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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640화 (640/956)

너의 곁에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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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도끼눈을 뜨고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니, 그 기세만으로도 박사는 어쩔 줄 몰랐다. 게다가 땅주인이라지 않는가?

그러나 지금 박사가 접한 이 현상이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던가? 박사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그래서 용기 내어 부탁했다.

“아주머니,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벌어진 일은 반드시 연구가 필요한 일입니다. 이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물론 경숙에게 통하지 않았다.

“다 필요 없고, 다들 나가요. 얼른!”

그때,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공인중개사가 나서서 경숙을 말렸다.

“사모님, 진정 좀 하시고요. 저기요, 얼른 챙겨서 내려가세요.”

“아니, 제 말 좀···.”

“뭐해요! 빨리 안 내려가고! 경찰 불러요?”

경숙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집 근처에서 장비를 조작하고 있던 보조도 뛰어와 박사를 붙잡았다.

“일단 내려가시죠.”

지금 이대로 내려가면 언제 다시 올지, 다시 올라오는 게 가능할 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발걸음을 뗄 수 없는 박사는 마지막으로 경숙을 설득해볼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 했다.

“뭐? 귀신? 나 참 기가 막혀서. 당신들, 지금 일부러 여기 땅값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당신들 때문에 여기 땅값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박사도 살 만큼 살았고 이런 야산에 그런 소문 하나쯤 있다고 땅값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평당 십만 원이라도 할까 싶은 그런 땅인데, 저렇게 나오는 건 억지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여기 사람 사는 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저기도 아무도 살지 않는, 그냥 버려진 집이었잖아요?”

너무한단 생각에 말을 꺼냈는데, 꺼내고 나서 아차 싶었다. 이렇게 말해서야 설득이 될 리가 없으니까.

“버리긴 누가 버렸다고 그래요? 촬영 뭐시긴가 하기 전부터 그 집 허물고 새로 건물 올릴 작정이었는데, PD라는 양반이 하도 부탁해서 허락했더니만, 뭐? 귀신? 아주 나 망하라고 작정하고 이러는 거지? 실장님, 경찰에 전화해요. 이 사람들 그냥 안 되겠어. 사유지 무단 침입도 모자라서 헛소문을 퍼뜨리려고 작정을 한 사람들이네. 실장님, 전화해요.”

박사는 억울한 마음 반, 화난 마음 반의 심정으로 대꾸했다.

“누가 망하게 했다고 그래요? 처음부터 촬영팀을 따라 들어왔고, 촬영 중에 이상 현상을 발견해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촬영은 아주머니가 허락하신 거라면서요? 그게 왜 아주머니를 망하게 하는 건데요?”

“아, 몰라요, 몰라. 다 필요 없고, 그냥 지금 당장, 내려가요. 어서!”

“진짜 말 안 통하네.”

“그쪽이랑 말할 것도 없으니까, 꺼져요. 얼른.”

“뭐, 꺼져? 이 아줌마가 말이라고 너무 막하시는 거 아닙니까?”

“할 말 없다니까 왜 계속 시비야? 응?”

“시비? 당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왜 반말인데?”

박사의 보조가 박사의 한쪽 팔을 붙잡으며 말렸다.

“박사님, 참으세요.”

“놔 봐! 이거.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물로 보는 거야, 뭐야?”

“허, 나 참. 이러다 아주 사람 패겠어? 응?”

공인중개사도 어쩔 줄 몰라하며 경숙과 박사의 가운데에 끼어들어 두 사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사장님, 진정하세요.”

단유는 왜 갑자기 이렇게 감정싸움으로 몰아가게 됐는지, 보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끼어들기도 애매한 상황. 딱히 박사를 비호할 마음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도끼눈을 하고 막말을 하는 아주머니를 이해하는 척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던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말을 붙인다고 한들 상대가 그에 맞게 받아주지 않는다면 대화가 되지 않고, 지금 눈앞의 아주머니는 그런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그때 아주머니가 옆 사람을 ‘실장’이라고 부른 것을 떠올렸다. ‘실장’이라고 불린 사람은 아주머니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상하관계를 구분케 하는 호칭에서 기업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두 사람의 복장이나 태도가 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좀 더 관찰하다 단유가 물었다.

“저기요?”

그러자 성난 아주머니가 눈을 홱 돌리며 바라보는데, 보통 성격이 아니란 것은 이미 확인한 바였지만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같은 기운이 꽤나 따갑게 느껴졌다. 마주 보고 선 박사가 저 눈빛을 용케 감내했구나, 라고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단유였다.

“그쪽은 또 뭐예요?”

박사와 같이 있으니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라, 말투가 꽤 거칠었다.

‘한통속이 아니더라도 무단침입자인건 같으니까.’

단유는 속으로 생각하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 그 아주머니를 상대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아주머니 말고 옆에 분이요.”

“저요?”

성난 ‘사모님’을 말리느라 정신없던 공인중개사, 양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혹시 옆에 아주머니랑 같이 일하시는 분이신가요?”

양 실장이 어리둥절해 하며 경숙을 힐긋 쳐다보았다가 다시 단유를 쳐다보았다.

“저 아세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음, 그럼 혹시 중개업 하시는 분이신가요?”

“네? 그걸 어떻게?”

“핸드폰이요.”

양 실장은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계속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신발.”

나름 깨끗하게 신는다고 하지만,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업종이다 보니 신발이 많이 닳았다. 구두코 부분과 뒷굽이 닳은 모양새를 봐도 직장에서 가만히 앉아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특정 지을 수 없다. 수행비서, 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런데 같이 일하시는 분은 아니라니까, 수행비서는 아닐 테고, 상대방을 사장님, 사모님 이런 식으로 호칭하는 게 자연스러운, 그리고 이런 곳까지 함께 올 만한 직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중개업을 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 거죠.”

