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68화 (668/956)

미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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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는 딱딱하게 굳은 몸 때문에 인상을 썼다. 특히 허리 부근은 딱딱한 통나무를 끼워넣은 것 마냥 불편했다. 그러나 눈에 실핏줄이 서린 사울른이나 평소보다 더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단유를 보며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티가 났던 모양인지, 단유가 일어난 에밀리아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루치드는···잘 잤어요?”

미소 짓는 에밀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인 단유는 미리 준비한 수프를 한 접시 덜어 건넸다.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나는 수프를 받아드니 그 온기만으로도 에밀리아는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일찍 일어나서 도왔어야 하는데.”

“괜찮아요. 일찍 눈을 뜬 김에 준비한 건데요. 다음에는 에밀리아에게 부탁할게요.”

“네. 루치드. 사울른도 고마워요.”

사울른은 불그스름한 눈을 껌뻑거리다 에밀리아의 인사에 마주 인사를 하고는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후, 뒷정리를 하겠다며 그릇을 챙기는 에밀리아를 두고 단유와 사울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나눴다.

“별일 없었나요?”

“네. 그런데 이상하긴 합니다. 한 사람만 느낀 게 아니라 루치드랑 제가 같이 기척을 느낀 것이니 말입니다. 분명 뭔가 있었는데 말이죠.”

사울른은 밤새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 동살이 틀 무렵 단유가 훑었던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 살폈다. 아무래도 훈련을 받은 자신이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지만, 그 역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면 다행인 거죠. 만약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제대로 대응을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길을 떠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울른은 오늘 수레에 타도록 해요.”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아뇨, 지금 사울른은 너무 피곤해 보여요. 그리고 조금 전에 말했듯이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울른도 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눈 좀 붙이도록 해요.”

사울른은 단유의 배려에 감사하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어둠이 자리한 곳, 주변 사물이 제대로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에서 지독히 무거운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죄송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이유가 무엇인가?”

짧은 문장을 내뱉는 것도 힘겨워하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제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고 경계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자네가 실수를 했을 리는 없고···. 어떤 자인지는 알아본 건가?”

“한 명은 공국군 출신 탈영병인데, 후방 정찰대 소속으로 이름은 사울른이라고 하는 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있었던가?”

“게리가 보고한 사람이었는데 그도 저의 접근을 눈치챈 듯 했습니다.”

“마법사라고 했던가?”

“네.”

“여태 숨 쉬고 있던 이가 있었던가.”

“듣기론 게리보다 조금 어리다고 들었는데, 외모는 20대로 보였습니다.”

다시 정적이 흐르다가 잠시 후, 쿨럭거리는 기침과 함께 바닥을 발로 비비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을 채웠다. 자글자글한 모래가 짓밟히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움이 필요하겠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만만하게 봤던 모양입니다.”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도 혼자 보낸 내 잘못이다.”

“제가 고집을 부린 탓이니, 어르신께서는 스스로 책망하지 마십시오.”

“고맙구나, 제르.”

다시 잔기침이 이어지고 그 동안 제르는 침묵을 지켰다.

“열이면 충분하겠느냐?”

“가능합니다.”

“다녀 오거라.”

뚜벅거리는 걸음 소리가 멀어지나 싶더니 어둡던 공간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남겨졌다.

****

2, 3일 정도 단유와 사울른은 긴장을 하며 밤을 보냈다. 낮에는 그저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지치면 잠시 쉬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래서 한번은 에밀리아가 자기가 대신 해 보겠다고 나서는 해프닝도 있었다.

“조금 있다가 한 번 타 봐요.”

황야를 벗어나 작은 바위산 언덕을 지날 때, 바람을 막아줄 바위 벼랑 근처에 자전거를 세운 뒤, 에밀리아에게 자전거를 한 번 탈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구에서처럼 거리가 잘 포장된 것도 아니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도록 제작된 산악 자전거도 아니니 훈련이 되지 않은 에밀리아가 능숙하게 탈 리가 없다. 자전거에 익숙한 단유나 운동신경이 좋은 사울른이 쉽게 타니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로 원을 그리는 에밀리아를 보다 못해 사울른이 나서고, 단유는 그동안 밤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텐트를 치고 나니 에밀리아가 진땀을 흘리며 다가왔다.

“정말 많이 어려운 거네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연습하면 잘 탈 수 있어요? 저도요?”

“뒤에 수레 없이 타는 거라면 가능할 거예요.”

입술을 삐죽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헤헤 웃음을 짓는 에밀리아.

“그럼 계속 연습해야겠네요.”

“가끔 쉴 때마다 타 보세요.”

“사울른이 너무 고생해서 미안해요.”

뒤로 돌아보는 에밀리아의 눈에 자전거를 다시 수레에 매달고 있는 사울른이 보였다. 단유도 사울른이 내내 긴장하며 뒤를 잡아주던 모습을 보았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맛있는 저녁으로 보답해주면 되겠네요.”

“그럴게요.”

에밀리아는 주먹을 쥐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바로 옆에 시냇물이 있었어요.”

“그럼 물 떠 올 테니 불 피우고 계세요.”

에밀리아가 냄비를 가지고 떠난 사이, 에밀리아만큼이나 땀 흘리며 다가온 사울른에게 단유는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사울른은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나 싶더니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도 불침번을 서야 하겠죠?”

