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29화 (629/956)

무한 도전(5)

-------------- 629/952 --------------

“장치 설치하는 건 다 따놨죠?”

PD의 물음에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다 따놨어.”

대답을 들은 PD는 작가와 다음 컷을 상의했다.

“그럼 현도 씨가 장치에 대해 물으면서 설명을 듣는 컷을 넣고 시작할까? 아니면 장치 설명은 자막으로 대신하는 게 나을까?”

“혹시 분량 빌지도 모르니까 넣고 보죠? 나중에 편집에서 빼도 되니까.”

“그게 낫겠지? 그럼 미리 김 박사님이랑 말 좀 맞춰 놔야겠는걸?”

“제가 박사님이랑 이야기해보고 현도씨한테 알려줄게요.”

“막내야, 현도씨 좀 불러와.”

“네!”

PD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막내 AD가 공터를 향해 뛰어갔다. 작가는 건물 안에서 대기 중인 김영한 박사에게로 향하고, PD는 남은 일정을 카메라 감독과 구상하며 촬영 준비가 마무리되길 기다렸다.

“근데 그 장치는 실제로 작동은 하는 거야?”

“그거야, 저도 모르죠. 사실 작동을 하냐 안 하냐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요는 미지의 정체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 그 사실 자체가 공포심을 더욱 자극한다는 거죠.”

소위 ‘인지부조화’라고 부르는 심리학적 행동 모델이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귀신을 탐지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함으로서 출연자들은 귀신의 존재를 상정하게 되고, 이에 기반한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공포를 느낀다. 설령 귀신의 존재가 증명이 되지 않더라도, 귀신이 없다는 사실로 인지하기보단 귀신이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다.

“물론 다행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에요.”

“의사가 필요한 건 아니겠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거나 할 정도로 간이 약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큰일 아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형님은 카메라에 잘 담아주시기만 하면 돼요. 형님이 출연자들보다 먼저 뒤로 넘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주시고요.”

“나? 야, 내가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야. 내가 넘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알겠어요. 수고해주세요.”

마침 현장 촬영 준비를 끝냈다며 카메라 리허설을 부탁드리러 온 촬영팀 스태프를 따라 카메라 감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온 스태프의 말에 단유와 유진은 차에서 나왔다. 다른 출연자들도 촬영을 위해 대기하던 각자의 차에서 나온 참이라 다 같이 현장으로 올라갔다.

“근데 유진 씨.”

함께 출연하는 개그맨 출신 연기자가 유진을 불렀다.

“네?”

“저 차는 회사에서 준 차에요?”

“네?”

“저거 되게 비싼 차 아닌가? 회사에서 유진씨한테 지원 빵빵하게 해주나 봐요?”

유진은 거기서 아니라고 하면, 괜히 또 단유에게 곤란한 질문이 갈까 봐 대답을 피했다. 쑥스럽다고 짓는 미소가 긍정이라 생각했는지 개그맨은 자신의 회사에서는 자신을 홀대한다며 매니저에게 눈총을 줬고, 매니저는 그게 개그맨 나름의 화술이라 여겨 적당히 호응을 해줬다. 촬영 전 출연자들 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좀 더 ‘으쌰으쌰’해보자는 노력이란 것을 알아챈 다른 출연자들도 대화에 끼면서 분위기는 꽤 즐거워졌다.

덕분에 현장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휴식 시간 동안 내려갔던 텐션이 조금 올랐다. 그런 분위기를 작가 역시 눈치챘던지, 가벼운 농담조로 오늘 촬영이 기대된다며 립서비스를 하고 출연자들을 촬영 예비 장소로 안내했다. 카메라가 설치된 라인 뒤에서 대기 중이던 PD가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두고 앞으로 촬영하게 될 내용들을 짧게 브리핑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귀신들이 자주 목격된다고요?”

