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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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른은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난 후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단유는 잠도 오지 않고 생각도 정리할 겸, 여관 옆에 마련되어 있던 마굿간 앞에서 세워놓은 자전거 수레를 바라보고 있다가 비틀거리는 사울른을 보게 되었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느린 발걸음을 옮기던 중, 단유와 눈이 마주친 사울른은 반사적으로 몸을 곧게 세우려 애쓰며 말했다.
“왜 밖에 나와 계십니까?”
“그냥요. 생각도 할 겸. 사울른은 괜찮아요?”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말을 멈추는 중간에는 코에 증기기관이라도 달린 듯 하얀 콧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지만 사울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대화를 나누는 자세를 보면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은 불침번을 안 서도 될 테니 푹 쉬세요.”
“루치드도 들어가시죠?”
“전 좀 더 있다 갈게요.”
사울른은 주춤거리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관 문턱을 넘는 중에 살짝 중심을 잃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턱을 치켜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울른의 모습에 단유는 피식 웃음을 짓고 다시 자전거로 시선을 돌렸다.
자전거가 분명 걷는 것보단 효율적이겠지만, 아무래도 장시간 힘을 직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차가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야 말을 구하지 못했으니 자전거를 만들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말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정말 떠오른 아이디어를 토대로 자동차에 버금가는 탈 것을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현대 기술력을 투사하긴 어렵지만, 적당히 타협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주위가 굉장히 어두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아까도 봤었지만, 오늘은 하늘에 달도 구름에 가렸고 주변에 있던 주택들에서 은은히 비쳐오던 램프 불빛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단유는 내일 다시 고민을 해보기로 마음 먹으며 여관으로 들어갔다.
아까 사울른에게 편히 자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단유도 오늘은 모처럼 깊고 안락한 잠을 청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둠이 깃든 그 날, 단유의 소소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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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이 구릉을 넘어 정적 속에 잠긴 마을의 지붕 위를 내달릴 때, 바람과 함께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마치 바람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다니는 그들에게서는 일체의 소리도 나지 않아 주변의 시선을 끄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볼 사람도 없는 깊은 밤이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그들이 멈춰선 곳은 단유네가 머물던 여관 앞이었다. 일부는 지붕 위에서, 일부는 여관 앞에서 주위의 동태를 살피며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고, 곧 한 사람의 수신호와 함께 그들은 여관으로 침입을 시도했다.
늦은 밤까지도 잠이 들지 않았던 핑크색 단발의 여관 주인이 침입자를 맞이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누구···.”
그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뒤에서 달려든 복면인이 주인의 입을 막고 날카로운 흉기를 목에 가져다댔다.
“여행자들은?”
오직 주인에게만 들릴 정도의 낮은 속삭임에 여관 주인은 입을 열려 했으나, 복면인은 더 강하게 입을 막고 칼로 짓눌렀다. 어찌나 날카롭게 벼려졌던지 살짝 짓눌렀던 것 뿐인데도 목에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주인은 알 수 있었다.
“손으로.”
복면인의 지시에 따라 주인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도 있는가?”
여관 주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를 잡고 있던 복면인이 마주 선 다른 일행을 보며 눈짓으로 의사를 물었다.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내가 그 눈짓에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끄덕였고, 동시에 주인의 목으로 차가운 칼날이 파고들었다. 주인은 통증에 몸을 비틀려 했으나 이미 목을 관통한 칼날에 그의 의식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소리 나지 않게 바닥에 눕힌 사내는 일행과 함께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그중 어떤 방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계단 근처에 있던 방 두 개를 동시에 수색하기 위해 인원을 둘로 나누고, 한 사람이 품에서 병을 하나 꺼내 문에 바르는 시늉을 했다. 빠르게 작업을 마친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평소라면 시끄럽게 났을 잡음 하나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렸고, 그 틈으로 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가 살폈다.
“······.”
고개를 젓고 다시 다음 방으로 향하는 그들의 수색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복도 중간에 위치한 방문을 잡았을 때, 그들은 안에 누군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체의 대화 없이 눈빛만으로 소통을 이루어내던 그들은 각자 전투자세를 갖추었고, 문 앞에 선 이는 문고리를 잡고 열 준비를 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숨소리로 타이밍을 재던 그가 문을 열어젖혔다. 역시 이번에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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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단순히 노숙 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유는 이곳에 온 뒤로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인내심을 다하여 자신에게 닥쳐온 이 지랄맞은 상황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늘 이성적인 상태이고자 노력했기에 잠에서마저도 단유는 자신의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불안과 짜증, 분노로 자기 통제력을 잃는 것은 위험하다는 자기판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 때문에 조금 설레는 기분도 있었다. 뭔갈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잠이 들어야지 했다가도 눈앞에 불쑥 튀어나오는 설계도면이 단유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건 일종의 퍼즐과도 비슷했다. 100피스 짜리, 혹은 1000피스 짜리 퍼즐보다 더 복잡할 수 있지만 원리는 같았다. 서로 아귀에 맞게 끼워놓으면 되니까. 앞뒤로 바퀴를 만들고 그 바퀴를 잇는 축을 설정한 뒤, 드라이브 샤프트를 사이에 놓으면 완성이다. 간략하게 구성한 트랜스미션을 적당한 위치에 놓으면 대충 굴러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디퍼런셜 기어까지는 재현해야 하려나?’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그만해야지, 했다가도 계속 이어지는 퍼즐 맞추기는 분명 욕심이지만, 끊어내기 힘든 욕심이고 절제하기 힘든 재미였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머릿속을 비우려는 그때, 단유는 여관 내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그 미묘한 공기의 변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나는 분위기, 머릿속 깊이에서 울려오는 경보음에 단유는 정신을 차렸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후, 귀를 기울여 방문 밖의 변화를 감지하려 애썼다. 혹시 지난번처럼 과민반응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곤히 잠든 일행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에밀리아에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무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준비를 소홀히 해서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발을 조심스럽게 끌어 문으로 다가가던 단유는 조금 전과 달리 확연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느꼈다.
