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67화 (667/956)

미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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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나와 북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니 주변이 휑해서 그런지차가운 바람이 저항 없이 들이닥쳤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던 사울른은 망토를 단단히 여몄지만 추위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고, 그의 손은 새빨갛게 변해버렸다.

마법을 사용하면서 사울른을 살피던 단유는 결국 그에게 잠시 멈출 것을 제안했다.

“어차피 곧 밤이니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네요.”

사울른은 단유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레이디는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코와 볼이 빨갛게 물들인 에밀리아가 단유의 손을 잡고 수레에서 내렸다. 단유는 멈추기 전 봐놓았던 곳에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쉬죠.”

“도와드리겠습니다.”

“불을 땔 장작만 좀 구해 주세요.”

사울른은 힘차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주위에 숲이 없어 장작을 구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 저기 둘러보면 마른 나뭇가지 정도는 구할 수 있으리라. 그 사이 단유는 수레에 실어놓은 둘둘 말린 천을 꺼내 펼쳤다. 간단한 텐트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지구에 있을 때, 텐트를 보긴 했지만 직접 설치해 본 경험이 없어 정확한 구조는 모르지만, 대략 어떤 모양인지는 아니까 거기에 기반해서 만들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천이 그렇게 넓지 못해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는 형식의 텐트는 만들기 어렵고, 그저 몇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천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이네.’

단유는 우선 기둥으로 쓸 막대를 이미지로 떠올렸다. 그리고 탄소의 복잡한 구조를 막대에 덧씌우고 이를 재현해냈다.

에밀리아는 단유의 손에서 길쭉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전에 잠시 머무르던 곳에서 간단한 집을 만든다 할 때도 잠깐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게 너무 신기했다.

‘마법사는 대단하구나.’

탄성이 느껴지는 막대를 바닥에 단단히 꽂아 뼈대를 세우고, 그 위를 천을 씌우니 금방 바람막이용 텐트가 완성되었다.

“여기 와서 앉아요.”

바람이 오는 방향만 막았기에 뻥 뚫린 형태지만 적어도 찬 바람을 직접 쐬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기다려요. 물 좀 떠올게요.”

“저도 도울게요.”

“그럼 사울른을 도와줄래요? 혼자 장작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시야에서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멀리까지 걸어간 사울른을 가리켜 말하니, 에밀리아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잠시 후, 텐트 앞에 장작을 깔아 불을 피우고 기다리는 두 사람 앞에 단유가 나타났다. 물만 떠온다던 단유의 어깨에는 가죽을 벗긴 고라니 한 마리가 얹혀 있었다.

“그새 사냥까지 하신 겁니까?”

“물을 구하러 가던 길에 보여서요. 이걸로 저녁을 먹으면 되겠네요. 사울른은 아까 끼니를 챙기지 못해서 많이 배고프죠?”

“괜찮습니다. 예전에 군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굶으면서 걸은 적도 있었는데요.”

사울른은 쾌활한 웃음을 터뜨리며 단유에게서 고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허리에서 주머니칼을 뽑아 능숙하게 고기를 다듬은 뒤, 아직 장작으로 쓰지 않은 나뭇가지 하나를 빼 들어 끼워 넣으려 했다.

“잠시만요.”

왜 그러냐는 사울른을 멈추게 한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까운 곳에 있는 바위로 향했다. 에밀리아가 몸을 쪼그리고 숨으면 가려질 정도로 큰 바위였는데, 단유는 그 앞에 서서 바람의 마법으로 그것의 윗부분을 슬라이스 햄 자르듯 잘랐다. 그러자 바닥에 까는 돌처럼 평평한 판석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들고 모닥불 위에 올리니 훌륭한 불판이 완성되었다.

사울른이 얇게 저민 고기를 달궈진 불판 위에 올리니 곧 노릇노릇 익어갔다.

“대단합니다!”

사울른은 먹기 좋게 익어간 고기를 먹으며 감탄했고, 에밀리아도 다르지 않았다.

“맛있어요!”

단유는 쌈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돌아간다면 반드시, 집에서 명수와 상미, 그리고 하은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겠노라 다짐하며.

식사를 마칠 즈음, 저물던 해는 완전히 평야 너머로 넘어가고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침낭 대용으로 쓸 담요를 둘둘 만 에밀리아가 먼저 잠이 들고, 단유는 잠시 모닥불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주변 정리를 마친 사울른이 단유 곁에 앉았다.

“저기, 루치드님.”

“그냥 루치드라고 불러요.”

“···루치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아까 마을에서 말입니다.”

사울른은 단유의 눈치를 한 번 살핀 후 말을 이었다.

“왜 그냥 물러나셨습니까?”

단유는 사울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닥불이 그의 얼굴 위에서 춤추는 것을 보니 그의 마음도 저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제가 그들을 어떻게라도 할 거처럼 보였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신반의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늙어서 징집도 되지 않은 이들이라 무섭지는 않았다. 물론 수가 많으니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흥분한 이들과 말을 섞는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고, 그래서 사울른은 달아났다. 늙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할 노인네들에 비해 자신은 행군에 단련된 수색대였고, 달아난다면 충분히 달아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이유도 있다. 물론 가는 길에 집집마다 튀어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멈춰서야 했고, 보류했던 선택지를 꺼내 대화를 시도해 볼 참에 단유가 나타났다.