“예. 인터넷 카페 중에 국내의 유명 흉가들을 찾아 다니며 체험하는 동호회같은 곳이 있는데, 이 곳도 그들이 자주 찾는 스팟 중 하나라고 하네요.”

“이해가 안 되는데, 도대체 흉가 체험 동호회 같은 건 왜 있는 거죠?”

“우리 취향은 존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듣기로는 위험한 롤러코스터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는데, 도빈씨는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겠지만 말이죠.”

“아우, 난 그런 거 전부 이해가 안 가요. 애초에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나 싶다니까요?”

건물 밖에서 했던 1시간 반짜리 오프닝이 무색하게, 또다시 30분간 토크가 진행되는데 이런 촬영이 익숙하지 않은 단유는 현장을 지켜보는 게 여간 지루한 게 아니었다. 옆에서 함께 현장을 관찰하는 다른 회사의 매니저들은 익숙한지 꽤 편한 자세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차에 둔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단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이 시작되었다.

“박사님, 이 장치는 뭐죠?”

“이것은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의 일종입니다. 보통 열화상 카메라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제공하죠. 아마 TV나 영화에서 이와 같은 카메라 영상들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카메라의 경우에는 특수한 교정 기술을 이용하여 비접촉방식으로 온도를 측정할 뿐 아니라, 자동 감지 시스템으로 특정 변화를 정확히 측정, 기록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특정 변화라면 귀신을 말하는 건가요?”

“귀신을 포함한 모든 초자연적 현상을 말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일들이 많죠. 굳이 귀신이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최첨단 과학으로도 밝히지 못하는 일들이 주위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이를 관찰할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기존의 과학자들은 단순히 미신이라고 무시하고 말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만,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소수의 학자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며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카메라는···.”

과학자의 이야기가 쉽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현도가 슬쩍 PD의 눈치를 봤다. 작가와 귓속말로 이야기를 나누던 PD 역시 이쯤에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호를 줬고, 이에 현도가 능숙하게 박사의 이야기를 끊었다.

“다른 장치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니 부탁드릴게요. 저기 저 벽에 있는 것도 같은 카메라인가요?”

“아, 저것은 음파 탐지기입니다. 단순히 소리를 감지하고 녹음하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 주파수대의 변화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변환시켜 기록할 수 있는 탐지기이죠. 이 탐지기 덕분에 가청 주파수를 벗어나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찾아내는 것이죠.”

“그렇군요. 그런데 이것도 귀신, 아니 초자연적 현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물론입니다. 사실 인간의 감각으로 캐치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유튜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소리를 녹화한 영상들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나마 가청 주파수 대 내로 들어온 소리이기에 사람들이 인지를 하고 녹화를 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죠.”

“박사님은 그런 소리도 채집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한 번은 강원도 점봉산이라는 곳 근처의 약수터에서 새벽에 의문의 소리가 들린다는 제보를 받고 가서 소리를 채집한 적이 있었죠.”

박사는 새벽의 특정 시간대에 들리는 그 소리 때문인지, 약수터를 찾은 사람들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팀을 꾸려서 달려갔다고 말했다.

“정말인가요? 괜히 으슬으슬해지는데, 혹시 그 소리가 어떤 것인지 밝혀내셨나요?”

“정확한 의미가 담긴 말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의 비명이 섞인 목소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명이요?”

가끔 17~19㎐ 사이의 저주파에 노출이 되면 그런 증상이 나오기도 한다는 박사의 설명에 출연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에 조사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약수터 근처에 과거 조선시대에 양민들이 단체로 학살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네? 정말인가요?”

출연자들이 리얼하게 놀란 연기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는데, 유진도 짐짓 무섭다는 얼굴을 하며 약하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잘하네.’

지나치게 길고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편집으로 덜어내면 될 문제고, 그것만 제외하면 대체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촬영이었다. 물론 촬영이 어떻게 흐르든 별 관심이 없던 단유였지만, 박사가 들고 왔다는 장비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생겼다.

