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76화 (576/956)

진실의 거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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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 형.”

단유는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해요?”

백팩을 매고 설렁설렁 걸어오던 새벽이었다.

“수업 마쳤어?”

“네.”

19동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이었던 새벽은 단유의 옆에 선 낯선 두 여인을 보며 누구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물광 여인의 눈이 반짝였다. 새 물고기가 걸렸구나, 기뻐하는 조사(釣士)의 모습이다.

“저희는 수상한 사람 아니고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말하면 관심을 가지고 미끼를 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허술한 낚시질에 걸려들 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이곳에서 보기 힘들다.

“아! 그···.”

말로만 듣던 ‘길거리 전도’의 실체와 맞닥뜨린 새벽은 신기하단 듯이 두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형이 왜 여기에?’라는 눈빛을 보냈다. 자신이 아는 한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단유였으니까.

단유는 여태 들고 있던 설문지를 들어 보였다.

“설문하는 거 도와 달래서.”

아니, 그럼 난생 처음 보는 걸인이 찾아와 보증을 서달라고 하면 서줄 겁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을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갔다가 들어갔다.

물광 여인은 수만 가지 질문을 눈빛에 담아 보내는 새벽의 정신을 흩트려 놓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쪽 학생분은 신입생인가요?”

“네? 네.”

옳거니, 미소를 짓는 여인의 광대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잘됐네요.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랑 잠시 이야기 나누실래요?”

“아뇨, 전 괜찮아요.”

“시간 많이 뺏진 않을 거예요. 보니까 두 분은 절친한 사이신 거 같은데, 같이 잠시 이야기 좀 나누지 않으실래요? 아, 점심시간인데 혹시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저희 이제 밥 먹으러 갈 건데요.”

단유에게 밥 먹자고 말하려던 건 맞지만, 아직 의사를 물어보진 않은 상태다. 그래도 새벽은 두 사람이 이미 사범대 옆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할 것을 전제했다.

물광 여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단유의 덤덤한 얼굴을 일별하고, 꺼림칙하게 여기는 게 분명한 새벽을 완전히 포섭하기 위해서는 베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럼 저희랑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건 어떠세요? 저기 후문 쪽에 가면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이 있거든요. 물론 이곳 학생들이시니 잘 아시겠지만. 저희가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접대비를 조금 쓰는 한이 있더라도 두 사람을 앉혀야 이야기가 된다.

“아니, 그건 좀.”

불편한 표정의 새벽은 이런 대화를 딱 잘라 거절할 심성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새벽의 모습을 보며 물광 여인은 좀 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경계심을 깨려 노력했다.

“어려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저희가 억지로 뭘 하려는 건 아니에요. 여기 이쪽 분도 저희랑 아직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잖아요? 그쵸? 가서 식사하시면서 마저 이야기를 나누시는 건 어떠세요?”

이쪽도 놓치기 싫고 저쪽도 놓치기 싫다, 는 낚시꾼의 욕심이 말에 묻어났다. 그리고 낚시꾼을 돕던, 스키니 청바지가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두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퇴로를 막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들은 이런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확실하게 걸려든 두 물고기를 완전히 손에 넣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쯧.”

그때까지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단유가 혀를 찼다. 그 반응에 물광 여인과 스키니 청바지가 단유를 쳐다보았다. 단유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존중을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방해하고 싶진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설문이든, 전도든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방해는 안 할 겁니다.”

“네?”

“하지만, 분명 거부 의사를 밝힌 상대의 의지도 존중해주지 못하는 방식이라면, 저 역시 여러분의 방식을 계속 존중해주긴 어렵죠.”

단유의 말에 물광 여인은 손을 내저었다.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희는 좋은 의도로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좋아요.”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여러분들에게 좋은 의도로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무슨?”

단유는 머리 위로 손을 뻗고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두 여인이 단유의 뜻 모를 제스처에 의문을 품을 때, 단유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믿음과 진실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길거리 전도를 하면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만나본 경험이 있다. 때로는 역으로 자신들에게 종교를 전도하던 이도 있었다. 앞에 선 사내는, 비록 설문지에서 종교가 없다고 했지만, 완전히 믿을 순 없다. 애초에 크론바하((Cronbach) 알파값―설문의 신뢰도를 평가하기 위한 평가값―을 적용할 설문지도 아니었으니까.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를 옮겨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서로 오해가 조금 있잖아요? 후배분이랑 같이 자리를 옮겨서···.”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나요?”

“···당연하죠. 저희는 저희 하나님을 믿으며, 위대하신 선지자 엘리야의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수없이 되뇌고 머리에 새겼던 교리 내용이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쪽 분도 그런가요?”

지목당한 스키니 청바지도 입을 열었다.

“네. 저도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외모에서 떠올리기 힘든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목을 다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쇳소리가 심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여태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나 단유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왜 종교를 믿습니까?”

물광 여인은 물론이고, 스키니 청바지 여인도 단유의 질문에 계속 답을 해야 하는가를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들의 공고한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에 교화되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이 세상은 곧 멸망해요. 종말의 날이 다가와요. 그것은 위대한 선지자의 예언서에 기록된 사실이에요. 멸망의 날이 다가올 때까지도 믿음을 갖지 못한 이들, 거짓 믿음을 가진 이들은 모두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고통의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후회하며 살게 될 거예요. 저희는 그런 미래를 모르고 방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만이 종말의 날 구원받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겁니다.”

스키니 청바지가 그 말을 받아 내용을 덧붙였다.

