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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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뛰쳐나오며 가로등 아래 선 탓에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눈치가 선명하게 보인다. 감색 세미 정장을 입고 푸른 넥타이를 맨 그는, 불과 몇십 분 전 점잖은 미소로 상미에게 파이팅을 외치던 남자다.
가벼운 경고에 흥분해서 주먹을 휘둘렀던 사내는 자신의 공격이 쉽게 막히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고, 이내 경계 모드로 태도를 전환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뭔데 사람을 협박해? 스토킹? 당신 그거 모욕죄인거 알아 몰라!”
괜히 목소리를 높이는 건, 고작해야 센 척 해보려는 허세다. 그리고 그런 허세가 단유에게 먹힐 리 없었다.
단유는 입술을 굳게 닫은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사내의 얼굴에 긴장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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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 혼자 보내도 괜찮을까?”
상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명수 역시 미간을 좁히며 상미의 걱정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비록 단유가 마치 둘 만의 데이트를 위해 카드를 쥐어 보내긴 했지만, 그 행동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괜찮을···거야.”
명수는 단유를 믿었다. 섣불리 행동할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현명하기로는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친구,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이니 의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잠깐 여기 있을래? 내가 잠깐 갔다 올게.”
“같이 가.”
“너랑 같이 가면, 단유 혼자 거기 남은 이유가 없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명수 역시 혹시 모를 사건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단유의 배려 때문에 상미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냥 같이 가자.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 빠지면 돼.”
“야, 그게 말이냐? 너는?”
“난 고작 인터넷 방송이나 하는 스트리머고, 넌 나랑 급이 다르잖아?”
“이상한 말 하지마. 네가 위험해지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알았어, 니 마음 다 아니까 괜히 나설 생각하지 마. 너 잘못 되면 나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상미나 명수나 결국 서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그럼 단유는?
“가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도 없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더 빠를 거야.”
결국 명수가 결심을 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만 아니라면 나서지 않을게. 하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설 거야.”
친구가 위험에 빠졌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단유의 위험을 앞에 두고 미래를 보존할 마음은 없으니까.
“그건 네가 이해해줘.”
“알았어. 나도 단유가 위험해지는 건 원치 않아.”
두 사람은 발걸음을 돌려, 택시에서 내렸던 그 장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장소로 갔을 때, 단유나 단유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는데?”
“전화해 볼까?”
핸드폰을 들어 보이던 상미는, 그러나 통화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어둠에 가려 있던 거리 끝에서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벌써 밥 먹었을 리는 없는데?”
태연하게 말을 건네는 단유의 등장에 명수가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뭐가?”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별일 없었어.”
“···그럼 왜 우리 둘만 보낸 건데?”
“상미가 불안해하니까, 네가 달래주라고 보낸 거잖아.”
“···정말?”
“가자.”
단유는 명수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상미 역시도 흔들리는 시선으로 단유와 단유 너머의 거리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단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대고 두 사람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 맛은 괜찮아?”
“괜찮아. 맛은 보장할 수 있어.”
“네 입맛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너의 보장을 어떻게 신뢰할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선수단 사람들이 모두 맛있다고 그랬어. 자주 가는 단골이니까, 너도 좋아할 거야. 그리고 솔직히 니 입이나 내 입이나 거기서 거기 아냐?”
“하긴 그렇다.”
단유는 피식 웃었다. 명수가 단유의 표정을 살피며 몸을 살짝 기울여 어깨로 단유를 툭 쳤다.
“야, 난 보이지도 않아?”
단유와 명수가 고개를 돌리니, 삐친 척 시늉하는 상미가 멈춰 서 있었다. 둘은 상미를 사이에 두고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안도의 웃음이라기보다는 어색한 상황을 빨리 풀어버리려는 의지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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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와 명수가 돌아오기 5분 전.
사내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속을 들킨 것 같은 상황에 대한 당황과 그동안 공고히 쌓았던 사회적 위치가 무너저 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감정들을 느끼게 만든 주범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주범이 자신의 주먹을 힘들이지 않고 막아낸 뒤,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다가서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앞의 남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촉이 왔다. 상대와 자신 사이의 힘의 저울을 빠르게 측정하여 태도를 정하는 것은 사회 활동을 오래하며 체득한 생존 노하우다.
아니면 단지 어두운 길거리에, 자신보다 키도 크고 젊은 남자의 접근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거나.
그래서 사내는 단유의 접근에 맞춰 뒷걸음질 쳤다.
“뭐야, 오지 마.”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웠고, 사내의 뒷걸음질보다 단유의 접근이 더 빨랐으며, 단유의 손은 그보다 더 빨랐다.
와락 멱살을 움켜쥐는 단유의 행동에 남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단유의 얼굴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니,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새까만 눈동자가 사내의 눈을 파고 든다.
“또 다시 상미의 근처를 얼씬거리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이, 이 사람이! 당신, 나 협박하는 거야!”
“예, 협박입니다. 강도경 씨.”
“흡!”
사내는 숨이 덜컥 멈추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거지? 아까 팬미팅 때도 자신의 이름은 말한 적이 없는데?
