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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622화 (622/956)

믿으셔도 좋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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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금 무리하게 달린 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아침 운동을 거르진 않았다. 예은, 새벽, 유영과의 기분 좋은 술자리를 마치며 나오던 길에 귀가 베일 것처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날이 꽤 춥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새벽 공기가 꽤 차가웠다.

우선 가벼운 조깅으로 시작했다. 오랜 습관 때문인지 단유는 맨바닥을 박차며 뛰는 게 좋았다. 온몸으로 공기를 가르는 느낌을 즐기며 달리는 게 좋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단유가 가볍게 달려 향한 곳은 헬스장이었다. 인근에 운동할 만한 공원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였고, 차가운 날씨도 야외 운동을 하기에 썩 좋지 않다는 게 또 한 가지 이유였다. 어릴 때야 여유가 없으니 찬 공기 들이마시며 운동을 했다지만, 이제는 그 정도 사치(?)는 부릴 정도가 되었기에 단유는 겨울 동안만 운동할 요량으로 헬스장을 등록했다.

헬스장에 들어가니 이미 부지런한 사람들이 끙끙대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인기가 많은 트레드밀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단유야 이곳까지 오는 동안 조깅을 했으니 딱히 트레드밀에서 달릴 이유가 없었다.

헬스장의 장점이라면 역시 지정된 운동으로 특정 부위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자, 여자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헬스장을 다닌 이들은 그런 운동의 효과를 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쪽으로는 별로 욕심이 없던 단유는 그냥 헬스장 안에 있는 기구들을 모두 사용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딱히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적당히, 힘이 닿는 데까지 운동을 할 뿐이었다.

“저기 학생?”

“네?”

돌아보니 짧은 머리에 성난 근육들이 불끈 튀어 오를 듯한 남자가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처음 온 건가?”

“아, 네.”

“헬스장도 처음?”

“네.”

“어쩐지. 아까부터 봤는데 운동 순서가 뒤죽박죽이더라고.”

“순서를 신경 쓰지 않고 해서요.”

“그런 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운동하면 다쳐요. 운동도 스케줄을 세워서 규칙적으로 해줘야 제대로 효과를 보지.”

“그렇군요.”

“어깨도 넓고 힘도 좀 있는 거 같은데 운동이 너무 엉망인 거 같아서 그래. 제대로만 하면 보기 좋은 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아, 그래? 내가 괜히 참견한 건가?”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딱히 몸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요.”

“아, 그런 뜻이군. 학생이 아직 나이도 젊고 힘이 넘치니까 자신이 있어서 그럴지 모르겠는데, 젊어서부터 체계적으로 운동해놓지 않으면 금방 몸 망가져. 내가 보다시피 운동을 꽤 오래 했는데 말이야, 운동 잘못해서 다친 사람이 몇 있거든. 그래서 그쪽으로 좀 많이 알기도 하고, 나도 운동할 때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야.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데 다치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네, 그렇죠.”

“그럼 여기 이것부터 해봐. 1RM이라고 아나?”

“아뇨.”

“1회 최대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중량(1 Repetition Maximum)을 측정하는 건데, 이 무게를 알게 되면 무게, 반복 횟수, 세트 수 등을 조절할 수 있게 돼. 다시 말해서 효과적인 운동 방식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한 번 해보겠나?”

“예.”

사내는 단유를 비어있는 벤치 프레스로 안내했다.

“자, 여기 이거 한 번 들어보게. 바벨을 잡을 때는 어깨 넓이에서 한 뼘 정도 벌려서 잡아야 돼. 그래.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렇지 거기를 그렇게 눌러주고. 자 이제 들어봐. 그렇지. 가볍지?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원래 운동을 할 때는 호흡도 신경을 써야 돼. 예를 들어 벤치를 할 때 호흡은 들이마셨다가 바벨을 올릴 때 내쉬는 건데, 지금은 1RM을 구하는 거니까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 올리는 것만 신경 쓰도록. 일단 가볍게 드는 걸 보니 무게를 한 10㎏씩 올려볼까?”

바벨의 양쪽에 10㎏ 원반을 하나씩 추가했다.

“자, 한 번 들어봐요.”

단유는 사내의 지시대로 바벨을 들어 올렸다.

“힘든가?”

“음, 조금요?”

“내가 보기엔 자네 힘이 좋은 거 같아. 근육에 부하가 많이 걸리지 않는 거 같군. 무게를 더 올려도 되겠어. 적당한 중량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없단 말이지.”

