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99화 (599/956)

방심(3)-수정(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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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팬이에요.”

“고맙습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홉 명 정도의 사람들이 상미를 에워싸고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단유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데, 훈훈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 선물이요.”

“이런 건 부담스러운데.”

“저도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받아주세요. 그리고 방송 열심히 해주세요.”

“네, 더 열심히 할게요.”

상미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수줍은 미소로 팬이라고 찾아온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선물을 받아들었다.

몇몇 이들은 상미가 건물에 들어올 때부터 인사하고 싶었는데, 혹시 대회에 지장이 갈까 봐 지켜만 봤다고 이야기했다. 대회가 끝난 뒤에야 이렇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는 그들의 말에 상미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중 한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상미를 기다리는 단유를 눈짓하며 물었다.

“혹시···남자 친구예요?”

“아뇨. 그냥 친구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

“아, 그럼 혹시 지난번 방송 때 같이 하셨던 그 친구분이신가요?”

“방송 보셨어요?”

“네. 아, 그 에임 끝내주던 분 맞죠? 좀비 전사 세 마리를 한꺼번에 잡던 분?”

“맞아요.”

“아, 나도 기억난다. 내가 그때 계속해 달라고 채팅도 썼었는데.”

단 한 번의 출연이었지만 꽤 인상적인 플레이를 남겼던 탓에 단유도 시청자들로부터 호감을 끌어냈다.

“잘생기셨어요!”

여성 시청자는 실물로 본 단유의 모습에 멋있다며 발을 굴렀다.

“같이 계속 방송해주시면서 안 돼요? 그때 방송 되게 재밌었는데. 상미님도 그때 포텐 터지셨었잖아요?”

“그랬나요? 헤헤. 그런데 저 친구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같이 게임 할 시간이 없어요.”

“대학생인가요?”

“네.”

“아, 아쉽다. 같이 방송하면 좋은데.”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상미는 단유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낯가림이 심해서 이래요. 인사 좀 해줘. 우리 방송 시청자분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악수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남성 시청자와 악수를 나눴더니, 그 뒤로 다른 시청자들과도 악수를 해줘야 했다. 교복을 입고 있던 여학생은 ‘오빠 멋있어요’라는 말로 단유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회는 잘하셨어요?”

“아, 저희 일단 예선은 통과했어요.”

“와, 역시 상미님은 통과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이번 토요일에도 여기 오시겠네요?”

“아마도요?”

“다음에 저도 선물 가져올게요. 꼭 받아주세요.”

“아뇨, 아뇨. 그러지 마세요. 제 방송 잘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선물 같은 거 안 주셔도 돼요. 지금 이것도 되게 부담스러워요.”

상미는 양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들어 보이며 난색을 보였다.

“그냥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상미님 덕분에 요즘 얼마나 즐거운데요. 항상 즐겁게 방송해주시니까, 방송 보는 내내 웃음이 안 그쳐요.”

“저도요.”

모인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상미님은 왜 캠방 안 해요?”

“그래요, 언니. 언니 캠방 해도 될 거 같은데? 완전 외모 인정.”

“응, 안 해.”

교복녀의 말에 상미가 재치있게 대답하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상미님 캠방하면 지금 시청자의 두 배는 더 들어오겠는데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요. 그래도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까, 기다려주세요.”

“꼭 좀 해주세요. 꼭이요.”

“네.”

그렇게 짧은 팬미팅을 끝내고 상미와 단유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만나요.”

상미는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돌아섰다.

“우리 팬들 매너 너무 좋지 않아?”

“그래.”

단유는 짧게 대답했다. 단유의 표정을 살핀 상미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왜? 뭐 안 좋은 거라도 있어?”

