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81화 (581/956)

수리 수리 마수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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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감해하는 상미의 모습에 새벽이 물었다.

“뭔데요?”

상미가 간단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니, 그런 놈이 다 있어요?”

말로만 듣던 스토킹, 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새벽이 깜짝 놀랐다. 단유가 말했다.

“딱히 네 신상에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면, 같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얘도 일단은 서울대에 들어올 만큼 똑똑한 친구니까.”

“일단은, 이란 수식어가 붙는군요, 저는.”

뭔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듯 가슴을 부여잡는 액션에 단유가 피식 웃었다. 이런 녀석이 ‘아웃사이더’라는 게 이해가 잘 안 될 정도다. 저렇게 넉살도 잘 떠는 녀석이. 그래놓고 자기 입으로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덕분에 상미도 새벽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만.”

상미는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열고 로그인을 한 후, 자신의 쪽지함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많네?”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한테서도 가끔 쪽지가 오니까.”

그 스토커에게서 온 쪽지는 지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혹시 필요한 증거가 될지도 몰라서 지우지 않았다고 했다.

새벽이 이를 갈았다.

“이런 새끼는 신고해서 콩밥 먹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용없댄다.”

경찰서에 가서 상담했던 이야기를 듣고 새벽은 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씩씩거렸다.

“꼭 일이 터지고 나야 움직일 모양인가 봐요? 무슨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스토킹이라는 행위에 대해 경찰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야.”

단유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예전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스토킹이라는 행위가 치명적인 폭력적 수단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각심은 높아진 상태야. 경찰들이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이 시대를 살고 있으니 모르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런데 왜 그래요? 형 말대로면 무슨 조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우리나라의 법이 그걸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거지. 경찰은 치안,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이고, 국가의 법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어.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활동할 수 있고, 그 권력을 사용할 수 있지. 말인즉슨, 법이 허용하지 않으면 경찰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야.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상미가 당한 상황을 스토킹으로 정의하고 피해자로서 상미를 특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

단유는 쪽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해외 유명 연예인의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연예인들 중 스토킹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 이들이 나오고 있어서 스토킹이라는 범죄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기는 해. 하지만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문제가 있어.”

“그럼,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새벽의 물음에 단유는 짧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그럼 무슨 방법이 있나요?”

지금 그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지.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런데 형은 이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그 말에 상미가 새벽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단유는 말이야. 모르는 게 없어.”

‘훗, 애송이’하고 코웃음을 짓는 상미가 어이없어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미한테 이야기 듣고 나서 조금 찾아본 거야.”

하지만 새벽의 말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공권력의 개입이 있기 어렵다. 법에 명시된 것처럼,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내는 경우라면 정보통신망 보호법에 의거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이 너무 광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어 도리어 경찰들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문제다.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순간, 피해자가 받을 심리적 고통과 충격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때문에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다소 편집증적으로 보일 만큼 주변을 샅샅이 살피고 경계했던 참이다. 상미에게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니까.

솔직히 말해서 상미가 쪽지와 캡쳐해 둔 대화들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스토킹이라고 100% 확신하지 않은 상태였다. 상미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고, 도가 지나친 장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은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그러나 제시된 증거들을 종합하여 추론하면, 상대는 분명 상미에게 비정상적 집착을 보였다.

“방송 때마다 나타나?”

“응. 그리고 자기가 보고 있다는 걸 티 내려고 후원금을 보내는데, 시스템상 후원금을 환불 할 수도 없어.”

마음 같아서는 지금까지 받은 후원금을 모두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끊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개인 거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계속 직접 만나자고만 하니까, 미치겠어.”

어떨 때는 방송을 방해할 정도로 후원금을 보내는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사정을 모르는 다른 시청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서 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단은 평상시처럼 방송하도록 해.”

“응?”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 너의 얼굴도, 주소도 모르듯이, 나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잖아.”

“방송 키면 그 사람이 또 올 텐데?”

“그때는 내가 나설게.”

“어떻게?”

“그건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단유의 말이니 일단은 믿겠노라 대답한 상미는 ‘그래도 지금 말고, 나중에 할게’라고 말을 이었다.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안 오르네.”

그새 커피를 모두 비운 새벽이 호기심에 물었다.

“근데 누나는 주로 어떤 게임 하세요?”

어제 이야기할 때는 게임을 주제로 한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이야기만 했었지, 정확히 어떤 게임을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배틀 로얄 시스템 게임인데, 요즘 많이 하잖아?”

“아, 그거요. 저도 한 번 해봤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한 번 어울리면서 해 봤다는 새벽은 상미의 랭킹을 물었고, 상미는 직접 랭킹 페이지를 열람해서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잘하시는 거죠?”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못하진 않지.”

“게임 잘하는 특별한 방법 같은 게 있어요?”

“솔직히 나는 노력파라서 그냥 많이 하다 보니까 실력이 는 거 같애. 오히려 저쪽이 재능 낭비류지.”

상미의 눈 흘김에 새벽의 시선이 단유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마우스로 에임 잡는 것도 어설프게 하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곧잘 하기 시작하더니 장거리 저격전에서는 아주 이거야.”

눈에 힘을 주고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며 입꼬리를 올리는 상미의 모습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그저 홀랑 정신이 나가지.”

