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거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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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굳어진 두 여인을 보며 단유가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가정이죠? 만약 제가 당신들을 유혹하는 악마라면, 이 보석과 금괴들은 가짜겠죠? 그리고 만약 제가 악마가 아니라면, 이 보석과 금괴들은 진짜겠죠?”
두 여인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으로 단유를 바라보고 단유의 발밑에 흩어진 반짝이는 보석과 가지런히 놓인 금괴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악마인가요?”
그가 악마라면, 그래서 지금 보고 있는 이 모든 게 환상이라면 육두문자를 섞어 썩 꺼지라고 소리쳐야 한다. 조금 전까지 신실(信實)함에 대한 간증을 열심히 했었던 본인들 아닌가?
하지만 그가 진짜 악마라면, 자신들은 악마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로 전도를 한 멍청이들이 된다.
“아니면 넘치는 재물들을 주체 못 해 바닥에 흘리고 다녀도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정신병자일까요?”
마음으로는 외치고 싶다.
‘당신은 정신병자야!’
사탄, 마귀, 악마 같은 초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그냥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간이라고. 그런 인간이 어떻게 저런 재화들을 품고 다니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그저 그 재화들이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팔아서 돈이 되고, 그 돈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당신이 미친놈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일까.
“내가 악마가 아니라면, 당신들에게 이것들을 드리죠.”
뭐?
“조건 없이.”
싱긋 웃으며 빈 가방을 금괴 옆에 내려놓는 단유를 보며 외치고 싶다. 악마!
그리고 바란다. 부디 악마가 아니기를.
“······.”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그냥 당신은 악마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뒤 그가 던져 놓은 가방 속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주워 담아 이 자리를 빠르게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마침 주위에 사람도 없으니까, 그가 허락할 때 빨리 수습하고 떠나면 된다.
보석이나 금괴의 시세도 모르지만, 저 정도라면 적지 않은 돈이 될 것이다. 그것들을 싸 들고 해외의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평생을 여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되잖아?’
어린 날, 돈이 없어서 고생했던 날들에 대한 트라우마와 못된 사람들 때문에 고생했던 자신의 불쌍한 삶에 대한 신의 보상이 아닐까?
악마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 천사가 아닐까?
‘당신은 천사였던 거야! 그렇지?’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단어가 목구멍에 콱, 하고 막히는 이유는 바로 옆에 선 동료 때문이다. ‘자매님’이라고 부르며 서로를 존중하던 사이지만, 지금은 누가 먼저 변절할 것인지를 두고 겨룬다. 그런 눈치 때문에 둘 다 쉽게 입을 떼지 않는다.
‘신이라고? 천국이라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막말로 앞에 놓인 것들은 둘이서 나눠 써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쉽게 나눠 쓰자고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껏 주장한 믿음에 대한 간증 때문이다.
‘저 년, 설마 지가 먼저 배신 때리는 건 아니겠지?’
‘고생은 내가 다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엔 니가 먼저 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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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죠?”
“뭐가?”
“저 사람들이요.”
새벽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길 위에 우두커니 서서, 입을 꾹 다물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을 흘깃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밥 사준다니 어쩐다니 하더니 갑자기 플러그 뽑힌 인형처럼 멍해져서는···.”
“이유가 있겠지.”
덤덤한 단유의 말에도 새벽은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119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럼 하든지.”
단유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앞만 보며 걸었다.
“형은 아무렇지 않아요?”
“응.”
조금의 틈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새벽이 새삼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형이 무서워지려 그래.”
새벽이 어설픈 3류 코미디언의 그것처럼 과장되게 놀라는 표정을 짓자, 단유가 화제를 돌렸다.
“방언 기도라고 알아?”
“네? 그게 뭔데요?”
“말로서 기도하는 건 육(肉)의 기도기 때문에 사탄의 방해를 받을 수 있지만, 방언 기도는 영(靈)의 기도라서 무슨 소리인지 몰라 방해할 수 없다고 해.”
“그게 말이 돼요?”
