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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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네?”
“여기 올라가 봐도 되나요?”
“어, 저기, 감독님께 여쭤보시죠?”
선정리하던 스태프는 그렇게 대답을 미루고 등을 돌렸다. 단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PD에게 다가가 허락을 구했다.
“위에요? 어···친구분은 올라가셔도 되는데, 유진 씨는 안 되겠네요. 왜인지는 아시죠?”
“네, 그럼요.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갔다 와.”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라며 손전등을 건네주는 PD에게 감사를 전한 후, 단유는 금방 오겠다고 말하며 계단을 디뎠다.
“그런데, 왜 그래요? 저 친구?”
“아, 그냥 궁금해서 그러나 봐요.”
“겁이 없나 보네.”
“호기심이 많은 친구예요.”
“그래요? 아, 친구도 서울대라고 했죠? 역시 서울대에는 괴짜가 많은가?”
“음, 조금 괴짜스러운 면도 있긴 하죠.”
“유진 씨 추우면 저기 온풍기 있는 데서 좀 쉬어요.”
“감독님 일하시는 데 방해 되시지 않아요?”
“방해는 뭘. 연기자 챙기는 건데. 가요.”
“고맙습니다.”
이미 해가 진 상황이라 어두운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2층에 올라와 무서운 ‘척’을 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조그만 불빛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두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곳은 연출을 위해 그냥 둔다고 해도, 계단 정도는 좀 불을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한 단유는 주변을 살폈다. 구석에 반짝이는 빨간 빛은 역시 카메라 불빛이겠지만, 모르고 본다면 정체 모를 짐승의 눈빛이라고 착각해도 무리가 아니지 싶었다. 물론 프로방송인들에게는 익숙한 불빛이겠지.
‘게다가 밀착 촬영을 위해 촬영 스태프도 함께 올라와 있을 테니 무섭지는 않을 거야.’
아무도 없는 것과, 누구라도 있는 건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게다가 ‘촬영’이 진행된다는 조건부 상황에서 카메라와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과연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는 게 쉬울까? 그래서 방송하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다. 시청자들 역시 알고 있는 이런 조건을 그들의 머릿속에서 ‘배제’하도록 ‘연기’를 리얼하게 해내니까.
하지만 단유는 연기자도 아니고, 지금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아니니 억지로 표정을 꾸밀 필요도 없고, 과장된 리액션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느 방을 먼저 들어가서 볼까를 고민하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닿은 첫 번째 방의 문을 열 뿐이다.
계단을 올라와 바로 왼쪽에 있는 방이었는데, 웬 가재도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잘 보기 힘들었는데, 어쩌면 이건 연출팀이 준비해둔 소품일지도 모르겠다. 방 안을 탐색하기 위해 방에 들어왔다가 무심코 건드려 소리가 나면 연기자는 그 신호에 맞춰 깜짝 놀라는 시늉을 지어 보이고, 때마침 설치된 카메라는 연기자들의 리액션을 고스란히 담을지도 모르겠다. 준비했다고 의심한 이유는 이 방에 어울리지 않는 주방용 가재도구들이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단유는 애써 준비해뒀을 게 뻔한 소품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다리를 쭉 뻗어 그것들을 넘어갔다.
자세히 살피니 벽에는 역시나 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또 다른 구석에는 박사님이 설치했을 장비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게 열을 감지하는 것인지, 소리를 채집하기 위한 것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단유는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단유가 오기 전까지 몇몇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든 탓인지 주변에 날리는 먼지가 꽤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어떤 특이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다음 방도 살펴봐야겠다 여기며 단유는 방을 빠져 나왔다.
다음 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소품 대신 거미줄이 어색한 장소―예를 들어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교묘하게 눈높이 정도까지 늘어져 있는 거미줄 더미는 일부러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산등성이 바라보이는 방이었는데 여름이면 벌레가 많이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미가 포식하겠구나.’
정말 거미가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방을 남겨뒀을 때, 단유는 그 방이 공터에서 스태프가 말했던 그 방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방보다 유난히 어둡다고 말하더니, 그 이유가 바로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방향으로 창이 난 까닭이었다. 이런 방은 차라리 창고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아하게도 이 방에 매트리스가 놓여있었다.
스태프의 말대로라면 이 매트리스는 제작진이 준비한 소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방에 누군가가 살았던 것일까?
단유는 매트리스에 다가갔다. 손전등에 비친 매트리스는 먼지가 많이 쌓여 더럽다는 인상 외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이 없는, 그냥 외따로 방치된 낡은 매트리스에 불과했다. 시선을 돌려 방 안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역시나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방 구조였다.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단유는 고개를 돌렸다. 손전등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비췄다.
“······!”
형체가 불분명한 무언가가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손전등을 비추는 순간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단유의 망막에는 그 흔적이 담겼다. 착각일까, 싶었지만 단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시 방 중앙으로 걸어온 단유는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인기척과 다른 느낌에, 단유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
형용할 수 없는, 귀를 아득하게 만들 정도의 비명이 단유를 사로잡았고, 눈앞에서 하얀 안개 덩어리 같은 것이 단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
“많이 춥죠?”
PD와 이야기를 마친 후, 유진에게 다가온 작가의 말에 유진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요. 그런데 이거 되게 따뜻한데요? 여기 앉으세요.”
유진은 엉덩이를 살짝 들어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작가는 고맙다며 유진의 곁에 앉았다.
“저 유진 씨 되게 팬이었다고 했었잖아요?”
