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54화 (654/956)

소실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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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에밀리아를 안아 보호하며 주먹을 내뻗었다. 곧 광풍이 일며 단유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들은 거기에 휘말려 힘을 잃고 밀려났다. 바람에 휘말리지 않은 몇몇 화살들이 단유와 에밀리아의 곁으로 떨어졌으나 피해는 없었다.

“계속 쏴라!”

뿌연 안개 너머로 들리는 외침은 단유의 경계심을 더욱 높였다. 정확한 대상을 지정하여야 ‘해체’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조금 전의 폭발로 인해 생긴 분진과 열기로 피어오른 수증기 때문에 사용이 어려웠다. 등 뒤에서는 불꽃이 넘실거리며 다리를 태우고 있었지만, 앞에서 연거푸 날아드는 화살 때문에 신경을 쏟을 수 없었다.

평소 이렇게 급박한 상황을 자주 접하지 못한 데다, 마법을 거듭 사용하는 일이 드물었던 탓에 대처가 부드럽지 못했다. 해체 마법을 사용한 이후, 계속 바람 마법을 이용해 방어를 하고 있으려니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탈력감에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현상태를 유지하며 저들의 화살이 모두 비워지길 기다렸다간 등 뒤의 화재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유는 다시 한번 날아드는 화살을 향해 바람을 쏘아낸 뒤, 뒤로 시선을 던지며 정신을 집중했다.

‘어차피 다리는 무너졌어.’

다리를 불태우려는 적들의 계획은, 분하게도 성공한 셈이다. 이제는 그 불꽃이 단유와 에밀리아에게 접근하려드니 피해를 감수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단유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서 거대한 바람이 일더니 곧 맹렬한 회전과 함께 불꽃을 집어삼켰다. 먹성 좋은 괴물처럼 난간, 발판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던 불길은 바람에 휘말려 거대한 불꽃 기둥을 만들었다. 덕분에 불길의 접근은 막았고, 그 사이 단유는 다시 쏘아지는 화살을 향해 주먹을 뻗고 바람을 일으켜 막아냈다. 한 번의 공격을 막자마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공간, 속도, 범위, 형태, 밀도···.’

눈 한 번 깜빡거릴 시간도 되기 전에 복잡한 수식과 연동된 이미지를 그리고 이를 ‘재현’했다. 그나마 반복된 바람 마법으로 인한 숙달 때문인지 계산이 빠르게 끝났고, 곧 전방을 향해 거대한 바람이 회전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이전의 것이 땅에서 수직축을 중심으로 일어난 회오리였다면, 이번에 단유가 재현한 것은 수평축을 따라 회전하며 나가는 바람이었다. 앞으로 뻗어나가는 바람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원뿔 형태가 되었고, 주변의 것들을 모조리 튕겨내며 진격했다. 시야를 가로막던 분진과 수증기, 열기까지도 모조리 가르며 나가 멀리 활을 들고 있던 병사들에게까지 이르렀다.

한참 활을 매기던 병사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공격에 놀라 피하려 했지만, 이것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단유가 적당히 화살이 쏘아지는 방향을 예측해서 쏘아낸 탓에 정확히 그들을 조준하지 못했다는 것이 다수의 목숨을 보존케 하였다. 운이 없게도 바람의 진로방향에 있던 몇몇 이들만 급급히 피하려 몸을 숙였지만 바람에 튕겨 난간 너머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다.

“살려줘!”

처절한 외침에 살아남은 병사들이 달려가 구하려 했지만, 거기서도 운 좋게 다리 근처에 떨어진 몇몇은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했지만, 늪지 한가운데에 빠진 이들은 무거운 점토 속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대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번 공격으로 적들은 단유를 공격하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단유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긴장을 늦추기엔 일렀다. 단유는 품에 안겨 있는 에밀리아가 무사한지 살핀 뒤, 뒤에서 열심히 방어 중인 회오리를 바라보았다. 먹성 좋던 불길보다 더 게걸스럽게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는 통에 회오리가 있던 자리에 더는 다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참히 부서진 나무들과 불꽃들이 바람에 휘말려 무섭게 휘돌고 있었고, 원심력 때문에 조그만 불꽃과 목재 다리의 파편들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회오리는 처음에 설정한 대로 다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늪지 한가운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불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는 부서진 다리 너머로 건너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속에서 뭔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우욱!”