그것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는 양 실장. 그리고 아주머니와 사장도 조금은 놀란 얼굴로, 마치 보지 않은 카드의 숫자를 맞추는 마술사를 보는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팽팽하던 신경전이 슬쩍 느슨해졌다. 그런 의도로 화제를 비튼 것이긴 했지만,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기에 단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여기 오신 이유가 말씀하신, 건물을 짓기 위해선가요?”

“네?”

양 실장은 대답 대신 경숙의 눈치를 봤다. 경숙은 단유를 쳐다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걸 그쪽이 왜 궁금해하는 거죠?”

“궁금하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건, 대답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기본적으로 하대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인 것 같았다. 단유는 오랜만에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거의 이런 식의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차를 몰고 다닌 후에는, 그 차를 본 사람들은 단유를 보며 하대를 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 땅, 파실 의향이 있으세요?”

“뭐?”

경숙은 잠시 단유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말을 잇지 못했다.

“···판다고 하면, 살 수는 있어?”

경숙의 시선에 젊은, 아니 어려 보이는 사내 녀석이 하는 말을 경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경제력도 없을, 고작해야 귀신의 뒤꽁무니나 쫓는 녀석이 무슨 재주로 땅을 사니 마니 한단 말인가.

“어디 건방지게 말이야···.”

다시 신경을 바짝 조이며 금방이라도 신관을 터뜨릴 기세로 경숙이 눈을 번들거릴 때, 단유가 답했다. 이런 대화는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판다면 사죠.”

“···니가?”

“이 땅, 얼만데요?”

“뭐?”

단유는 중개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공시지가가 얼만지 모르겠지만, 이런 땅은 맹지라서 꽤 싸다고 들었는데, 얼마죠?”

양 실장이 반쯤 입을 벌린 채로 단유를 바라보다, 그녀의 촉이 눈 앞의 사내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느끼고 대답했다.

“기준을 어디 두느냐에 다르지만, 싼 편이긴 하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차로 10분 거리에 작지만 시내도 있어서 접근성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양 실장의 말을 간략히 요약하면, 싸지만 싼 편은 아니다, 서로 이야기를 맞춰봐야 알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옆에 땅 주인이 있으니 무턱대고 땅값을 낮게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가격만 맞으면 사죠.”

단유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박사는 이전에 단유가 출연자 중 한 명과 친구로서 대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무슨 돈이 있을까 싶어 바라본 것이고, 양 실장은 이렇게 이득 없는 땅을 왜 산다고 하는 것인지, 과연 그게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어 바라보았다.

경숙은, 박사와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 땅을 산다고 하는 것일까 의아한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쩐지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로 말을 꺼낸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기 생각에도 이 땅은, 굳이 살 필요가 없는 땅이었고, 지들 말대로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면 더더욱 쓸모없는 야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너 지금 그 말, 장난이면 용서 못 해. 사기죄로 고소할 거야?”

단유는 자신의 말 중 어떤 부분이 ‘사기’에 해당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개입할 필요 없이 대신해 줄 사람에게 맡기려 했다. 의사는 밝혔으니, 남은 건 자신의 돈으로 땅을 구입하고 그 뒤처리까지 도와줄 이가 필요하니까.

단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저예요. 통화 괜찮으세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땅을 사려고 하는데요,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 해서요.”

단유는 양 실장에게 빈손을 내밀었다. 양 실장이 의도를 몰라 눈만 껌뻑거리자, ‘명함’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제야 얼른 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명함을 건넸고, 단유는 그 명함에 적힌 전화 번호를 불러주었다.

“이 분이랑 이야기해서 구입 좀 해주세요. 구입할 땅은, 여기 중개사 분께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네. 아, 그리고.”

단유는 경숙을 바라보았다.

“땅, 비싸게 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만약 비싸게 부르면 안 사셔도 돼요.”

경숙은 이게 무슨 경운가 싶어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유가 통화를 마치자마자 입을 떼고 물었다.

“저기요, 왜 여길 사시려고···. 설마 여기 조사하시는 것 때문에?”

하대가 존대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하대를 계속해도 상관은 없는데.

“그걸 왜 궁금해하시는 거죠?”

“뭐?”

경숙은 금방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걸려온 전화에 중개사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했다. 경숙은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더는 무작정 나가라고 소리지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슬쩍 물러섰다. 박사는 눈치를 보다 단유에게 다가와 진짜 이 땅을 살 건지, 그리고 설마 자신의 연구를 돕기 위해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인지를 물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성적으로 말하자면, 경숙이 ‘무단침입’ 운운하면서 나가라고 할 때, 살짝 관심이 들었다. 요컨대 외부인이 쉽게 들어오기 힘든,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면 은밀하게 무언가―구체적으로는 마법 실험 같은 것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땅을 사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고, 귀신이 들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호기심은 가질 지언정 가까이 접근하려거나 땅에 욕심내는 경우가 없다면 단유에겐 더 좋은 조건일 수 있었다.

그럼 굳이 이 땅이어야 하는가?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다른 곳에도 비슷한 조건의 땅이 있는지 찾아서 매매를 하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전화 통화에서도 굳이 비싸게 사지 말라고 당부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성적인 판단 너머로 단유를 유혹하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어쩐지 이곳을 자기 것으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충동적인 느낌. 정확히 그 느낌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유는 여길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며 일을 저지른 것이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산에 둘러싸인 이곳이 어쩐지 옛날 생각도 들게 하니, 사더라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 누구 말처럼 별장을 지어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찾아와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어슴푸레 붉었던 노을이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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