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30화 (630/956)

무한 도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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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단유의 옆으로 현도의 매니저가 다가왔다. 그 혼자 온 게 아니라 다른 매니저들도 뒤따라 왔는데, 현도의 매니저가 나서서 물었다.

“저기 유진 씨랑 같이 왔다면서요? 매니저는 아니고 친구?”

“네, 맞습니다.”

“이제부터는 연기자들이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찾는다는데, 저희는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대요. 그러니까 잠깐 나가서 대기하죠.”

“아, 네.”

단유는 매니저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하루종일 흐린 구름 때문에 해를 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해가 진 것인지 하늘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공터에 불 피워놓았대요. 거기 가서 불이라도 쬐고 있죠.”

공터로 내려가니 당장에 일이 없는 스태프들 몇몇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놓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 스태프들이 많았는데, 촬영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이곳으로 피신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에 갔더니 스태프 몇몇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데 드럼통이 없어 곤란하다는 눈치를 보이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

개그맨의 매니저가 단유를 보더니 물었다.

“네.”

“아까 작가분한테서 잠깐 들었는데, 서울대생이라며?”

“정말? 서울대생이에요? 우와,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제일 고학력자 아닌가?”

“왜 그래? 지금 그 말, 여기 있는 사람들 무시하는 발언이야?”

매니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불을 쬐기 위해 모인 스태프들을 가리키니 처음 말을 꺼낸 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에이 또 뭘 그렇게까지 과장하십니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학벌 가지고 사람 차별하나?”

“차별이라뇨? 그런 거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저 대학 안 나온 거?”

“뭐야, 자격지심이었어?”

“자격 뭐요?”

저렇게 말들은 하지만, 딱히 기분 나쁘다는 투는 아니다. 단유를 제외한 다른 매니저들은 그동안 지금 촬영하는 시리즈의 예능을 함께 하면서 자주 만났던 탓인지 서먹함이 없었고, 이 정도 농담쯤은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보였다.

“그런데, 그쪽 말이에요.”

“단유입니다.”

“네, 단유 씨. 혹시 유진 씨랑 같은 소속사인가요?”

순간 다른 매니저들의 시선도 모이는 것을 느끼며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소속사 없어요.”

“아, 정말요? 혹시 소속사 구하는 중, 인가요?”

“아뇨.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요.”

“왜요? 단유 씨 외모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이봐, 싫다는 사람한테 왜 강요를 해.”

“강요는 무슨?”

“단유 씨도 천천히 생각할 틈이 필요하지 않겠어?”

단유는 이쪽으로 발을 들일 때마다 마주치는 상황이라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거절의 뜻을 밝혔고, 뒤이어 나올 몇 가지 질문들까지 미리 밝혀 확실하게 의사를 전했다. 모인 매니저들 대부분이 배우나 모델 전문 에이전시 소속들이라 단유를 보자마자 경쟁력이 있다 여겨 조용히 섭외할 뜻을 품고 있었는데, 단유가 단칼에 잘라 거절하니 그저 입술만 달싹거릴 뿐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포기할 뜻을 품지 않았다. 단유 정도라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의 경력을 쌓은 매니저들은 계산할 수 있었고, 그러니 단유의 거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를 설득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니, 그들은 곧 화제를 바꿨다.

“단유 씨는 어때요? 지금 촬영?”

“어떤 질문이신지?”

“아, 귀신이 진짜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요.”

“글쎄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에 귀신이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여기 모인 스태프들도 실은 무서워서 여기 도망 나와 있는 걸 텐데. 그쵸?”

그러자 나름 얼굴을 익힌 연출팀 스태프 중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원래 저기 있어야 하는 거 아시죠? 그런데 며칠 전에 미리 사전 답사 왔다가 너무 놀란 일을 겪어서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PD님도 그걸 이해해줘서 나가 있게 해준 거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제가 원래 기가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닌데, 며칠 전에 왔을 때 진짜, 진짜로 이상한 걸 봤거든요.”

“정말요?”

“여기 이 친구도 그때 있었는데, 제가 너무 놀래 가지고 뒤로 넘어지는 걸 봤어요. 그치?”

“뭐, 솔직히 전 귀신은 못 봤는데, 철규가 경기 일으키는 건 봤었죠.”