단유는 대답 대신 뒤를 살폈다. 아직도 그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뭔가를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 아마도 같은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모였으니 낯가림보다 반가움이 더 큰 탓일 게다. 어쩌면 저들끼리 식사를 하러 간다거나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 아홉 중 한 사람은 눈에 밟힌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표정과 어투로 상미와 대화를 나눴지만, 그 사람은 눈빛이 달랐다.

“택시 탈까?”

“택시? 여기서 택시 타면 돈 많이 나올 건데? 왜? 뭐 안 좋은 거라도 있었어?”

상미를 볼 때는 그래도 나름 감정을 억제하는데, 유독 단유에게 시선이 스쳐 지나갈 때면 들끓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단유는 그렇게 느껴졌고, 그래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대신 악수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단유는 그 눈빛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단유는 도로변에 서서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으려 손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 이야기해 줄게.”

기분 좋은 만남을 끝내고 나온 마당에 갑자기 불안감이 드니 상미는 캐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도대체 뭐가? 진짜 뭐가 있는 거야?”

단유는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어쩌면 너를 쫓는다던 그 스토커 말이야.”

상미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니, 입을 열 수가 없었으리라.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는 상미에게서 두려움의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마침 택시가 잡혀서 단유는 상미를 먼저 태운 뒤 올라탔다.

상미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보였다.

“확실한 건 아냐.”

“확실하지 않다고?”

스토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상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문득, 단유는 상미가 지나치게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유는 섣불리 말했던 것을 자책하며 상미를 달랬다.

“응. 내 느낌일 뿐이니까. 아닐 수도 있어.”

“···나 지금 되게 무서워.”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몰라.”

두 팔을 감싸며 떠는 게 느껴져, 단유는 고개를 돌렸다. 평소의 상미를 생각하면, 지금 이런 반응은 단유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물론 상미가 외강내유형이라, 겉으로 강한 척하는 면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두려워할 줄은 몰랐던 게 실수다.

“아저씨.”

“네?”

“한남동 말고요···.”

택시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상미가 놀라는 눈이었지만, 단유는 의식하지 않았다.

곧 택시가 도착하고 미리 연락했던 인물이 나와 있음을 발견했다.

“명수야.”

“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상미랑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뜬금없이 전화가 와서는 ‘지금 나와, 너희 숙소 가는 중이야’라는 단유의 말에 허겁지겁 뛰쳐나온 명수였다. 단유는 상미를 흘깃 본 후 말했다.

“우리 아직 저녁 안 먹었는데.”

사정을 모르지만,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는 이야기임을 명수는 눈치챘다.

“아, 저녁? 잠시만 나 그냥 나와서 아무것도···.”

단유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여기 맛있는 데 있어?”

“응. 자주 가는 데 있어.”

단유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명수에게 주었다. 어리둥절 해하는 명수에게 ‘먼저 가 있어’라고 이야기한 뒤, 억지로 명수와 상미의 등을 밀었다.

둘이 멀어져가는 것을 확인 후, 단유는 뒤돌아섰다. 긴 6월의 낮도 이미 저물어 하늘은 새카맣게 물든 시간이었다. 주택가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주변에 켜진 가로등 불빛과 서울 유나이티드가 숙소로 쓰는 건물에서 나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거리를 밝힐만한 곳이 없는 곳이었다. 당연히 인적도 드물었다.

그리고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이 시간에 택시가 와서 섰다면, 당연히 의심해 봐야 한다. 게다가 그 차가 줄곧 자신들이 탄 택시를 쫓아왔다는 의심이 든다면 말이다.

“거기 계신 분.”

단유가 나직하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굳이 예민한 감각을 들이밀지 않아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단유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오세요.”

어둠 속에 숨어있던 사람은 단유의 시선이 정확히 자신을 가리키니 계속 있기가 어려웠다.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오니 가로등 불빛이 그를 반겼다.

“또 뵙네요.”

불과 몇 십분 전에 만나서 인사를 했던 사람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상미의 팬이라며 상미를 향해 방긋방긋 웃던 사람.

“안녕하세요.”

