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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612화 (612/956)

실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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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식사가 마칠 때까지 네 사람은 인터넷 방송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상미도 꼭 같이 하자는 것보단 그냥 식사 중에 나눌 수 있는 소소한 화제 정도로만 여겼기에 다들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가 끝난 후, 하은과 상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명수가 말을 꺼냈다.

“단유야.”

“응?”

“네 덕이다.”

“갑자기 뭔 소리야?”

“상미가 저렇게 편하게 방송할 수 있게 된 거.”

“고작해야 방송 장비 몇 개 사준 게 다인데 뭘.”

“그거 말고. 상미, 그 이상한 놈 때문에 방송 접을 생각까지 했었잖아? 그런데 네 덕분에 다시 방송하는 거 좋아하게 된 거 같아서, 그렇게 되도록 도와줘서 고맙다고.”

“그걸 왜 네가 고맙다고 그래?”

“그냥. 고맙네.”

“고마우면, 앞으로도 상미랑 잘 지내. 잘 지내는 모습 보여주면, 나도 좋으니까.”

“그래. 그럴 거야. 그런데 이제 그 새끼는 더 안 나타나는 거지?”

“그럴걸?”

사람은 지킬 게 없다고 여기면 무모해지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지킬 게 있다면 조심스러워진다. 단유는 그 점을 공략했을 뿐이다.

“만약에 그 새끼 또 오면 그땐 바로 연락 줘. 내가 시합이고 뭐고 당장 달려가서 죽여 버릴 거니까. 지난번에도 알았으면 그렇게 쉽게 안 갔을 건데.”

명수 성격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앞뒤 안 가리고 그 사람을 죽도록 팼을 거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도록 했던 것이고.

“너한테 왜 연락하냐? 경찰에 연락해야지.”

“한 대 쥐어패고 보내야지.”

그때 상미가 나타나며 명수의 머리를 툭 때렸다.

“아야!”

“바보냐? 같이 손잡고 경찰서 가려고?”

머리를 문지르며 상미의 눈치를 보는 명수는 소심하게 항변했다.

“···아무도 모르게 때리면 되지.”

“···얘 바보 아냐?”

상미의 말에 하은이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이러는 거 하루 이틀 보냐? 밥 다 먹었으면 나가자.”

하은의 눈총을 받으며 엉거주춤 일어나는 명수를 보며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무더운 여름이 다 지나고 다시 개강날이 되었다. 한동안 한산했던 캠퍼스가 다시금 인파로 가득 찼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을 보며 인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강의실도 시끌벅적했다. 그 가운데 단유는 조용히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얼굴이 까맣게 변한 새벽이 환하게 웃으며 단유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잘 지내셨어요?”

단유는 새벽의 얼굴을 살피며 대답했다.

“너보단 못 지낸 거 같은데? 아파서 집에 내려갔다는 녀석이 얼굴은 왜 그렇게 탔어?”

“아프긴요. 그냥 발목만 조금 다친 건데.”

집에만 있기에는 답답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얼굴이 탔다는 새벽의 대답에 단유는 웃음을 지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다리는 완전히 나았어?”

“네. 이제 괜찮아요.”

“그래도 조심해.”

“당분간은 무리하지 않으려고요. 그래도 자전거는 탈 수 있어요.”

“그 사고를 당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싶어?”

“에이, 사고 무서워서 자전거를 못 탈까 봐요? 그리고 오히려 자전거를 타는 게 걷는 것보단 다리에 덜 무리가 가네요.”

고개를 갸웃해 보였지만, 당사자가 괜찮다니 단유로서도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형은 방학 동안 어디 안 가셨어요? 얼굴 하나도 안 탔네요?”

집에 틀어박혀서 실험만 했다. 조금 더 돈을 들여서 제대로 실험실을 만들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당분간 그 계획은 보류하기로 했다. 하는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개강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인데 일을 크게 벌려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리고 만약 일을 벌인다고 해도 단유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만약 실험을 보조해 줄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겠지만, 단유의 실험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홀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2학기는 그 준비를 위한 시간이었다.