“아, 그럴 게 아니라 말 나온 김에 같이 할까?”

“컴퓨터 하나뿐이잖아요.”

“요 앞에 피시방 있어. 시설이 좋아서 가끔 가는 곳이야.”

“너 컨디션 안 좋다며?”

“그러니까, 거기서 손 풀면서 컨디션 좀 올리려고. 컨디션 올라오면 그때 방송해서 샤샤 삭 하면 시청자들이 우와와 하는 거지.”

상미의 좋은 점은 나쁜 일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분 나쁘게 하는 말, 상황들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런 의지가 좋은 멘탈을 만들고 상미의 표정을 밝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명수의 여자 친구답다.

****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고 있던 술잔을 보다, 꿀꺽 들이켰다.

“크. …많이 힘들었겠다. 상미.”

“네. 원래 그런 거 잘 내색하는 편도 아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온 터라 쉽게 말하기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겠지.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당장 들어오라고 말 나올 테니까.”

세상엔 정신병자들이 너무나 많아, 라고 읊조리는 하은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하은은 단유의 손에서 병을 건네받아 단유에게도 한 잔 따랐다.

“경찰은?”

“낮에 가서 문의를 해 봤는데요, 직접적인 해를 가한 정황도 없고, 스토킹이라고 부를만한 조건인지도 불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류의 민원이 하루에도 몇 건씩 계속 나온대요. 그런데 대부분 스토킹이라기보다는 장난이 지나친 경우로 해석되고 실제로 해당 가해자를 붙잡아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식으로 나와서 어지간하면 합의를 보는 수준에서 그친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그렇겠네.”

“경찰의 출동, 수사도 비용이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어느 기관, 어느 소속을 막론하고 비용 절감은 필수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경찰마저 비용을 계산하고 움직여야 하는 단체가 되어버렸고, 위급 상황 시 출동해야 하는 소방서마저 비용의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현실의 문제를 그들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죠.”

“넌 너무 이성적인 거 같애. 이럴 때는 상미 편도 들어주고, 경찰 욕도 하고, 응? 그래 줘야 하는 거 아냐?”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미랑 있을 때는 그렇게 해줬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넌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아무튼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요.”

“음.”

“우리도 이사하는 게 어떨까요?”

뜻밖의 말에 하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사?”

“상미네 집을 둘러보다가 생각했던 건데요.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주위 환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나 변태 같은 사람들이 흑심을 품으면 위험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상미가 사는 집이 안 좋은 거랑 우리가 이사 가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던 거였는데, 오늘 상미 집을 보고 나니까 지금 우리 집도 썩 치안에 좋은 집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파트도 오래되었고, 생활 안전이란 측면에서 조금 취약한 점이 보인달까? 게다가 선생님 혼자 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많은데, 안심이 잘 안 되고요.”

“에이, 난 괜찮아.”

“제가 안 괜찮아요.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도 그렇고 명수도 참기 힘들 거예요.”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았는데, 다시 또 이사를 가자고? 됐어. 우린 이 정도로 만족해도 돼. 그리고 요즘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이사 힘들어.”

“저 돈 많아요.”

“됐네요. 네 돈으로 이사 가면 누가 좋아라 할 것 같아?”

단유가 번역해서 버는 돈을 대충 아는데, 지금까지 한 푼도 안 쓰고 모았다고 해도 넉넉하진 않을 것이다. 설령 돈이 된다고 해도, 그 돈은 향후에 단유 본인이 필요할 때 쓰는 게 좋다.

“돈 있다고 막 쓰는 거 안 좋아. 아껴.”

“선생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정도로 많아요.”

“너 얼마 전에 인세 받았다더니, 꽤 되나 보네? 그래도 함부로 쓰지 마. 나중에 너 장가가고 나서 독립할 때나 써. …아, 그러고 보니 이 집이 네 거였지? 내가 돈을 아껴 써야겠네. 에이, 참. 돈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야, 너 돈 많이 벌었으니까 오늘 술값은 네가 내라.”

“네, 제가 낼게요. 내는데 이사도 가요. 그리고 가는 김에 상미도 같이 살고.”

“상미도?”

“네.”

“그건 너무 오지랖 아니니? 만약에, 진짜로 명수랑 상미랑 헤어지면 어쩌려고? 에이, 그건 아니다. 남녀 사이 모르는 거라고, 헤어진 뒤에 상미가 같이 지내고 싶겠니?”

“물론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상미도 같이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이랑 상미랑 같이 지내면 조금 안심이 될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상미가 돈을 많이 벌어서 독립을 하겠다고 하면, 그때 나갈 수 있게 해줘도 되고요.”

“뭐야, 그럼 집에 세를 놓겠다고? 자취방처럼? 상미를 자취생으로 들이겠다고?”

“자취는 아니지만,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거죠. 들어올 땐 마음대로. 나갈 때도 마음대로.”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그래, 뭐 다 좋다 쳐. 그런데 상미가 들어온 대니? 상미한테 물어봤어?”

“좋은 핑계가 생겼으니까요.”

****

“너 방송 계속한다고 했지?”

“응.”

“그럼 내가 투자 좀 해도 될까?”

“투자?”

상미가 놀란 눈으로 단유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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