묻기 전에 가장 오른쪽에 섰던 이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등 뒤에 가리고 있던 손을 빼드는 순간 그의 손에 들린 칼날이 번뜩였고, 단유는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했다.
“윽!”
상대는 신음을 흘리며 물러나긴 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그에게는 상처하나 보이지 않았다.
“겁먹지 마!”
뒤에서 한 사내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단유는 그에게도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날렸는데, 사내는 아예 막을 생각조차 없는지 그저 단유를 향해 달려들 뿐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사내의 가슴께를 가르는 칼날에 그의 검은 암행복이 갈라졌지만 그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단유를 그의 칼이 닿는 거리에 둘 수 있었다.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찌르기에 단유는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그의 왼팔에 붉은 혈선이 그어지고 말았다. 아찔할 만큼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단유는 도저히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 어떤 계산으로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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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명수와 상미가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같이 하자며 단유를 꾀기도 했었는데, 한 번은 어울려 주겠다는 생각으로 단유도 아이디를 만들고 게임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넌 직업 뭐로 할래?”
명수는 캐릭터의 직업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조언했다.
“사실 전사가 힘이 좋아서 키우기가 편한데, 원거리 공격이 없어서 나중에 원거리 공격몹을 만나면 조금 힘들 거야.”
이것저것 직업을 설명해주는 명수는 암살자를 선택하여 키우고 있었고, 상미는 소환술사를 선택했었다. 명수의 설명을 곁들이며 직업란을 천천히 읽어보던 단유는 ‘마법사’란 직업을 선택했다.
“마법사가 원딜(원거리 딜러)은 좋은데, 마나 관리하기가 조금 빡셀거야.”
“마나 물약 엄청 먹어야 한다던데.”
그래도 단유는 마법사를 선택했다.
게임 속 마법사는 꽤 재미있는 마법을 많이 사용했다. 스킬이란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수십 가지나 됐고, 그 힘도 상당해서 어떤 마법은 가시권에 보이는 모든 적을 감전시켜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레벨을 올리며 마법을 익히는 재미가 있다는데, 단유는 내심 실제로도 사용 가능할까를 고민했다. 소위 ‘번개 마법’, 혹은 ‘전기 마법’ 등으로 불리는 게임 속 능력은 실제로 구현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기, 즉 전자기력에 관한 물리학적 지식은 기회만 닿는다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으니 이를 조금 더 연구하면 게임 속 마법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아이디어를 떠나, 좀 더 단유를 흥미롭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게임 속 캐릭터에 걸려 있는 제한적인 조건들이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라는 게 필요하고, 그 마나가 다 떨어지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물약’이라는 형태로 마나를 보충할 수 있다.
이 게임을 만든 이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마법이란 뭔가 현란하긴 하나 권총과 같이 무기화된 기술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탄이 없으면 권총이 무력하듯, 마나가 없으면 마법을 쓸 수 없다.
그러나 단유가 사용하는 마법에는 제한이 없다. 굳이 있다면 마법을 사용하는 이의 정신력 정도지만, 그것은 게임에서처럼 측정되지 않는 것이며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정신력이 고갈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대상의 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려낼 줄만 알면 되니까, 어떤 면에서는 실제의 마법이 게임에서 쓰는 것보다 쉽다. 물론 그 마법을 익히기까지 배우고 연구해야 하는 것들이 일반적인 학문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면이 있고, 때로는 현대의 학문에서 아직 넘보지 못하는 수준의 ‘진실’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점이 있지만 말이다.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 굳이 제약이라고 한다면, 결국 마법사의 의지다. 만약 게임에서처럼 적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현실에서 그 마법을 맞은 사람들은 고어 무비가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죽을 것이다. 고압의 전기 마법에 당해 신체에 과대전류가 흘러 누린내를 뿌리며 검게 그을려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 지방이 녹아 흘러내리고 부풀어 오른 내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온정신을 지킬 수 있을까? 게임이니 망정이지, 현실에서 그런 마법을 난사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그는 분명 사이코패스거나 미친 사람일 게 분명하다.
