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66화 (566/956)

콤플렉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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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시험 중간에 벌어진 일은 아니어서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종결되었다. 사이렌을 울리지 않은 순찰차가 교내에 들어왔고, 그때까지 ‘악마를 보았다’며 횡설수설하던 남자는 경찰과 함께 교내를 나가게 되었다.

점심시간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배를 가볍게라도 채우기 위해 단유는 미리 준비했던 샌드위치를 들고 나왔다. 교정의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순찰차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 그 남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되짚어보았다.

분명 처음의 의도는 그 남자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막아보겠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못하게 막아냈다.

그런데 만약 그 남자가 진심으로 자살을 원했다면, 과연 자신은 그 남자의 자살을 막을 명분이 있었을까? 단유는 그 점에 대해 명확하게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도덕적인 명분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 의지이며 선택인데 타인이 그것을 막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사회적으로 자살은 분명 ‘죄’라고 인식된다. 어떤 나라에서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사형을 시키기도 한다는데,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비슷하다. 비록 범죄라고 명시되지는 않지만, 병원이 아닌 경찰이 출동한 까닭이기도 할 테다.

샌드위치에 들어간 양상추의 아삭한 식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단유는 꼭꼭 씹으며 혀끝에서 터지는 단맛과 새콤한 맛을 즐겼다. 샌드위치를 마저 먹은 뒤, 입가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어차피 병원에 갔어야 할 사람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 남자는 정신 상담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 자살을 하려 했는지에 대한 상담과 더불어 환각 상태가 아닌지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그가 보았다고 주장할 환시(幻視) 증상은 그를 조현병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극단적인 행동을 결심할 정도였으니, 애꿎은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든 건 아니다. 어쩌면 귀신을 목격한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써는 그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 외에는 단유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기회를 준 것뿐이다.

이후로는 별 탈 없이 시험이 진행됐다. 빈 OMR 카드를 내고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았고, 듣기 평가를 할 때는 몇몇 반에서 소란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무사히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고사장을 나와 학교 앞으로 향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 입구에 몰려들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인파 속을 뚫고 어떻게 나가나 살짝 고민하던 찰나였다. 마침 전화벨이 울리기에 전화를 받았다.

“응.”

―끝났지?

“응.”

―잘 봤냐?

“응.”

―역시 너답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돼?”

보나 마나 명수는 상미랑 같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아마도 자신을 부르기 위해 전화를 했을 것이다. 명수는 웃으며 장소를 말한 뒤, 채윤이도 올 것이라고 전했다.

단유는 서둘러 그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진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요 며칠 느꼈던 복잡했던 심경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

수능이 끝나면 폭주하리라 생각했던 아이들은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했다. 어떤 이들은 수험생 할인 혜택을 써가며 놀기 바쁜데, 단유네 학교는 정상 수업을 진행한다며 아이들을 학교에 가둬 놓았다.

물론 학교 안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드물었다. 이미 모든 교과 과정을 끝낸 마당에 어떤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집에서 들고 온 노트북과 핸드폰, 혹은 게임기를 활용하여 시간을 보냈고, 체육 시간에는 농구나 축구 같은 종목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게임기 대신 문제집을 붙잡고 다시 열공모드에 들어가기도 했다.

“뭐하냐?”

“보면 모르냐.”

“공무원 시험 치게?”

“집에서 보라고 난리다.”

마치 하소연하는 어투지만, 본인도 생각이 없으면 전혀 하지 않을 공부다.

“그냥 한 번 경험 삼아 해 보는 거야.”

당장 시험을 치고 합격을 한다고 해도 대학 때문에 공무원 임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학생들도 일반 회사 취직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열을 올릴 정도라고 하는데, 미리 시험을 쳐 보고 만약 합격한다면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단유가 있는 과중반도 그런 일반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년 이상 반강제적으로 대입을 위한 공부에 몰두해야 했던 것은 과중반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면 또 지금과 다른 생활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주위의 강제 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잔뜩 다운 받아서 하루 종일 감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수능이 끝났다고 완전히 마음 놓고 편하게 놀 수 있는 형편들은 아니었다. 가끔 논술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과학 서술형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을 요구하는 대학에 지원할 학생들은 이를 준비해야 했다. 계속해오던 게 그런 문제를 푸는 일이었던 과중반 아이들이라고 해도 방심은 할 수 없었다. 한순간의 실수가 탈락이라는 결과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실은 혼란스러운 난장판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며 노는 아이들이 반, 놀지 못하고 책과 씨름하는 아이들이 반이었다.

그런 와중에 단유는 교실이 아닌 교무실 옆 상담실에서 진학 상담을 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선생님은, 왼손으로는 머리를 감싸고 오른손으로는 펜을 돌리며 앞에 놓인 브로셔를 쳐다보았다. 가끔 눈만 들어 앞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은 단유를 훔쳐보았지만, 답이 안 나온다는 얼굴로 브로셔를 보며 한숨을 쉬기 바빴다.

