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야(5) - 1부 완(完)
-------------- 546/952 --------------
노는 것도 지친다는 말을 3학년 학생들이 공감할 무렵, 방학식 날이 되었다.
“이게 왜 피곤하냐면, 차라리 집에서 늦잠을 자면 괜찮은데, 학교까지 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피곤한 거야.”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게 싫다고?”
“솔직히 방학 때 약속 없으면 피시방도 가기 귀찮잖아.”
“완전 게을러빠진 새끼네.”
“그건 시험날 니 머리 이야기고.”
“개새끼.”
“그건 니 별명.”
지난 한 달간 그렇게 열심히 떠들어댔건만, 여전히 할 말들이 많은 것인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편한 자세로 수다를 떠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은 여간 시끌벅적한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단유는 혼자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명수는 축구부 감독님 만나고 온다고 잠시 교실을 나간 상황이었다. 같이 갈 테냐고 물어왔지만, 단유는 거절했다. 비록 한때 명의만 올라가 있던 상황이어서 단유도 공식적으로는 축구부였기도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던 상황도 아니기도 해서 보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시끄러운 교실에 있고 보니 그냥 따라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뿌연 창을 보니 그동안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가 싶었다. 먼지만 닦아내도 깨끗해질까 싶어 슬쩍 바람을 일으켰다. 창문의 바깥면에다 바람을 일으켰기에 아이들은 알 수 없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 장면을 봤다면 그 부분의 먼지만 사라지면서 창이 투명해지는 장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으로 먼지를 닦아내는 것도 한계는 있어서 주변에 비해 깨끗하다뿐이지 단유의 마음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바깥을 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오늘도 흐린 하늘과 짙은 구름이 동요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눈이 내릴 확률이 높다고 하니 어쩌면 오후에 눈이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유야.”
단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이사 간다며?”
단유의 앞자리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 중 한 명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단유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등학교 가도 보기 힘들겠네, 라고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단유가 이사 안 가면 이 동네 아이들은 전교 1등은 절대 못 했을 거야.”
“전교 1등만 문제겠어? 부모님들이 애를 얼마나 들들 볶을지 상상이나 되냐?”
“학원 선생님들도 이제 어깨 좀 펴겠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바라보니,
“너 때문에 이 동네 학원 원장들이 아주 말라 죽을 지경이었다고 하더라. 어떻게 된 게 학원을 보내도 단유를 이기지 못하냐며 엄마들이 가서 그렇게 난리를 쳤대.”
“내가 듣기로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단유를 이기지 못하면 학원 문 닫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건 좀 에반데?”
“진짜로 그랬대. 어떤 엄마는 단유가 학원도 안 다니고 집에서 인강만 듣는다고 들었다면서 자기 애한테 사이트별로 다 등록시켜서 새벽까지 인강만 듣게 했다더라.”
“에이, 뻥 치지 마라. 그리고 만약 진짜로 그렇게 했다고 해도 어떻게 하루 종일 인강만 듣고 살아? 그것도 다 같은 내용일 거 아냐?”
“진짜라니까?”
“우리 학교 애야?”
“우리 학교 애는 아니고 주연중학교 이야기야. 우리 학원에 다니는 애한테 들었어.”
“방에서 인강 듣는 척하고 야동 보고 있었던 거 아냐?”
“존나 보다가 엄마 들어오는 거 같으면 바로 알트 탭 누르고?”
“그러다가 걸리면?”
“걸리면 그냥 뭐 되는 거지.”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단유는 별 표정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단유가 그러는 모습은 여러 번 봤던 아이들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유 너 이사 가면 그쪽도 난리 나겠다.”
“단유를 이겨라 시즌 2가 시작되는 거지.”
“어차피 일등은 김단유.”
그저 단유를 소재로 좀 더 잡담을 끌어보자는 수작이리라. 그냥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돈독히 하려는 모습인지라 단유도 달리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유 넌 나중에 서울대 가겠지?”
이번에는 진짜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었던지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모르지.”
알 수 없다. 서울대가 목표는 아니지만, 하다 보면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선택의 기준이 다를 수 있으니까.
“어디 갈 거야? 법대? 의대?”
그렇지만 아이들은 단유가 서울대를 간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글쎄?”
