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2)
-------------- 568/952 --------------
“너 얼굴이 왜 그래?”
“얼굴?”
얼굴을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상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런 훈남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뭐야? 비쩍 골아가지고. 제대로 먹고 다니긴 했니?”
“명수도 그런 이야기를 하긴 하더라만. 내가 그렇게 많이 살이 빠졌나?”
나는 모르겠던데, 라고 중얼거리니 상미는 친구의 손목을 붙잡고 가까운 식당에 가서 뭐라도 먹여야겠다며 데려갔다.
가정식 식단을 파는 조그만 식당에 들어와 ‘이모’를 외치는 상미의 모습은 매우 익숙해 보였다.
“집에서는 밥을 잘 안 해 먹어서 나와서 먹는데, 집밥 생각 날 때마다 여기 와서 먹어.”
“너 예전에는 라면 잘 끓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요리 잘 하지 않았나?”
상미는 혀를 찼다.
“우선 이 세상에서 너보다 라면을 못 끓이는 사람은 없을 거란 이야기를 먼저 할게. 두 번째는 라면 끓이기가 요리 실력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거야.”
“라면 물 맞추는 것도 요리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곧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상미가 빠른 속도로 그릇을 비워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쩐지 나 사준다는 건 핑계고, 니가 배고파서 먹는 거 같다?”
“이리 메치나 저리 메치나 똑같잖아? 따지지 말고 먹어.”
식사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물었더니, 상미는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는 와중에 자신에 관해 짧게 털어놓았다. 대학을 들어갔지만, 본격적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면서 휴학을 한 이야기. 1년 정도를 고생하며 방송을 하다가 겨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방송을 위해 따로 독립해서 살면서도 방값 낼 정도의 수입을 얻으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명수는?”
상미는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서로 바쁘니까, 자주 보기 힘들고, 조금 오해도 생기는데 그거 가지고 다투는 일이 잦다 보니 그냥 헤어지게 된 거지.”
“완전히?”
되물으니 상미는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나다.
“고등학생일 때도 그러더니 니들은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그 말에 상미가 버럭했다.
“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고작 그걸 이해 못 해줘?”
“주말 데이트 약속 깬 거?”
“그것도 이야기하든? 아무튼, 남자애가 입이 가벼워. 그리고 솔직한 말로, 내가 밤낮 구분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걸 걔가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뻔히 알면서 말이야. 조금 늦었다고 그렇게 사람을 면박을 주나?”
이에 대해 명수는 ‘자기가 주말에 시간 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3년 만에 만난 친구를 앞에 두고 성토했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이러는 모습을 보니, 괜히 변함없는(?)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실실 웃음이 났다.
“너 돈 있어?”
식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려 하니, 상미가 붙잡았다.
“갑자기 돈은 왜? 빌려달라고?”
상미가 인상을 구기며 손가락질을 했다.
“너 거울도 안 보니? 솔직히 아까는 너무 배도 고프고, 너도 바쁘다고 해서 일단 식당에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 너랑 같이 다니는 게 되게 부끄러운 거 알아? 머리 자를 돈이 없었어? 어디 초원의 인디언들이랑 친구 하다 왔어? 웬만하면 머리 좀 자르고, 그 옷도 새로 갈아입어.”
“꾸질꾸질해?”
“아주 정확한 표현이네.”
옷을 들쳐 보이며 말했다.
“오래 입고 다닌 옷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알면 고쳐. ···혹시 제대로 씻지도 않고 다닌 건 아니지?”
“냄새나?”
“아니. 냄새는 안 나는데, 괜히 냄새나는 기분이야.”
“그렇겠지.”
“뭐?”
“아냐. 알았어. 아무튼 난 이만 가볼게. 너도 들어가.”
상미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완전히 돌아온 거야?”
“응.”
“어디 안 가고?”
“응.”
“···다시 봐서 정말 반갑다.”
“나도 반가워.”
입꼬리를 늘이며 웃었더니 상미가 말했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고.”
“나중에 명수랑 다 같이 보자.”
“그 자식이랑 헤어졌다니까?”
“그래, 알았어.”
“진짜야.”
“응, 그래.”
“진짜라니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돌아섰다.
****
원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하은이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당장 달려오라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돌렸다.
하은은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와 잔소리부터 늘어놓았다.
“도대체 뭘 하고 지냈길래 얼굴이 이래? 응?”
씁쓸한 웃음과 함께 잘 먹고 지냈다는 변명을 늘어놓아도 하은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디 아팠어? 혹시 위험한 곳에라도 갔던 거야?”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 지냈어요.”
“잘 지냈다는 애가 몰골이 왜 이래?”
“그렇지 않아도 명수랑 상미한테서 똑같은 이야기 듣고 오는 중이에요.”
“밥은?”
“상미가 사줬어요.”
단유는 하은의 손을 붙잡고 걱정 그만하셔도 된다고, 거꾸로 그녀를 위로해야 했다.
“여행은 다 한 거야?”
“네. 충분히 할 만큼 한 거 같아요, 일단은.”
“일단?”
“지금은 그래요. 나중에 다시 나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그래요.”
하은은 돌아온 탕아를 보듬는 엄마의 심정으로 단유의 머리와 어깨를 연신 쓸어내렸다.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된다는 하은에게 단유는 웃음과 함께 집에서 기다리겠노라고 말했다.
“얼굴 보니 안심이다.”
명수도 일 년에 몇 번 겨우 얼굴을 마주할 정도인 상황이다. 두 아이가 별 탈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이고, 자신이 늘 같은 자리에서 돌아올 그들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던 하은이었다.
비록 자신도 허락하고 보낸 단유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얼굴을 비추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그간 보이지 않는 쇳덩이가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집에 가 있을 거지?”
