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13화 (613/956)

실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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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업은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듣게 된 전공과목이었는데, 본 전공과목이 아니라 컴공과의 전공 과목이었다.

“컴퓨터 기초 교양으로 듣는 게 낫지 않아요?”

새벽은 단유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해서 좀 공부해보고 싶어서.”

물론 수업 하나 듣는다고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모든 걸 알게 될 리는 없다. 대학교의 수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학기였다면 그런 착각을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그저 혼자 도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으니 수업을 들으면서 도움을 받는다는 정도가 적당하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대학교에서도 결국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달라진다.

“혹시 프로그래머로 나가시려고요?”

“프로그래머는 무슨. 그냥 컴퓨터를 좀 더 잘 사용하고 싶어서.”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프로그래밍을 좀 배워서 써먹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개인적으로 실험실을 꾸미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다 보니,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실험에 필요한 기기를 구입할 돈이었지만, 돈이야 지금도 충분히 있고 소소하게라도(?) 벌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었으니, 단유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시스템을 떠올렸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고, 자동으로 실험을 관측하고 기록하며 분석하는 수준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유사한 프로그램은 이미 대형 연구소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기기 구입시에 프로그램까지 구매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단유가 준비하는 실험에 맞지 않는 면이 있었고, 향후에 단유가 다른 실험을 계획할 때 달리 필요한 프로그램이 생길 수도 있기에, 이번 기회에 공부해 두겠단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뭐든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 수준으로 잘할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

<프로그래밍방법론>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위한 기술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학습하는 과목이다.

“기본적으로 Java 언어를 공부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해당 언어를 배우지 못한 학생이라면 수강 변경을 하시기 바랍니다.”

강사의 말에 한 학생은 가방을 싸서 강의실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30명 남짓한 학생들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서 강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기 타 전공 학생도 한 명 있네요. 김단유 학생?”

강사의 부름에 단유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네.”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단유에게로 몰렸다.

“신입생인데, 괜찮나요? 혹시 일반 컴퓨터 교양 수업을 생각하고 왔다면 굉장히 후회할 텐데?”

“괜찮습니다.”

“학점에 문제가 생기면 학생에게만 손해에요. 그 점 기억하고 수업 듣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강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단유를 한 번 더 쳐다본 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단유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쟤야?”

“맞네. 걔네.”

“대박. 실물은 괜찮네.”

“실물은 무슨. 쟤 혹시 전과하려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자기 과에서 완전히 찍혔을 거 아냐?”

수군대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니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던 강사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조용. 오늘은 간단하게 오리엔테이션만 하고 끝낼 테니까 집중 좀 하시고. 이 수업은 여러분들이 준비할 게 많아요. 제대로 안 들으면 고생만 할 뿐 아니라, 재수강도 걱정해야 할 거예요.”

안경을 추켜올리며 학생들을 돌아보는 그의 눈에 담담히 자신을 바라보는 단유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강사 본인도 단유가 신경이 쓰였다. 강의실에 들어올 땐 몰랐지만, 출석부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한 뒤 그가 최근에 강사와 교수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유의 행동이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박사 과정 당시 별 도움도 안 주는 지도교수 덕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휘가 교수에게 막말을 퍼붓던 영상을 볼 때는 일정 부분 공감이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단유의 교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지적하는 이도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건방졌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교수 개인의 건과 별개로, 단유에 대해 학교 측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 그러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 껴 있다가 온 강사는, 그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단유가 자신의 수업을 듣는다고 하니 괜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것들, 중의 하나이니 교수의 권위에 대해 존경심을 보이지도 않고, 말 한마디 잘못 하면 인터넷에 온갖 악의적인 글들을 올려서 곤란케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내 수업이야.’

게다가 전공자도 아니니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기나 할까, 괜히 수업 분위기만 흐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단유는 강사의 걱정과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앉아서 수업에 집중할 뿐이었다.

****

고작 하루였지만, 단유는 새벽이 보였던 걱정의 정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수업마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시선이 몰려서 절로 경계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나마 오랜 세월 단련된 단유 특유의 무표정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지속 되면 수업을 편하게 듣기 힘들 것 같았다.

점심때는 유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어디야?

뭔가 화가 난 듯한 날선 반응의 유진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 준 단유는 몇 분 후, 눈썹을 치켜들고 달려드는 유진을 만날 수 있었다.

“야, 넌 도대체 무슨 사고를 이렇게 치니?”

“사고?”

“사고지 그럼. 학교 전체가 전부 니 이야기만 하는데.”

“내가 잘못한 거야?”

“잘못, 은 아니지. 아니지만 사람이 좀 눈치를 봐가면서 끼어들어야지. 게다가 교수님이라며?”

“교수가 잘못을 해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

“그게 아니지. 거기 보니까 다른 사람도 많더만, 왜 굳이 네가 나서냐는 이야기야, 이 바보야.”

“내가 너한테 바보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긴 하지. 그래도 넌, 이번에 바보짓 한 거야.”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여행은 잘 다녀 왔어?”

“지금 내 여행이 문제야?”

“얼굴 많이 탔는데?”

“정말? 매일 선크림 발랐는데?”

“이마, 여기, 좀 탄 거 같은데?”

“괜찮아. 어차피 앞머리 내리고 다닐 거니까.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밥 먹자.”

“···그래, 일단 밥 먹자.”

학생 식당에 들어가서도 구석에 자릴 잡고는 단유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유진이었다.