“수강 신청은 다 하셨어요?”

“다 했으니 여기 있겠지?”

“전 이번에 수강 신청하다가 열받아 죽는 줄 알았잖아요. 서버가 몇 번이나 다운이 되는지···.”

수강 신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는 비단 새벽뿐만이 아니었다. 강의실에 모여든 학생들 중 반 이상은 수강 신청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형은 바꿀 과목 없어요?”

개강 후 일주일 동안은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민족 대이동에 버금가는 과목 변경을 시도한다. 사실 수강 신청 기간 내에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모두 신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원하는 과목이라 할지라도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 강사님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 과목 변경을 신청하기도 하기에 개강 후 일주일은 혼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별로.”

“와, 부럽다. 전 바꿀 거 천진데.”

“6학점까지만 변경 가능한 거 알지?”

“일단 3과목은 바꿀 수 있으니까, 알아보고 바꿔야죠. 그런데 이왕이면 형이랑 같은 과목 들으면 좋을 거 같은데. 형, 이번에 뭐뭐 들으세요?”

수강 내역을 알려달라는 새벽의 부탁에 단유는 흔쾌히 보여주었다. 새벽은 단유의 수강 내역을 확인하고 입을 쩍 벌렸다.

“이거 뭐예요?”

“뭐긴, 수강과목들이지.”

“이, 이게 다 몇 학점이에요? 18학점 넘는 거 같은데? 이렇게 들을 수 있어요?”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학점 인정은 18학점까지만 되지만, 다른 과목은 과락제로 들을 수 있다더라.”

“프로그래밍방법론? 이건 전공과목 아니에요?”

“컴공 전공과목 맞아.”

“이걸 들으려고요?”

“응.”

“와, 대박.”

“대박은 무슨, 고작해야 일주일에 3시간 더 듣는 것 뿐인데.”

“지난 학기에는 우리 과 전공도 도강해서 들으시더니, 이번에는 타전공 과목을 듣는다고요? 아니면, 혹시 복수 전공?”

“아직 복수까지는 생각 안 해봤지만, 모르지. 나중 일은.”

“에휴, 전 그냥 교양 필수만 형이랑 같은 거로 해야겠네요.”

새벽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노트에 단유가 신청한 과목의 과목 번호를 적어 나갔다. 단유는 새벽을 슬쩍 쳐다보곤 다시 앞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란스러웠던 강의실은 강사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수업이 진행되었고, 학생들 사이의 들뜬 분위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차분하게 변해갔다. 몇몇 학생은 머릿속으로 수강 변경을 계획했으며, 몇몇 학생은 교단에 선 강사의 성향을 파악하여 어떻게 이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낼 것인지를 고민했다.

새벽도 차분한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며 이따금 필기가 필요하면 속기사의 그것처럼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교수의 말을 받아 적었다.

수업이 끝난 후, 모두가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딱히 서두를 일도 없어 단유는 천천히 가방을 챙긴 후,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생긴 혼잡함이 잦아든 뒤 나가려고 기다렸다. 이윽고 사람들 대부분이 강의실을 나갔을 때, 단유가 일어서자 새벽이 단유를 불렀다.

“형.”

단유는 새벽을 돌아보았다.

“근데, 형. ···별일 없으시죠?”

“무슨 일?”

“그게···사실은 동영상 봤거든요.”

“동영상? 무슨 동영상?”

“형 나온 영상이요. 대나무숲에 올라온 거. 혹시 모르세요?”

“모르겠는데?”

새벽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단유에게 동영상을 보였다. 그 영상을 본 뒤에야 단유는 새벽이 아까부터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지며 자신의 눈치를 보던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오버했던 거야?”

“네? 아···. 아니, 꼭 그렇진은 않고요. 오버는 오번데, 솔직히 형 수강신청한 거 보면 오버할 수밖에 없잖아요? 1학년 신입생들 중에 형처럼 수강 신청한 사람은 우리 대학에서 열 명도 안 될 걸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형 정말 괜찮아요?”

“안 될 게 뭐 있어?”