사울른은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걱정이 됐다. 그를 향해 무기를 드는 행위 자체가 위협이고, 단유는 어떠한 위협에도 타협하지 않는 잔인한 마법사, 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 마을에서 만약 살인이 벌어지면, 일행의 여정에 불리해질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그를 말려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마법사가 두려운 사울른이었다.

한편으로는 단유가 쉽게 손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면도 있었다. 그간 지켜본 단유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으니까.

단유는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말했고, 그 말을 지켰다. 노인에 대한 존중일까? 게다가 충고 비슷한 말을 던지기까지 했다.

단유는 그가 여전히 자신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자신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적이라면 그 상태 그대로 두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움을 가진 채로, 자신을 어렵게 느낄수록 단유는 그를 통제하기 편하니까.

비록 그가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동안, 특별한 계기만 없다면 함께 오랜 여행을 함께 할 사이인데 그가 자신을 어렵게 여기는 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사울른이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르지 않다는 말씀은?”

“사울른도 그들과 이득 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닌가요?”

효율을 중시하는 면에서 사울른은 단유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사울른이 함께 다니기에 좋은 상대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사울른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단유가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단유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역시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는 힘을 투사하여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굳이 그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자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창을 날려버리거나 한두 사람을 향해 마법으로 능력을 과시한다면, 아예 말로 신경전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유는 다른 이유까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비밀에 관한 것이었고, 비밀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번 경우에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유 혼자 알고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울른과 친해지려 노력을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좀 더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단유가 만든 물건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니 그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단유는 조용한 어둠에 잠긴 사위를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

밤이 깊어가던 중, 단유가 눈을 떴다. 누운 채로 귀를 활짝 열고 주변의 소리를 세심하게 골라 들었다. 먼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마른 잡초들을 쓸며 지나가는 소리와 어미를 찾는 아기 새들이 우짖는 소리도 들리고, 먹이를 찾아 다니는 야행성 동물들의 기척도 먼 곳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결 중에 단유의 잠을 깨웠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는데, 옆에서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사울른이 단유처럼 몸을 일으켰다.

“깼어요?”

단유는 괜히 자기 때문에 깼나 싶어 물었는데, 사울른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밖에서 잘 때는 깊이 잠들지 못합니다.”

마치 전혀 잠이 들지 않았던 사람처럼 명료한 발음으로 대답한 사울른이 되물었다. 단유는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 깼노라고 대답했다.

“전 듣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뭔가가 있긴 있나 봅니다.”

“뭐가요?”

사울른은 곧바로 서지 않고, 무릎으로 기듯이 텐트를 빠져 나와 모닥불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장작 옆에 뒀던 불쏘시개용 막대로 모닥불을 몇 번 뒤적거리니 죽어갈 듯 하던 불이 금방 되살아났다. 들고 있던 가지를 불 속에 집어넣고, 더 큰 장작용 나무토막을 집어 끝을 불에 그슬렸다.

“저는 코가 좀 예민하거든요. 어디선가 희미하게 누린내가 나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누린내요?”

“가끔 눈먼 녀석들이 불 속에 뛰어들어 그런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보통은 무두질을 제대로 하지 않은 가죽이나 혹은 오래 쓴 가죽제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의 말이 외부인의 접근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단유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위가 너무 어두워 눈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다.

단유는 잠에서 깨지 않은 에밀리아를 확인 후, 사울른에게 물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까?”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시는군요?”

단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사울른은 더 묻지 않았다.

단유는 조금 고민이 됐다. 혹시나 하며 기다렸던 이들의 방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유네처럼 떠돌아 다니던 여행자일 수도 있다. 이 곳에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집시 같은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수 없으면 그냥 강도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찾아올 리가 있을까, 의심해보면 역시 다른 쪽이라고 여겨졌다.

단유는 사울른의 곁으로 가서 모닥불을 살리는 척하며 그 속에 광원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조도(照度)가 높아진 모닥불의 불빛에 사울른이 손을 들어 눈을 가렸고, 그 사이 단유는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그러나 빛에 노출된 이는 아무도 없어, 그저 낮에 봤던 황량했던 평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잠깐 둘러보고 올까요?”

사울른의 물음에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볼게요. 사울른은 에밀리아를 지켜줘요.”

본래 이런 상황에서 정찰을 많이 다녀봤던 사울른이었기에 자신이 가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앞에 선 이는 무려 마법사이니 자신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려 마법사’인 단유는 모닥불 곁에 둔 장작 하나를 집어 촛불처럼 불을 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은 캔버스에 붉은 점을 찍은 것 마냥 단유가 손에 든 장작에 붙은 불은 딱 그 정도의 밝기였다. 붉은 붓으로 선을 그려나가듯 횃불을 휘둘러 주위를 살폈다. 불티가 날아올라 발밑에 떨어졌지만, 그 불티만큼의 다른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단유와 사울른을 깨운 이가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있지만 모습을 잘 감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지 모르는데 괜히 마법을 써서 그를 경계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아 끝내 마법은 쓰지 않았다. 덕분에 꽤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서 방황하게 했고, 그 시간만큼 허탈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며 단유는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찾은 게 있습니까?”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신경 쓰지 말고 주무세요.”

“잠은 나중에 자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는 안전이 우선이죠. 루치드가 먼저 주무십시오. 그동안 제가 불침번을 서도록 하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 깨워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자전거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훈련을 받던 양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요.”

결국 단유는 아무 소득 없이 텐트로 돌아가야만 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뒤척이던 에밀리아의 어깨 위까지 담요를 끌어준 뒤, 단유도 바닥에 누웠다.

‘오늘은 아닌 걸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샌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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