사내는 히죽 웃으며 바벨에 10㎏를 더 얹었다.

“다시 해 봐. 아까보다 조금 더 힘들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 맞는 정확한 중량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단유는 다시 반복했다.

“어때, 괜찮아?”

“글쎄요. 정확히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 건데요?”

“말 그대로 최대한 들 수 있는 중량을 찾아야지. 보자, 지금 30씩이니 60㎏이거든. 그런데도 가뿐해 보이는군. 혹시 평소에 벤치 좀 해봤나?”

“아니요.”

“처음 하는 사람치고 요령도 좋고 힘도 좋아. 일단 10 정도 더 올려보자고.”

그렇게 올리기 시작한 중량은 70, 80을 지나 100㎏이 되었지만, 단유는 여전히 가뿐하게 중량을 들어 올렸고, 사내는 조금 질린 듯한, 혹은 감탄한 듯한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힘이 좋구만? 그런데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다칠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조금씩 올리다간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단유는 양쪽에 20㎏씩을 더 얹었다. 총합 140㎏. 사내는 자신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기 힘든 중량에 살짝 놀랐다. 그리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단유의 뒤에 섰다. 주변에서 운동하던 사람들도 엄청난 중량의 바벨 들어 올리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거치대에서 바벨을 떼어냈다. 그리고 가슴께까지 내린 바벨을 들어 올렸다. 팔꿈치가 완전히 펼쳐지도록 바벨을 들어 올린 뒤 거치대에 내려놓자, 어떤 구경꾼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하군.”

사내가 중얼거리다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나 물을 필요도 없는 게, 왠지 아직도 여유가 있는 것처럼 평온한 단유의 얼굴이었다.

“더 해야 하나요?”

“음? 아, 그, 그렇지. 아직 한계가 아니지?”

“좀 더 들 수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사내는 펑퍼짐한 단유의 후드티 안쪽을 뚫어보겠다는 듯 눈을 좁혔다. 어쩌면 헬스장이 처음이란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숨은 운동 고수일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다. 가끔 운동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놀이터나 철봉이 있는 곳에서 맨손 운동을 해서 근지구력을 극한에 이르도록 단련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눈앞의 남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괜히 나섰네.’

사내는 기침을 하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했다.

“만약 140㎏이 최대 중량이라면, 70㎏으로 15회 반복으로 세트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고, 100㎏으로 10회 반복하는 것도 괜찮아.”

“그렇군요.”

“뭐, 잘하는 것 같으니 이제 개인 운동하시고,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되도록 혼자서 운동하고.’

“네. 감사합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빨리 자리를 피했다. 괜히 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실내를 나온 사내는 내일부터 시간을 옮기는 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단유는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남자들은 무시무시한 근육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단유가 엄청난 중량의 운동을 이어나가는 것에 놀랐고, 여자들은 헐렁한 후드 티셔츠 안쪽에 있을 몸을 상상했다. 겨울이라도 헬스장 안은 히터에서 나온 따듯한 공기로 데워져 있어 남녀 할 거 없이 모두 얇은,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에 편한 복장을 하고 있는 데 반해 단유만 두껍고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몇몇 여자들은 단유에게 왜 보기 좋을(?) 몸을 가리느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몇몇 사람이 다가와 운동하는 것 좀 봐줄 수 있냐고 묻기도 했고,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어떤 운동을 했었는지를 물었지만 단유는 달리해 줄 말이 없기도 하고 자기 운동을 빨리 마치고 돌아갈 요량으로 단답형으로 대답할 따름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밖에서 그냥 운동할 걸 그랬나?’

별것도 안 했는데 괜한 관심을 받으며 자기 운동에 지장이 생기니 살짝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대처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빨리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집에 돌아오니 웬일로 상미가 주방에서 요리, 아니 실험(?)을 하고 있었다.

“뭐해?”

“응? 운동 갔다 왔어?”

“응. 뭐해?”

“씻고 와. 같이 밥 먹자.”

“그래. 그런데 뭐해?”

“···보면 몰라?”

“모르겠어서. 뭐해?”

“아침 준비하잖아?”

“근데 프라이팬 위에 있는 건 뭔데?”

“사과.”

“사과를 왜 프라이팬에서 굽고 있는 건데?”

“인터넷에 보니까 사과를 기름에 살짝 튀기듯이 구우면 맛있다고 해서.”

“검증된 거야?”

“맛있으니까 블로그에 올라온 거 아니겠어?”