단유와 사울른이 매일 번갈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는데 낮에도 거의 노동에 가까운 체력을 낭비하다보니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혹시 루치드의···능력으로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오죽하면 그런 말이 나올까 싶었다. 단유의 마법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단유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오늘은 제가 불침번을 설 차례니까, 사울른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자도록 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한 느낌이네요.”

어쩌면 갑작스러운 자전거 교습에 진을 뺀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사울른의 등을 토닥이고, 단유는 에밀리아가 부탁했던 불을 피우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밤이 찾아오고, 마른 풀들이 바람에 스쳐 울 때, 에밀리아는 다른 두 사람이 누울 자리를 봐주고 단유와 사울른은 모닥불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반나절만 더 가면 되는 건가요?”

사울른은 모닥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 겁니다. 사실 이렇게 가본 적이 없어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내일 낮에는 마을에 도착할 겁니다.”

“큰 마을인가요?”

“지난번 마을보다는 크고 녹스보다는 작을 겁니다.”

그동안 단유와 틈틈이 이야기를 나눴던 사울른은 단유가 이곳 지리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아예 사회 경험이 없는, 마치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이야기할 때면 마치 동네 꼬마에게 대단한 전쟁 영웅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번 마을에 들리면 돈을 좀 벌어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예전 녹스에서 벌어놨던 돈은 아직 조금 남긴 했지만, 지난번 게리의 마을 잡화점에서도 지출을 했었고, 일행도 늘어난 참이니 앞으로를 위해서 주머니를 다시 채울 필요가 있다고 단유는 생각했다.

사울른은 머리를 긁적이며 단유를 힐끔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런 면을 보면 눈앞의 사내가 악당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요, 여기서 당장 뭔갈 구해서 팔 만한 게 있을까요? ···혹시 예전에는 어떻게 돈을 버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단유는 몬스터를 잡아서 그 노획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사울른은 역시 마법사다운 모습이라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부대 단위로 포위해도 잡을까 말까한 몬스터를 홀로 잡아서 팔아 먹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확실히 몬스터의 부산물이 돈은 될 겁니다만, 지금은 계절이 계절인지라 그런 몬스터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이 부근에서 몬스터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서.”

단유는 몬스터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몬스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인간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 피해를 주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몬스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잔인하고 흉폭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거의 그렇다고 사울른은 설명했다.

“군집 생활을 하는 몬스터와 홀로 사냥을 즐기는 몬스터로 크게 구분 지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무리를 짓는 녀석들 중 겨울로 넘어가기 전에 자신들이 살던 곳을 떠나 이동하는 습성을 가진 놈들이 있는데, 이놈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칩니다.”

단유 역시 그런 놈들과 마주쳤었다. 지금 다시 만난다면 그때의 복수를 해줄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만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 전에는 거의 자기들이 사냥터로 점찍은 지역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혼자 지내는 놈들은 다릅니다. 이 놈들은 일단 크기도 크고, 생활 패턴도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어 경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몬스터의 패턴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몇몇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그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고 사울른이 답했다. 그 사람들 덕에 몬스터를 방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건다며 혀를 차기도 한다는 대답을 곁들였다. 그리고 대형 몬스터에 의한 피해 사례를 언급했다.

“일례로 공국 남서부 쪽의 한 성 근처에 ‘아피비우스’라는 몬스터가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눈은 두꺼운 각질에 싸여 보일 듯 말 듯하고, 입은 성인 남성을 한입에 넣을 정도로 큽니다. 특히 이마에 붙은 뿔이 크고 강해서 한번 휘두르면 어지간한 성벽은 그냥 부서져 버릴 정도라고 합니다. 이 녀석이 그 성에 나타나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성의 북쪽 벽이 모두 허물어질 정도로 난리를 피웠고 이놈을 잡기 위해 주둔하던 병사들이 모두 나섰다고 합니다. 10명 정도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 녀석을 겨우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녀석에게 압도적인 무력을 투사한 게 아니라, 몇 사람이 희생을 감수하고 유인했던 작전이 성공해서 그런 것이죠. 병사들은 놈에게 이렇다 할만한 부상을 입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가장 최근까지 회자하는 이유는 많은 희생자를 낳은 탓도 있지만, 그놈 때문에 성주가 사재를 털어 성벽을 보강하고, 사람들을 강제로 부역을 나가게까지 했는데, 몬스터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성 내의 불안감만 커져 사람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경제가 나빠지는 바람에 공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까닭이었다.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밤이 꽤 깊어졌다. 곁에서 조용히 듣던 에밀리아가 먼저 잠을 못 이기고 자리에 누웠고, 단유는 사울른에게도 잠을 청하도록 했다.

“피곤할 텐데 이야기해줘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사울른마저 텐트에 들어간 후, 단유는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하늘에는 눈이 시리도록 많은 별들이 가득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이라면 저 별들을 보며 감상에 젖었으려나?’

이를테면 에밀리아같은? 그러나 단유는 그 별들이 대부분 ‘항성’이고 끊임없이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중임을 알고 있었다. 태양의 경우를 들면, 수소나 헬륨 같은 원소들의 핵융합 반응으로 빛 에너지를 내뿜고, 그 빛이 수만, 수억, 혹은 그 이상의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이동한 결과물임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이곳도 드넓은 우주의 어느 곳이리라 추측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어딜까, 여기는.’

만약 기회가 닿아서 사울른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 주게 된다면, 과연 사울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그런 호기심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벌써 낮은 코골이를 하며 잠이 든 사울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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