“하아. 난 어디로 갈까?”
“가고 싶다고 한들 갈 수나 있겠냐? 네 머리에?”
“누가 모르냐? 그래도 꿈은 꿀 수 있잖아. 내 자윤데.”
“꿈꾸는 건 자유지만, 성적은 현실이지.”
한 아이가 툴툴대며 말했다.
“야, 골 아프게 왜 그러냐. 어차피 고등학교가서 생각할 문젠데.”
“그래도 걱정되잖아. 대학 못 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세상인데.”
“웃기네. 야, 니가 세상을 아냐? 그런 취급을 받는지 안 받는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사람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잖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게 다 진실이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진 않았을 거 아냐?”
“대학 안 나온 연예인들도 떼돈 벌면서 건물주 되는 세상이야. 대학은 무슨.”
“나도 동감. 솔직히 대학이니 학벌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돈만 잘 벌면 되지. 사실 난 대학 안 가고 바로 취업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애. 남들 대학 가고 군대 가면서 시간 낭비할 때 미리 취업해서 돈 벌어두면, 그 돈 불려서 목돈 만들고 또 굴려서 더 크게 만드는 게 유리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새끼네. 야, 돈을 모으는 게 쉽냐? 한 달 벌어서 그 돈 안 쓰고 모으는 게 가능하겠냐? 그리고 그 돈을 어찌 모았다 치자. 그러면 그 돈은 어찌 굴리게? 주식으로? 주식 하다 한강 간다는 말도 모르냐?”
“그거야 욕심부려서 그런 거고. 욕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하면 돈 벌 수도 있을 거야.”
“주식 자체가 도박이야. 도박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게 말이 되냐?”
하지만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주시는 아버지를 둔 아이는 친구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주식 보면 한 방만 노리는 식으로 몰빵하는 사람들이 망한대. 그렇게 안 하고 조심스럽게 나눠서 하면 투자야. 그리고 그렇게 투자하는 사람이 돈 번대.”
“씨발, 무슨 판타지 소설이냐? 어떤 게 오를지 미리 알고 찍지 않는 이상 어떤 게 오르고 내릴지 어떻게 아냐? 그리고 한강 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 뭐지, 기관인가, 아무튼 유명한 펀드 매니저 같은 사람들도 있잖아? 대학물 먹고 평생 그 짓만 하던 사람들도 한강을 가는데, 푼돈이나 굴리는 사람들이 주식을 하면 성공을 하겠냐? 그거 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차라리 은행에다가 돈 넣어두고 이자 먹는 게 백배 천배 낫지.”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날마다 주식으로 쫄딱 망했다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아버지의 돈줄을 막았다.
“야, 대학 안 가고 취업하려면 공고나 상고를 가지 왜?”
“집에서 대학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가는 거지.”
“취업한다고 말해.”
“그걸 어떻게 말하냐? 사실 우리 집에서부터 대학 안 가면 사람 취급 안 하는 분위긴데.”
현재 고2인 형과 어머니는 저녁 식사 때마다 언쟁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기는 건 어머니셨다. 대학도 못 가면 사람도 아니라고, 협박 조로 아들을 핍박하는 어머니 때문에 늘 형은 방으로 쫓겨난다.
“남자가 곤조가 있어야지.”
“그래서 넌 공고 가냐?”
“뭐 그런 것도 있지.”
“지랄하네. 야, 네 성적이면 인문계에서도 밑바닥이니까 공고 가는 거잖아?”
“아 이 새끼 솔직한 거 보소? 존나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사람 안 민망하겠냐?”
“미안하다, 새끼야!”
그렇게 웃음과 농담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친구들이었다.
중학생. 비록 어른들의 시선에는 어리기만 하고, 또 실제로도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놀기만 좋아하는 ‘어린’ 애들은 아니었다. 나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하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이 중학생들에게 미래는 그저 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와 같은 것이었다. 단 하나의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 위에 늦지 않게 올라타는 것. 그리고 다음 정거장까지 무사히 가는 것. 혹시라도 자신이 열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열차 문을 억지로 여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잠금장치를 마련된 열차를 타야 했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까지 얌전히 앉아서 안내방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이들의 과제였다.
