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611화 (611/956)

실험(1)

-------------- 611/952 --------------

그러나 만족으로 끝난다면 어떤 발전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단유에겐 비록 이루진 못했으나 명확한 목표가 있었으니,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 마법을 사용할 때는 몰랐지만, 마법을 거듭할수록 각 마법의 시전 시 보이는 빛의 밝기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이 더 밝은데?’

그리고 또 경우에 따라 전환되는 열 에너지의 양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당장 느껴지는 차이가 이렇다면, 체감할 수 없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몸으로만 어렴풋이 느끼는 정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단유는 남은 방학 기간 동안 도서관엘 나가지 않고, 대신 방에 틀어박혀 호기심을 채우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 작업을 위해 단유는 레이저 비접촉식 온도측정기와 실험용 온도센서 장치, 정밀 조도계 등을 구입했다.

번쩍, 하는 불빛이 조그만 강화 아크릴 상자 안에서 뿜어져 나올 때, 단유는 각 기기들에 측정된 값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끼고 있던 보안경을 벗으며 책상 위 노트에 그 값들을 기록했다.

‘450lx, 68℃.’

조금 전 같은 상황에서 200lx에 71℃가 나왔던 것과 비교하며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개인적으로 하는 실험이기에 정밀하게 똑같은 조건을 만들 수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매번 측정값이 달라지는 것은 단유가 미처 알지 못한 변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애초, 실험을 시작하기 전부터 짐작했던 것 중 하나는 에너지 손실에 대한 부분이었다. 핵분열마저도 이론적으로는 질량을 손실 없이 에너지로 전환 시켰을 때,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에너지 변환 효율은 2~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어쨌든 에너지 변환 시 통제되지 않는 손실분이 있다는 것이다.

단유의 실험은 최첨단 실험실도 아닌 작은 방에서, 무거운 원자핵을 강제 분열시키는 것도 아니고 미립자 단위로 ‘해체’를 시킨다. 원자는 물론 전자와 극소 입자마저 뿔뿔이 흩어놓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대량 발생할 거라고 짐작은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과정에서 흩어진 입자들과 에너지가 단유가 미처 알지 못한 방식으로 ‘재조립’된다는 것이다. 입자와 입자들이 합쳐지고 흩어졌던 에너지들이 모인다. 그리하여 일부는 빛으로, 또 일부는 열로 표현되며, 때로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파동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전체의 일부분이어서, 대부분의 입자들과 에너지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라 분명히 관측되어야 할 에너지들인데 말이다. 그러니 고작해야 눈이 부신 정도, 손끝이 따뜻해질 정도의 열만 남기고 마는 것이다.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으면 좋겠다.’

노트 위에 끄적거려 놓은 관측값들을 살피다가 단유는 한숨을 토해내고 목을 뒤로 젖혔다.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천장의 높이가 생각보다 높다고 느꼈다.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주먹을 쥐었다.

그때, 단유의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문이 빼꼼히 열리며 하은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바쁘니?”

“아니요.”

하은은 웃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점점 네 방도 상미 방처럼 변하네.”

“어디가요?”

“점점 이상한 장치들이 많아지는 거.”

단유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물었지만 하은은 둘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대답했다. 상미의 방은 인터넷 방송을 위해 구비한 장비들로 가득했고, 단유의 방은 실험을 위해 구비한 장비들로 채워지는 중이었다. 그래봐야 넓은 방에 티도 안 날 정도, 라고 단유는 생각했지만 하은의 눈에는 아니었나보다. 하긴 하은의 방에는 소소하게 읽어보는 몇 권의 책을 제외하면 심플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나가서 밥 먹자.”

“외식이요?”

“그래.”