‘아.’
단유는 자신이 이제껏 무엇을 느꼈던 것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민감하게 반응하며 주의를 기울였던, 살기였다. 특히나 진하게 풍겨나는 악의 가득한 살기에 단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분노가 치밀어오르지 않게, 조금이라도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열렸고, 그 짧은 순간에 단유는
‘문이 열리는 데 소리가 나질 않네?’
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동시에 단유는 손을 뻗었다.
‘에밀리아의 방이 가장 안쪽이라서 다행이야.’
거기가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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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분명 방 안쪽에 서 있던 사내를 인지했고, 그 사내가 놀랄 만큼 빠르게 손을 내뻗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분명 둘 사이에 거리가 있어 그의 손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고, 상대에게는 분명 틈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 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이 필승이라 여기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을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뭔갈 할 틈도 없이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지면서 나가떨어진 사내가 정신을 차리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의 일행들이나 방 안에 있던 이는 그 시간 동안 가만히 기다릴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려던 동료가 무섭도록 빠르게 뒤로 나가떨어지는 순간, 복면인들은 기다린다는 선택지 대신 정신없이 몰아치는 방식을 선택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방으로 뛰어들었고, 방에서 기다리던 단유는 마법을 사용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칼을 피하기 위해 몸을 굴렸다. 작은 마을의 여관이라 1인실은 크지 않았고, 그래서 단유는 몸을 굴리자 마자 벽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낙법 같은 건 배우지 않았던지라 어깨에 강한 통증이 생겼지만, 그걸 챙길 정신은 없었다.
구르며 고개를 들자마자 날아오는 칼날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복면인이 든 벼린 칼날보다 더 날카로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사내를 덮쳤다.
‘어?’
피가 튀는 장면을 예상했던 단유의 그것과 다르게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달려들던 속도를 한 번에 잠재울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기에 그의 공격은 저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상체를 가르고 갔을 바람의 칼날은 그의 피부를 그어내지 못했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앞섶이 칼에 베인 것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사내도 자신에게 날아든 공격이 뭔지 확인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으나, 바로 옆에 서서 돕던 동료의 외침으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법사다!”
단유는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해냈음을 알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마법사를 앞에 두고 저리 침착하게 선 이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에밀리아는? 사울른은?’
자신의 방 밖에서 들리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옆 방에 있을 일행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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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들은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울른이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조금 과음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사울른은 단유 못지 않게 바깥의 동태를 눈치채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금 어질어질한 느낌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침대 아래에 둔 자신의 장비를 허리에 찼다. 장비라고 해봐야 밧줄과 주머니칼, 그리고 군대에서 내내 쓰던 팔뚝 길이의 단검이 전부였지만.
단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문을 향해 겨누던 그때, 옆방에서 소음이 들렸다.
‘루치드!’
처음 여관에 와서 방을 정할 때, 자신이 단유의 방을 쓰려 했다. 사실 불침번을 설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군에서 내내 배웠던 게 이런 거였다. 사소한 일에도 안전을 꾀하는 일. 이런 구조의 집에서 만약 습격을 받는다면 역시 계단 쪽에 가까운 방이 위험하다. 그래서 자신이 그쪽을 쓰겠다고 했지만, 사울른의 설명을 들은 단유가 방을 선점했다.
“제가 더 강하니까요.”
딱히 대꾸할 말이 없는 이유여서 사울른은 그 다음으로 위험한 방을 골랐다. 큰 거리의 반대편 쪽을 향한 방은 은밀한 암살자들이 조용히 찾아들기 쉽다. 게다가 창문 바깥에 있는 굵은 박달나무는 계단만큼이나 안전하고 빠르게 2층으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는 순간, 창문이 깨지며 검은 그림자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사울른은 판단하기 전에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자신을 향하는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비스듬한 방향으로 몸을 굴려 그림자의 배후를 잡으려 했다.
그림자는 만만하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이 빗나가는 것과 동시에 다른 손을 휘둘렀다. 곁눈질로 확인한 사울른이 이를 악물며 무릎에 힘을 주고 몸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팔이 뻗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협탁의 다리를 잡고 휘둘렀다. 나무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단검이 떨어지고 협탁도 벽에 부딪혀 부서졌다.
그걸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없었다. 눈은 그림자에게 향하지만, 귀는 단유의 방을 향하고 있던 사울른은 단유의 방에서, 그리고 그 앞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소음들을 통해 적어도 네 사람 이상이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의 머리는 아직까지 소식 없는 에밀리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정도 숫자가 들어왔다면 거의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란 것도 예상해야 했다. 어차피 실내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적이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도주로를 확보하고 목표물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시할 인원도 필요하니까.
사울른은 치밀하게 계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이 같은 사실을 직감했고, 그래서 자신이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단유가 얼마나 강하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데 역할을 미룰 수는 없다.
사울른의 손이 허리를 지나가고 동시에 그림자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림자는 사울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들고 있던 칼을 휘둘렀고, 사울른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단검을 휘둘렀다. 서로의 칼날이 맞닿으며 아찔한 소리와 불꽃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