“사탄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하기 때문에, 그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며 동시에 신에게 자신의 믿음을 간증하는 유효한 방법이란 거지.”
“형, 신자였어요?”
“아니.”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그냥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알게 된 거야.”
이 형은 정말 별걸 다 아네, 라는 눈으로 보다 물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저분들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예요?”
“방언 기도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돼?”
“솔직히, 아니요.”
“그런거야.”
“네?”
“저들의 신앙과 양식을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야. 네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저 행동도 어쩌면 저들에게 중요한 의식인지도 모르잖아?”
보이는 것 이상으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으니, 중요한 의식이긴 했다.
“뭔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물론 내 말이 무조건 맞다는 건 아냐. 너도 어쨌든 물리학도잖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해.”
“아, 몰라. 머리가 갑자기 굳어버리는 느낌이에요.”
“배고파서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오늘 학식 메뉴 때문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뭐였는데?”
“왕돈까스에 매운 삼겹이요.”
“좋네. 가자.”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뒤를 돌아보는 새벽에게, 저들이 진심으로 마음속 미혹을 극복하게 되면, 알아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저들이 저들 마음속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 그리하여 그 진실과 맞닥뜨려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그들의 흔들림 없는 신앙은 존경해 마지않아야 하리란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제안했다.
“축구 보러 갈래?”
“축구요?”
“상암 월드컵 경기장 보고 싶다며?”
새벽은 흔쾌히 콜을 외쳤다.
****
새벽은 축구를 잘 모른다고 했다. 고작해야 국가대표 경기만 TV로 몇 번 보는 정도였다고 했다.
“우와! 엄청 넓은데요?”
지하철역을 나와 경기장을 향해 가는 동안, 경기장 주변에 조성된 넓은 공원을 보며 새벽이 뱉은 감탄이었다.
“경기가 없을 때도 여기 와서 산책하거나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대.”
“그럴 만도 하겠는데요?”
석양이 지며 붉은 주단을 드리운 공원을 정답게 걷는 커플들과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새벽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갑자기 공허해지네요.”
“공허?”
“왜 이곳을 형과 와야 했던 걸까요?”
그런 생각할 줄 아는 녀석이 극장엘 가자고 했단 말인가?
경기장 안에 발을 들이니, 새벽의 공허함은 함성에 묻혀 사라진 듯 보였다. 연신 탄성을 질러대며 주변을 둘러보던 새벽이 말했다.
“와, 축구 보러 오는 사람 되게 많네요? 우리나라 축구 되게 인기 없다고 들었는데.”
6만 6천여 석의 경기장에 반도 차지 않았지만, 서포터즈 석에 앉은 팬들의 우렁찬 응원 소리는 경기장을 꽉 채우고도 남았고, 새벽은 그 함성에 압도된 듯 놀란 눈을 했다.
“뭐 먹을래?”
“뭐 있는데요? 아니, 계세요. 표도 사주셨는데, 먹는 건 제가 살게요.”
“괜찮아. 그 정도는.”
“아뇨, 제가 살게요.”
“됐어. 정 그러면 내일 점심 사면 돼. 치킨 괜찮아?”
“뭐든 잘 먹어요.”
“맥주는?”
“땡큐죠.”
단유는 매점으로 향했고, 자리에 남은 새벽은 골대 뒤편 구역에 자리한 붉은 서포터즈들의 북소리와 응원 구호를 들으며 경기장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관중들로 인해 주변이 어수선했지만, 그런 분위기마저도 왠지 새벽을 들뜨게 만들었다.
“저기요.”
갓 상경한 시골 총각처럼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에 누군가가 새벽을 불렀다.
“예?”
설마 나를 부른 건가, 싶은 마음에 고개를 돌렸던 새벽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와, 연예인을 보면 이런 기분이 들까?’
라는 생각이 절로 날만큼 눈부신 외모의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서 그녀를 올려다보는 것이 마치 큰 실례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혼자, 오신 건가요?”
