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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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12시 즈음까지 자다가 일어났을 하은이지만, 오늘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후에 일을 하려면 그래도 수면은 충분히 취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침대에 누운 채로 뒤척거렸지만, 결국 오지 않는 잠을 어찌할 수 없어 하은은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암막커튼을 걷으니 늦가을의 청명한 햇살이 하은을 감쌌다.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창밖을 내려다보다 어두컴컴한 실내로 고개를 돌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잘하고 있겠지?’
수능 당일임에도 평소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다 오는 단유를 보며, 하은은 차마 호들갑을 떨기가 어려웠다. 그 속을 완전히 읽은 건 아니지만,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려는 단유를 보며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게 어쩐지 실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하은도 평소와 같이, ‘잘 다녀와’라는 짧은 말로 단유를 배웅했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하은의 마음도 그렇게 평온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도 눈을 껌뻑이며 거실로 나와 시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킁.”
시선을 내리니,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호빵이 보였다. 하은은 점잖아진 호빵을 품에 안고 손끝으로 머리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호빵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그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처음 호빵을 키울 때는 손이 많이 갔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거실 바닥 곳곳에 지뢰를 설치하기 일쑤였고, 집안 곳곳에 흘리고 다니는 하얀 털들이 눈에 밟혔다. 그도 모자라 새벽에도 킁킁거리며 거실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밥투정이 심해서 사료를 먹이는 게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손이 덜 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단유가 틈틈이 청소를 하니 집 안은 다시 깨끗해졌고, 명수가 훈련을 시키니 대소변을 가릴 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점잖아진 탓인지 괜히 뛰어다니면서 사람 정신을 빼놓는 일은 크게 줄었다.
예전에는 그저 귀엽기만 했던 호빵이었지만, 이제는 귀여운 외모를 떠나 그냥 가족으로서 함께 하지 않으면 허전한 호빵이다.
단유와 명수도 그렇다. 예전에는 그저 정성으로 보살펴주고 응원해줘야 할 대상이었던 두 아이는 이제 한 가족임은 물론이고, 가끔은 하은이 의지해도 괜찮을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일 수도 있을 시험을 맞이하면서도 하은이 단유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단유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뜻임과 동시에 단유가 하은의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걷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암시처럼 느껴졌다.
비록 명수는 시험을 치지 않지만, 명수 역시도 조만간 프로팀과 계약을 맺고 나면 프로팀의 연고지가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울이나 수원, 인천과 같은 곳이라면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합숙과 훈련, 그리고 경기를 밥 먹듯 치러야 할 프로선수가 된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두 사람이 이 집을 떠날 날도 머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득 친구들이 자신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걔네들이 너한테 진짜 가족이라도 돼?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 당시에는 보류했던 그 대답을, 이제는 슬슬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얌전한 호빵의 반응에 아래를 바라보니, 어느새 눈을 감고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하은은 좀 더 호빵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
오전 시험을 모두 마친 후,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식사 대신 흡연을 위해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학교를 다닐 때도 담배를 피는 학생들이 없진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숨 쉴 틈 없이 빼곡하게 화장실을 채운 모습으로 연기를 뿜어내는 장관(壯觀)은 본 적이 없었다. 개중에는 재수생도 있을 테지만, 현역 고등학생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단유는 교무실이 있는 층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이 곳은 감독관 선생님들이 자주 지나다니기 때문에 그런 연기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 이유로 이 화장실을 찾는 사람은 비단 단유 만은 아니었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보고 복장을 점검하는 단유의 뒤로 다소 왜소한 몸에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낸 남자가 지나갔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젊은 외모를 보면 재수생인 듯했다. 남자는 단유에게 특별히 시선을 두지 않고 화장실을 빠져나갔고 그 뒤를 단유가 잠시 쫓아 보다가 손을 털었다.
화장실을 나온 단유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왕에 본 것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검은색 점퍼에 낡은 청바지 차림의 남자는 상의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가끔 오른손으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는 모습이 보였다.
교실로 들어가나 싶었지만 남자는 중앙계단에서 아래로 내려갔고, 곧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학교 본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남자의 뒤를 쫓던 단유는 멀리 운동장 너머에 닫아놓은 학교 출입문 건너편에서 학교를 향해 애타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추측해보면 여기서 시험을 치는 학생들의 부모일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간절하게 기도하며 자녀가 시험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저기서 기다릴 모양이다.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가질 않고 저 자리에 서서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자녀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픈 마음일까?
그러나 사람이 모두 제각각이듯, 그들이 애타게 기도하는 자녀들 중 일부는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노트를 보며 점심을 먹는가 하면, 어떤 자녀들은 가방을 싸 들고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어떤 자녀는 밥보다 구름과자가 급했던 모양이고, 어떤 자녀는 점심도 거른 채 어디론가로 향한다.
머리를 손질한 지 꽤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남자는 주변을 살피며 변관 옆으로 향했다. 그 남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쫓던 단유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본관에는 교무실이 있어서 선생님들과 감독관들의 눈에 띌 수도 있지만, 별관에는 점심시간이라 감독관이 올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뭔가를 저지르기에는 딱이다.
남자는 별관 측면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 3층을 지나 4층까지 죽 올라가는 남자를 단유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남자는 불만을 곧잘 터뜨리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속에 묻어두고 꾹꾹 참고 견디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자에게 성격이 좋다고 칭찬을 했다. 어떤 일을 시켜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해내니 좋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치뤘던 첫 수능은 너무 점수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재수해서 좋은 대학 가자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런데 재수 1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아버지의 회사가 휘청거리더니 끝내 무너졌다. 집 안에 압류 딱지가 붙는 광경을 드라마가 아닌 실제 자신의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별 이유 아닌 사고로 넘어졌는데, 그만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다.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 보험이 있어 수술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 이후의 치료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보험으로 보상받기 힘든 것이었다.
