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정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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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점도 있다. 막말로 동영은 단유를 때린 적이 없다. 시비가 붙은 건 사실이지만, 곧 선생님이 나타나면서 자기만 죽어라 달아났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은 승현에게 개처럼 끌려가 짖으란다고 짖은 꼴이다. 개 같은 기분이다.
단유는 자신을 향한 악의의 당사자를 확인 후 시선을 피했다. 미친개 같지만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사냥개였다. 저 덩치는, 적어도, 눈앞에서 맞주먹을 교환할 녀석이긴 해도 뒤에서 음흉하게 칼을 빼 들고 다가올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아닐 수도 있지.’
지금은 자신의 눈을 믿기 힘들었다. 확신을 갖지 못하는 건, 역시 그 옆에서 승현 때문이다. 아는 척하지 않는 건 고맙지만, 그 저의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냥 이대로 졸업 때까지 모른 척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단유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단유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들, 숨죽이고 다가서는 강도의 칼을 피할 능력까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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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들어 벌써 세 번째 모의고사다. 시험 하나 끝내고 숨돌릴 틈도 없이 시작되는 모의고사에 아이들은 모두 진이 빠진 얼굴이다. 하지만 쓰러지기엔 이르다. 한 달 뒤, 대망의 그 날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제3차 대전이 시작될 날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사실 두려움은 더 크다. 단 하루, 단 몇 시간이 전체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결코 웃을 수 없다. 만반의 준비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짜증 나는 상황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 와중에 모의고사는 테스트라기보다는 ‘네 미래가 이렇게 암울할 거야’라고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만 느껴진다.
수능을 포기한 이들이라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다. OMR 카드를 받자마자 1분 컷으로 마킹을 끝내고 자리에 누우면, 편하게 잠들 것 같지만 사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인생의 회의를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누군들 자신의 인생을 똥통에 집어넣고 편하게 웃을 수 있겠는가.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다면,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후회로 가득할지도 모를 얼굴을 감추기 위해 책상 위에 얼굴을 파묻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는다. 종이 울리고 ‘손 머리 위로’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엉기적거리며 따르는 척, 선생님이 나가면 시끌해진 교실을 조용히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한숨을 돌리고,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와 자리에 비스듬히 앉아서 교실 속 아이들을 관망하듯 바라보다가 종이 치면 또다시 엎드릴 준비를 한다.
과중반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물론 일반계에 비하면 더 확실한 비전과 목표를 가진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수능을 포기한 이가 없진 않았다. 처음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자신도 있었고, 부모님과 학원에서 과중반 진학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거라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상대평가에 따라 순위가 나뉘면서 자신감은 떨어진다. 멘탈은 조금씩 금이 가고, 일반계에 비해 ‘똑똑한’ 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깐 정신을 놓으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고, 자신은 아무리 계산하고 이해해보려 해도 되지 않는 걸, 옆자리 아이들은 금방금방 이해하고 문제를 풀이해낸다.
중학교 때 잘했다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2학년 때 일반반으로 반이동을 신청해서 떠난 친구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 돼! 넌 할 수 있어!”
고민 끝에 털어놓는 자녀의 요청을 부모님은 거절했고, 대신 더 많은 학원과 인강과 과외를 물색하여 자녀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들이라고 답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릴 때 똘똘하고 영특하다고 칭찬받던 자녀가, 성적표만 받아오면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단유는 특별하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과외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솔직히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 학생이다. 애초에 모르는 게 없는 아이 같은데.
“단유야, 이거 한 번 풀어봐 줘.”
“이건, 이쪽 방정식에 0에 수렴한다는 것만 알면 되네. 0분의 0이 되니까 이 식을 미분하면 간단하게 답이 나오겠지?”
“단유야 이건?”
“거울상 이성질체잖아? 네 개의 서로 다른 치환기와 결합 되는 거.”
머뭇거림도 없이, 마치 자판기처럼 버튼을 누르면 답이 툭 하고 나온다.
그런 단유였기에 이제껏 전교 1등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처음에 그를 잘 모를 때야 한 번 이겨보겠노라고 밤을 새웠지만, 지금은 그를 이기겠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신계에 있을 애가 인간계에서 같이 어울리고 있는 거잖아.”
“불쌍한 중생들을 굽어살피소서.”
그러나 지금 단유는 그런 모의고사가 별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모의고사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능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다. 또래 아이들이 수능에서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면, 감히 그 앞에서 ‘수능 따위’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수능이라는 게 이제까지 배운 걸 점검하고 상위의 학문을 배울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한다는 차원의 시험이 아닌, 그저 대학 진학을 위한 선발자료로서의 가치만을 지니며 이를 위한 갖가지 꼼수를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는 현실에서 단유의 지향점은 다른 이들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은 대학 진학 계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의고사가 끝난 후, 남은 시험은 오직 수능뿐인 시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멘탈 관리를 위해 가끔 상담하는 것 외에는 아이들을 특별히 통제하지 않았다. 민감한 시기에 아이들을 잘못 건드려 분란을 만들기 싫은 까닭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면담도 그런 면에서 선생님들에게는 나름 스트레스였다.
9반 담임은 더욱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남들은 ‘반에 전교 1등이 있으니 좋겠어요’라거나 ‘수능 결과 나오고 인터뷰하는 거 아냐’라는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있다. 하지만 9반 담임은 바로 그 1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정말 대학 안 가려고?”