단유는 입을 틀어막고 난간으로 달려갔다. 별로 먹은 것도 없었는데 신물 가득한 토사물을 쏟아내는 단유였다. 이를 본 에밀리아가 얼른 쫓아와 등을 두드려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단유는 몇 번 기침을 하며 입안에 남은 잔여물을 뱉어낸 후,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그 후, 걱정스레 쳐다보는 에밀리아를 뒤로하고 적들의 동태를 살폈다.

단유의 마법 때문에 시야를 가리던 것들이 사라져 적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는데, 기사가 동료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병사들을 채근하여 단유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마도 빨리 공격을 재개하라는 말이겠지만, 병사들은 감당키 어려운 마법을 구사하는 단유가 두려워 활을 들지 못했다. 만약 조금 전과 같은 마법이 자신에게 향한다면 늪에서 허우적대는 동료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안심할 순 없었다. 그들을 모두 죽일 생각도 없거니와, 당장은 조금 전과 같은 마법을 쓰기가 곤란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마냥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심했다.

‘후유증일까?’

다급하고 여유 없는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복잡한 계산과 명확한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닌데, 그것을 쉴 틈 없이 반복한 탓에 뇌에 과부하라도 생긴 것 같다고 추리했다.

그 점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고, 우선은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무너진 다리를 뛰어서 건널 순 없었다. 그 사이가 너무 넓기도 하고, 늪지라 헤엄쳐 건너는 것도 불가능했다.

단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마법을 쓰지 않고는 건널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에밀리아, 나 꼭 잡아요.”

“루치드, 얼굴이 창백해요.”

“괜찮아요. 한 번은, 한 번은 참을 수 있어요.”

단유는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은 더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다.

잠시 후, 에밀리아를 앞으로 품어 안은 단유의 등 뒤를 누군가 떠받치는 것처럼, 바람이 밀려와 단유를 들어 공중을 날게 했다.

“대, 대장님! 저기!”

한 병사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손가락질했다. 한참 악을 쓰며 병사들을 채근하던 기사가 고개를 비틀어 단유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가, 사람이 공중을 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세상에.’

설마설마하니 사람이 하늘을 나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사람’이 아니라 ‘마인’이지만, 그래도 새도 아닌 것이 하늘을 나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단유는, 실상 그리 편하지 못했다. 단유의 바람 마법은 재현 후에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적당히, 다치지 않을 정도로 등 뒤를 밀어 공중으로 몸을 띄우게끔만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엔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공중으로 집어 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것과 던져진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착지에 있을 것이다. 꽤 넓은 거리를 건너야 했기에 조금 높이 몸을 띄우도록 유도했던 단유는, 이제 착지를 위해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일종의 에어쿠션처럼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일으키면 낙하 시의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단유를 보며 창백하다고 걱정하던 에밀리아는 단유보다 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으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눈을 질끈 감고 단유의 목을 억세게 둘러 감고 있었다. 그녀가 덩치에 맞지 않게 꽤 가볍다고 단유는 느꼈다. 그리고 바닥을 바라보며 이미지를 떠올렸다.

****

“마인이란, 정말 무시무시한 자들이군요.”

“바람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고, 보이지 않는 칼을 던지기도 하더니, 심지어는 하늘을 날기까지 하는군.”

“저런 자를···우리가 잡을 수 있습니까?”

“교국은 해내지 않았더냐.”

“교국, 이니까 해낸 게 아닐까요?”

병사의 발언은 충분히 충성심을 의심할만한 것이었지만, 병사의 질문을 받은 부대장도 딱히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웠기에 그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 기사들이야 일반 병사들을 그저 도구로만 취급하니 죽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세울 뿐이겠지만, 만약 자신이 그런 명령을 내리는 위치였다면 결코 자신의 부하들을 마인과 맞서도록 지시 내리지 않았을 것, 이라고 부대장은 생각했다.

