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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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교수실에 도둑이 몰래 들어와 교수의 지갑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는 CCTV를 달도록 했다.
그리고 그 CCTV는 방학 기간인 오늘도 열심히 작동하고 있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돼요?”
“안 됩니다.”
경비업체 직원은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교수님은 안 계셨어요. 저만 거기 있었다고요. 제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려고 한다니까요?”
직원은 주아의 요구를 들으며 속으로 ‘뭐 이런 미친···’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조금 전 걸 확인하려는 것 뿐이라니까요?”
날도 더운데 왜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정보열람은 허락 없이 안 된다는 거 모르십니까? 정 보고 싶으시면 교수님께 허락을 받으세요.”
하지만 주아로서도 그 부분은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만약 자신이 진짜 폭행을 당했다면, 그 영상을 통해 확인하고 가해자를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 그게―주아를 미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인―‘헛것’이었다면 카메라에는 혼자 ‘지랄발광’하는 장면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까지는 ‘그 지랄’을 본 사람이 이름 모를 사내 한 명에 그치지만, 경 교수에게 알려지면 자신은 결코 이 대학에서 자리 붙이고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언덕 위 병원에 한 자리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저씨?”
“네?”
“제 얼굴 보세요? 누구한테 맞은 것 같죠?”
직원은 주아가 가리키는 볼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다른 쪽 볼에 비교해서 조금 더 부풀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뭔갈 많이 처먹고 부은 건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맞았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알아보려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왜 CCTV 영상으로 본단 말인가? 자기가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도 모른다고?
“···교수님이 때리신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요. 아무튼 좀 보면 될 거 아니에요?”
직원은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일단 제가 관리자 코드로 확인하고 말씀드리죠. 하지만 함께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주아도 한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10여 분 후, 직원이 영상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눈을 껌벅거리며 주아를 주시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예? 저 맞았어요?”
“···아니요.”
“···그럼요?”
“그···아, 이거···참 곤란한데···.”
주아의 눈치를 보며 입을 떼기 어려워하던 그는 결국 자신이 본 것을 말했다. 주아의 원맨쇼를.
주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괜찮으신 거 맞죠?”
경비는 마지막으로 확인사살을 했다. 결국 주아는 또 다른 목격자를 하나 더 만든 셈이 되었다.
떠나는 주아를 보며, 직원은 조금 전 봤던 영상을 떠올렸다. 사실 제일 이상한 건 역시 혼자 ‘쌩쇼’를 펼친 주아였지만, 또 하나 이상했던 것은 문가에 서 있던 남학생의 모습이었다. 멀찍이 서서 주아를 바라보면서도 미동도 않던 그 모습은 살짝 기이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비록 화면상에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진 않아 확신할 순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을 무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라면 그렇게 있었을까?’
그러나 앞서 말했듯,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고, 주아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기에 직원은 그에 대해 언급하기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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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단유는 그녀의 대접에 불만을 품고 해코지를 할 생각이 아니었다. 새벽의 사고 때, 그녀가 새벽에게 보였던 태도에 대한 응답 정도였다. 말 그대로 예의 없이 굴지 마, 라는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단유는 조금 지나쳤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 상황에 맞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가도 얼마 후에는 왜 그렇게 했을까, 라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단유도 그런 후회가 깃든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후회가 있을 때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우스갯소리처럼 사용하는 ‘인간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격언처럼, 다짐이 무의미하게 또 실수하고 후회를 반복한다.
그래도 최근에는 그런 일들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도서관 열람실에서 다른 학생에게 한마디 했던 일이나, 조금 전 무례함의 표본 같던 여자에게 했던 행동은 단유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면, 단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 그냥 눈 감고 모른 척하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단유의 일상에 크게 영향을 줄 사람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어쩌다 한 번 스쳐 지나가며 보기나 할까 싶은 사람들이었다.
태생이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것도 아닌데 예의범절을 퍼즐 피스 맞추듯 지켜야 한다는 사고를 가질 리 만무하고, 더욱이 상대에게 예의를 강요할 생각은 눈꼽 만큼도 갖지 않은 단유였다. 그러니 조금 전의 일은 스스로 돌이켜보건대 ‘오버’했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후회, 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이 전혀 거북하지 않았고, 오히려 후련했으니까.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새벽의 사고가 있었을 때 진작 이렇게 할 걸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다고 표현해야 정확할까?’
감성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하지만, 분명 이성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남들 다 하는 핑계처럼, 날이 더워서 살짝 정신줄을 놓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려 했던 지난 행동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개운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좋다. 그 와중에도 연구실 천장에 달려있던 CCTV를 확인하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더 생각을 전진시켜보면, 이건 ‘Give and Take’이다. 상대를 존중할 줄 모르면 자신도 존중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비단 쇼펜하우어의 말일 뿐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언제나 진리로 통용되던 원칙의 하나였다. 노나라 대부 양화(陽貨)의 계략에 공자가 똑같이 대응했던 것처럼, 혹은 반대로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나오는 의구(義狗)의 설화처럼, 사람들은 주는 만큼 받는 것, 당한 만큼 갚는 원리에 대해 본질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본질이 곡해될 때,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배은망덕, 적반하장과 같은 말처럼.
이러한 사고는 물리학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뉴턴의 제 3 법칙인 작용-반작용이 바로 그 원리다. 작용-반작용의 원리가 물리학적으로 규명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몸으로 깨닫고 있었던 셈이다. 도끼로 나무를 찍고, 삽으로 흙을 파고, 칼로 짐승을 내려칠 때 사람들은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며 이해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리’임을 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전부터 사람들이 몸으로 익히고 가슴으로 깨달았던 진리의 한 조각들일 것이다. 단지 현대 과학의 언어로 풀이하지 못했을 뿐이니, 이를 세밀히 살피고 연구하면 과학적 난제들의 실마리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동양적 신비주의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마저 불교나 도가적 시선으로 분석, 이해하려는 과학자들도 있다.