“그런데 왜 니가 이렇게 열 내는지 모르겠다?”

“난 니가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거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나서지 말라고. 네가 얼마나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지는 내가 예전에도 겪어 봤으니까 알아. 알지만, 그때는 어릴 때라서 그렇다고 쳐도, 이제는 너도 세상 좀 알 나이잖아?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거 너한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바란다.”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이구나.”

“누가 또 그래?”

“새벽이라고, 그때 한 번 봤을 텐데? 나랑 동기인 신입생.”

“아, 기억난다. 아무튼, 우리보다 어린 걔도 알 정도라면, 너도 이제 제대로 행동해. 맨날 공부만 하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나 본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알았니?”

“그래, 알았어.”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가는 단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네 차례야.”

“응? 뭐가?”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없는데?”

“왜? 아까 물어봤잖아? 여행 잘 다녀 왔냐고.”

“잘 다녀 왔다며?”

“야, 그때는 니 이야기 하는 중이었으니까 대충 대답한 거지. 방학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아?”

“여행 다녀 왔잖아?”

“아, 열 받네.”

씩씩거리며 숟가락질 하던 유진은 말없이 밥을 먹던 단유를 흘깃 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냥 이야기할게. 방학하고 나서 동남아 촬영 계획이 잡혔었거든. 그래서 이왕 간 김에 가족들이랑 같이 여행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다 같이 간 거야. 가서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혼자 조잘대는 유진. 단유는 유진의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그녀의 수다를 받아주었다.

2시에 두 사람 모두에게 수업이 잡혀 있었기에 수다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단유는 지난 방학 동안 유진의 행적을 고스란히 알게 되었고, 유진은 후련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해. 알았지?”

“아직 남았어?”

“콱! 나중에 전화할게. 바이!”

기운이 넘치는 친구, 라는 생각을 하며 유진을 배웅한 단유는 수업을 들으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몇몇 학생들이 단유에게 시선을 던지며 수군거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어지던 일인지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여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푸른 잔디밭과 잎이 무성한 가로수들, 대부분 반팔이지만 더러 소매가 긴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의 청바지를 입은 긴 머리 여성도 있었고, NBA 저지를 입은 캐주얼 복장의 남학생들도 있었다.

‘뭐지?’

단유는 볼을 긁적이다 다시 몸을 돌렸다.

‘후우.’

갑자기 단유가 돌아서는 바람에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몸을 돌린 유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책으로 가리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며 헝클어졌지만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단유의 시야에서 벗어난 뒤에도 한참을 더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조심스럽게 돌아보니 단유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돌아가 원래 단유가 있던 방향을 바라보니 이미 자리를 떠난 지 오래였다.

‘왜 숨었지?’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피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단유가 돌아봤을 때, 자연스럽게 인사하면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테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쉴 때, 뒤에서 ‘저기요’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새벽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 수업 가시는 거예요?”

“네? 아, 네.”

“고급물리2요?”

“네.”

“아, 그럼 저랑 같네요. 같이 가실래요?”

“네.”

멈춰섰던 두 사람은 강의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시 걷던 중 새벽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근데, 우리 지난번에 서로 말 놓기로 했었는데···.”

“네? 아, 네.”

얼굴이 붉어진 채인 유영을 바라보며 새벽이 다시 말을 건넸다.

“그때 병원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고맙긴···요. 별거 아니었어···요.”

“근데, 조금 전에 누구 기다린 거···요?”

“아니···요. 그냥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요.”

말을 놓자고 했지만, 새벽도 막상 말을 놓지 못해 계속 말끝을 흐리다 보니 대화가 불편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후로 말없이 강의실로 향했는데,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나란히 걷고 있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말 걸지 말걸.’

그런 후회가 생길 정도였다.

다행인 건 강의실에 들어선 후, 그 어색함을 떨칠 핑계가 생겼다는 점이다.

“형.”

미리 와서 자리 잡고 있던 단유를 부른 새벽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왔어?”

반면,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영은 강의실 입구에서 눈치를 보며 서성거리다가 단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응. 안녕.”

단유의 건조한 인사에도 볼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유영은 단유를 지나 단유 뒤의 빈자리로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뒤에서 책을 챙기는 척하며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

“형, 수업은 어땠어요?”

“그냥 그랬어. 오늘은 오리엔테이션만 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들을만 한 거면 같이 들어볼까 했는데.”

“Java랑 컴퓨터 기초를 알아야 한다더라.”

“Java요? 그거 모르는데. 형은 알아요?”

“공부해야지.”

“하긴, 형은 똑똑하니까 금방 배우겠죠? 내 머리로는 안 될 거야.”

“안 되는 게 어딨어, 하면 다 되지.”

“방금 그 말은 전혀 진심이 안 담겨 있는데요?”

“그래? 사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개중에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건데, 티가 났나 보네.”

“제가 안 되는 사람이란 건가요?”

“농담이야.”

“···형 농담은 적응이 안 되네요. 너무 진심같이 말하니까.”

“미안.”

‘농담하고 사과하는 건 무슨 경우냐’며 새벽은 고개를 저으며 책을 꺼내 펼쳤다. 그때, 단유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유영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흠.”

단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유영은 슬쩍 눈동자만 들어 단유를 확인하고는 소리 나지 않게 숨을 천천히 내쉬는 찰나,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왔다.

―수업 끝나고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줘요.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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