“여기 보니까, 교수협의회 측에서 형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데요.”

“그건 누군가가 쓴 소설이지. 시쳇말로 뇌내망상이라든가? 아무튼 그럴 일 없어.”

“그래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교수를 망신시켰으니, 교수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 같은데요. 물론 이 교수가 생각이 있으면, 형한테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여기 댓글에는 교수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잖아요.”

“상관없어. 그리고 잘못된 걸 보고도 모른 척하기 싫어서 그랬던 거니까, 후회는 안 해.”

“···그렇긴 하죠. 안 그래도 여기 그런 말도 있긴 해요. 속 시원하다고. 어떤 사람은 좀 더 강하게 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강하게?”

“말이 그렇다는 거죠. 솔직히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심하게 했을 거라는데, 그거야 키보드 워리어들의 전형적인 어그로죠.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한 마디도 못했을 사람들인데. 이 영상에서도 주변에 선 사람들 중에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잖아요.”

“그건 그 사람들이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알았다면 그 사람들 말대로 했을 지도 모르지.”

“에이, 그럴 리가요. 저만 해도 형처럼은 못 했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교수님인데, 교수님 앞에서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형이 걱정되는 거고요, 라는 새벽의 말에 단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됐어, 그만해. 그 이야긴.”

“아까 강의실에서도 사람들이 형 계속 훔쳐보는 거 봤어요? 다 이 영상 때문이에요.”

단유는 다시 한번 새벽이 건넨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달린 댓글들도 훑어보았다. 문득 예전 중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눈, 이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그런 단유의 생각을 모르는 새벽은 단유의 곁에서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 청원 운동을 하자는 사람도 있어요. 강 교수란 사람이 직위를 남용하여 부정 청탁을 했으니 교수직 해임을 해야 한다고. 어떤 사람은 그 교수의 연구실 앞에서 사퇴 운동을 하자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그게 다 말뿐인 거죠. 형처럼 나설 사람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성격 이상한 사람들 많은 거 있죠?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도 형한테 이상한 이야기 쓴 사람도 있고.”

차마 그 이상한 댓글들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지가 뭐라고 나대냐?’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무슨 정의의 용사냐’, ‘교수한테 비꼬는 식으로 말하는 건 용서가 되냐’ 같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비난과 비판들도 있었다.

“제가 이거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단유는 새벽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만해. 그게 뭔 대수라고.”

“아니, 형은 열 안 받아요? 얘들이 바로 프로불편러들이에요. 뭐만 하면 불편, 불편 이러면서 이상한 글이나 써대고 말이죠. 형은 괜찮아요?”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딱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별로 상관없어.”

“왜요?”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아서 말하자면, 난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 아냐. 그 교수와의 일도, 내가 불의를 참지 못해 나선 것만도 아니고. 프로불편러라고? 사람은 다들 생각의 차이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표현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 있고, 표현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이 있어. 나와 생각이 다르고, 표현을 거칠게 한다고 해도 그게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비판할 부분은 아니라고 봐. 아니, 그전에 그 사람에게 나랑 같지 않다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가지지 않으니까 문제가 없지.”

“전 아니라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이 사회에 문제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비논리적인 말로 선동을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로 사회적 협의를 무시하는 행위가 지금도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요.”

“여의도?”

새벽도 이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였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새벽은 교수나 대학에서 행할 조치보다 이런 댓글을 더 걱정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치 담론으로 확장해서 끌고 간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글쎄. 이런 영상에 댓글 다는 정도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나?”

“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응. 굳이 내가 나서서 이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지낼 것도 아니고, 게다가 네가 이 페이지를 보여주기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이야긴데 새삼스럽게 열 받을 이유가 있나? 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고 다니든, 내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

“그럼 괜히 보여드린 거네요.”

“그리고 내가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데, 이 정도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돼.”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었어요?”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경찰에 고소한 적도 있었으니까.”

“아, 맞다. 형 연예인이었지.”

“연예인은 무슨. 그런 거 아냐. 그만 나가자. 다음 수업 시작하겠다.”

단유는 새벽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강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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