그 때문, 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어쨌든 재수도 망했다. 집안도 어려워진 마당에 대학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
대입을 포기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 때문에 남자는 다시 삼수를 준비했다. 그러나 마냥 삼수만 준비할 순 없는 것이, 등록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남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비록 첫 수능에서 물 먹긴 했지만 자신의 성적이 나쁜 편도 아니었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또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는 것은 가계에 도움이 되고, 차후 혹시라도 합격수기 같은 걸 쓰게 된다면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아르바이트는 쉽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찾아온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불콰해진 얼굴로 들이닥쳐서 주정을 부리는 인간도 있었고, 매장 안을 계속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수상한 몸짓으로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최악은 사장이었다.
시간이 금이라는데, 제 시간에 교대 업무를 한 적이 드물었다. 자신이 손해 본 만큼의 시간을 보상해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사장과 차마 옥신각신 다툴 성격이 되지 못해 조용히 입 다물어야 하는 자신이 밉고 한심했다.
“학생이 공부하는 건 좋은데, 손님 있는데서까지 책을 보고 있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싶네?”
손님 응대가 엉망이잖아, 라고 소리라도 치면 모를까 저렇게 은근한 어투로 사람 속을 긁으니 더 열이 받는 것 같았다.
“벌써 수능인가?”
“네. 그래서 그만두려고요.”
“그럼 한 달 전에 이야기 해줬어야지,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요.”
“사람이 구한다고 바로 구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안 그럼 내일부터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내가 빨리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수고해줘. 대신 시급 조금 더 쳐 줄게.”
얼마냐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당 100원 더 오른 시급을 받고 편의점을 그만둘 수 있었다.
안일하게 생각했고,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수능은 역시나 남자에게 큰 벽이었다. 첫 시간, 언어영역 시험지를 잡는 순간 남자는 울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록 채워지지 않는 OMR 카드를 보면 속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를 욕하겠어.’
미련한 자신을 욕할 수밖에. 모질게 행동하지 못한 자신을 흉볼 수밖에.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생활했던 걸까? 돈은 모았지만, 돈이 있어도 시험을 못 치면 대학을 갈 수가 없는데.
삼수도 실패하고 나면, 부모님은 자신을 어떻게 쳐다볼까? 자리에 누워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어머니는 어떤 말을 하실까? 대학 진학에 실패한 자신이 편의점을 지나다 사장과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저런 사람은 얼굴에 표가 확연히 드러난다. 무언가 극단적인 결정을 하기 직전의 사람은 눈에서 이미 다른 사람과 다른 빛을 발한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다.
“지금부터 내가 미친 짓을 할 테니까 잘 봐둬.”
라고 외치는 눈빛이다.
굳이 단유가 그 남자를 따라온 이유는 과연 그 남자가 어떤 미친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 호기심이 생겨서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오늘 이 고사장에서는 부디 큰 사고가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기도 해서였다. 어떤 불의의 사고로 고사장의 시험이 방해를 받으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가장 높은 층에 오른 남자가 조심스럽게 난간 위로 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4층이다. 저기서 바닥을 향해 힘껏 뛰어내린들 죽을 수나 있을까 싶은 높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난간 위에 선 남자가 심호흡을 하고 있다. 보아하니 쉽게 뛰어내리진 못할 것 같다. 남자가 뒤를 힐끗 돌아보는 모습이 보이고, 뭐라고 소리치는 모습도 보였다. 아마 4층에 머물러 있던 학생들이 그 남자의 모습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산책을 하던 학생들 몇몇도 단유 근처에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지?”
“저기서 뛰어내리려고?”
“미친 거 아냐?”
“관종인가?”
“시험 망쳐서 그런가?”
“고작 시험 망쳤다고 저래? 아까 우리 반에서 시험보던 어떤 애는 시험지 받자마자 OMR 카드 내고 교실 나가더라. 완전 쿨하던데.”
지금쯤이면 어디 공원에서 소주로 병나발을 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소동을 벌이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저 남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하찮은 이유가 누군가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이유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걸 하나하나 헤아려 이해해줄 여유는, 적어도 이 시험장에는 없었다.
단유는 상황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마무리 짓고 교실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감독관 몇몇이 뛰어서 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자신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이라고. 자신이 왜 뛰어내려야 했는지를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시선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리 가! 가까이 오면 뛰어 내릴거다!”
눈물을 가득 담은 눈으로 소리를 지른 남자는 벽을 짚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도와줄까?
뒤에서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흠칫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얼굴에 볼록한 배를 내민 아기가 자신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남자는 누구냐고 물을 수 없었다. 아기 같은 외모와 목소리는 성인 남성 못지않게 굵고, 온몸이 붉은색에 흑갈색 트렁크만 입은 사람을 보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공중에 둥실 떠 있는 존재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금 뛰어내리면 내가 바로 널 데리고 지옥으로 데려가 줄게. 어서 와. 지옥은 처음이지?
아기가 입을 죽 벌리며 웃었다. 그리고 조막만한 손을 내밀어 남자에게 다가갔다.
“으아악!”
남자는 놀라서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남자가 뭐에 놀란 듯 내려오자 4층에서 남자와 대치 중이던 사람들이 얼른 부축하려고 가는데,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엉덩이로 땅을 밀며 물러서기만 했다.
“저리 가! 저리 가!”
무엇을 보고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미쳤다.’
가끔 심한 스트레스에 정신이 나간 사람도 있다고 했으니, 아마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