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52화 (552/956)

충동, 관심(1)

-------------- 552/952 --------------

반에서 키가 중간 정도인 정원은 쪼르르 달려가 까치발로 고개를 쭉 내밀고 스크럼 안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살폈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두 사람은 모두 눈에 익은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국어 과목을 담당하는 지영호 선생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남자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급식실에 올 때마다 보던 얼굴이었다.

두 사람 다 얼굴을 붉힌 채로 상소리만 안 한다뿐이지, 거친 언사를 내뱉으며 언제 멱살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당신이 뭘 안다고 큰 소리야!”

“뭐? 당신? 언제 봤다고 당신이야!”

“소리 지르지 마!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

“너나 소리 지르지 마!”

“너? 너? 당신 지금 말 다했어?”

뒤늦게 급식실로 온 학생들 역시 사정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상황을 살피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래서 정원과 단유는 굳이 묻지 않고도 사정을 엿들을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이 지 선생님은 점심을 먹기 위해 동료 교사들과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4교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모처럼 일찍 급식실에 올 수 있었지만, 앞에는 발 빠르게 내달려 미리 줄을 서고 있던 학생들이 있었다. 지 선생님과 동료 교사는 ‘수업 종이 치기도 전에 미리 나왔던 거냐’며 가벼운 농담조로 학생들에게 말을 건넸다. 사실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떤 선생님들은 4교시가 마칠 무렵이 되면 산만해지는 교실 분위기를 파악하고 평소보다 3분 내지 5분 일찍 수업을 마쳐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알았기에 교사들도 딱히 진지하게 지적할 마음은 없었고, 그저 나란히 선 김에 교사로서 농담을 건넸을 뿐이었다. 학생들 역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머쓱해 하는 표정으로 교사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급식실은 시간이 되기 전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급식실 내에서 배식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문을 열고 학생들을 받아주어야 질서가 지켜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통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10분 전에 배식 준비가 되기 마련이고, 종이 울리면 실장이 문을 열고 학생들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종이 울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급식실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진 지 선생님은 유리문 너머 실내를 살폈다. 40대 중반의 급식실 실장이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뭐랬어요! 세척실에 들어갈 때 빨간 앞치마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이었다. 중년이라고 표현하기도 어색한 것이, 외관상 50대는 넘는 것으로 보였다.

“똑바로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만두라고 했잖아요? 이게 몇 번쨉니까!”

나이든 여성이 그보다 어린 실장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어린 학생들이 빤히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저런 행동은 지양해야 옳을 것이다.

지 선생님은 유리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흥분한 탓인지 목둘레가 붉게 물들었던 실장이 그 소리를 듣고 얼른 다가왔다. 문을 열고는 바로 사과의 말을 전한다.

“늦게 열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요, 애들 보는 앞인데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아 예, 죄송합니다. 저···사람이 실수를 해서 말입니다.”

지 선생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저 사람’이라는 표현도 듣기 불편한데, 핑계라고 대는 말이 면피성 발언이라 불쾌했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나이도 많으신 분인데 좀 그렇습니다. 어쩌다 실수를 했다 쳐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실장도 지 선생님의 지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문을 늦게 연 건 죄송한데, 사정도 모르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네?”

지 선생님이 반문하자, 실장은 짧게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저희도 저희 사정이란 게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그렇게 가르쳐 들려고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이때 이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눈치 없이 뛰어들어갔던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선생님과 실장의 말다툼이 벌어지는 현장을 넘어가지 못한 채로 멀뚱히 서서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급식실 안에서 배식을 준비하던 조리보조들 몇이 뛰어나와 실장을 말리는 시늉을 했다.

“실장님, 일단 나중에 얘기하시죠.”

“아, 이거 놔봐요. 이 선생님이 뭣도 모르면서 말을 막 하잖아요.”

지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실장을 바라보았다. 젊은 지 선생님의 눈에 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가 잘못한 거네.”

“뭐야, 저 사람.”

사정을 들은 뒤 실장을 욕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정작 실장은 선생님과 말다툼으로 주변의 목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었기에 그런 분위기를 알지 못했고, 다만 실장 뒤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중간에 끼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급식실 인원들만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시온 잉크처럼 낯빛이 변했다.

“저 아저씨가 갑질 같은 거 한 거 아냐?”

“같은 게 아니라 갑질을 한 거지. 꼴에 실장이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더니만.”

“급식실 실장이 무슨 벼슬이라고?”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런 사람 된다?”

“지랄하지 마, 새끼야.”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굳이 목소리를 낮출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말들을 단유와 정원도 주워들었다.

“미친 거 아냐? 그래도 여기가 학굔데, 학교 안에서 선생님이랑 저렇게 하는 건 이게 좀 모자란 거 아냐?”

정원이 자신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에 단유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뭔가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정원의 착각일까? 비록 1년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단유의 얼굴을 자주 관찰해왔던 정원은 평소의 담담한 얼굴이 아닌 표정에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왜 그래? 열 받은 거야?”

“아니.”

“그럼?”

“식사 시간이 늦어지니까.”

단유는 일찍 식사를 마무리하고 교실로 돌아가서 책을 읽고 싶었다. 평소에 꾸준히 지켜오던 그 페이스를 방해받았다는 점에서 조금 불만이 있었던 것일 뿐.

