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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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자신이 만든 움집이 꽤나 허술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내부의 보온성을 강화하기 위해 벽에 진흙도 바르는 수고를 했지만, 방한, 방풍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최신의 주택과 견주면 화덕에 겨우 의지하는 통나무집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그러나 에밀리아는 그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녹스 성에서 살 때의 집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불편한 점이 많지만, 적어도 이 집은 도움을 핑계로 자기 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이웃이 없지 않은가.
‘그냥 여기서 평생 살아도 행복할 거 같아요.’
그런 식으로 자신의 만족감을 단유에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에밀리아는 속으로만 삼킬 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유는 지금 만들고 있는, ‘탈 것’이라는 걸 만들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떠나겠다고 벼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나중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게요.”
에밀리아는 그럴 필요 없다고, 여기서 지내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마냥 편히 쉬고 있기가 미안해서, 비록 단유가 도울 일이 없을거라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밀리아는 단유가 작업하는 곳으로 따라와 단유의 일을 구경했다. 뭘 만드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단유가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에밀리아가 도울 일은 없어 보였다.
파리를 내쫓는 듯한 손짓으로 허공을 한 번 휘저으면 눈앞의 굵은 나무가 슝, 하고 잘리며 쓰러진다. 보이지 않는 도마 위를 보이지 않는 칼로 썰 듯이 손을 휙휙 내리치면, 그 큰 나무가 야채 썰어내듯 잘려나간다.
‘마법, 이라고 했지.’
정말 신기한 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난 번에 봤을 때는 그저 끔찍하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부러운 능력이다.
에밀리아는 적당히 떨어진 바위 위에 걸터 앉아 턱을 괴고, 마법이 종횡무진 구현되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춥지 않아요?”
단유가 작업을 멈추고 에밀리아를 향해 물었다. 에밀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루치드는 안 추워요?”
단유는 어깨를 으쓱댔다. 하긴 에밀리아도 단유가 별로 추워 보이진 않았다. 마법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몸을 쓰지 않는 건 아니어서 자른 나무들을 옮기거나 덩굴 같은 걸 엮어 뽑아낼 때는 힘을 써야만 했고, 그 때문에 얇은 셔츠만 걸친 단유의 몸에서는 김이 몽글몽글 솟고 있었다.
단유는 뒤편 바위 위에 던져 놓은 자신의 망토를 집어 에밀리아에게 다가가 건넸다.
“괜찮은데···.”
“그러다 아프면 에밀리아만 힘들어요. 그러니까 이거 걸쳐요. 그리고 추우면 집에 들어가도록 하고요. 알겠죠?”
“그럴게요.”
에밀리아의 미소를 받으며 단유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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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에밀리아는 단유가 만드는 탈 것의 정체 중 하나를 알아냈다.
“마차예요?”
“비슷한 거예요. 말이 없으니까 마차는 아니지만.”
“그럼 말 없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그게 기술이죠.”
단유는 기대하란 말만 남기고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움집을 만들 때야 대충 통나무를 잘라다 세우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 만드는 것은 세밀한 공정이 필요한 부품들이 다수 필요했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도의 집중력도 요했다. 그래서 에밀리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전에 만들 때는 그저 머릿속에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그것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었기에 별 기대감 없이 만들었었지만, 이번에는 완성품을 보았을 때 에밀리아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무척 기대되었다. 그리고 에밀리아가 충분히 만족스러워 할만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더욱 공을 들였다.
그 탓에 단유도, 그리고 그를 구경하느라 정신없던 에밀리아도 불청객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던 단유가 어깨가 굳는 느낌에 잠시 몸을 풀고자 작업물에서 시선을 떼던 그때,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밀리아는 그의 시야가 보이는 곳에 앉아 있으니 등 뒤에서 나타난 이는 분명 타인이다.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니, 덤불을 뚫고 경갑을 걸친 사람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단호한 명령과 함께 칼을 뽑아 든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이가 단유와 에밀리아를 경계하며 물었다.
