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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582화 (582/956)

수리 수리 마수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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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느지막이 일어난 상미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창가로 향했다. 무심코 커튼을 걷으려다 단유가 당부한 내용이 생각나 멈칫했다. 암막 커튼은 그대로 두고, 창문만 살짝 열었더니 커튼이 바람에 살짝 나풀거렸다. 하지만 무거운 커튼을 젖힐 정도는 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릴 겸 욕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등학교 때 잠시 캠을 켜고 한 적이 있었는데, 외모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게임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칭찬하는 글들이라 듣기 좋을지는 몰라도,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게임에 집중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 일부러 캠을 치웠다.

가끔 인터넷에서 당시의 방송 영상을 캡쳐한 이미지가 보이긴 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조악한 화질의 영상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름 게임 실력도 인정받는 분위기고, 새로이 자신의 방송을 구독하는 시청자들의 요구도 꾸준히 늘고 있어 캠을 다시 설치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토커의 등장으로 그 결정은 무기한 보류되었고, 상미는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게임 방송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솔직히 캠을 켜고 방송하는 게 수익 면에서 도움이 되기는 한데, 그렇다고 위험을 노출한 채로 방송하고 싶진 않았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인터넷으로 새로운 방송 장비나 다른 생필품들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누구세요.”

“나.”

“아이 씨. 깜짝 놀랐잖아. 비밀번호도 알면서 왜 그래?”

“집주인 허락 없이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 되지.”

“괜찮아.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고 들어와.”

“됐고, 그냥 문이나 열어줘.”

잠시 후, 단유가 들어오더니 바로 창문을 닫았다. 나풀거리던 커튼이 생명을 잃고 축 처졌다.

“답답한데.”

“당분간은 창문 열지 마라니까.”

“정말 그놈의 스토커 때문에 제대로 살 수가 없네.”

구시렁대던 상미가 슬쩍 시선을 돌려 물었다.

“그냥 확 만나서 단도리 칠까?”

“만만한 사람이 아닐 거야.”

애초에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만, 고액의 후원금을 꾸준히 보낸다는 점에서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정말로 돈이 많거나, 둘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마련해서 너에게 쓰고 있거나.”

“범죄?”

“그렇지.”

어떤 식으로든 얽히지 않는 게 좋다. 그래서 후원금을 정산해도 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그 돈으로 피해를 봤다면 바로 돌려줄 수 있도록 하려고 말이다.

“너 방송 계속한다고 했지?”

스토커, 라는 놈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범죄의 목록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던 상미는 단유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그럼 내가 투자 좀 해도 될까?”

“투자?”

상미가 놀라서 단유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무슨 투자?”

“알아보니까, 요즘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들도 무슨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가서 관리를 받는다며?”

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유명 매니지먼트로부터 이야기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쪽과 관련하여 정보도 부족했거니와 무슨 매니지먼트의 관리를 받으며 방송을 할 정도는 아니라는 소심함 때문에 계약을 맺지 않은 상황이었다.

“매니지먼트와 관리를 하더라도 일정이나 혹은 유튜브 영상 관리 정도에서 도움을 받을 뿐, 특별히 시설 지원을 받거나 하는 건 아니랬어.”

더구나 지금과 같은 상황처럼, 법적인 지원을 받을 문제가 생겼을 때 매니지먼트에서 법무팀을 동원한다거나 하는 점은 없다. 채팅창에 악의적인 글이 올라온다 하더라도 대응의 책임을 지는 것은 방송인에게 있는 것이다. 대신 아는 변호사가 없다면, 소개는 해주겠단다.

“나도 대충은 알아봤어. 그런데 내가 하려는 건, 어쩌면 니가 방송에서 후원을 받는 거랑 비슷할 거야.”

“무슨?”

“방송을 하기에 충분한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비용이 들 거 아냐? 그 비용을 내가 부담해주겠다는 거지.”

“왜?”

“친구니까.”