지난 번, 캐스팅을 위해 사전 미팅을 했을 때, 작가는 유진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예전, 아역 배우 당시의 모습을 기억한다는 작가의 말이 립서비스라 여겨 유진도 적당히 감사를 전한 적이 있었다.
“방송 작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집에서 TV만 주구장창 보던 때가 있었어요. 대학 다닐 때도 드라마 보려고 술자리 안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드라마에 심취했던 때였거든요. 그때 봤는데, 저는 세상에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인상에 많이 남고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드라마 시청률이 아쉬워서 그렇지, 만약 드라마만 떴으면 유진씨, 이렇게 저랑 나란히 앉을 일도 없었을 거예요.”
대스타가 되었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유진은 쑥스럽다는 듯 겸양의 손짓을 내저었다. 그런 유진이 귀엽다며 입꼬리를 길게 늘리며 바라보던 작가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그 친구분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단유요?”
유진은 혼자 피식 웃더니, 이내 단유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방송 중에 사고를 쳤다는 단유의 이야기에 작가가 깜짝 놀라며 그런 일이 있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영상 찾아보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정부에서 주관하던 일이었는데, 다 지우지 않았을까요?”
“흠, 중학교 때부터 조금 튀던 친구였네요.”
“확실히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중 고등학교 때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와, 대단하네요. 그 정도라면 연예인 하기가 아깝긴 하겠네.”
“꼭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이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끔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꼬셔보는데 전혀 안듣더라고요.”
“아, 그래요? 조금 아쉽네.”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작가를 보며, 아마 개인적으로 캐스팅을 부탁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대놓고 언급할 정도로 급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유진은 슬쩍 눈치를 본 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 진짜 무섭네요.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왜요? 가끔 TV에서 흉가나 폐가 같은 곳 가서 체험하는 거 나오잖아요?”
“TV로 볼 때도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죠.”
“하긴 화면에 담기는 영상이랑 실제로 보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 감독님이 여길 좋아하는 거기도 하고.”
“여길 좋아해요?”
“꽤 좋은 장면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아. 근데 아까 오프닝 찍을 때, 여기에 안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냥 꾸며낸 말. 여기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도 못해요. 단지 건물 양식이 20세기 초반 일제 시대 때와 비슷하니까, 그와 관련된 안 좋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죠. 장화 홍련 영화 아시죠? 그런거.”
“에이, 뭐야. 전 진짜인 줄 알고 되게 무서웠는데.”
“어머, 유진 씨 진짜 무서웠어요?”
“그럼요.”
“전혀 안 그래 보이던데.”
“정말요?”
“저희는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때의 모습도 같이 보니까, 이 사람이 진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있잖아요. 쉬는 시간 때 유진 씨 보면 별로 안 무서워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는 여잔데도 참 겁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죠. 사실 전 되게 무서움을 많이 타서 지금 이렇게 있어도 괜히 가슴이 콩콩 뛰는데.”
“그렇구나. 사실 제가 겁이 좀 없긴 한데요, 그래도 여기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나중에 2층 올라가면 반응 대박이겠는데? PD님한테 조금 언질을 줄까봐요. 좋은 영상 많이 나올 거 같다고.”
“에이, 그렇다고 어디 귀신 숨겨두고 그런 건 하지 마세요. 갑자기 튀어나오면 귀신 아니래도 무서우니까요.”
“그런 건 유치해서 안 해요.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죠.”
말로는 안 한다지만, 뒤로는 뭔갈 꾸밀지도 모른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방송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니까. 혹시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다짐하며, 잠시 위를 바라보다 문득 단유가 왜 이렇게 안 내려오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마침 작가도 유진의 시선을 쫓다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친구 분이 정말 겁이 없긴 없나 봐요. 위에 아무도 없어서 더 무서울 건데.”
라고 넌지시 말을 던졌다. 유진은 무릎에 덮어뒀던 담요를 걷어내며 일어섰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전화라도 해 볼 텐데, 촬영 중에는 핸드폰을 소지하지 않는 터라 단유에게 맡겨둔 참이었다.
“불러봐야겠어요.”
“어머, 아니에요. 유진 씨는 앉아 계세요. 제가 가보죠, 뭐.”
“아뇨, 제가···.”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올라가서 살펴보려는 거, 다 알아요. 참으세요.”
눈을 찡긋하는 작가의 배려에 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가는 입고 있던 패딩을 새로 여미며 계단으로 향했다.
****
달려드는 안개, 혹은 먼지,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덩어리를 피해 단유는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요령이 없어 그저 몸을 던진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과 접촉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마룻바닥을 쿵, 울리며 몸을 구른 단유는 벌떡 일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유령이라고 불러도 오해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단유는 그렇게 부를 생각이 없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는 몸이란 것조차 없어 제대로 단유를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달려들기 전에 꼭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안개 덩어리를 피해 또 한 번 몸을 굴린 단유는, 만약 접촉한다면 어떤 증상이 생길까 궁금했지만,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 준비를 할 찰나에 단유는 ‘해체’를 사용했다.
“······!”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이 달려드는 하얀 덩어리. 단유는 또다시 피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마법을 사용했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는 덩어리였다. 그래서 빠르게 ‘바람’을 사용했다. 방안에 휘도는 회오리 같은 바람에 방 안을 나풀거리며 떠돌던 먼지들이 휘말리며 뚜렷한 형체를 만들어냈지만, 하얀 덩어리는 그대로였다.
예상했던 바였다. ‘해체’는 물질, 혹은 입자로 인식되는 개체에 한해서 무조건적으로 극소단위 입자 분해를 하는데, 저 덩어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니까.
‘즉, 저것은 물리적 증명이 불가능한 존재.’
말 그대로 초자연적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