“정체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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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 아직 해가 하늘의 가운데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근방을 정찰하러 나선 병사 두 사람은 숲 가장자리에서 모닥불의 흔적을 발견하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이게 뭐지?”
뭔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고, 차마 인정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에 꺼낸 선임병의 물음이었다.
“사울른, 혹시 침입자가···.”
“제기랄. 진짜 침입자라면 정말 큰일인데.”
본래 이 근방 정찰은 3일에 한 번씩 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전방은 아니지만, 대공이 머무르고 있는 녹스로 향하는 길목이기에 중요성은 전방의 다른 지역들 못지않았다.
그렇지만 이 지역으로 교국의 부대가 들어오려면 어떤 루트를 이용하더라도 자국의 부대가 지키는 길목을 지나야만 했고, 그렇기에 이 지역을 관리하는 정찰병들은 조금 느슨하게 행동했다. 그들이 이 곳을 마지막으로 지났던 것은 무려 일주일 전.
“이거 우리가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트란위츠가 어깨를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사울른은 모닥불이 피워졌던 자리 근처를 몸을 숙이고 면밀하게 관찰했다. 하얗게 타버린 장작 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사울른은 미간을 좁혔다.
“오래됐다.”
“얼마나요?”
“3일은 넘었음이 분명해.”
“아, 진짜···. 어떡하죠? 사울른?”
“···일단 넌 소대장을 불러와라.”
“어떡하시려고요?”
“네 말대로 우리끼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더 커지기 전에 이실직고하고 처리해야 한다. 어쩌면 공국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문제야.”
적인지 아닌지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최악의 가정을 하는 것이 옳다고 사울른은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적이 침입한 것이라면, 그것은 공국군이 알지 못하는 루트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그 빈틈이 공국을 무너지게 만들 수 있다. 일개 정찰대에 불과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소대장이 오기 전까지, 주변을 살피며 더 많은 정보를 캐내고자 사울른은 전에 없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덕에 매우 희미하게나마 새겨져 있던 흔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대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울른은 발견한 흔적에 대한 보고를 올리기도 전에 소대장의 주먹을 맞고 나뒹굴어야 했다.
“이 새끼야! 뭐? 일주일?”
“죄, 죄송합니다.”
사울른은 아픈 기색을 보일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소대장 앞에 섰다. 곁눈질로 살피니, 트란위츠의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전시의 임무 방기가 얼마나 큰 죄인지 몰라?”
“죄송합니다!”
“너희 둘 모두 즉결 처형감이야! 알아!”
사울른은 식은 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소대장의 말대로 당장 칼을 들어 목을 벤다 해도 사울른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된다 해도 최후의 임무는 해내고 죽어야 한다.
“소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소대장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사울른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이 번들거리는 흰자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뭐냐.”
“침입자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냈습니다.”
“뭐?”
사울른은 손가락을 들어 숲 속을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갔습니다.”
소대장의 시선이 검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숲속으로 향했다.
“야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저 곳에서 두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저 곳으로 들어갔고, 다시 나온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나뭇재를 무심코 밟은 작은 발자국이 숲길로 향하는 것을 찾아낸 사울른은 비록 칭찬은 받지 못했지만, 더 이상 소대장의 욕은 듣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소대장은 데리고 온 일단의 병력을 넓게 분포시켜 숲속을 훑으며 지나가도록 명령했다. 소대장은 사울른을 앞세워 흔적을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울른은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며 바닥에 남겨진, 개미 똥만큼이나 작은 흔적들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를 찾아내게 되었다.
소대장의 뒤에서 사울른이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유랑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그렇다쳐도 순진한 시골 처녀처럼 보이는 여자는 어떻게 봐도 첩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창고같은 건물은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듯이 보였고, 이를 종합하면 전화(戰火)를 피해 떠돌다 깊은 숲속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게 아닐까 추측되는 정황이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소대장은 한 마디를 내뱉고 다시 단유를 향해 칼을 겨눴다.
“어디서 온 누구냐? 썩 정체를 밝혀라!”