“그건 말이 안 돼. 비록 내가 너랑 명수를 나의 가장 친구로 생각하고 있고, 너희 역시 날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알지만 말이야. 그래도 단지 친구란 이유로 그런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받는 건 아니라고 봐.”

“너 방송할 때 후원받잖아?”

“그거랑은 다르지. 그 사람들은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즐겨주는걸.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니까, 고맙게 받을 수 있어. 하지만 넌 내 방송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정심에 주겠다는 거잖아?”

“동정심?”

“아냐? 여기, 이렇게 좁은 원룸에서, 커튼도 마음대로 걷질 못하는 환경에서, 여자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불쌍해서 그러는 거잖아. 너 돈 잘 버는 거 나도 명수한테 대충 들었어. 그렇다고 해서 너한테서 아무런 이유 없이, 아니 친구라는 같잖은 핑계로 돈 받는 거? 나 싫어.”

“부담스러워?”

“당연하지! 반대로 생각해봐. 네가 돈을 안 벌고 있다는 가정에서, 네가 서울대를 다니고 있다지만, 그래도 대학 생활하는데 돈이 들 거 아냐? 그런데, 내가 그래도 방송 좀 하고, 그 방송으로 수익을 조금 거두는 형편이니까, 너한테 ‘친구니까’ 대학 생활하는데 보탬이 되라며 돈을 주면, 넌 넙죽 받을 수 있겠어?”

“못 받지.”

“그래! 그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이유 없는 돈을 받을 수 있어?”

“일단 오해는 풀고 보자.”

“무슨 오해?”

“첫째, 내가 동정 때문에 너한테 투자를 하겠다는 거 아냐. ‘후원’에 빗대긴 했지만, 그래도 ‘투자’야. 말인즉슨, 이 투자로 인해서 너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지.”

“그게 뭔데?”

“니가 행복하게 지내는 거.”

“······.”

“니가 말한 대로 넌 내 친구야. 알다시피 난 굉장히 교우 관계가 좁은 편이고, 그 이유는 내가 사교성이 별로 없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속을 털어 넣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탓이야. 바꿔 말하면, 너랑 지태, 채윤이 같은 친구들은 내가 평생을 믿을 수 있는 친구란 말이기도 해. 그런 친구를 위해서 내가, 너희의 행복을 위해 몇 푼 안 되는 돈을 쓸 수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한 투자 아닌가? 너희가 행복해서, 그래서 늘 웃을 수 있다면, 그런 친구를 둔 나도 기분이 좋으니까.”

“······.”

“그 점은 이해했으리라 보고,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할게. 두 번째는 너에게 없는 돈을 털어서 투자하려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겠는데, 나 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돈 많아.”

“방금 대사는 무슨 졸부가 하는 말 같다?”

“졸부 맞아.”

“로또라도 맞았어?”

“아니, 그런데 그 정도로 돈이 많긴 해.”

“어떻게?”

“그건 비밀. 아직 명수도 모르고, 선생님도 잘 모르는 일이니까.”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친구라고 해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정도는 있잖아? 그렇게 알아 둬.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투자하려는 건 나한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 너도 그냥 가볍게 받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뭔데?”

“이사 가자.”

단유는 하은에게 말했던 내용을 상미에게도 설명했다.

“우리나라 치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좋다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너한테 벌어진 문제를 생각하면, 이런 곳에서 널 혼자 두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고. 명수나 나나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선생님이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불안한 게 사실이야.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가는 김에 너도 같이 들어와서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하은의 말 상대도 되어주면 좋고, 휴식일에 집으로 찾아오는 명수가 있으니 만나기 쉽고, 특히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 편한 친구들이 한집에 사는 건.

“명수의 로망이기도 했고.”

“뭐야, 그게. 유치하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쁠 거 같진 않아. 알잖아? 나나 명수나 가족 없이 외롭게 자란 거.”

“···그래.”

그렇게 상미를 설득했다.

“근데 말이야, 진짜 너 돈 많아?”