“진짜 귀신 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제 눈에는 귀신처럼 보였으니까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처음에 집에 들어갈 때부터 조금 서늘하단 느낌은 있었어요. 물론 그때도 조금 추운 날씨긴 했지만, 그것과 다르게 더 오싹하게 만드는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었어요. 처음에는 PD님이랑 촬영 포인트 잡는다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는데, 2층 계단을 올라갈 때, 2층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아이고, 난 잠깐 딴 데 가야겠다. 무서워서 못 있겠네.”

“PD님한테 이야기했어요. 여기 누가 지켜보는 것 같다고. 그런데 PD님은 그런 거 안 믿으시더라고요. 망상장애 있냐고 농담하시면서 2층으로 먼저 올라가셨죠. 전 그 뒤에 따라갔고요. 2층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거기 방이 4개 있어요. 저희는 방 하나 하나를 다 돌아봤는데, 그 중의 방 하나에 오래된 매트리스가 있어요. 그 방에 딱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스프링 구겨지는 소리 아시죠? 그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몇몇 사람들은 진짜 무슨 소리라도 들었다는 얼굴로 팔을 쓰다듬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제가 어, 무슨 소리지? 라고 했는데 PD님은 못 들으셨나 봐요. 그 방 문을 딱 여는데.”

“여는데?”

“열었는데, 방에 달린 창이 열려 있고 거기서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소리 착각한 거야?”

“아뇨. 왜 그 이야기를 먼저 했냐면, 방에 들어갔을 때 방이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어요. 유일하게 보이는 건 창이랑 창 아래에 놓여져 있던 매트리스만 보인 거죠. 그리고 창이 반쯤 열렸는데, 거기서 쌕쌕거리는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니까, 인상에 콱 박힌 거죠.”

“아니, 그래서 그 귀신을 언제 봤다는 거야?”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제가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스프링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방에 들어가니까, 그런 소리를 내는 뭔가가 보이지 않았던 거죠. 오로지 바람 소리만 들리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 무렵인데, PD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여기 촬영하기 딱 좋네, 라고. 산 언덕 쪽에 위치한 방이라 다른 방보다 어둡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부니까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을 꽤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신 거죠. 거기를 포인트로 잡고 촬영해야 겠다며 중얼거리시더니 방을 나가시는데, 저도 얼른 따라갈 마음으로 뒤돌아섰던 순간에 뒤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가!”

“······.”

사람들은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드럼통 속 불길만 혼자 기분 좋다는 듯 신나게 그림자들을 흔들어댈 뿐이었다.

“뒤로 돌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괜히 섬찟하잖아요? 그래서 PD님께 물었어요. PD님 뭐 안 들리세요?”

“···그래서?”

“PD님이 딱 돌아보시는데, 글쎄 PD님 얼굴이 파란색이고 눈은 노랗게 빛이 나는 거예요! 전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았죠.”

“헐. 뭐야, 그게.”

“그때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정신을 차리니까, 다들 절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괜찮냐고 묻는데, 괜찮을 리가 있나요. 식은 땀을 흘리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 겨우 1층으로 내려왔다니까요.”

“그래서 뭐야? PD가 귀신이라는 거야?”

“아뇨. 나중에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해봤는데, 제가 기가 허해서 헛것을 본 거라고 결론이 나긴 했어요.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때 귀신이 PD님 흉내를 냈던 게 아닌가 싶어요. PD님도 말씀하시길, 방에서 나간 뒤에 비명 소리가 나서 돌아왔더니 제가 기절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한참 촬영 중일 건물로 옮겨졌다.

“그런데 용케도 오늘 따라왔네?”

“일이잖아요. 귀신도 무섭지만, 회사에서 짤리는 건 더 무서운 일이니까요.”

“역시. 나도 그렇게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신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더라고.”

한 매니저의 이야기에 다른 매니저도 공감을 표시했다.

“그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이야기지. 귀신이야 사람을 놀래키기나 하지, 사람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하긴 요즘은 미친 사람이 워낙 많아요.”

“나 예전에 차에서 대기할 때 들었던 뉴슨데, 아파트 도색업자 줄을 끊었다는 사람 이야기 듣고 어이가 없었잖아. 이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별 망설임도 안 드는 세상이 온 건가 싶어서 말이야.”