단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에밀리아를 살폈다. 좀 더 빨리 눈치를 챘더라면, 적어도 에밀리아를 보호하기 적당한 거리까지 사이를 좁혔다면 좋았을 것을. 단유가 철저히 통제는 하지만, 그래도 작업 중에 혹시라도 위험한 무언가가 튀어서 다치게 할까 봐 에밀리아를 멀찍이 떨어뜨려 둔 것이 후회가 되는 참이다.
단유가 여자를 신경 쓴다는 것을 눈치챈 소대장이 뒤에 선 사울른을 쳤다. 턱짓으로 여자를 가리키자 눈치 빠르게 알아챈 사울른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더니 빠르게 여자 쪽으로 달려갔다.
물론 그 모습을 그냥 두고 볼 단유가 아니었다. 단유는 빠르게 뒤돌아 에밀리아를 향해 달렸다.
“멈춰라!”
소대장은 칼끝을 앞세워 단유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단유가 갑자기 뒤돌아서면서 동시에 손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한 바퀴를 돌며 휘두른 그의 손짓을 따라 바람의 칼날이 소대장에게 향했고, 눈앞에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소대장이 겨눈 칼이 갈라지고 뒤이어 그의 가슴도 쩍 벌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와 소름 돋을 정도로 처절한 비명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착지하는 묘기를 부린 단유는 살짝 중심을 잃을 뻔도 했지만 왼발에 힘을 주고 버틴 뒤, 다시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그러나 직선으로 내달린 사울른이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사울른은 여자에게 더 다가가지 않았다. 소대장이 비명횡사하는 것을 본 직후였다. 달리는 걸 멈추고 칼끝이 바닥으로 향하게끔 돌려 잡은 뒤, 바닥에 칼을 내려두고 빈손을 가슴께까지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자, 잠시만!”
결국 단유가 먼저 에밀리아에게 도착했고, 에밀리아를 등 뒤에 세우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와 동시에 사울른은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간 칼날같은 바람은 사울른의 뒤에서 쫓아오던 동료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처절한 비명과 함께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바닥에 엎드린 사울른이 외쳤다.
“모두 멈춰! 멈추라고!”
사울른의 외침에 달려들던 나머지 두 사람이 다급히 뜀박질을 멈추었고, 단유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은 채 주위를 경계했다. 두 사람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달려들던 병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소대장, 동료가 싸늘한 시체가 되었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울른은 그들이 멈춘 것과 동시에 단유의 공격도 멈췄음을 확인 후에 엎드린 채로 단유에게 말을 걸었다.
“다, 당신 마인이요?”
“마법사입니다.”
“아? 아, 그래. 마법사로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비굴하리만큼 자신을 낮추고―실제로도 바닥에 엎드렸다―단유에게 조심스러운 사과를 전했다.
“저, 저흰 이 근처를 순찰 중이던 공국군입니다. 혹시 교국에서 침입한 게 아닐까 살피던 중에 오해가 생긴 것이니 부디 화를 푸시고···.”
엎드린 채로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던지 사울른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크흠, 부디 저희 동료들을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절대 마법사님께 해를 끼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단유는 그가 지금껏 만난 이들 중에 가장 임기응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눈치 빠르게 에밀리아에게 먼저 달려든 것이나, 단유의 손짓만 보고 금방 정체를 파악하여 저자세를 취한 것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그는 대화로서 협상을 시도할 줄 아는 지성이 있었다.
“당신의 동료를 해친 것은 죄송하지만, 정당방위였으니 이해해 주세요.”
“정당방위요?”
그 단어가 지시하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사울른은 대충 의미를 헤아려 대꾸했다.
“아, 네. 그렇죠. 이해합니다. 그···방어를 한 거죠. 네. 아무튼 저희도 더 이상 마법사님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니까···, 야, 무토! 칼 내려, 칼! 예, 저희도 그러니까요. 저희, 이대로 물러가도 될까요? 저, 절대 마법사님을 귀찮게 하는 일 없도록 할 겁니다. 정말입니다.”
슬며시 바닥을 팔로 밀며 천천히 일어서는 사울른을 바라보며 단유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