“응.”

“얼마나?”

“그냥 사는 데 무리 없을 정도?”

“그건 너무 주관적이지 않아? 어떤 사람은 한 달에 100만 원으로 살면서도 무리가 없다고 여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1,000만 원으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사는 데 무리가 없다는 말은, 무엇을 사려고 마음먹더라도 돈이 모자라서 못 사지 않는다는 말이었어.”

“응?”

“Life 아니고 Buy. OK?”

“···재수 없어.”

****

마지막으로 단유는 명수에게 갔다. 명수가 시즌 중에 머무르는 숙소로 가서 불러냈다.

“들었어, 상미한테.”

“상미가 뭐라고 하든?”

“니가 돈 지랄했다던데?”

단유는 훗, 하고 코웃음을 쳤다.

“틀린 말은 아니네. 여튼, 상미나 선생님 문제도 있지만, 집은 좀 안전하고 안락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래서 좀 괜찮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는데, 괜찮지?”

“솔직히 말해줘?”

“응.”

“내 꿈이야.”

모두가 다 함께 웃으며 지내는 집.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함께 오순도순 지내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

“나도.”

“돈 좀 보태줄까?”

“그럴래?”

단유의 표정을 보니, 말과 달리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뭐해서 돈 번 거야?”

“돈 버는 거 별로 어렵지 않더라.”

“우와, 너 방금 되게 재수 없었어.”

“상미도 그러더라.”

“뭔데?”

“돈으로 돈을 버는 거지.”

“응?”

“주식 좀 했어.”

“헐.”

주식하면 쫄딱 망해서 한강 다리로 간다는 이야기만 들어왔던 명수는 단유의 말에 걱정이 먼저 들었다.

“계속할 건 아니지?”

“왜? 걱정돼서?”

“당연하지! 우리 팀 선배들 중에서도 주식 하다 돈 날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더라. 다들 나보고 주식 하지 말고 그냥 안전하게 은행에 돈 넣어두는 게 제일이래.”

“틀린 말은 아니지.”

“언제 했는데?”

“여행 다닐 때?”

“···언젠가는 내가 날 잡아서 네 여행 이야기 좀 자세히 들어야겠다.”

“별거 없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오래 이야기는 못 하겠다.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집은 니가 알아보고 살 거지?”

“그럴게.”

“진짜 필요 없어?”

“응. 괜찮아.”

“일단 알았어. 너, 이번 시즌 끝나고 좀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자. 그동안 우리 너무 이야기가 없었어.”

“그래. 알았어. 몸조심하고.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지난번에 건강 검진할 때 이상 없다고 하더라.”

“혹시라도 몸이 안 좋으면 말해.”

“그걸 왜 너한테 말해? 팀 닥터한테 말해야지.”

“누구한테든. 넌 몸이 전부니까.”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돼.”

명수는 손을 흔들며 뒤돌아섰다.

“후.”

일단 설명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다 했다. 약간의 속임수도 있고, 과장도 했지만, 어쨌든 원하는 데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돈 쓰는 것도 어렵네.’

비록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명수에게도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꽤 곤란한 문제였다. ‘주식’이라고 둘러대긴 했는데, ‘주식’만으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주식’을 한 것은 맞으니 거짓말도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니 짧은 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계획을 실행에 옮긴 단유는, ‘보석’을 만들어 거의 뿌리다시피 했다.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판매할 경우, 혹시라도 시선이 집중될 우려가 있다고 여겨, 여러 곳을 돌며 보석을 판매했다.

단유가 만든 보석은 순도가 매우 높고 흠결이 없는 제품이었다. 당연히 인기가 높고 가치를 대우받았다.

보석을 팔아 돈을 번 뒤, 단유는 시험적으로 주식을 해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많이 좋았다.

덕분에 허세를 떨어도 충분할 만큼의 재산이 모였다. 그리고 이제, 싱가포르의 한 은행에 잠들어있는 그 재산을 국내로 들여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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