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79화 (579/956)

수리 수리 마수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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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걱정이 많았거든. 단유가 대학에 가서도 혼자 지내는 건 아닐까.”

이제 겨우 두 잔째인데 상미는 이미 만취한 사람마냥 흥을 주체하지 못해 깔깔대며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로 수다를 늘어놓았다. 사실 지금 있는 이 호프집이 워낙 시끄러워서 어지간한 목소리로는 들리지도 않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도 친구가 없었거든. 고작해야 나랑 다른 두 친구가 있었는데, 걔들 아니면 단유 얘는 완전히 혼자였을 거야.”

과장에 과장을 보태 하는 말이지만, 단유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혼자였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단유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미나 지태, 채윤과 같은 친구들의 존재를 거북하게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있었기에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니까.

“아까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시끄러운 곳에서 들었던 걸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벽의 물음에 상미가 깜빡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치. 정말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 이런 애를 좋아하는 애도 특이 취향의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중의 한 사람이 자신이었단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아무튼, 네가 단유 곁에서 많이 좀 도와줘.”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할 거 같은데.”

“그래, 그래.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고. 그게 동기잖아?”

“아, 네.”

상미가 건네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기 바쁜 새벽이다. 단유는 곁에서 사이다나 시켜놓고 조금씩 홀짝댈 뿐이기에 상미의 술을 받아줄 사람은 결국 새벽뿐이다.

“너도 전교 1등하고 그랬어?”

“네? 뭐, 한 번 했었죠.”

“한 번? 그런데 서울대 들어간 거야?”

사실 서울대에 입학한 아이들 중 전교 1등을 한 번도 못해본 사람도 없진 않다. 서울대 입학 정원은 전국 고등학교 숫자보다 많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새벽처럼 전교 1등을 한 번 경험해봤다는 경우는 그리 드문 케이스는 아니다. 오히려 흔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단유 형처럼 ‘전국 1등’이 희귀한 경우죠.”

“그거야, 뭐···.”

“그리고 저는 사실 운이 좋았어요. 모의고사에서도 받지 못했던 점수를 수능에서 받았으니까요.”

“오오. 찍었던 게 다 맞고 그런 거야?”

“그런 점도 있었죠?”

“실전형이네. 멋있다!”

그러면서 다시 잔을 높이 드는 상미다.

조금만 마시고 간다던 상미와 새벽은 엉덩이를 뗄 줄 몰랐다. 수다 본능이 되살아난 새벽과 흥에 취한 상미가 죽이 맞아서는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화의 소재는 주로 단유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의 교차점이 단유다보니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것을 듣는 단유로서는 조금 불편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내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어?”

단유의 소소한 항의는 일말의 합의도 없이 묵살 당했다.

“누나는 단유 형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요.”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했었지? 기억이 안 나네. 내가 한 이야기 중에 어떤 이야기가 그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 설명해줄래?”

“푸하하. 누나 너무 재밌어요.”

“인터넷 방송을 하다 보니 이런 쓰잘데기 없는 스킬만 늘었나 봐.”

단유는 사이다를 한 병 더 시켰다.

“되게 외로웠겠구나.”

“솔직히 처음 한 달 동안은 많이 어려웠죠. 그나마 단유 형을 만나면서 겨우 서울생활이 재밌어진 거 같아요. 이렇게 누나를 보게 된 것도 단유 형 덕분이잖아요. 제가 누구한테 쉽게 말을 붙이는 성격도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요.”

응? 단유는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새벽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같아 보여. 그래서 아까 처음 만났을 때 과묵했던 거지?”

응?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궁금하다는 얼굴로 상미를 바라보았다.

“그런 면도 있었죠. 헤헤.”

“그럼 짠.”

단유는 손을 들고 점원을 불러 안주를 더 시킨 뒤, 남은 사이다를 털어 넣었다. 밍밍한 맛이 나는 이유는 뭘까.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술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호프집을 나와 걷던 중에 명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미가 MVP 축하한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억지로 막은 뒤, 전화기를 뺐었다.

“월요일에 온다고?”

―응. 그날 병원도 좀 가야 하고, 간 김에 집에 잠시 들리려고.

“병원은 왜? 아까 보니까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이던데?”

―그냥 정기 검진이야. 아무튼, 너 월요일에 바빠?

“3시면 수업은 다 끝나.”

―됐네. 그럼 내가 오전에 병원 갔다 와서 너한테로 갈게.

“그래. 그럼 와서 전화해.”

―오케이. 아, 상미 걔는 네가 잘 좀 데려다줘.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남았는지, 새벽과 키득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상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얘 원래 이렇게 술 마시냐?”

―네가 같이 있으니까 편해서 그런 걸 거야. 원래 술 잘 안 마셔.

“그래도 정말,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크하하. 단유 너 되게 고생했나 보구나?

“됐다. 역시 상미는 나랑 잘 안 맞아.”

―나랑 잘 맞으니까 문제없어.

“알았다. 늦었는데 얼른 자라. 내일 경기도 나가야지.”

―오케이. 그럼 월요일에 보자.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니, 상미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단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 나랑 잘 안 맞아?”

“···농담이지.”

상미가 와락 달려드는 순간, 오른손을 뻗어 전진해오는 그녀의 이마를 막았다.

“아야!”

“미안.”

주저앉은 상미를 일으켜 세운 후, 조금 떨어진 곳에서 키득거리는 새벽에게 물었다.

“혼자 갈 수 있지?”

“아, 네. 물론이죠.”

“자.”

“아뇨, 괜찮아요. 저 돈 있어요.”

