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39화 (639/956)

너의 곁에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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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으로 물든 저택을 향해 다가가니, 혹시나 했으나 설마 했던 사람과 마주쳤다. 한참 저택 안을 향해 카메라를 비추며 옆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그를 발견한 단유는 천천히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가오는 인기척을 못 느꼈던지, 아니면 일에 집중하느라 몰랐던지, 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어, 단유군? 어쩐 일이십니까?”

박사는 정말 놀랐다는 얼굴을 하는데, 단순히 단유를 봤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었으니까.

박사는 옆의 보조에게 카메라를 넘긴 뒤, 단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단유는 가볍게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단유는 유진의 통화로 들었던 내용으로 둘러대며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다고 사정을 말하며, 박사에게 되물었다.

“박사님은 계속···조사 중이셨던가요?”

겨울 바람에 머리가 엉망이 된 박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게 사실 쉽게 보기 힘든 상황이거든요. 초자연현상, 아니 영적인 존재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이렇게, 물리적인 힘을 발휘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란 말이죠.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는 보고된 바가 거의 없어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바로 여기서 벌어졌다는데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생각해보면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른바 비주류계 학자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

“왜 여태까지 이러고 있냐를 묻는 거냐면, 한동안 여기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서 조사할 수가 없었거든요. 3일 전에 겨우 풀려서 이렇게 조사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렇군요.”

“이럴 게 아니라, 가까이 가보실래요? 2층 올라가는 계단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집이 저래서 올라가긴 힘들 거 같지만 말이죠.”

박사는 이런 일을 계기로 단유가 자신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함께 일을 할 수 있길 바랐다. 혼자 찾아와서 호기심을 보일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물론 단유는 1도 관심이 없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아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쯤에서 폭발이 있었고, 그 여파가 집에까지 번진 것일 거라고 하더군요. 이상하죠? 단유 군도 여기 와봤으니 알겠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어떤 폭발물이 있었다면, 과연 그때 우리가 왔을 때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추위도 잊은 것처럼 열띤 목소리로 설명하는 박사의 곁에서 단유는 그냥 고개만 주억거리며, 가끔 적당히 대답하며 따라갔다. 노을이 지긴 했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니 집이 어떻게 부서졌는지 확실하게 보인다. 박사는 자기 나름대로 이 집이 왜 이렇게 됐을지 추리하며, 이 현상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단유에게 어필하는데 열심이었고, 단유는 그 이야기를 흘려 들으며 눈으로는 그 존재가 머물렀던 방을 쫓았다.

낮이라서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지난 번 단유가 했던 일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 혹은 카톨릭에서 말하는 ‘구마’의식으로 인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러기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여기 와 보시겠어요?”

박사는 폭발의 중심으로 예측하는, 그리고 이전에 단유가 매트리스를 두었던 그곳으로 단유를 인도했다.

“이게 정말 신기한 거거든요? 이 정도로 땅이 움푹 파이고 저기 떨어진 집까지 부서지려면 대략 TNT 환산 50㎏ 정도의 폭약이 터져야만 가능하다고 그러더군요.”

그 순간 단유의 머릿속에서는 TNT 50㎏이 에너지로 대략 210메가줄(MJ)로 환산되고 그 정도 에너지가 한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방출되었을 때의 물리적 충격량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게 그 정도였단 말이지.’

그마저도 사실은 온전하지 않아, 대부분 에너지는 빛과 열로 전환되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러고도 남은 에너지가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반드시 통제력을 가져야만 할 힘이다.

“문제는 말이죠, 지난번에 우리가 기록했던 것인데, 그때 2층에서 봤던 거 있잖아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부끄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는 박사. 아마도 그 당시 뒤도 보지 않고 달아나기 바빴던 자신의 모습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전까지 전문가로서 온갖 초자연현상에 대해 설명하던 사람이 태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못난 꼴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 점을 괜히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

“연구소로 돌아가서 데이터들을 꼼꼼히 살폈는데, 도무지 정체를 확인할 수가 없었거든요. 사실 그 케이스가 대단히 희귀한 케이스라는 걸 먼저 이야기해야겠군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게 사실 눈에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고, 보인다 하더라도 사진에 희미하게 찍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지난번에는, 단유군도 보았듯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뿜어냈단 말이죠. 아무런 광원체도 없던 곳에서 그런 빛이 났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증명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죠. 거기다, 세계적으로도 그러한 사례는 보고된 바가 극히 드물기도 하고. 굳이 찾자면, 아마도 종교적으로 해석될 만한, 그러니까, 파티마의 성모같이 숭앙받는 거룩한 존재의 현현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던 거죠.”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박사의 설명에서 그가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이런 곳에서, 음침하다고 여겨지던 이런 곳에 그런 대상이 현현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드니···, 어쨌든 제대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큰데, 문제는 그때 기록했던 데이터에는 그 빛 외에는 어떤 것도 기록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외선이나 적외선같이 가시 영역 바깥에서나 관측되는 것도 촬영 가능한 장비인데,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죠. 장비의 탓인지 의심했지만, 결국 우리의 기술력이 따라주지 않은 탓도 있겠죠.”