“당신이 사는 곳, 당신의 직장, 당신의 부모.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한 모든 걸 밝히겠습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 내가 뭘 했다고!”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도경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리를 스쳐 가는 영상들. 과거 자신의 방에서 상미의 방송을 보며 사타구니를 긁던 자신의 모습, 후원금을 받고 좋아하던 상미의 모습에 심술 나서 썼던 채팅들.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드는 채팅과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구독과 후원금을 집어넣던 일. 자신의 후원금에 감격해마지않던 상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흥분에 빠졌던 그날의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알 리가 없잖아!’
“내가 모를 것 같나요?”
‘헉!’
도경은 심하게 놀라서 딸꾹질을 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도 몰랐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단 말인가.
“다시 한번 협박합니다만, 두 번 다시 상미 곁에 얼쩡거리지 마세요. 방송 보는 것까지는 안 말리지만, 방송을 보면서 쓸데 없이 자신을 노출하려 든다면, 그 순간 당신의 사회적 생명은 끝이 날 겁니다. 그렇게 만들 거예요.”
“즈, 증거 있어! 내가, 내가 해···.”
“자신 있으면, 해 보세요.”
“······.”
“사회적 생명 정도로 겁먹지 않겠다면, 당신의 생물학적 수명도 마침표를 찍게 해드리겠습니다. 당신 집 주소 쯤은 알고 있으니까.”
협박을 가하는 단유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단조로운 어투였다. 그래서 더 무겁고 두렵게 느껴졌다.
단유가 멱살을 풀었다. 그리고 등을 곧게 세우며 사내를 내려봤다.
“가세요.”
단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으며 사내는 힘겹게 뒷걸음질 치다 몸을 돌려 달아났다. 쫓아오지 않을 것도 알고, 뒤에서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도 알지만, 그런 이유를 막론하고 단유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멀어지려 하는 본능 같은 움직임이었다. 마치 맹수를 피하는 초식동물처럼 말이다.
사내가 다시 자신이 몸을 숨겼던 그 방향으로 달아나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단유는 뒤에서 다가오는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후.”
긴 호흡으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를 걱정하는 친구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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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최근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사람을 협박하거나 위협을 가할 때만 쓰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를 하려던 여인들에게도 그랬고, 방금 전 사내에게도 그랬다.
따지고 보자면, 단유의 환상 마법은 최초에는 이런 식이 아니었다. 단유가 보여주고 싶은 어떤 물체를 사람들에게 보고 있다는 착각을 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조금 더 발전하여 호빵에게도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응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여행을 하면서 환상 마법은 용례가 변화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변화보다 진화였다. ‘보이게’ 하는 것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습성이 있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하지만 그런 취사선택의 저변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힘도 있었다.
‘난 이런 걸 보고 싶지 않아.’
혹자는 그것을 Defense Mechanism, 방어 기제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및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욕망을 숨기고 속이며 대체하는 방식을 말한다.
단유의 환상 마법은 그런 방어 기제를 해제시켰다. 상대가 보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하는 법은, 그저 그들이 상상하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며 두려움에 떨도록 하였다.
지난 여행 동안, 단유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사람에 대한 깊은 고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고, 덕분에 마법도 성장하였다. 솔직히 그리 달가운 방식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단유는, 현대 국가의 안전 시스템을 신뢰했으며, 소소한 위기 속에서도 국가, 혹은 기관의 도움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게 되면서 ‘마법’이 필사의 순간에만 사용될 힘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너무나 자주 자구(自救)의 수단으로서 이용되어야 한다는 문제로 곤란할 지경이었다.
들키지 말아야 할 힘이기에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싶지만, 세상은 오히려 그런 힘을 사용하지 않고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단유에게 마법이 없었다면, 그는 더 많은 위기 속에서 무방비로 희생을 강요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얼마나 많은 약자들이 억울한 희생에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는가?
[오늘 새벽 2시경 한 30대 여성이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용의자는 여성의 전 남자 친구로, 오늘 아침 인근 피시방에서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흔한 뉴스. 이제는 이런 뉴스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움직여 식사를 이어나간다.
“상미야.”
“응?”
“넌 남자 친구 잘 만난 줄 알아.”
“무슨 소리야?”
“난, 니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해도 저렇게는 안 할 거니까.”
상미는 명수의 등을 찰지게 때렸다.
“아야!”
“야, 이 미친 놈아. 그게 여자 친구한테 할 소리냐?”
명수는 등이 따가워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 투덜거렸다.
“왜 그러냐? 그만큼 내가 널 사랑하니까, 헤어져도 다 이해한다는 거잖아?”
“그게 밥 먹으면서 할 소리냐? 아우, 진짜. 야. 내가 이런 놈하고 계속 사귀는 게 맞냐, 틀리냐?”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노 코멘트.”
“친구라고 감싸니?”
“너희 둘 사이에 끼기 싫다는 소리야.”
“하여튼, 이럴 땐 미꾸라지처럼 빠지지.”
미꾸라지가 아니라, 너희 둘 사이에 끼면 나도 바보 소리 들을까 봐, 라는 말은 차마 단유 입으로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