과도한 경쟁 체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열차는 똑같은 조건의 객차를 연결해서 누구나 같은 자세로, 같은 속도로 열차를 타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뛰어다니지 말 것, 창문을 열지 말 것, 열차 안에서 싸우지 말 것 등의 룰을 만들어놓고 이를 지키도록 했다.
동등한 조건과 동등한 환경에서 열차의 승무원들은 말한다.
“개성을 키우세요.”
****
마지막 학년, 마지막 방학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방학식이 될 것 같았지만, 특별한 점은 별로 없었다. 겉으로는 그랬다.
“모두들 방학 잘 보내고, 특히 이번 방학이 중요한 거 알지? 이제 너희들은 더 이상 중학생이 아냐. 졸업식이 남았지만, 이제는 중학생이라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거야. 이 시기에 누가, 얼마나 더 열심히 노력했느냐에 따라서 너희들의 미래가 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돼. 정신 못 차리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가는 고등학교 가서 크게 후회할 거니까, 준비들 잘해야 된다. 알겠니?”
“네!”
“나는 너희들이 모두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서 나중에 몇 년 지나서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선생님, 저 왔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 물론 그렇다고 꼭 선생님 보러 오라는 얘기는 아니다. 알지?”
“네!”
“지금 대답한 사람 얼굴 기억한다?”
교실에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지나갔다.
“스승의 날이니 하는 날에만 와서 얼굴 비추고 가는, 그런 건 안 해도 돼. 가끔 생각날 때 와도 되고, 힘들거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할 때 와도 돼. 너희들은 졸업해도 내 제자들이고 난 너희들을 언제나 아낄 테니까.”
“우우~”
야유와 웃음을 흘러가고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모두들! 방학, 잘들 보내라.”
아이들은 교실에 폭탄이라도 설치되었다는 듯 다급하게 보일 정도로 교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가자, 단유야.”
“응.”
이런 날에도 책 한 권 가방에 담아 온 단유는, 여느 날보다 가벼운 가방을 둘러메고 명수와 함께 교실을 빠져나왔다. 마침 복도에서 달려나가는 아이들을 거슬러 오는 지태와 채윤을 만났다.
“오늘 어디 갈까? 피시방?”
“도하는?”
“그 새끼, 여자 친구 보러 간단다.”
지태가 투덜대다 명수를 향해 날 선 시선을 보냈다. 명수는 이유 없이 찔끔하며 왜, 라고 물었다.
“너 오늘 ‘여자 친구’ 만나러 가냐?”
“······.”
“아, 진짜. 이 새끼. 이런 날도 꼭 그러고 싶냐?”
“이런 날이니까 더 그런 거 아냐?”
“야, 우리가 며칠을 더 본다고 그러냐? 앞으로 이렇게 만날 시간도 별로 없어.”
당장 일주일 뒤, 단유와 명수도 이사를 가면 더욱 보기 힘들 것이다.
“상미도 같이 놀면 되지.”
채윤이 명수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하자,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 우리끼리 놀 때는 그냥 우리끼리 좀 놀자.”
지태의 말에 채윤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신경 쓰지 마. 이 새끼, 갑자기 외로워서 시샘하는 거니까.”
“외롭긴 누가 외로워?”
“넌 캐나다 가서 금발 미녀 사귈 거잖아.”
지태가 두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반드시 사귀고 나서 니들한테 톡 보낸다. 진심이다.”
“유학 간다는 놈이 공부 생각은 안 하고 여자 사귈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안 봐도 뻔하다.”
명수가 한마디 보태니, 또 지태와 명수가 툭탁거렸다. 두 사람, 정말 서로 헤어지기 싫은가보다. 단유는 웃으면서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뭐 먹지?”
태세 전환이 빠른 지태의 질문에,
“떡볶이, 돈까스, 라면, 짬뽕 빼고.”
라고 명수가 즉각 대답했다. 최근 이 네 메뉴만 돌아가면서 먹은 탓에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스테이크 어때?”
“스테이크?”
지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예전 명수랑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단유가 미소를 지었다.
교실 밖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하늘에서 하얀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이다!”
오랫동안 전전긍긍하던 하늘이 마침내 눈을 뿌리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네 사람은 운동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실려 내려오는 눈은 금방 함박눈이 되어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떨어져 내렸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완(完)>