다시 작용―반작용의 원리로 돌아가면, 이는 미립자적 세계에도 통용된다. 입자물리학 표준모형(standard model)에서 페르미온과 보손이 어떻게 질량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할 때도 이 원칙, 정확히는 ‘대칭성’이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미립자 단위에서도 통용되는 상호작용, 그 원리를 인간이 무의식중에 체득하고 있다는 것을 논리적 과장이라고 포장하긴 힘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에서, 그리고 전 우주에서 이 상호작용은 쉬지 않고 일어나는 중이다.
불현듯 단유는 허기를 느꼈다. 정말로 배가 고파 느끼는 허기가 아니라, 긴 생각의 꼬리를 쫓던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의 끝을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의 허기였다. 단유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향해 걸어갔다. 이번에 도서관으로 갈 때는 아까처럼 돌아가지 않고, 학생회관을 지나가는 길을 이용했다.
****
늦은 시간 집에 돌아가니, 호빵이 헥헥거리며 마중 나왔다. 그런데 호빵 말고 다른 시커먼 게 옆에 붙어 있었다.
―왈왈!
이 시커먼 녀석은 호빵과 달리 요란스러웠다. 정말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 이상은 잘 짖지도 않는 호빵과 달리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짖었다. 몸집은 호빵보다 작은 데도 목청은 아주 우렁차다. 물론 그래봐야 강아지 수준이긴 하지만, 발랄하다는 점에서는 호빵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패티, 너 또 아무데나 오줌 싼 건 아니지?”
단유는 들어오자마자 거실 불을 켜고 거실을 둘러봤다. 다행히 눈에 보이는 건 없는데, 그래도 믿을 수 없어 거실과 주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싱크대 근처 어두운 곳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단유는 한숨을 쉬며 휴지로 흔적을 닦아낸 뒤, 두 개를 데리고 거실로 향했다.
그때 상미의 방문이 열리고 상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왔어?”
“응. 방송 중?”
“아니, 잠깐 쉬는 중이야. 패티 오줌 쌌어?”
단유의 손에 들린 휴지를 보며 물었다. ‘아까 거실 가운데 눈 건 닦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상미가 바로 패티를 데려온 장본인이었다.
한남동으로 이사 온 후, 상미는 호빵의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며 벼르다가 7월이 되어서야 개 한 마리를 입양해서 데리고 들어왔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다는데, 다행인건 생각보다 빨리 가족들과 친해졌다는 점이고, 불만은 오줌을 가릴 줄 모른다는 점이다.
“보통 유기견들은 새 주인을 만나도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린다던데 다행이잖아? 안 그래?”
패티는 시추 종이었는데 검은색과 흰색의 믹스견이었다. 다만 유달리 검은 부분이 많아 어두운 곳에서 보면 호빵과 달리 시커멓게만 보였다. 그리고 찾아본 바에 따르면 ‘온순하고, 덜 짖는 편’이라고 하던데 패티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잘 짖고 잘 뛰어다닌다. 호빵이 너무 얌전해서 더 활발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늘 쥐죽은 듯 조용하던 거실에 활기가 생겼다.
“너 얘 교육 안 시켜?”
“시켰는데 말을 잘 안 듣네. 어디 강아지 교육시키는 학원에라도 보내야 할까?”
말은 저렇게 해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이 집에서 강아지로 인해 더럽혀지는 집안 환경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유 밖에 없었으니까.
상미는 가끔 거실에 나와서 패티가 흘린 오줌이 있나 슬쩍 돌아보고 있으면 닦아주기라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예민하게 굴진 않았다. 그나마 강아지 밥 채워주고 제때 물 갈아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랄까?
상미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난 뒤, 단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호빵과 패티가 다가와 단유를 올려다본다. 그 두 녀석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막 껴안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날 패티는 천국과 지옥을 왕복했다. 과연 개에게도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싶지만, 패티는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단유가 도왔다. 거실 한쪽에 패드를 깔아두고, 패티를 지켜보다가 패드가 깔리지 않은 맨바닥에서 실례할라치면, 바닥에서 갑자기 무섭게 생긴 괴물들이 얼굴을 들이밀며 나타났다. 입을 쩍 벌리고,
―어흥!
하고 외치면 패티는 놀라서 달아나 숨기 바빴다. 그리고 다시 살피면 이미 그 장소에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눈치를 살피며 끙끙거리다 요의를 느끼고 자세를 잡는 순간, 다시 괴수가 나타나 눈알을 부라리며,
―어흥!
하고 외친다.
도망가고 숨고 도망가고 숨기를 반복하다, 패드 위에 자리를 잡으면 괴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위에서 참았던 요의를 해결하지만 걱정했던 괴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단유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간식을 주었다.
그 과정이 몇 시간에 걸쳐 반복되었고, 하은이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안 자고 뭐하니?”
“패티 소변 교육시키고 있어요.”
거실에서 왔다 갔다, 바닥을 킁킁대는 패티를 지켜보던 하은이 기지개를 켜며 방으로 돌아갔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마.”
“주무세요.”
처음에는 재밌다는 듯 함께 뛰어다니며 킁킁대던 호빵도 단유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패티의 원맨, 아니 원-도그 쇼를 흥미롭게 지켜보다 눈을 감았고, 단유는 패티가 스스로 패드 위에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