저 장비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인터넷에서 구매해 집에 설치한 장비들보다는 더 좋아 보였다. 애초에 음파 탐지기에서 가청, 비가청 주파수를 구분하고 그 주파수를 특정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그래프로 변환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기에 그런 장비를 찾을 생각조차 못했다. 카메라도 어쩌면 집에 있는 온도 감지기보다 더 유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물어보면 가르쳐 주실까?’

초자연현상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하는 ‘소수’의 학자들이 만들어냈다고 하니 어쩌면 비매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장치를 한번 조사해보면 더 좋은 실험 측정 시스템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장치에 대한 설명과 박사가 경험했다는 초자연 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될 준비를 했다. 그에 앞서 짧게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촬영을 중단하자 유진이 단유에게 다가왔다. 단유는 유진에게 생수를 건네며 물었다.

“괜찮아?”

현도나 다른 출연자에 비하면 말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유일한 여성 게스트라는 점 때문에 현도가 계속 배려해줘서 말을 많이 한 유진이었다. 정확한 대사를 외워 읊어야 하는 드라마 현장과 달리, 수시로 발생하는 상황에 맞춰 순발력 있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예능 현장은 출연자들이 꽤나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예능이 익숙한 현도도 조금 지친다는 얼굴로 쉬고 있는 마당인데, 유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도 유진은 씽긋 웃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그래도 계속 틈틈이 쉴 수 있잖아.”

“춥진 않아?”

“조금. 왜? 안아주게?”

“힘들면 말해.”

“오오?”

“촬영 접고 돌아가게.”

“···무슨 말을 못하게 하니, 너는. 그리고 아까 현도 오빠한테서 핫팩 받아놔서 괜찮아.”

패딩 주머니에서 핫팩을 들어보이는 유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다시 생수병을 받아 챙겼다.

“심심해?”

“조금.”

“아, 진짜 심심하구나. 아까 촬영할 때 잠깐 보니까, 다른 매니저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그러던데, 너만 따로 나와서 멀뚱히 서 있는 거 보고 설마 했던 건데.”

단유는 유진의 쓸데 없는 걱정에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잠깐 떨어진 곳에서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던 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아, 저 분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뭐?”

“저 장비들, 진짜 되는 건지 궁금해서 말이야.”

“뭐야, 너. 설마 진짜 귀신이라도 있을까봐 그래?”

“응?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저런 장비들은 얼마나 하는 건지, 어디서 파는 건지 궁금해서.”

“그게 왜 궁금해? 사려고? 사서 뭐하게? 너도 귀신이 있나 찾아보게?”

단유는 유진이 자신을 놀리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좁혔다.

“잠깐 갔다 와. 나 여기 쉬고 있을게.”

“응. 잠시만.”

유진의 허락을 받고 단유는 박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네? 아, 예.”

“저기 여쭤 볼 게 있는 데요?”

“뭔가요?”

“그 장비, 혹시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네?”

이런 질문은 들을 줄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이 된 박사에게 단유가 자초지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이 있어 필요한 장비인 거 같아 여쭙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혹시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으세요?”

라고 되물었다.

귀신···에는 관심이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관심사가 ‘초자연현상’인 것은 분명했다. 아니라면 마법을 뭐라고 분류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건 국내 제품이 아니고, 해외에서 구매한 제품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제품을 만들 기술력이 없고, 관심도 없으니까요.”

조금 전 카메라 앞에서 간략하게 설명했던 기능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며 장비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박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한 단유는 쉬는 시간이 끝날 때 쯤이야 목적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따로 연락처로 소개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저희 학회 모임 할 때 한 번 오세요. 아마 흥미로운 이야기, 많이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약속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주 남아돌고 마침 타이밍이 맞아서 단유가 딱히 할 게 없을 때 학회 모임이 열린다면 한 번 찾아가 볼 의향은 있었기에, 단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박사의 호의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