더 솔직히 말하면, 브로셔를 볼 필요도 없었다. 가채점이긴 해도, 단유의 점수와 성적이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대학은 가고 싶은 데로 갈 수가 있다. 굳이 안내서에 기록된 번지르르한 소개말을 언급하며 이런 대학, 저런 대학을 권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

그 외에는 어떤 대학도 권할 이유가 없는 선생님이다. 다만 이제 그 대학 내에서 어떤 과를 지정해 갈 것이냐를 두고 조언을 해주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의 성향과 잠재력, 그리고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적합한 전공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지만, 실상은 수능 점수와 내신 점수를 반영하여 합격 가능한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알선하는 정도다.

그러니 단유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고르면 합격이 보장된 상황인데. 어떻게 보면 선생님으로서는 가장 편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단유와 마주한 선생님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싶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금 꼭 대학 가야 하나요?”

“뭐?”

선생님은 단유의 폭탄 발언에 얼이 빠졌다.

“지금은 그냥 쉬고, 나중에 대학 가면 안 될까요?”

“왜 그러니, 단유야.”

선생님은 혹시 단유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했다.

“몸이 안 좋니? 오래 쉬어야 할 만큼?”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런데 왜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그러니?”

“대학을, 가긴 갈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서요.”

“왜? 나중에 가면 얼마···.”

재수로 대학을 들어갔었던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충고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지금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뭘 하고 싶은데?”

일단 단유의 의향을 정확히 알아야 충고를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 여행이요.”

“여행?”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너무 모범적인 대답이라 선생님은 쉽게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래, 선생님도 그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시야도 넓히고 다양한 풍광들을 즐기고 싶어하는 네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굳이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인지는 모르겠구나. 일단 대학을 들어간 뒤에 방학 때 여행을 다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냥 잠깐 구경하는 여행 말고요, 시간을 두고 머물면서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싶어요.”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한 단유의 태도에 선생님은 머리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막말로 지금 단유의 성적이면 서울대든 카이스트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게 어렵지 않다. 정확히 정보가 나오지 않아서 단언할 순 없지만, 단유의 성적은 전국 석차 3위 안에는 들 수 있을 점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성적을 가지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할 아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물었다.

“여행 갈 경비는 있니?”

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 단유는 고아다. 비록 지금 보호자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닐 것이다. 대학을 가는 것은, 단유의 성적이라면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라면 다른 사립대보다 저렴하니 경제적 제약을 덜 받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갈 정도의 여행이라면 기간도 기간이지만 경비도 엄청나게 들 게 뻔하다. 그런 경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네.”

“있어?”

“네. 그동안 조금씩 모은 돈이 있어요.”

조금씩 모았다고 해서 해결될 돈일까? 만약 재벌가의 자녀가 매달 받은 용돈을 모아서 여행을 간다고 한다면, 얼추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단유는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혹시 무전여행 같은 걸 생각하니?”

무전여행이라는 낭만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무일푼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선생님은 단유에게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려 했다. 그러나 마주 앉은 사람은 단유다. 전국 석차 3위 안에 들리라 생각했던 아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여행을 계획했을까?

결국 선생님은 상담 중지를 결정했다.

“같이 사시는 보호자 분이랑 이야기를 나눠야겠구나.”

오후에 일을 나가시니, 오전 중에 오시라고 말을 전했다.

“너희 선생님은 니 생각을 아시니?”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단유가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하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기가 막히네.”

“뭐가요?”

“너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결정한 건 아니지?”

하은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결정한 뒤, 세계 여행을 떠났다.

“아니면, 재훈 오빠 때문이라거나?”

재훈도 대학 입학 후 곧바로 휴학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고, 2년 동안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와 학교를 다녔었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을 보다 보니 너도 거기에 영향을 받은 거 아냐?”

단유는 볼을 긁적이다 멋쩍게 웃었다.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건 순전히 제가 필요하다고 느껴서예요.”

“왜?”

“이번에도 느꼈지만, 대학을 가는 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딱히 시험이 어렵지도 않고요.”

“와, 오만한 녀석!”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그리고 만약 진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제가 정말 원하는 공부를 선택해서 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확히 고를 수가 없어요.”

“일단 들어가고 난 뒤에도 전공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편입학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단유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잠시 응시했다. 이윽고 다시 시선을 하은에게 맞추며 말했다.

“귀찮네요.”

하은은 피식 웃었다. 단유의 생각은 알겠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과를 골라서 가겠다, 는 것. 대학이라는 곳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어쩐지 단유는 그런 게 의미가 없을 듯했다. 그리고 대학의 이름도 단유에게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듯했고.

이미 지난 시간 동안 단유를 곁에서 보아온 하은은 단유의 특별함을 잘 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함을 고려하면, 남들이 선택하는 평범한 루트는 굳이 따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단유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나도 귀찮겠는데?”

보나 마나 학교에서 자신을 부를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단유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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