그러나 위험이 목전에 닥친 상황에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게 또 사람이다. 단유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녹스에서 ‘대살육’이라 평해도 모자랄 일을 벌였다.
다시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단유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그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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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해체’ 마법은 사용하기가 꺼려졌다. 아직도 그 힘이 통제가 되질 않으니, 어느 정도의 파괴를 불러올지 가늠이 안 되는 실정이었다. 에밀리아와 사울른이 근처에 있고, 이 일과 무관한 이들도 근처에 있을 텐데 그들을 모두 휘말리게 만들지도 모를 마법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었다.
칼에 베인 팔뚝을 움켜잡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다시 무기를 휘두르려는 침입자의 손에 들린 칼을 향해 의지를 투사했다.
‘해체.’
곧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과 열기가 뿜어져 단유는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아악!”
처음으로 복면인의 입에서 경악과 아픔을 호소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뒤에 있던 이들도 갑자기 터진 빛에 눈을 가리며 경계 자세를 유지했지만, 갑작스러운 빛의 폭탄에 노출된 탓에 시력을 빨리 회복하기 어려웠다.
그 틈에 단유는 실눈을 뜨고 미식축구의 쿼터백처럼 적의 위치를 확인 후, 과감히 돌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몸을 웅크리고 숄더 차지를 하듯 밀고 나가자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 밀쳐지며 그 사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복도로 나서자마자 단유는 때맞춰 적을 해치우고 나온 사울른과 눈이 맞았고, 두 사람은 곧바로 에밀리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에밀리아!”
침대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에밀리아가 단유의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된 에밀리아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단유는 곧장 그녀에게 달려가 살폈다.
“괜찮아요?”
에밀리아는 입술을 깨문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심한 공포감과 불안감에 쉽게 말을 못하는 것이라 추측은 됐지만, 일단 보이는 외상은 보이지 않았고, 습격자들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루치드!”
뒤에서 사울른이 방문을 잠그며 물었다.
“다쳤어요?”
사울른의 말에 에밀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별거 아니에요. 사울른은요?”
“저도 별거 아닙니다.”
어깨가 피로 물들었지만, 어두웠던 터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사울른은 적들이 쉽게 달려들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며 말했다.
“루치드, ···어떡하죠?”
마법사라면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지만, 막상 다쳐서 피를 흘리는 단유를 보니 차라리 도망을 가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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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관에서 울려 퍼진 소음에 밖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폭탄인가?”
“······.”
폭탄치고는 그렇게 폭발력이 강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충분히 주변의 잠든 이들을 깨울 정도는 되었다.
“너, 그리고 너는 주변 감시하고 너랑 나는 진입한다.”
그리고 지붕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에게도 손짓으로 진입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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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가?”
단유의 방에서 밀쳐졌던 한 사람이 눈이 따가워 흘린 눈물을 엄지 손가락으로 훔쳐내며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던 동료를 챙겼다. 동료는 칼을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린 채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안 했던가?”
다른 동료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고, 처음의 사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이번에도 마법이었던 것은 확실한가?”
“모르겠다. 이런 마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젠장.”
사내는 입술을 짓이기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음을 흘리는 동료에게 다가가 상처를 확인했다. 오른손의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피를 흘리는 동료는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어 보였다. 그의 어깨를 잡고 옷을 찢어 내렸더니 어깨에 검은 문신이 드러났다.
“문장은 전혀 영향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마법이···.”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복도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나 싶더니 밖에서 대기 중이던 동료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마법이었습니다.”
흠칫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사내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문장이 훼손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오펜.”
“···어떤 마법이었는지는 확인했는가?”
“전혀 들은 바가 없던 마법이었습니다. 빛이 번쩍이긴 했는데, 빛으로 이런 파괴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정보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적은?”
사내는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은 폭음이 터지고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어떤 충격이었는지 집이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마법이라고?”
폭탄이 아니라는 동료의 말이 믿기 힘들었던 오펜이 자세를 낮춘 채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