“냄새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좋기만 하구만.”

“그럼 이건 뭔데?”

“샌드위치지.”

“새까만데?”

“살짝 많이 익혀서 그런 거야. 탄 거 아냐?”

“노란 건?”

“달걀. 반숙한 거.”

“반숙이 아니라 아예 안 익은 거 같은데?”

“맛만 있으면 되지, 뭘 그렇게 따져? 먹기 싫어?”

“응.”

“먹어.”

“······.”

“얼른 씻고 와. 식기 전에.”

단유가 돌아서자 상미가 다시 다짐을 받기 위해 소리를 높였다.

“안 내려오면 가지고 간다.”

“내려갈게.”

단유가 샤워를 마치고 내려가니 주방 식탁에는 반쯤 질린 얼굴로 앞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는 하은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응.”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하긴 저런 음식을 앞에 두면 그런 생각이 날 만도 하다.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아침을 한 거야?”

“일단 먹고 이야기해.”

“부탁할 거라도 있어?”

“이런 걸 주면서 부탁하는 거면 양심도 없는 거다. 라면 있니?”

차마 하은에게는 뭐라고 할 수 없었던지, 상미는 머뭇거리다 결국 찬장에서 컵라면을 꺼내 주었다. 그러면서도 단유에게는 눈을 부라리는데 먹지 않으면 ‘배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모양새를 맞춘다고 샌드위치 사이에 치즈도 끼워 넣었는데, 치즈를 덮고 있는 튀긴 사과조각과 반숙을 빙자한 달걀노른자는 식욕 감퇴용으로 적당해 보였다.

아삭, 하는 소리를 내며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상미가 눈을 반짝였다.

“크리스피한 식감이 좋지 않아? 치즈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끝내주지?”

단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이 질린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진짜 먹을 만해? 못 먹겠으면 뱉어.”

“···그냥 그러네요.”

생각보다 못 먹을 맛은 아니라는 생각에 단유는 남은 샌드위치도 먹어 치웠다. 그 모습에 싱긋 웃으며 상미는 자기가 만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곧 일어나 싱크대에 가더니 입안에 든 것을 뱉었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미안.”

“왜? 괜찮은데?”

상미는 단유 손에 남은 조각을 뺏어서 접시 위에 내려놓고, 접시를 모두 들어 싱크대에 던져 놓았다. 찬장에서 컵라면을 꺼내자, 하은이 소리 내어 후, 불면서 라면을 후루룩 집어삼켰다.

급히 라면으로 바뀐 아침을 모두 끝낸 뒤, 상미가 말했다.

“오늘 우리 부모님 오실 거야.”

“그래?”

단유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은은 잠시 상미를 바라보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죄송해요. 사실은 계속 안 와도 된다고 말렸는데, 꼭 와서 보셔야겠다고 해서요.”

애초에 상미는 부모님과 말싸움을 하고 집을 나선 상황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하겠다며 독립한 상미는 나름 수입을 거두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특히 상미의 아버지가 상미의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가서 혼자 사는 딸을 모른 척 할 순 없었고, 마침 하은의 집―단유가 산 집이지만, 상미의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몰랐다―에 얹혀 산다는 것을 들으면서 인사를 오겠다고 상미에게 통보한 것이다. 상미는 극구 말렸지만, 부모님은 끝끝내 오겠다고 했고, 결국 오늘 집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언제 오시는데?”

“오후에 오실 거예요.”

“그나마 다행이네. 그럼, 오기 전에 미리 청소라도···.”

하은은 고개를 돌려 거실을 보다 말끝을 흐렸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단유가 대신 말을 이었다.

“각자 방 청소만 해 놓으시죠.”

어차피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실이나 화장실 등은 새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깨끗하다.

“우리 집, 꽤 깨끗하구나.”

상미가 하은의 말에 동의했다.

“단유가 늘 신경 쓰니까요.”

미안함이 가득 담긴 말이었지만, 단유는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해도 자기보다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는 만큼, 그럴 바엔 자신이 나서서 청소하는 게 좋다. 청소를 한다고 해서 몸이 피곤한 것도 아니고, 약간의 마법(?)이면 충분하니까.

“그래, 그럼···또 뭘 준비해야 하지?”

“준비하실 건 없어요.”

“아냐, 그래도 너희 부모님이 처음으로 오시는 건데, 먹을 거라도 준비해 놔야지.”

하은의 시선이 잠시 싱크대에 머물렀다.

“···뭐 시킬까?”

“그러죠.”

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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