“지금도 이 세상에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지, 아시나요? 그게 다 종말의 날이 다가오는 증거입니다. 아비가 딸을 강간하고, 어미가 아들을 목 졸라 죽이며, 자식들은 부모를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아요. 친구는 호시탐탐 사기를 칠 기회만을 엿보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다가와 폭력을 행사하는 게 이 세상입니다. 도덕과 정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게 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다시 물광 여인이 믿음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뽑아냈다.

“이 땅에는 사탄과 마귀들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끔, 서로를 저주하고 원망하게끔 술수를 쓰고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그런 사탄과 마귀를 제대로 구분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저희만이 그런 마귀들을 구분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침례를 받았거든요. 형제님도 침례를 받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되실 거예요.”

은근히 ‘형제’라는 표현으로 단유를 아우르는 물광 여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제님께서는 혹시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12월 25일은 거짓 신의 기념일이랍니다. 태양신의 기념일에 불과한데, 거짓 신을 믿는 이들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세뇌하여 만든 거예요. 거짓 선지자를 만들고, 거짓 예언을 따르게 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막은 거죠. 바로 악마들의 계략입니다.”

단유는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당신들은 착한 사람들입니까?”

“네?”

대놓고 착하냐고 물으면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착한 사람들이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착한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네, 착해요. 그러니까 형제님과 같이 순수하신 분들이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들이 길거리 전도를 하는 이유, 뭇 사람들의 멸시와 야유와 조롱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나가는 이유는 세상이 곧 멸망할 거라는 ‘진실’을 알기 때문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이타심’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쏟아냈다.

“악마의 유혹이란 건 무엇인가요?”

“세속적 욕심을 부추겨 눈 앞을 가리는 것을 말하죠. 돈, 권력, 명예, 이런 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사람은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이 땅에 붙들려 있는 거예요. 저속한 물욕의 유혹에 무릎을 꿇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형제님은 이 나라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이들만 들어간다는 서울대학교 학생이시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적인 성장은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 정진하여야만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도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이 지옥 같은 현세에서 아등바등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형제님도 고민 많이 하시죠? 공부 때문에,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혹시 가족 때문에, 친구 때문에 고민하시지 않으세요? 그런 고민들이 모두 영적 성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저희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답니다. 저희의 고민은 오로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랍니다.”

확실히 교리를 충실히 교육받은 이들이라 그런지 끊김 없이 서로의 말을 받아주며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당신 두 분은 마귀와 사탄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으로 성장한 신자들이며,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전도를 나선 착한 사람들이며, 세속적 욕망과 물욕에 관심이 없다는 거네요.”

죽 이어서 말하니 뭔가 장황한 느낌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요.”

“저흰 다른 사이비 종교처럼 재산을 바치라거나 하지도 않아요.”

“순수하게 영적인 도움을 주고자 할 뿐이죠.”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이의 표정을 모방하여 짓는 두 여인에게 단유가 말했다.

“어떠한 물욕도 없다?”

“네.”

“만약 두 분에게 누군가가 돈을 준다면, 그 돈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돈을요?”

“네.”

뭐지? 헌금 같은 걸 말하나?

“저희는 돈을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고요. 만약 돈이 생겨도 저희 교단에 바쳐서 교단의 이름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도록 할 것입니다.”

사실 개인 개인은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교단은 돈이 필요하다. 교단 운영비와 신자를 교육하는 교육비 등, 이 땅에서 교단을 계속 지키기 위한 최소한 비용은 드는 법이니까.

그건 다 이 땅의 법이 잘못된 탓이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자신들의 거룩한 사명도 악마들의 탄압 아래서 그 생명줄을 이어나가려면 최소한 그들의 논리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종말의 날, 모두 심판받을 것이다. 돈? 그들이 그 돈을 위해 희생했던 것은 모두 ‘그날’ 돌려받을 것이다. 그러니.

“저희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답니다.”

봐라, 너희들을 옥죄는 물질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물광 여인과 청바지 여인이 웃음을 지었다.

단유는 품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주머니 입구를 죄고 있던 줄을 풀고 그 안의 내용물을 손바닥 위에 부었다. 하얗고 반짝거리는 결정들. 여인들의 눈이 커진다. 쏟아지는 양이 많아질수록, 그래서 손바닥 위에 모두 담기 힘들 정도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면서 그녀들의 눈은 점점 더 커진다.

단유는 손바닥을 뒤집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반짝이는 그것들을 보며, 여인들은 ‘설마’라는 생각을 가졌다. 진짜라면 저렇게 다룰 리가 없다.

단유는 이어서 또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품속에 저런 걸 왜 품고 다니나, 하는 생각은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이어지질 못했다. 처음의 것보다 훨씬 크고 맑으며 영롱하고 아름답다. 차마 가짜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것이다. 아니 진짜라고 믿기가 힘든데, 힘들어도 믿고 싶어질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단유는 개중 가장 큰 덩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무려 검지 손가락 크기나 된다.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여인들은 침을 꿀꺽 삼킨다.

단유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마저 풀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가방을 열고, 손을 집어넣고 다시 빼낼 때 그의 손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괴가 들려있다. 금괴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가방에서 금괴를 꺼내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학생이라 무거운 책이 들어 있을 줄 알았더니, 금이 들어 있다?

금을 모두 꺼내 바닥에 늘어놓은 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단유가 고개를 들었다.

“원하신다면 모두 드리겠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여인들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실이 아닌 거 같은데, 현실이다. 꿈이 아니다.

말없이 서 있는 여인들에게 단유가 다시 물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단유가 무릎을 펴며 일어섰다.

“전, 악마일까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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