“아냐.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받아. 택시 타고 가.”

“정말 괜찮아요.”

“내 마음 편하자고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라.”

단호한 단유의 말에 새벽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받으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형 말은 거부할 수가 없네.”

새벽의 손에 지폐를 쥐여주고 나서 단유는 상미의 팔을 어깨에 걸었다.

“난 이거 좀 치우고 올게.”

“뭐?”

날카로운 상미의 목소리는 가볍게 씹었다.

****

상미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숙취 음료를 사서 건넸다.

“나 많이 안 마셨어.”

“알아. 그래도 마셔.”

“고마워.”

마시기 편하게 뚜껑까지 따 놓은 터였다. 상미는 한 번에 드링크를 비운 후, 다시 단유에게 건넸다. 단유는 빈 병을 받아 편의점 안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왔다.

“아, 좋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뻗고 고개를 든 상미의 시선이 밤하늘을 향했다. 컴컴한 밤하늘에는 조그만 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밤이란.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어.”

5월의 밤은 적당히 서늘하다. 하지만 찬바람을 계속 쐬면 좋지 않으니까.

“그래.”

새벽과 있을 때는 그래도 제대로 걷는 듯싶었는데, 뒤늦게 술이 올라오는 모양인지 혼자 일어서는데도 비틀거린다. 단유는 상미의 팔을 다시 어깨에 걸고 걸었다.

작은 원룸의 문을 열고 들어선 뒤, 불을 켰다.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며 단유는 한숨을 쉬었다. 상미는 단유에게서 벗어나 비틀대며 걷다가 침대 위에 풀썩 엎어졌다. 거친 숨소리가 이불 위로 쏟아진다.

“치우고 좀 살아.”

“응.”

“갈게.”

“···단유야.”

문고리를 잡았던 단유는 고개를 돌렸다. 단유를 불렀던 상미가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나···계속할 수 있을까?”

단유는 상미의 말이 경기장에서 자신에게 털어놓았던 고민의 연장임을 알아차렸다.

****

“나, 요즘 방송하기가 조금 겁나.”

솔직히 말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누구보다 게임을 좋아하고, 또 방송을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며 소통하던 것을 좋아하던 상미였기 때문이다.

“왜?”

상미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꺼낸 말은 ‘스토커’였다.

“방송 초기에는 채팅창에 되게 안 좋은 말들이 많았어. 인신공격성 발언도 많았고, 입에 올리기도 더러운 말들도 계속 올라오고.”

채팅창 분위기가 방송 전반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가차 없이 밴(ban)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얼마나 이상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던가.

“알다시피 내가 멘탈은 좋은 편이잖아? 그래서 꾹 참기도 했어. 참을 만하기도 했고.”

때로는 밴 하기도 애매하게 자신의 실력을 꼬집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불편하지만, 그저 인내하고 자신을 채찍질하여 그런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악의적인 채팅이 있는가 하면 응원의 목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자신감도 얻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었어.”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아이디만큼은 기억한다. 방송 초기부터 자신을 응원해 주었고, 때로는 후원도 해주었다. 그래서 고마워했고, 채팅창에 나타나면 먼저 아이디를 읽어주고 반겨주었다.

“그런데 개인 쪽지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

처음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방송 잘 보고 있다, 열심히 해 달라,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뭐 이런 말들이었고 그 정도야 자신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종종 하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감사의 뜻으로 답장을 보내는 정도에서 끝날 거라 생각했고.

그런데 어느 날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죄송한데, 아직 정모 계획은 없어요.

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방송 중에 30만 원의 후원금이 터졌다. 동시에 쪽지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한 번 만나 주시죠?

만약 채팅창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면 적당히 제재를 가하고 말 텐데, 개인 쪽지로 연락이 오니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 채팅창에서 그 사람을 밴(ban) 하려니, 사람들은 30만 원씩이나 후원해 준 사람을 왜 제재하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후원과 쪽지가 며칠에 걸쳐 이어졌다. 후원금은 부담스럽게 만들었고, 쪽지의 내용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제가 거기로 갈게요.

―쪽지 대답해줘요.

―남자친구 있어요?

―만족해요?

―저 잘하는데.

결국 그의 아이디를 차단했다. 그러나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어느 날, 또다시 쪽지가 왔다. 이를 악물고 쪽지를 확인하는데,

―너희 집 앞이야.

너무 놀란 상미가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후, 혹시 몰라 커튼까지 쳤다. 저도 모르게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다시 쪽지가 왔다.

―놀랐어? 농담이야. 그러니까 그냥 얼굴 한번 보자고.

섬뜩한 느낌에 상미는 계속 방송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뒤로 계속 그러는데, 너무 힘들고 무서운데, 경찰에서는 특별히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쪽지의 내용도 신변의 위협을 가하려는 협박성 문자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네.”

상미의 고민 상담은 맥주를 사 들고 온 새벽이 등장하면서 멈췄다. 그리고 지금, 상미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단유를 바라보았다.

“나 어떻게 해?”

누군가에게는 그게 뭐, 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심정적으로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유는 상미를 알고 지낸 지 오래됐다. 상미가 단유가 어떤 성격이고, 성향이 어떠한가를 잘 알듯이, 단유도 상미를 잘 안다.

그래서 상미가 이런 문제로 고통받을 수 있음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단유 본인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상미에게는 꽤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쁜 남자친구에게는 차마 걱정할까 봐 말을 못했다. 단유에게도 사실 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단유가 먼저 자신의 기색을 읽고 먼저 물어봐 줬기에 털어놓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단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조그만 기대를 살짝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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