“가서 좀 씻고 쉬고 있을게요.”
“그래. 그렇게 해. 나도 끝나고 바로 갈게.”
“네.”
단유는 다시 한번 하은과 포옹을 하고는 돌아섰다.
“정 선생님, 누구예요?”
“가족이에요.”
“가족? 동생이에요?”
하은은 학원 문을 열고 나서는 단유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기도 하고 동생이기도 하고 그래요.”
동료 교사는 고개를 갸웃하다 말했다.
“뭐하는데요?”
길게 자라 치렁거리는 머리와 오래된 재킷, 낡은 청바지의 언밸런스는 둘째치고, 스쳐 가며 보았던 깊고 진한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백수네요.”
“네?”
****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자신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단유는 고개를 돌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이곳에 오기까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인들의 걱정과 우려를 사는 외관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정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콧김을 길게 뿜어낸 단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미용실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 좀 다듬은 뒤, 돌아가서 씻으면 될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올림머리를 한 20대 여성이 단유를 맞이했다. 저녁 시간을 조금 넘은 시간이 미용실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 자르실 건가요?”
“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실래요?”
“오래 기다려야 하나요?”
여성은 가게 안을 둘러본 뒤 대답했다.
“10분 정도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단유는 여성이 안내한 자리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이 앉아 있었다. 짧은 눈 맞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내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잡지책을 들추며 단유에 대한 신경을 끊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젊은 남자애가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를 출렁이며 등장하니 호기심에 바라보았다가 후줄근한 옷차림에 괴이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남자가 정상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시선을 피한 것이리라.
단유는 오랜만에 찾은 미용실의 분주한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는데, 여성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으니 옆에 있던 사람이 슬쩍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라 더 눈치가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니 괜히 신경 쓰이네.’
여행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더니, 더 신경이 쓰이는 기분이다. 6년 전에 샀던 핸드폰이라 꽤 구형이었던 데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서핑만 간간이 할 정도일 뿐이어서, 옆 사람이 하는 현란한 그래픽의 모바일 게임 같은 건 깔려 있지도 않았고, 애초에 핸드폰을 주물럭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취미도 없었다.
단유는 품에서 작은 포켓북을 꺼내 펼쳤다. 여행하는 동안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적은 책인데, 이제는 이것들을 구체화시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다양한 주제와 단상(斷想)들이 기입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정리할지를 골라볼 요량으로 페이지를 들췄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처음 여성이 말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단유가 포켓북을 재킷 안쪽에 집어넣고 일어서자, ‘옷은 이쪽에 맡겨주시겠어요’라고 물어왔다. 옷을 벗어 건넸더니 굉장히 조심스럽게 옷을 집는데, 손님의 옷이라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인지 아니면 더러운 것을 억지로 참으며 잡는 모습인지 헷갈렸지만 내버려 뒀다.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없었으니까.
안내받은 자리로 가서 앉으니 깔끔한 유니폼을 갖춰 입은 여성이 다가와 거울을 통해 시선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커트하실 건가요?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원하시는 스타일은 없으시고요?”
“네.”
“그럼 지금 스타일은 그대로 하시고요?”
“아뇨, 그냥 깔끔하게···.”
마침 앉은 자리 왼편에 모니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제목을 모르는 예능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과장된 몸짓과 리액션으로 주변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출연자들 중 한 명이 눈에 들어왔고, 단유는 손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저렇게 잘라주세요.”
딱히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말하기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편해서 가리켰는데, 미용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능숙하게 커트보를 둘러씌운 그녀는 옆에 세워둔 이동식 수납장에서 가위를 집었다. 단유는 적당히 알아서 해주겠거니 생각하며, 마침 시선이 간 김에 TV를 보기로 했다. 머리를 커트하는 동안 멍청하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보단 어딘가에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던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치한 TV였던 모양이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예능프로였는데 미용실 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그저 시선 둘 곳이 필요해 설치해둔 모니터에 불과했으니.
아까 봤었던 남자 외에도 여러 출연자들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입을 벌려 말하면 과장된 행동과 표정으로 리액션을 해주며 뭔가를 진행 중이었다.
‘음?’
한참을 보던 중에 게스트인지, 아니면 원래 있었는데 카메라에 안 잡혔던 모양인지 모르겠지만, 여성 출연자가 화면에 잡혔다. 그런데 그 여성 출연자가 눈에 익었다.
발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옆에 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손뼉도 치고, 춤도 추고, 입을 가리고 웃는 등 아주 바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단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미용사가 봤던 모양이다.
“저 연예인 좋아하세요?”
처음에는 자신에게 묻는 건지 몰라 단유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네?”
“저기, 저 여자. 이름이 뭐더라?”
“나윤이요.”
“아, 어, 맞나?”
미용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와중에도 손은 쉬지 않는 게, 역시 프로였다.
“본명인가 보죠?”
본명을 알 정도면, 정말 팬인가 보다, 라고 말을 건네는 미용사에게 단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요즘 저분 좋아하시는 남성 팬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노래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요?”
몰랐다는 듯한 단유의 대답에 미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아는 남자들도 저기 저분, 나오면 눈을 못 떼더라고요.”
단유가 아는 나윤은 저렇게 짙은 방송용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라 조금 낯설게 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예쁘다, 는 칭찬이 나올만한 외모였다.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고객 접대 차원에서 말을 건네는 건지, 미용사는 계속 이야기를 건넸고 단유는 적당히 맞장구도 쳐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나윤―아마 방송용 예명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미용사는 쉽게 기억해내지 못했다―이 속한 가디스R이 낸 싱글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인지도를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와 목소리가 예뻐서 여자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나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같아서 단유는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