“어이, 거기. 누가 잡담이나 하랬나?”

“죄송합니다!”

“빨리 정리 마치고 복귀할 생각은 안 하고, 부대장이란 놈이 나서서 딴짓거리야!”

“죄송합니다!”

기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본 후, 몸을 돌렸다. 부대장은 얼굴을 붉히며 주위의 병사들에게 외쳤다.

“여기서 밤 샐거야? 빨리 빨리 움직여!”

****

“이런.”

단유는 구멍난 자루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언제 이런 구멍이 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늪지대 위 다리에서 적들을 상대할 때 생긴 모양이었다. 옷이나 담요처럼 부피가 큰 것들은 고스란히 있는 반면, 조리도구나 식량 같은 것들을 모두 흘려 버렸고, 그래서 당장 끼니를 때울 식량이 없었다. 겨우 구멍에 걸렸던지 빠지지 않고 남아 있던 바게트 형태의 빵이 전부였다.

“이거라도 좀 먹어요.”

단유가 에밀리아에게 건네자 에밀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루치드는 아프니까, 더 잘 먹어야 돼요.”

아마 단유가 구토하던 장면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다 나았어요. 그러니까 에밀리아가 먹어요.”

“그럼 나눠 먹어요.”

나눠 먹기엔 빵이 크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아요?”

“참을 수 있어요.”

고프지 않다는 건 아닌 모양이라, 단유는 슬쩍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리를 건넌 직후, 두 사람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서 마침내 새벽달이 기울 때쯤 늪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리가 무너져 더는 적들이 쫓아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중간에 쉴 수가 없었다. 에밀리아도 그 점을 이해했기에 딱히 불평하지 않고 단유를 따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늪을 빠져나왔을 때는 두 사람 모두 긴장이 풀려 더 이상을 발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체력이 약했던 에밀리아야 그렇다쳐도, 어지럼증과 두통 증상에 괴로워하던 단유도 증상이 쉬이 가시지 않아 휴식이 간절히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휴식을 결정했고 가까운 숲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에 가볍게 식사를 한 것을 빼면 지금까지 제대로 먹은 게 없으니 에밀리아는 꽤 배가 고플 게 뻔했다. 그래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루를 뒤졌다가 구멍이 뚫린 것을 알게 된 상황이었다.

단유는 일단 모닥불을 피웠다. 에밀리아는 모닥불의 온기를 좀 더 느끼고 싶은지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단유는 자루에서 담요를 꺼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루치드는요?”

“전 괜찮아요. 자, 여기 빵. 냄비라도 있었으면 수프를 부탁했을 텐데 아쉽네요.”

“죄송해요. 못 해드려서.”

“죄송하긴요. 제가 간수를 잘못한 건데요.”

단유는 빵을 에밀리아에게 건넸다.

“나눠 먹어요.”

“괜찮아요. 먼저 먹고 있어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단유를 보며 에밀리아가 물었다.

“어디 가요?”

“잠깐 주위 좀 둘러보고 올게요.”

“멀리 가는 거 아니죠?”

불안하게 떨리는 에밀리아의 목소리에 단유는 싱긋 웃으며 몸 좀 녹이며 쉬고 있으라, 말을 건네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깃든 숲속에서 단유는 먼저 작은 광원(光源)을 만들어 머리 위에 띄었다. 적들을 상대할 때 만들었던 것 같이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숲속을 밝히기엔 충분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찾던 단유는 운 좋게도 밤마실을 나선 고라니와 마주쳤다. 정확히 고라니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김이 비슷해서 대충 비슷한 동물이겠거니 생각하는데, 고라니가 단유의 기척을 눈치채고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낮과는 달리, 여유로웠던 단유였기에 어렵지 않게 마법을 이용하여 고라니의 심장을 관통하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지니고 있던 주머니칼로 가죽을 벗기고 가까운 냇가에서 씻어낸 뒤, 에밀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모닥불로 돌아왔다.

그런데 에밀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아?”

단유는 고라니를 내려놓고 두리번거리며 큰 소리로 에밀리아를 불렀다.

“에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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