도대체 모의고사에서 만점씩이나 받는 인간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어떤 충고나 상담을 해줘야 하는가? 물론 본 시험에서 그 점수가 그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남들은 설레발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3학년에 올라온 이후의 모든 모의고사에서 상위 0.01%의 성적을 거둔 이의 수능 성적이 좋으리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왜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거니?”
이제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돌연 대학 진학에 뜻이 없다고 말하는 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담임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과장하면, 학생에 대한 지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문책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학에서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요.”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데? 사실 대학에 가면 비록 전공을 정하긴 하지만, 타 전공의 수업도 원한다면 들을 수 있단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원하는 전공을 수강해서 듣는 게 가능해. 그뿐 아니라, 복수전공이나 부전공 같은 시스템이 지원되면 다양한 전공들을 배우는 것도 가능하고.”
담임은 책상에 펼쳐둔 교무 수첩에 슬쩍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단유에 대한 기록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빼고 대략적인 것만. 그 내용만으로 단유라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과목에 강점을 보이고 어떤 과목에 약점을 보이는지가 적혀 있다.
강점은 역시 이과계열 과목이고 특히 수학과 물리, 화학에 특히 강하다고 적혀 있다.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약한 과목이라고 해도, 그것은 해당 과목 선생님들의 첨언에 의한 것일 뿐, 성적만 보자면 언제나 만점인 단유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것이 바로 성적이라는 수치의 맹점이다. 음악을 잘 못 하고, 미술을 잘 모르지만, 시험이라는 정형화된 테스트를 통해 점수를 내면 마치 다재다능한 인간인 것 마냥 묘사되는 상황이니까.
“솔직히 이 점수면, 서울대 의대도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선생님.”
“응?”
“고등학교 내내 의학과 관련해서 제대로 배운 게 없는데, 대학교에 가서 의학을 배워야 하나요?”
“뭐?”
단유의 엉뚱한 질문에 선생님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똑똑한 애가 이런 것도 모르냐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교에서 배울 고등 학문들을 배울 준비를 하는 거야. 법대도, 의대도 마찬가지 아니니? 법학, 의학, 경제학 이런 전공들이 모두 그래.”
잠시 단유를 보다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사실 너라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과정의 수업들이 너무 쉬웠겠지, 너한테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그것이 대학에서 배울 어려운 전공과목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냐, 안 되냐를 판가름하는 것이거든. 수능은 그걸 판별하기 위한 시험이고. 이를 통해서 대학은 이 학생이 대학에 들어와서 수업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분별하는 거야.”
단유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여 선생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음을 보였다.
“너 물리학 좋아하잖니? 물리학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하더라. 호기심도 많고 결과를 추정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실력이 남다르다고. 그렇다면 물리학과에 가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 않겠니? 양자역학이니, 전자기학이니 하는 거. 선생님은 잘 모르지만, 이런 분야도 굉장히 고도의 학문이고 연구의 필요성도 많은 분야라 너처럼 진취적인 학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이 진취적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단유였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그리고 요즘은 이공계 쪽으로 가야 취업이 잘 된다고 하잖니? 국내에도 여러 연구소가 있지만, 재능만 있다면 해외의 유명 연구소나 기업으로도 취업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어느 대학의 팜플렛에 나오는 홍보 문구 같은 선생님의 조언에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심히 설득한 것 같은데 단유에게서 나온 답변은 심심하다. 선생님은 조금만 더 설득해볼까 하다가 일단은 시간을 두고 하기로 했다.
“일단 수능은 볼 거지?”
“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래, 일단 수능을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서둘러서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수능 끝나고 다시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눠보자.”
“네, 선생님.”
단유가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이곤 돌아섰다. 교무실을 나가는 단유를 보며 선생님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서린 한숨이었다.
“왜 그래요? 선생님.”
멀찍이서 보던 동료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담임 선생님이 사정을 설명하자 선생님은 혀를 찼다.
“천재들은 괴짜라더니만, 쟤도 그 과네요.”
천재, 라면 천재일지도.
“그렇네요.”
“선생님이 고생이 많겠어요.”
저 아이가 만약 진짜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학교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선생님은 문득 생각난 사람을 떠올리고 교무 수첩을 뒤졌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본 하은은 올 게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며칠 전에 단유와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단유와 담임이 그 이야기를 나눴음이리라.
솔직히 하은은 단유의 대학 진학에 대해 정확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대학이라는 곳에 배운 바를 이렇게 써먹고는 있다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이 과연 단유에게 필요한 공간인가를 고려하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 이라고 조언할 수 없었던 탓이다.
취업, 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이미 단유는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있다. 처음에야 아르바이트 삼아 한다고 여겼지만,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번역일을 통해 수입을 거두면서 단유는 이미 일반 직장인들과 비슷한, 혹은 보다 많은 수준의 수입을 거두고 있었다. 솔직히 세금도 하은과 비슷하게 내고 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일거리를 줄였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점도 있었기에 직접 단유가 계약한 출판사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번역가란 직업이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며, 단유 정도의 실력이라면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넉넉한 수입을 얻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하자면, 단유는 이미 취업을 위해 대학을 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이란 곳은 그 본래의 의미로서 접근해야 한다. 과연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으로서, 단유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업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