응?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헌팅? 길거리에서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경계를 하게 되겠지만, 이렇게 예쁜 외모의 여인이 다가와 묻는다면, ‘알고 싶어 죽을 지경이에요!’라고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게 아니지.’
어쩌면 여기가 축구 경기장이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그러면 경계심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축구를 보면서 응원도 하는 장소 아닌가? 혼자 온 거 같은데, 혼자서 응원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응원하며 소리도 지르고 해야 신도 나고 그럴 것이다.
그런 이유일 게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다가와 ‘혼자 왔어요?’라고 묻는 여인의 행동에 스스럼없는 이유는.
‘축구장 만세!’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와준 단유에게도.
‘형님, 사랑합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과 질문과 해답들이 태풍처럼 몰아치느라 잠시 대답의 타이밍을 놓쳤다. 다행히 여인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이가 나타났다.
“나랑 왔어.”
익숙한 목소리에 새벽이 눈을 돌리니, 단유가 치킨이 담긴 박스와 종이컵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단유의 대답이 언뜻 기묘하게 들렸다.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난 또. 니가 다른 사람한테 표 주고 안 온 줄.”
“말했잖아. 중간고사 끝나서 한가하다고.”
오늘은 방송 안 하냐, 경기 보고 나서 하면 돼, 오랜만에 외출하는 건데 더 놀다 들어가지, 내 걱정해주는 거냐, 며 깔깔대는 여인의 모습에서 새벽은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본 단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쪽은 나랑 같은 학교 동급생.”
“와, 그럼 서울대생이네?”
손뼉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는 여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새벽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새벽이라고 합니다.”
“이름 멋지네요?”
“고, 고맙습니다.”
치킨을 내려놓은 단유가 피식 웃으며 새벽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이렇게 얼어있어? 쟤가 좀 어렵게 생긴 얼굴이긴 하지만.”
“야, 내가 뭐가 어렵게 생겨?”
“너 처음 보면 조금 사납게 보여.”
“말이면 단 줄 알아?”
“또, 성격 나온다.”
“아우. 오랜만에 본다고 좋아했더니, 이게 또 사람 속을 긁네?”
단유는 마저 소개를 했다.
“이쪽은 내 친구.”
“안녕하세요. 유상미라고 해요. 저 사나운 성격 아니거든요? 오해하지 마세요.”
“아, 네. 반갑습니다.”
도리어 얼굴을 붉히는 새벽의 모습에 상미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상미는 단유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단유가 가져온 맥주로 손을 뻗었다. 칙, 하고 탄산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종이컵에 콸콸 부어 꿀꺽 마시는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졌다.
“시원하다!”
콧잔등을 살짝 찌푸린 상미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 마시냐?”
“너 안 마시잖아?”
“얘도 있잖아.”
“아, 그렇네. 죄송해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얘가 속만 긁지 않았어도 그러질 않았을 건데. 짠 해요.”
“아, 네.”
새벽이 서둘러 캔을 따고 손에 들었다.
“···형은요? 따드릴까요?”
“얘는 술 안 마셔요. 그치?”
“응. 난 이거.”
단유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오렌지 맛 음료를 꺼내 들었다.
“얘는 애도 아니고 맨날 이런 거만 마셔.”
“축구 볼 때는 이게 좋아.”
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종이컵을 들었다.
“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건배!”
“건, 건배.”
단유도 병을 들어 어울려 주었다.
단유는 왼쪽에 앉은 상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유난히 조용한 새벽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힐끔 쳐다보다 시선이 마주치자 새벽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새삼 새벽이 본인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수다쟁이 본능만 따지면 하은을 능가할 정도인 새벽인데 말이다.
“아, 그게 아니고요.”
새벽은 단유의 어깨너머로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상미를 보고는 또 한 번 얼굴을 붉혔다.
“형 여자친구 분이요, 연예인이세요?”
“연예인?”
단유가 상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에 상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냐? 왜 그렇게 이상하게 봐?”
“이 얼굴이 연예인 할 얼굴이야?”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