정원은 입구를 막고 싸우는 두 사람, 지 선생님과 실장을 돌아보았다. 지 선생님과 함께 왔던 교사들이 ‘왜 그래요, 선생님’ ‘참으세요’라고 말리는 시늉을 하지만 지 선생님은 완강한 태도로 그 손길을 거절하는 중이었다. 실장 역시도 뒤에 선 급식실 직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더욱 드세게 나오는 중이었고. 그러다 보니 길이 쉽게 열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 실장이라는 사람이 그냥 사과하면 끝날 일인데, 왜 저러지?”

정원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왜?”

“응?”

“실장님이 왜 사과를 하는데?”

“그야 실장이 잘못했으니까.”

“실장님이 잘못했다고 확신해?”

정원은 또 자기가 무슨 잘못 말한 건가 싶어 입을 다물고 자신의 발언을 되짚어보았다. 단유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돌아섰다.

“어디가?”

“매점에라도 들러서 라면으로 때워야겠어. 너도 먹을래?”

“어? 그래.”

정원은 단유의 뒤를 따라갔다.

****

급식을 먹지 않고 매점에 와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은 이전에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급식실 앞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더 많은 듯했다.

“모르지, 애초에 이 시간에 라면 먹으러 매점에 와 보질 않았으니까.”

“앉을 자리가 안 보이는데.”

정원은 손에 든 컵라면을 들고 미어캣처럼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빈자리를 살폈다.

“아, 선배님. 여기 앉으세요.”

마침 근처에 있던 아이 둘이 두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단유를 보고 일어섰다. 넉넉하지 않아도 조금씩 양보하면 모두가 앉을 수 있을 자리가 만들어졌다.

“과중반?”

“네. 2반 장대준입니다.”

정원은 입꼬리를 주욱 늘리며 컵라면을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후배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격했다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마워.”

“저기, 선배님. 선배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단유가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나?”

“네! 저희 학교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셨다고.”

“최고는 무슨.”

“아냐, 최고지. 완전.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만점 1등이잖아. 오죽하면 선생님이 너 문제 틀리는 거 보고 싶어서 난이도를 올릴까 고민이라고 말하겠냐?”

정원의 추임새는 못 들은 척하고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내가 후배를 잘 챙기고 그런 편이 아니라서.”

뭔가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눈치에 후배가 재빨리 말을 던졌다.

“아닙니다. 선배님 덕분에 저희도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작년에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SEF)에서 수상하셨다고 들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뭔가 아부를 받는 기분이 들어 단유는 느낌이 묘했다. 고작 라면 먹으려고 매점에 들어왔을 뿐인데 후배로부터 이런 과한 칭찬을 받는다는 게 어색했다.

“특히 선배님은 오로지 독학만 한다고 들었는데, 공부 비결이 듣고 싶습니다.”

“공부 비결?”

“네!”

그런 거 없다, 고 솔직히 말을 하면 괜히 미안해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꼬마전구처럼 눈을 빛내는 후배를 향해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던 단유는 결국 언제나와 같은 대답을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많이 읽는 거?”

“어떤 책이요?”

그러자 정원이 끼어들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얘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거든? 쉬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책도 꼭 교과서랑 문제집만 보는 게 아니라, 교양서적들 있잖아? 이론서, 전문서 안 가리고 다 읽어. 옆에서 자주 봐서 아는데, 얘 만큼 책 많이 읽는 애가 없어. 그리고 책도 봤던 거 또 보고 또 보고 그래.”

“특정 학문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과목의 지식을 통합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부지런히 쌓는다는 말씀이시죠?”

“야, 너 정리 되게 잘한다? 척하면 척이네? 아주 똘똘해, 후배?”

“감사합니다.”

정원의 말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후배 대준이었다.

“너도 꽤 공부 잘하겠는데?”

“나쁘진 않습니다.”

“오오, 자신감?”

대준의 옆에 있던 친구가 ‘전교 5등 안에 들어요’라고 이르는 말에 정원이 놀라움을 표시하려 할 때, 단유가 팔꿈치로 정원을 툭툭 건드렸다.

“라면 불어.”

“아, 어. 그래.”

이미 라면을 한 번 휘젓고는 먹기 시작하는 단유를 따라 정원도 젓가락을 들었다. 후배들은 눈치를 보면서 각자 먹던 샌드위치와 김밥을 슬며시 가운데로 밀며 ‘이것도 좀 드시죠’라고 말을 붙였다.

‘역시 단유네.’

후배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단지 선배라서가 아니라, 단유이기 때문임을 정원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니까, 친구가 후배로부터 저런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 그런데 단유야. 아까 그거 무슨 말이야?”

“무슨 말?”

“급식실 앞에서. 실장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했잖아?”

단유는 오물거리며 먹던 것을 완전히 삼킨 뒤에야 입을 열었다.

“실장‘님’.”

“그래, 뭐 아무튼.”

단유는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실장님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실장님이 잘못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거지.”

“그게 그 말이지.”

대준이 눈치를 보다 물었다.

“혹시 필요 충분 조건의 성립 요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단유는 힐끔 대준을 본 뒤,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마저 말을 이었다.

“실장님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우리가 들은 거라곤 편향적인 이야기였을 뿐이니까.”

정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유의 말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