단유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대에 못 미치는 미흡한 장비들로 인해 아쉬운 마음이 커서 기분이 다운되었던 차였다. 가족과의 외식으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근데 네 방은 공기가 다른 것 같다? 공기 청정기라도 샀니? 아니면, 이것들이 공기 청정기 같은 거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딱 봐도 공기 청정기와 멀어 보이는 계측기들이 아크릴 박스 주위를 두르고 있을 뿐이니 하은의 농담이리라. 다만 공기의 경우, 수도 없이 그것들을 대상으로 ‘해체’를 계속했더니, 방 안의 미세먼지들 마저 사라졌을 뿐이다.

‘음, 청소용에 공기청정용으로 써야 하려나?’

몇 주간의 실험을 반복하며 또 다른 응용법을 발견했다.

****

“엄마, 나 나갔다 올게.”

“언제 올 건데?”

“몰라요.”

“저녁 먹고 올 거니?”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늦지 마.”

유영은 어머니의 질문에 대충 답을 하고 집을 나섰다. 거의 한 달만에 학교에 가는 유영은 단지 학교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저린 느낌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학교에 간다는 사실보다 학교에서 보게 될 단유 때문이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날, 뜬금없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후로 학교를 나간 적이 없었고, 단유에게 따로 전화를 건 적도 없었다. 학교야 방학이니 나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단유에게 연락을 하는 문제는 매일 밤 그녀를 잠 못 들게 했던 원인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자주 연락을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핸드폰의 검은 액정을 바라보며 지난 사건(?)에 대해 변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길 수십 번, 당신의 마음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길 수십 번. 그러나 매번 단유의 전화번호를 액정에 띄어놓고 바라만 보다가 집어던지길 수십 번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단유의 그 사건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가 올린 4분 여의 동영상에서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보고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놀람과 동시에 그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물론 교수가 잘못한 일이라고 다들 이야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수에게 저런 식으로 이야기한 학생을 학교 측에서 그대로 둘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세상 일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를 칭찬하기보단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었을 때 숙청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습이 이제껏 보아온 세상이었다.

사실은 핑계다.

‘걱정돼서 오빠 보러 왔어요’ 라고 말하면 좀 괜찮아 보이지 않을까. 그 핑계로 단유 얼굴을 한 번 보고, 그 핑계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난번 일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말할 리가 없잖아!’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던 유영은 고개를 풀썩 떨구곤 머리를 흔들었다.

‘안 돼, 안 돼. 그냥 이렇게 가서 만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야.’

유영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냥 가지 말까?’

다시 발을 동동 구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오빠를 보지 못할지도 몰라.’

실실 웃음이 났다.

‘어쩌면 오빠도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쩌면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다 다시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고개를 숙이는 유영.

‘그럴 리가 없잖아. 서로 어색해서 쳐다도 못 볼 거야. 지난번에 자기한테 했던 말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갑자기 고개를 쳐든 유영.

‘그래, 이참에 확실하게 말하는 거야! 오빠를 좋아한다고 말해. 할 수 있어.’

문득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유영의 주변으로 빈 공간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유영을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다 벽에 붙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유영. 머리는 산발에 얼굴은 홍시보다 붉어진 채였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버스 정류장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난 유영은 학교에 가지 말아야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래도 용기 내어 나온 걸음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과, 이 핑계가 아니면 개학하고 나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생각, 그리고 개학 때까지 기다리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합쳐져 마침내 유영은 학교로 향할 수 있었다. 도서관 앞에서도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단유는 도서관에 없었다. 자료실에도, 열람실에도 단유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자연대 건물과 학생회관 주변도 살피고, 단유의 차가 주차된 곳은 없는지 주차장을 모두 돌아다닌 후에야 단유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유영은 자신의 계획에 가장 큰 맹점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그 오빠가 학교에 매일 나올 거라고 생각 했던 거지?’

방학기간인데 말이다. 풀이 죽은 유영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

그 시간 단유는 모처럼의 외식을 위해 하은, 상미, 명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명수도 시합이 없는 날이라 시간을 빼서 참석했기에 오랜만에 다 같이 함께하는 자리가 되었다.

“오늘은 누가 쏘는 건가?”

“오늘은 모처럼이니까 내가 쏠게.”