사내가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그도 난감할 테다. 이런 상황을 계산에 두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단유로서도 그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명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셈이긴 하나, 명수조차 위험에 빠뜨리긴 싫었다. 그러니,

‘내 손으로 처리해야지.’

단유는 그렇게 마음 먹었다.

“우연이네요.”

“네? 아, 네. 우연이에요.”

사내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이성적이지 못한 답변이니 아마도 꽤 당황한 모양이리라. 단유는 담담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왜 따라오셨죠?”

“예? 아, 아뇨. 그냥 우연히 여기 볼 일이 있···.”

“변명하지 마세요. 눈이 있으면 주위를 둘러보시고요.”

그제야 정신 차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혀를 차는 사내다.

사내는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 피시방 앞에서 모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모인 김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요’라고 제안했고,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모를 애가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분위기를 몰아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빠질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상미의 뒤를 훔쳐보던 중에 상미네가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 하는 것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전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래요? 되게 아쉬운데요?”

“어차피 토요일에 다시 또 만날 거잖아요? 그때 뵈면 되죠.”

주말이라도 사람마다 시간 여유가 다른 법이니, 이 중에는 토요일에 이곳에 못 올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 모인다 해도 지금처럼 함께 식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내는 그렇게 둘러댔다. 그로서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단유가 택시를 잡고 상미가 타는 것을 확인 후, 더 마음이 급해져 얼른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곧바로 나와 택시가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 후, 뒤따라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았다.

“저 택시, 8012 좀 따라가 주세요.”

“예?”

“중요한 일입니다.”

“아, 네.”

몸을 앞으로 쭉 빼고는 앞서가는 택시의 뒤꽁무니만 눈에 담으며 따라왔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나직하게 욕을 뱉으며, 몸을 기울여 택시의 향방을 쫓기 바빴다. 도착하고도 몸을 숨기고 상미의 뒤를 쫓기 바빴으니, 도착한 곳이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상황 파악이 잘 안 됐고, 그래서 단유의 물음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쳇. 그래서 뭐요?”

사내가 태도를 바꿨다.

“내가 뭐라도 했어요?”

단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여기 오기 3분여쯤 전에 큰길가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상한 오해 받기 싫고요, 진짜 우연히 온 겁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그래요.”

사내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단유가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놓아주면 이 남자는 다른 곳에서 또다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다.

“상미한테 관심 끊으세요.”

남자는 심각한 모욕을 받았다는 듯, 벌컥 화를 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관심을 끊으라니 말라니 하는 겁니까? 그리고 관심을 받기 싫었으면 애초에 방송을 하지 말든가?”

“범죄입니다.”

“범죄? 범죄요? 아놔. 되게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네. 이봐요, 당신이 그, 친구면 다야? 응?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단유에게 성큼 다가갔다.

“이런 식으로 쫓는 게 팬심이라도 됩니까?”

“팬심은 무슨. ···그리고 당신, 계속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데, 나 이래 봬도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 다니는 사람이거든? 당신, 내가 얼마나 버는 줄 알아?”

“돈···그래서 상미한테 지금껏 돈으로 마음을 얻으려 한 겁니까?”

“마음을 얻으려 한 게 아니라, 마음이 통한 거야! 당신이 나랑 그 여자 사이를 알아? 내가 그나마 지금까지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니까 그나마 돈으로라도 챙겨준 거야. 그 여자는 그걸 고마워했고! 아무것도 모르면 말을 하지 마!”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이런 스토킹이 있으면 신고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끔 하겠습니다.”

“뭐, 스토킹?”

사내는 단유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버럭했다.

“이 새끼가, 사람이 말이면 단 줄 아나!”

그리고 흥분을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단유는 그 주먹을 가볍게 틀어막았다. 덩치가 조금 있는 사내라 주먹이 가볍진 않았다. 하지만 싸움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지 주먹질이 서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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