한숨을 짧게 내쉬던 박사는 단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쪽은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지금처럼 분명히 현재 과학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리고도, 기술과 인력이 부족해 밝혀내지 못하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 선입견을 버리고 저희와 뜻을 같이 한다면, 분명 더 많은 발전과 기록들을 남길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뒷말을 잇지 않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박사가 부담스러워 단유는 슬그머니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이봐,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단유와 박사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

경기도에서 원룸 건물 2개로 임대업을 하던 강경숙은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번지 지주님 맞으시죠?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주소였지만, 듣는 순간 아주 오래전에 상속받아놓고 잊고 있었던 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촬영 때문이라며 전화를 받고서야 그 야산 안에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있다는 것도 떠올릴 수 있었고, 강경숙은 오랜만에 그 집을 찾아갔다. 을씨년한 분위기가 철철 흐르는 오래된 폐가라 선뜻 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소정의 로케이션 비용을 지급해준다니, 공돈이 생기는 기분이라 강경숙은 촬영을 허락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다시 아무도 찾지 않을 그 집, 혹은 그 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시내가 있긴 했지만, 차를 타고 15분여 이상을 타고 나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라 접근성이라든가 그런 부분에서 매우 나쁜 지역이었고, 그래서 딱히 활용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폐가를 허물고 펜션을 세운다고 한들, 그 펜션을 찾을 사람이 있을까도 싶었다. 근처에 멋있는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고작해야 산장밖에 안 될 텐데, 수익도 안 날 산장을 세울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방치하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든 활용할 방도가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며칠간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말 계모임도 미루고 강원도로 향한 경숙은 곧 반파가 된 채, 경찰에게 둘러싸인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지금 조사 중입니다만, 일단 원인 미상의 폭발로 이렇게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폭발이 있었지만 원인은 모르고, 그마저도 확실치 않아 추측하는 정도다? 아무도 쓰지 않는 집이지만, 그래도 서류상 엄연히 집주인인 경숙은, 가장 먼저 보상을 떠올렸다.

“며칠 전에 여기서 무슨 촬영이 있었다는데, 그쪽에서 뭘 잘못한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해요?”

“100%라고 할 순 없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니 계속 조사는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말씀드렸다시피, 조사 중입니다. 밝혀지는 대로 가장 먼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의 대답이 회피성이라 여겨 경숙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간 낸 세금이 얼만데, 고작 하는 대답이 이 정도란 말인가?

만약 경찰의 말대로 촬영팀의 짓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그리고 만약 다른 누군가가 벌인 짓이라면, 그에게서 어떻게 보상을 얻을 수 있는가?

혹시 모르니 미리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뜻을 밝혔더니, 남편은 아는 변호사와 상담을 해보겠노라고 답했다.

―그동안 너무 땅 관리를 안 해서 외지 사람들이 막 들어왔던 거 아닐까? 좀 막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에 뭔가 시도할 만한 것이 없었다. 철조망을 두를 수도 없고, 말뚝을 박고 팻말을 단다고 해서, 들어올 사람이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은 사유지임을 밝히기 위해 표지판은 달겠지만, 그래도 틈틈이 와서 살펴야겠다.

그리고 며칠 후, 강경숙은 집을 허물고 조그만 별장을 짓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여름철에 피서가 필요할 때, 혹은 일에 치어 피곤할 때 잠시 쉴 용도로 집을 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전원주택 식으로 지어도 무방하고. 그리고 현재 거주하는 지역과 거리가 좀 있다 보니 관리가 힘든 점도 있어, 만약 된다면 그냥 매매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경숙은 생각했다.

일단 정확한 사정을 모르니 근처 공인중개사를 찾아가 의논을 해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강원도로 향했다.

공인중개사는, 이 근처 지역엔 특별한 호재가 없지만, 여름철에는 인근 연화산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나 휴식을 위해 찾는 사람이 없진 않다며, 별장이나 펜션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래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숙이었고, 결국 함께 직접 가서 살펴보며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리고 산에 올라간 경숙은 폐가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을 발견했고, 그간 괜히 속을 심란케 했던 외부인이 저들인 것 같아 신경이 곤두섰다.

“당신들 누구야?”

****

박사는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보자 급히 품에서 명함을 꺼내며 자신을 밝혔다.

“저는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최근에 이 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물어봤어요? 누구 마음대로 여기 와서 이러는 거예요?”

“아, 저기, 사실 전에 여기서 촬영이 있었는데 그때 저한테 도움을 부탁해서 왔었거든요.”

“봐요, 그건 그거고요. 지금 누가 여기 와도 된다고 허락했어요? 여기, 엄연히 사유지거든요?”

“그런데, 저기···누구···신지?”

“저, 여기 땅주인이거든요?”

“아···.”

당황하는 박사와 마주 선 경숙의 날카로운 시선이 박사 뒤에 선 단유에게 향했다.

“어서들 나가세요.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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