지난 시합에서 또 한 번 라운드MVP를 차지한 명수의 호기에 상미가 반대했다.

“내가 쏠게.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 것도 미안하고. 게다가 이번에 나 정산도 받았거든? 거하게 한 번 쏘자.”

하은이 두 사람을 말렸다.

“얘들아. 어른이 있는데 니들이 나서야겠니? 그리고 니들은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할 때야. 지금 돈 좀 있다고 막 쓸 생각하지 말고, 아껴 써.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선생님이 쏜다.”

하은의 이야기에도 서로 내겠다는 상미와 명수 때문에 시끄러워질 무렵, 단유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셋의 시선이 단유에게 향하자, 단유가 입을 열었다.

“나보다 돈 많은 사람?”

셋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소한(?) 겨룸이 끝나고 곧 식사를 시작했다. 명수는 거의 집 밖에서 생활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한집에 사는 하은이나 상미, 단유도 서로의 일이 바쁘다 보니 마주 앉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외식 자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표팀?”

“응. 기술위원회에서 내 시합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

“이번에는 선발로 뛸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 워낙 나보다 잘하는 선배들이 많아서.”

“야,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냐? 내가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K리그는 꾸준히 모니터링 하는데, 너만한 선수 없어.”

명수가 상미를 흘겨보며 물었다.

“진짜 모니터링해?”

상미는 시선을 살짝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뭐, 정확히는 게임 내 선수 데이터로 보는 거지만, 그것도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거란 말이야.”

“나도 있어?”

“야, 너 인기 되게 좋아? 네 카드 뽑으려고 현질 한다는 애들도 있어.”

“K리그가 인기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

“뭐, 조금 오버하긴 했다. 그래도 K리그 선수들로 플레이하는 매니아도 없잖아 있어. 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

단유는 마침 화제가 돌아간 틈에 물었다.

“요즘 방송은 어때?”

“괜찮은 편이야. 조금 전에 말했잖아? 정산 받았다고. 조금씩 수익도 오르는 편인데, 이대로면 대기업 연봉 수준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상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명수가 입안에 든 밥알을 흘리며 감탄했다.

“오오, 대박인데?”

그런 명수를 흘겨 바라보며 입가를 닦아준 상미가 하은에게로 고갤 돌렸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선생님도 인터넷 쪽으로 가시는 게 어때요?”

“나? 내가 무슨.”

“왜요? 선생님 정도면 인기 되게 많을 거예요.”

“난 게임 못 해.”

“꼭 게임 아니더라도 돼요. 교육 방송 컨셉으로 해도 되고, 아니면 그냥 수다방 컨셉으로 해도 되고.”

“수다방?”

“컨셉이야 자유니까요. 사실 진행자가 말만 잘하고 재밌으면, 어떤 컨텐츠라도 먹힐 가능성이 있고, 먹히기만 하면 수익도 따라오니까요. 지금 막 생각난 건데, 교육 방송 컨셉으로 방송하면 학습지 광고도 붙지 않을까요? 그럼 광고비도 받을 수 있으니까 수익 시스템이 될 거 같은데요?”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얼굴로 조잘대는 상미를 명수가 제지했다.

“야, 선생님한테 바람 넣지 마. 그리고 솔직히 누가 교육방송 컨셉을 보냐? 공부를 할 거면, 차라리 EBS나 인강을 듣지.”

“재미있는 강의를 하는 거지. 역사 강의 같은 거 있잖아? 딱히 시험 공부용이 아니라 교양 강의처럼. 대신 재미있게 풀어나가야겠지만 말이야. 즉흥적인 재미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만 찾아 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이러다 단유까지 인터넷 방송 하자고 꼬시겠네.”

“뭐, 어때서? 솔직히 단유는 하기만 하면, 팬들도 금방 생길걸? 이미 우리 방에도 단유 팬들이 있는데.”

“정말?”

“팬까지는 아니라도 단유랑 같이 방송하자고 조르는 사람도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