“그것도 그거지만, 이 바닥이 특히 그런 거 같지 않아요? 카메라 앞에서 생글생글 웃던 사람도 뒤로 돌아서면 악귀같이 변해서는.”

“자기 연기자 이야기를 여기서 그렇게 까발려도 돼?”

“네? 아니요. 저희 현진이는 안 그러죠. 제 배우는 아니고, 예전에 동료 매니저가 관리하던 배운데, 그렇더란 이야기죠.”

“뭐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리고 연기자뿐만 아니라, 감독들 중에서도 이상한 사람 많잖아?”

“에이, 그만하죠. 여기서 이런 이야기 계속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가 자칫 누군가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흘러갈 것 같아 다들 자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몰렸다.

“아무튼 귀신은, 뭐야, 그래서 결론이? 귀신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우리 이야기는 그렇다 쳐도, 똑똑한 단유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서울대생은 귀신의 존재를 믿나?”

단유는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듯,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이 세상은 아직 우리가 단정할 수 없는 무수한 진실들을 감추고 있으니까요.”

“워,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뭐가 있는 거 같잖아?”

“물론 대부분의 미스테리한 일들은 거의 거짓이거나 꾸며낸 이야기일 확률이 높죠. 하지만 저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겪은 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란 어렵죠. 가끔은, 심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환상을 보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는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니까요.”

“나 그렇게 말하면 헷갈려서 몰라. 그러니까, 단유 씬 귀신이 있다, 없다, 어느 쪽이란 거야?”

단유는 고개를 돌려 어둠에 묻혀 있는 건물을 눈에 담았다. 귀신? 죽은 후 원한이 남아 저승에 가지 못한 존재를 일컫는 것이라면, 너무 무속적인 해석이고 이는 그 실체를 일컫기보다 사후세계에 대한 열망을 비틀어 담아낸 미신이라 보는 게 옳다. 귀신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 신체가 죽고 영혼이 남아 구천을 떠돈다는 말에서 ‘영혼’의 존재를 먼저 언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영혼이란 존재하는가?

가끔 인간이 생각이란 것을 할 때, 혹은 감정을 느낄 때, 그 주체를 영혼으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단유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실험도 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극소의 미시 세계에서 룰에 따라 조합된 입자들의 총합체, 정도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영혼을 에너지로 설명하지만, 에너지도 실은 극소입자의 구성 규칙에 의해 발생하는 ‘힘’이기에 구성력을 가지지 못한 에너지의 존재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응?”

“뭐라고?”

단유는 질량과 에너지의 상관관계를 상대성 이론을 들어 설명하려다 말았다.

“어쨌든 귀신은 없다는 거네. 단유 씨 말은.”

그런데, 한 가지 모순이 있다. 바로 단유의 존재. 현재 밝혀진 물리학적 관점에서 단유 스스로의 존재는 규명하기 어렵다. 두 차원을 시공간의 제약 없이 넘나들기도 했으며,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마법’이라는 초자연적 능력을 보유한 단유는 그 모든 전제를 부순다. 즉, 스스로가 모순인 존재.

때문에 단유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할 순 없으니까. 또 스스로 긍정할 수도 없으니, 이제껏 배운 학문과 그 학문을 바탕으로 한 마법이란 힘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단유가 실험하는 것, 그리고 단유가 밝혀내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것은 영원히 밝힐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영원히 밝혀서는 안 될 진실일지도 모른다. 단유는 그런 진실을 향해 내딛는 걸음걸음이 꽤 무겁다고 자각했다.

그냥 이대로 만족하며 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무모하게 달려들어 감춰진 진실을 밝히려는 것보다, 그냥 이대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돈도 벌어놨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명수와 하은이 있으니 그들과 남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유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것, 마치 단유가 끝내 이뤄내야 할 사명처럼 느껴졌다.

인간이 무섭다? 아니, 단유는 그 진실이 두렵다.

단유가 대답을 피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매니저 한 사람이 한숨을 쉬며 단유가 바라보는 건물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촬영 언제 끝나려나?”

그 말이 신호라도 되었던지, 건물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비명 소리. 현장에 여자 작가도 있었고, 여자 스태프도 있었지만, 여자 출연자도 있었다. 그리고 여자 출연자라면 오직 단 한 사람. 단유는 지체하지 않고 건물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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